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자료3-8.6>
도요새에 바친다
만경강 하구 갯벌
…〈전략〉…
뉴질랜드 북쪽 해안에서 발진하는 도요새 무리들은 남태평양 중앙회랑을 따라서 연안에서 연안으로 이동하면서 알래스카로 간다. 낯선 대륙의 연안들을 징검다리처럼 건너온 도요새 무리들은 지난 4월 첫째 주에 한반도의 서쪽 연안, 만경강 하구의 갯벌에 당도하였다. 새들의 무리 중에서도 친애하는 종자들이 따로 있는 것인지, 새들은 수십 대의 비행 편대로 나뉘어 저녁 하늘을 연기처럼 흘러서 갯벌 위에 내려앉았다. 먼 바다에서부터 날개 각을 낮게 숙여 바람에 몸을 맞춘 새들은 날갯짓 한번 퍼덕거리지 않고 고요히 강하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죽지 밑에서부터 날개 끝에 이르는 비행 근육은 작동시키는 새들의 앞가슴 용골돌기는 완강하고도 기름졌다.
새 떼들 돌아오는 저녁 하늘에서, 이미 며칠 전에 이 갯벌에 당도했던 도요새의 종족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울면서 패거리를 불러모아 또다시 북행하는 발진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고향이 없으므로 타향이 없다. 그것들은 여러 대륙과 반도와 섬의 연안에서 머무르고 떠난다. 앞에서 태어나 바람 속을 떠도는 그것들의 고난은 포유류에서 태어나 정주定住하는 땅에 결박되는 자들이 고난을 동료 중생의 이름으로 위로할 만하다.
새들은 다만 먹기 위하여 이 갯벌로 날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썰물을 따라서 갯벌의 맨 가장자리로 나갔던 새들은 밀물에 밀리면서 사람의 마을 쪽으로 가까이 온다. 썰물과 밀물 사이의 넓은 갯벌에서 새들은 쉴 새 없이 부리로 갯벌을 쑤시며 먹이를 찾는다. 먹어두어야 또 날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새들은 제 몸을 태워서 날아가 수밖에 없다. 도요새는 부리를 뻘 속에 끌면서 밀물에 밀린다. 물떼새는 뻘 위로 올라온 먹이를 육안으로 감지하고 부리로 쪼지만, 도요새는 먹이를 조준하지 못한다. 도요새는 뻘 속에 파묻힌, 보이지 않는 먹이를 덮어놓고 쪼아댄다. 어쩌다가 걸려드는 것이다. 그러나 죽지 않으려면, 보이지 않는 먹이를 향해 쉴 새없이 부리를 내리꽂아야 한다. 그래서 그것들의 부리는 딱딱하기보다는 부드럽고 민감하다. 부리를 무작위로 선택한 뻘 흙 속에 찔러넣고 그 안에 넘길 만한 것이 들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넘어가는 것보다 뱉어내야 할 것이 언제나 훨씬 더 많다.
밥 먹기의 어려움은 도요새나 저어새나 대동소이하다. 저어새의 부리는 넓적하다. 밥주걱처럼 생겼다. 저어새는 이 넓적한 부리로 하루종일 뻘밭을 훑는다. 들짐승이 밥을 먹는 모습과 같다. 부리 안에 물린 흙 속에서 넘길 것은 넘기고 나머지는 뱉는다. 먹이를 넘길 때마다 길고 가는 목줄기가 껄떡거린다. 저어새는 위태로운 멸종 위기의 새다.
4월 8일 오후 4시께 옥구 염전 앞 만경강 하구에는 밀물에 밀리는 저어새 열세 마리가 가까운 갯벌과 갯고랑에 입질을 하고 있었고, 사리만조가 갯벌을 다 뒤덮자 발붙일 곳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도요새들은 갈대숲으로 날아들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쌓아두지도 않거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먹이시느니라” 라는 마태복음의 축복은 아마도 저 배고픈 새 떼들의 고난에 바쳐진 것이리라. 그 새 떼들은 인간이 낙원에서 쫓겨날 때 함께 이 세상으로 쫓겨난 실낙원의 새 떼들처럼 보였다.
진화가 생명이 운명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도요새가 중생대 백악기의 어느 갯가에서 그 종족의 독자성을 완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억만 년의 시공을 그것들은 해독되지 않는 높은 옥타브로 울면서 연안에서 연안으로 퍼덕거린다. 수억만 년 전에 이미 멸절된 종족의 직계 후손으로 이 연안에 내려온 새들은 또다시 수억만 년 후의 멸절을 향하여 필사적으로 날아간다. 지나간 멸절과 닥쳐올 멸절만이 그것들의 고향이고, 그것들은 이 세상의 모든 연안을 나그네로 떠돌며 고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므로 『종의 기원』 속의 새들은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낙원의 새들보다 덜 아름답지 않다. 다만 불우하다. 이승의 연안에 내리는 다윈의 배고픈 새들은 멸절과 멸절 사이의 시공을 울면서 통과하는 필멸의 존재로서 장엄하다. 저무는 만경강 하구 갯벌 위로, 새들은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새들은 살아서 돌아온다.
갈대는 바람과 더불어 피고 진다.
갯가의 풀들은 바다 쪽으로 갈수록 키가 작아진다. 갈대가 사람쪽으로 가장 가깝고, 갈대숲 너머는 갯잔디, 그 너머는 칠면초, 그 너머는 퉁퉁마디이다. 밀물 때면 먼 풀들은 물에 잠기고, 새 떼는 갈대숲으로 날아든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들은 빛나는 꽃을 피우지 않고, 영롱한 열매를 맺지 않는다. 갈대나 억새가 그러하다. 갈대는 곤충을 부르지 않고, 봄의 꽃들처럼 사람을 유혹하지도 않는다. 갈대는 바람 부는 쪽으로 일제히 쓰러지고 바람의 끝자락에서 일제히 일어선다. 갈대는 싹으로 솟아오를 때부터 바람에 포개지는 모습을 갖는다. 뿌리를 박은 땅과 바람에 떠도는 씨앗의 하늘 사이에서 갈대는 쓰러지고 일어선다. 갈대는 초겨울에 흰 솜 같은 꽃을 피우고, 바람이 마지막 씨앗을 훑어낼 때까지 갈대의 뿌리는 바람에 끄달리면서 바람에 불려가지 않는다. 갈대의 엽록소는 다른 풀들의 엽록소처럼 햇빛에 빛나지 않는다. 갈대에게는 푸르른 기쁨의 시절이 없다. 갈대는 새싹으로 솟아오르는 시절부터 바람에 포개진다.
그것들은 어렸을 때부터 땅에 얽매인 채로 바람에 풍화되어간다. 4월의 빛나는 산하에서는 겨울을 난 갈대숲이 가장 적막하다. 모든 씨앗들이 허공으로 흩어진 뒤, 묵은 갈대숲은 빈 껍데기로 남아서 그 껍데기까지도 바람에 불려간다. 손으로 만지면 먼지처럼 바스라진다. 바다로 불려간 씨앗들은 다 죽고, 갯벌 위로 떨어진 씨앗에서 어린 갈대 싹들이 돋아나 다시 바람에 포개진다. 이제 갈대 줄기가 쓰러질 차례다. 그 갈대숲 속에 새들의 날개 치는 소리 들린다. 만경강 하구의 갈대숲은 넓다.
―김훈, 『자전거 여행』(초판: 2000, 개정판 9쇄), 생각의 나무, 2010, 67~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