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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상의 경전은 없습니다...
비리야바라밀, 짠나바라밀 수행 최고의 텍스트..
점찰선악업보경(점찰경)..
컴으로는 아래 링크로 이동하면 잘 보이는데..
스마트폰은 확대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여러님들이 본격적으로 짠나바라밀을 수행하시면..
점찰경 하권을 수시로 보셔야 해요.
경전에 많은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 스승님은 어찌 이리 자상하실까요...
점찰경은 최고의 경전입니다..
상권만 해도 비리야바라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밝히심과 동시에
점찰법회가 종교적 AI였고
최첨단 컴퓨터가 아니면 유지가 어렵게 되어 있는데...
하권의 내용은 너무나 좋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전 자체가 큰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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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야바라밀 수행 최상의 매뉴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상권
『점찰선악업보경』 1권(ABC, K0421 v13, p.657a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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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나바라밀 수행 최상의 매뉴얼
점찰선악업보경 하권
『점찰선악업보경』 2권(ABC, K0421 v13, p.665a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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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세계금색신(白銀世界金色身)
정여비정공일진(情與非情共一眞)
명암진시구부조(明暗盡時俱不照)
일륜오후견전신(日輪午後見全身)
| 점찰선악업보경 하권 占察善惡業報經卷下 出六根聚經中 천축삼장 보리등 한역 송성수 번역 김두재 개역 天竺三藏菩提燈譯 그때에 견정신보살마하살이 지장보살마하살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대승을 구하는 이에게 나아가는 방편을 열어 보이겠습니까?” 爾時,堅淨信菩薩摩訶薩問地藏菩薩摩訶薩言:“云何開示求向大乘者,進趣方便?” 지장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만일 어떤 중생이 대승을 향하여 나아가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응당 먼저 맨 처음에 실천해야 할 근본이 되는 업(業)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맨 처음에 실천해야 할 근본이 되는 업이란, 이른바 하나의 진실한 경계[一實境界]에 의지하여 신해(信解)를 닦는 것입니다. 신해의 힘이 늘어나고 자람으로 말미암아 신속하게 보살의 종자 성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地藏菩薩摩訶薩言:“善男子!若有衆生欲向大乘者,應當先知最初所行根本之業。其最初所行根本業者,所謂依止一實境界,以修信解,因信解力增長故,速疾得入菩薩種性。 하나의 진실한 경계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중생들 마음의 본바탕은 본래부터 여태까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것이어서 그 스스로의 성품은 청정한 것이며 장애가 없는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허공이 분별을 여의었기 때문에 평등하고 두루하여 이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시방에 원만하여 구경(究竟)에는 하나의 형상으로서 둘이 없고 다름이 없으며, 변하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는 것이어서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는 경우와 같습니다. 일체 중생들의 마음은 일체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의 마음과 일체 보살의 마음과 일체 모든 부처님의 마음과 다 똑 같아서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더러워짐이 없는 적정(寂靜)한 진여(眞如)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일체 마음에 분별이 일어나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환(幻)이 변화하는 것과 같아서 결정된 진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식(識)ㆍ수(受)ㆍ상(想)ㆍ행(行)이거나, 기억하여 생각하고 반연하여 생각한 것이거나, 깨달아 아는 것 등 가지가지의 심수(心數)29)는 푸른 것도 아니고 누런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며, 뒤섞인 빛깔도 아닙니다. 길고ㆍ짧고ㆍ모나고ㆍ둥글고ㆍ크거나 작은 것도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시방의 허공이나 일체의 세계를 다하기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형상을 구한다 할지라도 어느 것 하나 구분하여 얻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所言一實境界者,謂衆生心體,從本已來,不生不滅,自性淸淨,無障無㝵,猶如虛空。