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이라도 골프실력을 올릴 수 있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대로 다했다.마침 덕소에서 가까운 마석에 그린 골프라는 인도어가 생겼다.이때는 내가 덕소에서 하남시로 이사간지 얼마 안된 2004년 초여름이었다.
그곳은 약간 외진 곳이라 회원확보를 위해 초창기 연회비를 35만원에 했다.나는 또 얼씨구나하고 아내와 같이 얼른 구입했다.집사람은 붙임성이 많은 사람이라 친구들 다섯명을 소개해주고 무료로 2년으로 티켓을 주었다.그곳 역시 나는 새벽 오픈하자 마자 6시에 제일 먼저 도착했고 그때부터 2시간 동안 450개 정도를 쳤다.그리고 왕십리 회사에 도착해도 아침 9시전이었다.내가 회사에도 제일 먼저 출근한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덕소성당 교우들은 "유스티노(고석홍)씨는 노력은 세계 최고인데,아마 최경주보다 더 열심히 한 거예요.그렇지만 실력은 좀~~~"하고 노력하는데 대해 칭찬인지 비꼬움인지 혀를 내둘렀다.무작정 멍청하게 노력만 해댔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력은 여전히 90타정도였다.모르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치세요?이제 싱글은 되시겠네요"했지만 어림없는 말이었다.인생사 모든 게 노력만 가지고 되는게 아닌 것 같다.지혜가 있어야 할 것 같다.특히 골프는 기초가 중요한 것 같다.그리고 마음을 다스리고 인격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초창기부터 상당시간이 흐를 때까지 나는 회사 상담전화를 휴대폰에 연결해 놓고 운동을 했다.공을 막치려고 하는데 상담전화가 오기 일쑤였다.그러면 급하게 공을 치거나 조금 오래동안 전화를 받고 있으면 일행이 빨리 공치라고 독촉했다.그러면 아무렇게 치는 경우가 많았다.가장 침착하게 공을 쳐도 부족할 판에 허둥지둥치니 제대로 칠 리가 없었다.번번히 후회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2006년 겨울 나는 또 다시 결심했다. 왕십리역 돔골프에서 겨울 3개월 동안 특별레슨을 받기로 했다.
레슨 프로는 연세대학교 체육학과를 나와 호주와 캐나다에 5년간 유학 다녀온 실력이 빵빵한 35세 프로였다.나는 12월 중순부터 3월중순까지 새벽에 레슨을 받았다.그리고 아내에게 큰소리쳤다."여보! 이번에는 달라.내년 4월초에 필드에 나가면 당신 코납작하게 해줄거야"
아내는 "이번에는 정말 당신 실력발휘 해봐."그랬다.나는
2006년 4월 필드에 나가 멋지게 골프를 치려고 용인에 있는 88칸추리 클럽 회원권을 2억5천만원에 구입했다.
예전과는 달리 전날 술도 마시지 않고 잠도 많이 잤다.나름대로 완벽하게 준비했다.88 컨추리클럽은 세계적인 경기를 여러번 개최했을 정도로 필드도 좋고 홀이나 주위 경관도 좋았다.그린도 좋았다.나는 전보다 편한 마음으로 괜찮게 쳤다.파도 몇개 나오고 전과는 사뭇 달랐다.그렇지만 후반전에 들어서자 뒷심이 부족해서 겨우 88개로 마감했다.88 컨추리 클럽에서 88타를 쳤으니,88과 무슨인연이 있나?내가 친 골프중 가장 잘친 경기였던 것같다.
그렇게 나는 회사와 골프를 같이 했다.회원권 관리회사에서는 나를 중요고객으로 보고 틈만 나면 클럽을 추천했다.2008년 강원도 횡성군에 있는 옥스필드가 "이제 공사를 시작했는데 전망이 좋다"며 추천했다.나는 초창기에 사는게 좋다는 말에 또 샀다.중간에 공사가 지연되는가 싶더니 2009년 10월초에 그랜드 오픈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골프회원권이 대명,88,옥수팔드 3개가 되었다.투자를 많이 했고 본전을 뽑으려니 일주일에 3일,즉 월.수.금에는 세곳을 돌아가면서 라운딩했다.회사는 어김없이 오후 2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했다.직원들에게는 각자 철저한 업무 분장을 통해 빈틈없이 운영했다.
나는 그야말로 사장으로서 점검만 했다.이 때 월수입이 1억.연봉이 10억정도 되었으니. 초인적.초능력적이었디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집사람은 골프때문에 빨래도 못한다고 난리였다.주로 부부가 같이 나갔으므로 골프에만 월지출이 600만원.연지출이 7,000만원정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