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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G20, '환율 전쟁터'
장연주 헤럴드 기자
오는 11월11일 한국에서 '제3차 대전'이 발발한다?
서울 G20정상회의가 '환율 전쟁터'로 부각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에서 주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일대 격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면서, 환율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양상이다. 일본이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는 엔고를 막기 위해 환율시장에 직접 개입하면서 환율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이로써 이번 서울 G20정상회의에서 IMF 개혁, 글로벌안전망 구축, 개도국 개발지원, 재정 건전화 등 각국의 정책대안 마련 등을 마무리짓고 '서울선언'을 내놓으려던 우리 정부의 생각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11월 서울 정상회의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환율문제 조율이 새로운 미션으로 급부상했기때문이다. 환율전쟁의 원인과 전망, 환율전쟁의 격전장이 될 서울 G20정상회의의 득과 실을 살펴본다.
▶' 환율전쟁' 시작됐다…왜?
'중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서 비롯된 환율전쟁은 미-중 양국간 갈등에서 비롯됐다.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자국 경제지표를 두고 초조해진 미국이 강경한 수를 쓴데서 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실제로 미국은 위안화가 기본적으로 25~40% 절하돼있다고 본다.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해 자국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높여주는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2269억달러였던 대(對)중국 무역적자가 올해 250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도 중국을 더욱 옥죄는 원인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5년 내 수출을 두배로 늘려 국내 일자리를 200만개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위안화 저평가 탓에 값싼 중국산이 미국에 밀려들어와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본다. 최근 미 하원이 환율 조작을 수출보조금으로 간추해 관세를 부과하는 보복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상원도 다음 달 중간선거 직후 보복법안을 표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다자플레이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지지세력을 규합한다는 방침이다.
▶ 中은 강경 "급격한 위안화 절상 안된다"
환율전쟁에서 선진국들의 '공적'(公敵)이 된 중국은 위안화 절상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압력을 동반한 급격한 절상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20~40% 올리면 중국의 수출기업은 도산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중국이 위기에 빠지면 세계경제에도 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위안화의 저평가로 무역역조가 심화된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서도 중국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2005년 이후 위안화는 달러화에 대해 22%나 올랐지만 미국의 무역적자는 더 커졌다"며 "이는 경제 구조적인 문제이지, 환율문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환율이 지금보다는 더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환율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혁하겠다"면서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기본적인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강 인민은행 부총재도 지난 7일 "점진적으로 위안화를 절상하겠다"며 "중국은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시정하는데 기여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접근방식은 점진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 환율전쟁→무역보복?
따라서 이번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무역보호주의가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 국제금융학회장)는 "중국이 미국이 원하는대로 따르지 않을 경우, 본격적인 무역보복이 양국 사이에 나타날 가능성도 온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양국의 대응 수준에 따라서는 이번 갈등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 양국간 무역보복전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해 9월 미국 상무부가 중국산 타이어에 관세 35%를 부과하자, 중국은 곧바로 미국산 닭고기의 반덤핑 여부를 조사했다. 당장 최근에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하원이 원자바오 중국 총리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자, 중국은 미국산 닭고기에 최대 105.4%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미국 역시 중국산 동파이프에 최고 61%의 관세를 부과해 보복했다.
▶ 환율전쟁, 어떻게 번질까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로 시작된 환율전쟁은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물론, 브라질 등 신흥국까지 가세하며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달러화 약세로 투기성 자금 유입이 급증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등 이머징 마켓에도 비상이 걸렸다. 자국 통화의 인위적인 저평가를 통해 경기회복을 꾀하는 정책은 보호무역주의를 확산시켜 세계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형성된 국제 공조체제를 허물어뜨릴 수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도 치명적이다. 이미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들의 단기 자금이 대거 유입돼 주식과 원화, 채권값이 동시에 오르는 등 환율 후폭풍이 거세다. 환율전쟁이 진정되지 않으면 투기성 외화자금 유입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환율 급락은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켜 3분기 기업 실적에 빨간 불이 켜졌고, 4분기 실적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노무라증권은 환율전쟁 이후 처음으로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 환율전쟁' 분기점은 11월? G20정상회의
글로벌 환율전쟁의 분기점은 일단 11월2일 미국 중간선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환율조작국으로부터 수입된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미국의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 방안'이 법제화될지 여부가 미국 중간선거를 전후로 결정되기때문이다. 이른바 '환율보복법'은 미국 하원에서 통과됐지만 상원에서도 통과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아직까지는 미국이 중간선거를 의식해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좀 더 많은 편이다.