離分別故,平等普遍,無所不至,圓滿十方,究竟一相,無二無別,不變不異,無增無減。以一切衆生心、一切聲聞、辟支佛心,一切菩薩心,一切諸佛心,皆同不生不滅,無染寂靜,眞如相故。所以者何?一切有心起分別者,猶如幻化無有定實。所謂識、受、想、行、憶念、緣慮、覺知等,種種心數,非靑非黃,非赤非白,亦非雜色,無有長短,方圓,大小。乃至盡於十方虛空一切世界,求心形狀,無一區分,而可得者。 다만 중생들이 밝은 지혜가 없고 어리석고 깜깜한 것만 훈습한 인연 때문에 허망한 경계를 나타내어 중생들로 하여금 기억하거나 집착을 내는 것뿐입니다. 이른바 이 마음을 스스로 알 수 없으면서 망령되게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여 깨달아 안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나와 내 것이라고 헤아리지만, 실은 깨달아 아는 생각이랄 것조차도 없나니, 이 허망한 마음 때문에 필경에 본체가 없어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깨달아 알거나 분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알면 곧 시방 3세의 일체 경계는 차별할 모습이 없을 것이요, 일체의 법이 모두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허망한 마음에 의지하여 분별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니, 이른바 일체의 경계는 제각기 같지 않거늘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억측하여 이것은 나요, 저것은 남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법은 저절로 존재하는 것도 없거니와 곧 차별도 없는 것인데, 오직 허망한 마음을 의지하여 안에 스스로 없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에 앞에 보이는 바깥 경계에 대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허망하게 갖가지 법에 대한 생각을 내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저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르다고 말하기도 하며, 곱다고 말하기도 하고 밉다고 말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는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법에 대하여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만 합니다. 일체의 모든 법은 다 허망한 생각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허망한 마음에 의지하여 근본으로 삼습니다. 但以衆生無明癡闇熏習因緣,現妄境界,令生念著。所謂此心不能自知,妄自謂有,起覺知想,計我、我所,而實無有覺知之想。以此妄心,畢竟無體,不可見故。若無覺知能分別者,則無十方三世一切境界差別之相。以一切法皆不能自有,但依妄心分別故有。所謂一切境界,各各不同,自念爲有,知此爲自,知彼爲他。是故一切法不能自有,則無別異。唯依妄心,不知不了,內自無故,謂有前外境界,妄生種種法想,謂有謂無,謂彼謂此,謂是謂非,謂好謂惡,乃至妄生無量無邊法想。當如是知,一切諸法,皆從妄想生,依妄心爲本。 그러나 이 허망한 마음에는 스스로의 형상이 없기 때문에 또한 경계에 의지하여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 이른바 앞의 경계를 반연하여 생각하고 깨달아 알기 때문에 마음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또 이 허망한 마음과 앞에 나타난 경계가 비록 함께 서로 의지하였다 하더라도 일어남에 있어서는 먼저와 나중이 없습니다. 이 허망한 마음은 일체 경계의 근원이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른바 허망한 마음에 의지하여 법계가 모두 하나의 형상이라는 이치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에 무명(無明)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무명의 힘의 원인을 의지하기 때문에 허망한 경계가 앞에 나타나는 것이고, 또한 무명이 없어짐을 의지하여 일체의 경계도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일체의 경계를 의지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경계에 무명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며, 경계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명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然此妄心無自相故,亦依境界而有,所謂緣念覺知前境界故,說名爲心。又此妄心與前境界,雖俱相依,起無先後,而此妄心能爲一切境界原主。所以者何?謂依妄心,不了法界一相故,說心有無明。依無明力因故,現妄境界。亦依無明滅故,一切境界滅,非依一切境界。自不了故,說境界有。無明亦非依境界故,生於無明。 