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 극장(la Scale Opera House)
스칼라 극장은 원래 교회로 1778년에 지어진 것이었는데 1943년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후 1946년에 2,800석 규모의 6층 건물로 내부는 로코코식으로 다시 재건하여 극장으로 개조하였다. 이 극장은 특이하게 매년 12월 7일에 밀라노의 성인 암브로쇼의 축일에 문을 열어 5월 말경까지 행사를 벌이며 여름이 되면 콘서트 및 발레 등을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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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칼라 극장 앞 스칼라광장 공원 벤치에서...무척 키가 큰 아가씨들이 옆에 와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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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칼라 극장(la Scale Opera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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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아 반대편에 조그마한 광장 하나가 조성되어 있는데 스칼라 극장과 시청사 본부가 있는 ‘스칼라 광장’이다. 스칼라 광장 한 켠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 아래에 제자 4명의 동상이 서 있고, 뒷켠에는 밀라노 시청본부로 쓰이는 팔라초 마리노(Palazzo Marino)건물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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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 아래에 제자 4명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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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방향으로 1명씩 총 4명의 제자들이 스승을 호위하고 있는데, 왼편(북쪽)에 서있는 체사레 다 세스토(Cesare da Sesto)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세스토 카렌테에서 출생, 밀라노에서 사망. 로마, 남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약. 베로키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받아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의 많은 모사를 남겼다. 오른편(서쪽)에 서있는 마르코 도치오노(Marco d' Oggiono)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가장 아꼈던 수제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별로 없고, 다만 성화를 많이 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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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사레 다 세스토(Cesare da Sesto)&마르코 도치오노(Marco d' Oggi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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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그림의 좌측에 '체사레 다 세스토(Cesare da Sesto)',중앙에 수제자 '마르코 도치오노(Marco d' Oggiono)' 우측에 '조반니 안토니오 볼트라피오(Giovanni Antonio Boltraffio)'가 있다. 볼트라피오는 밀라노에서 출생, 그곳에서 사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강한 영향을 받아 밀라노에서 활약하고, 고전적인, 완성된 양식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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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 살라이나(Andrea Salaina)-좌측, & 체사레 다 세스토(Cesare da Sesto)-중앙,'마르코 도치오노(Marco d' Oggiono)'-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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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 진품(좌)과 안드레아 살라이나(Andrea Salaina)의 복제품(우)
프라도 미술관이 몇 년 전부터 소장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 안드레아 살라이나 프란체스코 멜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복제품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는 모조품에 불과했다. 그런데 모나리자 배경에 칠해져 있던 검은 물감부분을 전문가들이 제거한 결과 원작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이 드러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감춰진 배경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원작보다 보관 상태가 우수하고, 모델의 모습이 원작보다 젊고 아름답게 보여서 이기도 하다. 이 모조품은 원작과 같은 크기이며 다빈치가 작업을 할 당시 16세기 초에 같은 작업실에서 그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추청 되는데 원본과 다른 점은 눈썹이 있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릴 때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만들어 졌다는 것이 추정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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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칼라 극장(la Scale Opera House)