아울러 다음 달 11일 개막하는 G20서울 정상회의에서 환율전쟁이 어떻게 결론나느냐도 중요하다. 각 국가가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절하하지 않겠다는 수준에서 합의가 나온다면, 원ㆍ달러 환율의 급락세가 진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정해 중국 위안화의 가치를 절상시키는 조치가 나온다면, 원ㆍ달러 환율도 상당폭 추가 하락할 수 있다.
한국으로선 G20정상회의 때까지 남은 한달이 분수령이 될 수 있다.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공격적으로 시장개입을 하기가 어렵기때문이다. 따라서 원화가치가 단기 상승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올 연말가지 원ㆍ달러 환율이 1070원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서울 G20정상회의, 득(得)과 실(失)
서울 G20정상회의는 경제적인 파급효과 면에서 20~30조원의 이득을 남길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는 G20정상회의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31조원을 넘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1만5000여 명의 외국인이 정상회의때 우리나라에 와서 쓰는 돈을 포함한 직접적인 효과는 2667억원이라고 했다. 정상회의 개최에 따라 우리 제품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수출이 20조1427억원 늘어나는 등 31조800억원의 간접효과도 기대된다고 추산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G20 정상회의의 파급효과를 21조5576억~24조6395억원, 이 가운데 수출증대 효과를 18조9587억~21조8755억원으로 전망했다. 이는 소나타 자동차 100만대,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65척을 수출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무형의 가치를 따져보면, 국민들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기업의 미래성장동력이 확충되는 등 훨씬 큰 가치가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처럼 수출이 펑펑 늘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환율때문이다.
환율전쟁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문제여서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계속 방치하면 관련 당사국 모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환율전쟁이 통상보복으로 이어지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도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현대ㆍ기아자동차의 경우, 원화 강세로 환율이 달러당 10원 떨어지면 매출액이 2000억원 가량 줄어드는 구조라는 보도도 나왔다. 환율은 지난 8월말 달러당 1200원 수준에서 최근에는 이미 1120원 선까지 떨어졌다. 벌써부터 기업들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의장국'인 한국이 어느 편을 들기도 쉽지 않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당사국 설득과 이해관계 조정을 통해 환율전쟁이 확산되지 않도록 중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당장 이번 회의에서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세계경제의 안정을 위해 환율전쟁의 조속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원칙이라도 끌어내야 한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환율전쟁의 종식은 시급한 과제다.
환율전쟁터로 변질된 G20정상회의. 한국 정부가 그 성패의 키를 쥐고 있다.
"경제 민주화 항목에 '환율'을 넣자"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2008년 금융위기가 벌어지면서 세계 경제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조금 정치적인 측면에서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로 세계 경제의 기조가 되었던 신자유주의 체계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는 주장들이 한 종류였다.
그리고 세계화 국면과 함께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다니는 금융자본에 이동에 대해서 일정한 규제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토빈세를 비롯해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방식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제시된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얘기들이 현실 논의의 장으로 온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러온 사건이었다. 절대로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을 것 같은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45년 전후 협상과정에서 기축 통화로 등장한 달러 체계가 계속될 것인가, 그런 마지막 논의가 있었다. 이 세 가지는 유사해 보이지만 반드시 하나의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는, 상대적으로는 독립된 세 가지의 논의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주장하였던 폴 크루그만은 정말 눈부셨다. 게다가 그는 오바마 정권의 제1의 개국공신과 같은 존재 아니었던가? 그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많은 중국인들은 그의 입에서 국제 통화체계에 대한 개편에 대한 말이 나오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러한 상황을 의식했던 것일까? 폴 크루그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냉정한 답변이었다.
"아직 위안화는 멀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또 그가 어떻게 얘기를 하든, 달러화를 찍어내면서 진행시킨 재정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하기에 미국 경제는 너무 취약했다. 경제의 회복은 지연되었고, 무엇보다도 경제의 펀더멘탈이라고 할 수 있는 고용율은 도무지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제위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부동산발 위기의 재등장 가능성에 대해서 국제 사회가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서 시작된 부동산 위기는 프라임 모기지 그리고 오피스 모기지 등 언제든지 촉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에 불을 확 끼얹은 것이 한국에서 이번에 개최되는 G20이다. 원래 금융위기 이후의 국제경제체계의 개편에 관한 논의를 그 직후에 벌어진 다보스 포럼에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회의에 미국은 공식 대표를 아예 보내지 않았고, 논의는 전혀 시작되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 그런 국제적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새로운 행정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이제 G20 회의가 새로 열리게 되었으니, 다들 이번에는 이 얘기를 좀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고, 국제적으로 환율이 요동치게 되었다.
G20과 관련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원화도 국제 기축통화에 포함될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한 적이 있다. 원화마저도? 그렇다면 유로화나 위안화는? 그리고 엔화는?