일체의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경계에 대하여 무명을 내시지 않기 때문에, 또 경계가 없어지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무명의 마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일체의 경계는 본래부터 여태까지 그 체성(體性)이 저절로 적멸하여 일찍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인하여 다만 모든 법은 마음을 의지하여 근본을 삼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법은 다 마음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치와 본체가 다르지 않고, 마음에 거두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법은 마음을 좇아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마음과 더불어 형상을 지으며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함께 일어나고 함께 없어지되 한가지로 머무름이 없는 것이니, 일체의 경계는 다만 마음이 반연하는 바를 따라서 생각생각에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잠깐 동안 머무르는 것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以一切諸佛,於一切境界不生無明故。又復不依境界滅故,無明心滅。以一切境界,從本已來,體性自滅,未曾有故。因如此義,是故但說一切諸法依心爲本。當知一切諸法,悉名爲心,以義、體不異,爲心所攝故。又一切諸法,從心所起,與心作相,和合而有,共生共滅,同無有住。以一切境界,但隨心所緣,念念相續故,而得住持,暫時爲有。 이와 같이 말한 마음의 이치에는 두 가지 형상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 형상인가? 첫째는 마음 안의 형상[內相]이요, 둘째는 마음 바깥의 형상[外相]입니다. 마음 안의 형상에 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첫째는 진실[眞]이요, 둘째는 허망[妄]입니다. 진실이라 함은 이른바 마음 바탕의 본래 형상은 여여(如如)하여 다르지 않고, 청정하고 원만하여 장애가 없으며, 미묘하고 은밀하여 보기 어렵습니다. 일체의 처소에 두루하여 항상 무너지지 않고, 일체의 법을 건립하고 나서 자라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허망이라 함은 생각을 일으켜 분별하고 깨달아 알아 반연하여 헤아리고 기억하는 등의 일이니, 비록 또 계속 이어져서 일체 가지가지 경계를 생기게 하는 것이나, 안은 허망하고 거짓된 것이어서 진실함이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바깥 형상이라고 말한 것은 이른바 모든 법의 갖가지 경계 등이니, 생각하는 바를 따라 경계가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안의 마음과 바깥의 마음이 차별이 있는 걸로 아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안의 허망한 생각은 인(因)이 되고 체(體)가 되며, 밖의 허망한 생각은 과(果)가 되고 용(用)이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이치를 의지하여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모든 법은 다 마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如是所說心義者,有二種相。何等爲二?一者心內相,二者心外相。心內相者,復有二種。云何爲二?一者眞,二者妄。所言眞者,謂心體本相,如如不異,淸淨圓滿,無障無㝵,微密難見,以遍一切處,常恒不壞,建立生長一切法故。所言妄者,謂起念、分別、覺知、緣慮、憶想等事,雖復相續,能生一切種種境界,而內虛僞,無有眞實,不可見故。所言心外相者,謂一切諸法種種境界等,隨有所念,境界現前故,知有內心及外心差別。如是當知,內妄想者,爲因爲體。外妄相者,爲果爲用。依如此等義,是故我說一切諸法悉名爲心。 또 꼭 알아야만 합니다. 마음의 바깥 형상은 꿈에 보았던 여러 가지 경계가 오직 마음의 생각으로 지어진 것이니 진실로 바깥의 일은 없는 것처럼, 일체의 경계도 모두 이와 같아서 모두 무명 의식에 의지하여 꿈에서 본 망상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又復當知,心外相者,如夢所見種種境界,唯心想作,無實外事。一切境界,悉亦如是,以皆依無明識夢所見,妄想作故。 또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안의 마음은 생각생각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대상 경계와 조건의 대상인 일체의 경계도 마음을 따라서 생각생각에 머무르지 않나니, 이른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기 때문에 갖가지 법이 멸합니다. 마음이 생기고 사라지는 형상은 다만 명자(名字)만 있을 뿐이요, 실제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이 가서 경계에 이르는 것도 아니고, 경계도 또한 와서 마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니, 비유하면 마치 거울 속의 형상이 옴이 없고 감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체의 법에서 나고 없어지는 일정한 형상을 구하여도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일체의 법은 필경(畢竟)에는 그 본체가 없으며, 본래 항상 공한 것이어서 진실로 나고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은 진실로 나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일체의 경계에는 차별의 모습이 없으며, 고요하고 한맛이기 때문에 진여제일의제자성청정심(眞如第一義諦自性淸淨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 자성이 청정한 마음은 담연(湛然)하고 원만하여 분별의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별의 모습이 없다는 것은 일체의 처소 어느 곳에서나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며,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일체의 법을 의지하여 지니며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復次,應知內心念念不住故,所見、所緣一切境界亦隨心,念念不住,所謂心生故,種種法生,心滅故種種法滅。