공식적으로는 이탈리아 말로 ‘Teatro alla Scala’인데, 이를 줄여서 ‘La Scala’라고 표기되는 밀라노에 소재하는 세계적인 오페라와 발레 전문 극장이다. 1778년 8월 3일, 스칼라의 신(新)왕립 두칼레 극장(Nuovo Regio Ducale Teatro alla Scala)이라는 이름으로 개장되었다. 개관 작품은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의 오페라 <유럽 인식, Europa riconosciuta>이었다. 이 극장의 전속되어 있는 예술단은 오케스트라, 발레단, 합창단이 있고, 교육기관으로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가 있다. 이 학교에서는 음악, 댄스, 무대 기술, 무대 연출 등의 전문 인력을 키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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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스칼라는 수많은 오페라의 초연이 이루어진 극장이다. 특히 베르디와는 수년간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1842년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유명한 오페라 ‘나부코(Nabucco)’초연을 비롯하여 7개의 오페라를 이 극장에서 초연했다. 그의 대작 레퀴엠도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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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대표하고, 전 세계 오페라의 메카로 입지를 굳힌 라 스칼라 극장은 1776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짓기 시작하여 1778년 개관하였다. '라 스칼라'라는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라스칼라 교회 터에 지어진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스칼라(scala)는 이탈리아어로 계단을 뜻한다. 당시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었던 라 스칼라 극장은 1872년 밀라노의 소유로 넘어왔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문제없이 극장을 지킬 수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인해 파괴되었다가 1946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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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대부분이 이곳을 거쳐갔을 만큼 거장들이 활약할 수 있는 명성이 높은 무대였다. 오페라의 작곡가로 유명한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베르디, 토스카니니, 드니체티, 벨리니 등이 이곳을 거쳐갔고, 마리아 칼라스, 레나타 테발디, 지안 카를로 델 모나코, 엔리코 카루소,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의 오페라 가수가 이 곳을 거쳐갔다. 우리나라의 대표 성악가, 조수미도 이곳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많은 거장들이 거쳐간 만큼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유럽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굳혀나갔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극장으로 꼽히게 되었다. 개관이후 베르디의 나부코, 돈카를로, 오텔로, 활슈타프, 푸치니의 투란도트 등이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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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들어서 극장이 있는 로비로 올라가는 길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눈에도 역사적 흔적을 살필 수 있는 포스터들이다. 1880년대, 1920년대, 1950년대, 그리고 최근까지의 포스터들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드레스 입고, 부채 바람을 날리며 쌍망원경을 통해 무대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 이곳의 풍경이었다. 포스터 한장, 한장이 모여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한다. 단순한 종이 포스터 한장인데 라 스칼라 극장의 명성 때문인지 그 무게는 몇천장, 몇만장의 종이를 합한 것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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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스칼라 극장의 메인무대이다. 말 그대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객석의 정중앙 천정에 달려있는 샹들리에도 장난이 아니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설립 당시 유럽 최대의 규모를 가진 극장이라는데 규모뿐만 아니라 색채도 너무나 화려하다. 붉은 카펫이 깔린 내부는 누구든지 이곳에 오면 이 시간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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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와 중앙홀에 서면 오페라의 두 거장, 푸치니와 토스카니니의 흉상이 보인다. 세계대전 후 무너진 라 스칼라 극장의 재건에 토스카니니가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자선 연주회를 통해 모아진 기금이 경비의 일부로 사용되었으며, 토스카니니는 이 극장의 예술 감독으로 재직한 적도 있단다. 토스카니니의 훌륭한 걸작들은 거의 이곳에 있으면서 내놓은 작품들이다. 베르디도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작품 중 10개를 이 극장에서 초연할 만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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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 1층에는 스칼라 극장 박물관이 있고 악보, 의상, 유명 음악가들의 모습 등의 전시와 극장 내부를 볼 수 있다. 빨간 우단을 씌운 좌석이 둥글게 배치된 극장에서는 연습중인 스칼라 극장 단원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밀라노가 유명한 것은 바로 이 스칼라 극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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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나부코
베르디(1813~1901)의 첫 번째 성공을 가져다준 <나부코>는 젊은 베르디에게 큰 시련을 넘게 한 탄탄한 작품이다. 그가 살았던 세월동안이 낭만주의 음악사조와 일치하지만 베르디만큼 사조에 머물지 않고 이를 뛰어 넘는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는 드물다. 평생 생부와 장인을 버렸다는 부담 속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서인지 아버지와 딸의 주제로 그린 오페라가 많은데 <나부코>외에도 <리골레토><라 트라비아타><루이자 밀러><시몬 보카네그라>가 있다. 하지만 <나부코>만큼 두 딸의 모습이 비교되며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처럼 달라지는 것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볼 때 정말 안타까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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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나부코>'中
첫댓글 아아 베르디가 그렇게 훌륭한 음악가군요.
스칼라극장과 나부코의 무게를 실감합니다. .
하지만 우리에게도
소중한 청양의 음악가 789가 있기에
베르디가 있고,
히브리노예들의 합창도 이곳 저곳에서 연주할 수 있어
정말 정말 좋아요.
성장로님 파이팅!
해설해 놓은 글을 읽어보니
배경음악으로 깔린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더욱 심금을 울립니다.
노예생활의 잔혹한 운명 속에서도 꿈을 되살리려는 히브리인들의 간절한 소망이
일제 압제하에서 민족의 독립과 신앙의 자유를 소망하며
믿음을 지켜온 선진 신앙인들의 절규와 조국 사랑의 모습이 떠오르며 가슴이 저며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