G20의 공식 의제와 상관없이, 기축통화에 대한 기본 논의는 이미 물밑에서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고, '화폐전쟁'이라는 말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국제 통화는 후끈 달아올랐다. 자, 좋든 싫든, 우리 역시 이런 격동의 현장으로 끌려들어가게 된 셈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화폐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가, 이자율의 문제이다. '선제적 대응'이라는 말로 화끈하게 이자율을 낮추었고, 내릴 때는 강력하게, 올릴 때는 천천히, 그게 지금까지의 대체적으로 이자율 정책의 기조였다.
해석을 해보면, 저금리는 부동산 경기를 비롯해서 경제의 확대 기조라는 방향을 가지고 있다. "빚 내서라도 집 좀 많이 사세요"라는 메시지가 이런 인위적 저금리의 1차 메시지인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도 별로 부동산은 살아나지 않고, 정부만 다음 기에 집행해야 할 예산을 조기 집행하면서 부채가 늘어나게 되었다. 다음 해 예산을 미리 당겨서 쓰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는데, 정부 지출만 늘면서 경기를 억지로 부양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부가적으로 이자율 하락은 원화의 평가절하라는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하였다.
두번째는, 원화 약세라는 지속적 평가절하 정책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다. '파인 튜닝'이라고 하는 미세 조정만 했다는 설과, 금융기관이나 공기금 같은 곳에 직접 지시를 해서 개입을 했다는 설이 있다. 방향이야 어쨌든 '약한 원화'가 이명박 정부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일관된 정책이었던 것 같다.
원화를 약하게 유지할 때의 실질적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다.주로 대기업에 집중된 수출기업들에게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경이적인 매출액과 흑자가 이러한 원화 정책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는 경제계 일부의 지적들은 바로 이 환율 정책에 대한 시선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환율정책이 일방적으로 한 나라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환율이라는 게 왜 그렇게 복잡하겠는가?
원화가 지속적으로 평가절하가 되는 고환율 정책은 고유가 등 실제로 국민들의 소비 생활에 불편을 준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국민들이 직접 수출을 할 것이 아니니까 수입과 관련된 상품들의 가격은 올라가게 돼 있다. 그리고 국내와 상관없는 내수를 주로 하는 중소기업들 특히 일본 등 외국에서 원자재나 부품들을 수입해야 하는 업체들도 손해를 보게 되었다. 저금리와 고환율, 이런 것들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명박 시대에는 국민들의 실생활과 인플레이션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1차 관리 변수가 된 셈이다.
아직까지는 일부 제품을 제외하면 전격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이 안정성이 장기적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대체적으로 내가 예상하는 내년도의 위기 양상은, 부동산과 관련된 가격들은 디플레이션 경향을 보이고, 일반 소비재들은 인플레이션 경향을 보이는 이중적 운동이다. 어쨌든 이건 조금 더 지켜볼 일이기는 하다.
이런 게 지금까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통화와 환율과 관련된 기본적인 변수들이고 정책 운용 기조였다. 최근 돌발변수로 등장한 것은, 불안전성이 높아지는 달러 대신에 엔화 심지어는 원화까지도 일종의 가치 저장을 위한 투자 상품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달러의 대체 변수가 되었던 금, 석유 그리고 최근의 선물시장에서 농산물과 엔화와 원화가 같은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절하 경쟁에 한일의 통화가 끼어들게 된 것인데, 이를 버티다 못버틴 일본이 먼저 손을 들고 나섰다.
자, 이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게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한국은행도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런 특이한 상황은 한국 경제의 역사상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목소리가 금방 터져 나온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출에 사활을 건 쪽에서는 당장이라도 당국이 개입해서 지금의 절상을 반전시켜 달라는 것이다.
수출로 근근이 버텼던 지난 수 년간을 생각해보면 일견 타당한 얘기지만, 국민들의 경제적 삶과 내수 시장을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했던 몇 년간의 경제운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도덕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효율성의 눈으로도 타당한 것인가, 그런 질문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가 과연 환율 정책과 관련하여 충분히 개방적이며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 독재 시대처럼 밀실행정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고민들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간단하게 얘기해보면, '강한 원화'와 '약한 원화' 두 가지 흐름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약한 원화'를 선호했고, 수출에 도움이 된다면 인위적 조작이라도 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회적 흐름 속에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환율이 바뀌면 외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경제적 삶이 영향을 받는다. 연탄값도 영향을 받았고, 지금의 전기값도 기본적으로는 환율의 함수이다. 석탄값은 여전히 전기 요금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대형 수출업체만을 생각하면서 환율 정책을 끌고 나가기에는 한국 경제는 너무 커졌고, 너무 복잡해졌다.
