충북알프스 구병산에 올라
지난 9월 17일 충북협회 산악회(회장 안병길)는 충북 보은 구병산을 찾았다. 새벽잠을 설친 탓인지 눈을 지긋이 감으니 어느새 적암리 휴게소란다. 안병길 회장의 친절한 안내를 듣는 둥 마는 둥, 한 10분쯤 계곡을 따라 가다보니 왼쪽으로 구병산 가는 길 이정표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해서 이름하여 구병산(해발 876미터). 일명 충북의 알프스로 소문난 한국 100대 명산중의 하나다.
누가 구병산을 충북의 알프스라 명명 했는가. 컴퓨터 검색창을 열고 보니 그 사연이 또한 정겹다.‘ 충북알프스'란 충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관이 빼어난 속리산을 잇는 43.9킬로미터의 산줄기를 충북 보은군에서 1999년 5월 17일에 충북알프스로 호명, 특허청에 등록을 마치고 관광상품으로 널리 홍보하고 있다. 충북 보은군 서원리 고시촌을 들머리로 하여 구병산과 속리산 산줄기를 이어서 형제봉 천황봉 문장대 관음봉 묘봉 상학봉에 이르기까지의 능선을 따라 보은군 할목고개(신정리)를 날머리로 하는 산행코스가 바로 충북알프스다. 예로부터 보은 지방에서는 속리산의 천황봉은 지아비 산, 구병산은 지어미산, 금적산은 아들 산이라 하여 이들을 삼산(三山)이라 일컫고있다.
우리 일행이 시발점으로 택한 적암리는 일명 사기막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 헌(趙憲)의 문인인 가평 출신의 포제 이명백(圃霽 李命百)이 의병을 일으켜 사기를 크게 진작 시킨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고개를 들어 구병산을 바라보니 현기증이 날 것 같다. 한참 오르다 보니 절터, 시계를 보니 벌서 11시 10분, A코스를 택해 853봉으로 치닫겠다는 건각들이 존경스럽다. 후배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굳이 A코스를 택한 홍정식 선배님(86세)을 걱정하며 두어 시간 남짓 올랐을까 비지땀이 비 오듯 한다. 드디어 정상이 보이는 가 했더니 여기서 정상까지는 거의 1킬로나 더 올라야한단다. 853 고지를 넘은 A팀 건각들이 다투어 추월하는 가운데 시계는 12시 40분, 정확한 배꼽시계가 밥을 달란다. 삼삼오오 둘러 앉아 점심 먹기 바쁘다. 옆자리를 보니 단양의 젊은 누님들이 정성껏 싸온 오곡밥에 삶은 양배추, 쌈장이 입맛을 돋군다.누군가 자주 산에서 읊조린 산행삼락(山行三樂)중 제 2락(정복의 희열)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산행삼락(山行三樂)이란 등산(登山-오르는 재미)이 1락이요, 정상정복(頂上征服)이 2락이요, 산행 후 뒤풀이가 3락이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유한한 인간존재의 경외심을 느끼며, 한발 한발 오르는 힘든 구간에서 자신과 싸우며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누고, 내가 걸어온 인생 고개를 더듬으며 내일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仁者樂山」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즐거움이 곧 1락이요. 정상에 올라 삼삼오오 모여 앉아 따르는 정상주(頂上酒)로 피로를 푸니 이게 바로 산행 2락이 아닌가. 이쯤해서 느끼는 희열은 바로 호연지기(浩然之氣) 무한히 높고 심오한 진리가 있으며, 억겁의 고요가 있고, 세상을 초월한 대자연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하산 길에 만나는 수정 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귀로에 차안에서 산행을 같이 즐긴 산인들과 나누는 한잔 술은 하루에 찌든 피로를 확 날려 버리기에 족하니 이 또한 삼락중 3락이다" 山高深谷 산이 높으면 계곡은 깊게 마련 산정상에 올라 생각에 잠기니 두보의 시 '登高'가 머리를 스친다. 얼마전 청석 지용우 선생도 登高를 시제로 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높은 산에 올라 下界를 굽어보니 /예가 바로 仙境이 아니고 무엇이랴/구름도 발아래로 스쳐 지나고/짝잃은 솔개가 빙글 빙글 圓舞를 추노나/나 말고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곳은/신선이 노니는 桃源境이로다 까마득한 저 아래 속세에선/아둥바둥 살겠다 다투는 소리 들리는듯/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게 인생인 것을/천년 만년 살듯이 왜들 아귀다툼인고/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어 땅거미 내리는 데/나는 아직도 산속을 떠날줄 모르네/말벗할 친구도 없이 혼자 왔으니/오늘밤은 山寺에서 잠을 청할거나
이날 충북협회 산악회의 하일라이트는 삼행삼락중 제3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한 구병산 메밀꽃 축제였다. 메밀꽃으로 뒤덮인 산허리에 자리잡은 장수마을 구병리,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이 봉평에서 날아든 느낌이다. 깨끗한 물, 맑은 공기, 깊은 산 속 향기 짙은 술이 익어가는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 메밀꽃 축제는 이날 야생화의 참맛과 은은한 향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야생화 전시, 전통주의 우수성과 그 맛의 오묘함을 느낄 수 있는 전통주제조과정(송로주), 추억의 옛날 물건을 전시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충북협회산악회의 잔칫날을 방불케 한 이날 행사장에선 속리산 풍물 각설이 품바, 전통국악, 풍물놀이, 메밀꽃가요제, 밸리댄스 등 공연행사가 한창이었다. 거금을 쾌척 산악회에 야외용 스댄 밥그릇을 희사한 제천산악회 박창순 사장을 비롯, 이번 산행에 공이 많았던 회원들의 시상을 끝으로 차에 오르니 오후 4시 30분, 유명가수 못지않은 노래실력이 흥을 돋우는 사이 어느새 차는 아침 출발지점에 와있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또 한잔, 저녁까지 해결하니 생각할수록 엔돌핀 만점이다.
첫댓글 스스럼없이 술술 엮어진 산행기에 몇점의 점수를 매겨야 할지, 순간 100점은 이미 채워지고 100점보다 더 높은 평점은 없는가, 궁리해 봅니다. 멋진 산행기 입니다. 2000년 9월 24일에 다녀온 구병산 산행이 새삼 떠오릅니다. 즐겁고 유익한 산행,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