원화 자체도 이제는 상품이 되었고, 국내 증시에도 외국인이 제1 변수가 되었음은 물론, 한국의 국채도 중요한 유가증권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자국 화폐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아예 자국 통화 대신에 달러를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논란 거리가 되었던 1990년대의 중남미에서 진행된 '하이퍼 인플레이션' 논쟁과는 최소한 통화의 관점에서 이제 한국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온 셈이다.
원화가 G20 논의에서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질까?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원화가 기축통화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언급 자체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한국 경제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한 원화'는 수출에 도움을 주지만, '강한 원화'는 국민 경제 자체의 안정성 자체를 높여주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다. 부수적으로 국내 경제의 내수 기반에 도움이 된다.
원화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는, 아마 경제 주체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다를 것인데, 확실한 것은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린 원화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한 것이 거의 없다. 그리고 달러와 원화와의 관계, 수출로 생긴 경제적 성과에 대한 가치 보존 방식, 환율 변동에 대한 정책적 차원의 헷징과 관련 기금 운용, 이런 것들은 선진국이 되면서 당연히 국민적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환율이 오르는 것과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 단기적인 정책만이 아니라 기본 사항에 대해서 국민들의 보다 포괄적이며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순간이 우리에게도 온 것이 아닌가? 세계 통화시스템은 지금부터 좋든 싫든, 격변기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의 '경제 민주화'의 논의 항목에 이제는 환율과 원화 정책 얘기가 들어가야 할 순간이 된 것 같다.
원화 치솟아 금리정책 ‘곤혹’…투기자금 몰려 시장 불안
원화 7.1% 올라…위안·엔보다 절상률 높아-주식·채권 강세로 외국인 7조4천억원 사들여
정혁준 한겨레신문 기자
세계 환율전쟁이 국내 금융시장에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통화·외환 정책을 교란시켜 거시정책 기조에 혼선을 빚게 하는가 하면, 과거처럼 한꺼번에 몰려든 투기성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을 또한번 흔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 넘쳐나는 유동성, 한국에 직격탄 환율전쟁의 단초는 지난 8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의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발언이었다. 기준금리를 조정해온 기존 정책과는 다르게 달러를 찍어내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시사한 것이다. 달러 약세가 예상됨에 따라 미 증시는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일본이 6년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직격탄은 우리나라가 맞았다. 버냉키 의장 발언 이후 10월11일까지 한·중·일 환율 추이를 보면, 달러 대비 원화가 가장 절상률(원화강세)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달러에 견준 위안은 1.9%, 엔은 3.1% 올랐지만, 원화는 7.1%나 올랐다. 글로벌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버냉키 발언 직후부터 우리나라의 주식·채권·원화는 급등하는 이른바 ‘트리플 강세장’을 만들어 갔다. 외국인은 9월 한 달 동안에만 코스피에서 4조3304억원, 채권시장에서 3조155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코스피는 1800고지를 넘어선 지 19거래일 만에 1900선을 넘어서기도 했고, 달러당 원화 값은 1100원대까지 강세를 보이고 있다.
■ 통화·외환정책 무력화 오는 14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심은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인상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금리를 인상하면 금리 차익을 노린 자금까지 국내로 들어와 원화강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한은으로선 고민스런 대목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우측 깜빡이를 넣으면 우회전한다”며 금리인상 기조를 밝혔지만, 시장금리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주가와 채권 값이 반대로 간다는 경제학원론과 달리 주가는 치솟고 있는데, 채권 값도 따라 상승(채권금리 하락)하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8일 현재 3.28%로 사상 최저치인 3.24%에 근접해 있다. 외국자본이 우리나라 채권을 계속 사들이면서 채권 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문박 엘지(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외국인 채권투자 자금의 유출입이 빈번해지면 통화정책 당국의 금리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외환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 정부는 내놓을 만한 대책이 없다. 정부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환시장에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과 금감원은 지난 5일 외국은행 서울지점을 대상으로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공동검사에 나서면서 규제카드를 빼들었지만, 이 역시 반짝 효과에 그쳤다.
■ 외국인 돈 잔치 후폭풍 우려 외국에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돈은 또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외부적 요인으로 일시에 대거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금융위기 때에도 외국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지난달 증시에서 국가별 외국인 순매수는 룩셈부르크 5544억원, 네덜란드 5025억원 등이 1, 2위를 기록했다. 두 나라 모두 조세회피지역이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세회피지역 투자자의 과거 순매수성향을 보면 순매수기간이 보통 1~3개월로 연속성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계속되는 순매수로 ‘바이(Buy) 코리아’ 기대감이 크지만 ‘바이(Bye) 코리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우리나라 경제가 펀더멘털(경제 기초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국인들의 자본거래로 금융과 실물 간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들어가지 않고 투기적인 자금으로 이용될 경우 자산 버블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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