而生滅相,但有名字,實不可得。以心不往,至於境界,境界亦不來至於心。如鏡中像,無來無去。是故一切法,求生滅定相,了不可得。所謂一切法畢竟無體,本來常空,實不生滅故。如是一切法實不生滅者,則無一切境界差別之相,寂靜一味,名爲眞如第一義諦,自性淸淨心。彼自性淸淨心,湛然圓滿,以無分別相故。無分別相者,於一切處,無所不在。無所不在者,以能依持建立一切法故。 또 그 마음을 여래장(如來藏)30)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불가사의하여 번뇌[漏] 없는 청정한 공덕의 업을 완전하게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끝없는 본제(本際)로부터 지금까지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으며, 자재하여 사라지지 않는 까닭에 일체에 변화로 나타나시고, 갖가지 공덕의 업은 항상 불타듯 왕성하여 일찍이 쉬어 그침이 없었으니, 이른바 일체 세계에 두루하여 모든 업을 지어 보이시며, 갖가지로 교화하여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復次,彼心名如來藏。所謂具足無量無邊不可思議,無漏淸淨功德之業。以諸佛法身,從無始本際來,無障無㝵,自在不滅,一切現化種種功業,恒常熾然,未曾休息。所謂遍一切世界,皆示作業,種種化益故。 한 부처님의 몸은 곧 바로 일체 부처님의 몸이며, 일체 부처님의 몸은 곧 바로 한 부처님의 몸이므로 온갖 작업도 모두 똑같이 하나이니, 이른바 분별하는 모습이 없고 피차(彼此)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평등하고 둘이 없어서 하나의 법성에 의지하여 짓는 업이 똑같나니, 자연 변화한 몸이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일체의 처소에 두루하고 원만하여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이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는 것을 따라서 언제나 저들의 의지가 되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허공이 온갖 물질의 형상과 갖가지 형태의 종류들을 모조리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처럼, 온갖 물질의 형상과 갖가지 형태의 종류들은 다 허공을 의지하여 존재하며, 건립되고 태어나 자라서 허공 속에 머무르고 허공에 거두어지는 대상이 되나니, 허공을 본체로 삼음으로써 허공의 분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以一佛身,卽是一切諸佛身。一切諸佛身,卽是一佛身。所有作業,亦皆共一,所謂無分別相,不念彼此,平等無二。以依一法性,而有作業,同自然化,體無別異故。如是諸佛法身,遍一切處,圓滿不動故,隨諸衆生死此生彼,恒爲作依。譬如虛空,悉能容受一切色像,種種形類,以一切色像種種形類,皆依虛空而有,建立生長。住虛空中,爲虛空處所攝。以虛空爲體,無有能出虛空界分者。 물질의 형상 가운데 허공의 경계는 헐리거나 없어지지 않지만, 물질의 형상이 마침내 무너질 때에는 도로 허공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허공의 본래 경계는 늘어나는 일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변화하지도 않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부처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들의 갖가지 과보(果報)를 모조리 용납하여 받아들입니다. 일체 중생들의 갖가지 과보는 모두 부처님의 법신에 의지하여서 존재하는 것이며, 건립되고 나서 자라나 법신 속에 머무르고 법신의 처소에 거두어지는 대상이 되나니, 법신을 본체로 삼음으로써 법신의 분계(分界)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當知色像之中,虛空之界不可毀滅。色像終壞時,還歸虛空。而虛空本界,無增無減,不動不變。諸佛法身,亦復如是,悉能容受一切衆生種種果報。以一切衆生種種果報,皆依諸佛法身而有建立生長,住法身中,爲法身處所攝。以法身爲體,無有能出法身界分者。 일체 중생들의 몸 안에 있는 모든 부처님의 법신도 헐리거나 사라지지 않지만, 만일 번뇌가 끊어져 무너질 때에는 도로 법신에 돌아갑니다. 법신의 본래 경계는 늘어나는 일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변화하지도 않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다만 끝없는 세상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무명의 마음과 함께한 어리석고 어두운 인연을 훈습하여 온 힘 때문에 허망한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고, 허망한 경계를 의지하여 훈습한 인연 때문에 망상과 서로 호응하는 마음을 일으켜 나니 내 것이니 하고 헤아리면서 온갖 업을 짓고 모아서 나고 죽음의 고통을 받는 것이니, 저 법신을 설명하여 중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중생 중에 법신에 훈습되어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번뇌는 점차로 엷어지고 세간을 싫어하며 열반의 도를 구할 것이요, 하나의 진실한 경계를 믿고 귀의하여 6바라밀 등 온갖 보리분법(菩提分法)31)을 닦는 이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은 보살 중에 일체의 선한 법을 수행하여 만족하며, 구경(究竟)에는 무명의 수면(睡眠)을 여읜 이를 이름을 바꾸어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중생ㆍ보살ㆍ부처님 등은 다만 세간에서 임시로 붙인 이름과 언설(言說)에 의지한 것이기 때문에 차별이 있으나, 법신의 본체는 끝내 평등하여 다른 모습이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當知一切衆生身中,諸佛法身亦不可毀滅。若煩惱斷壞時,還歸法身。而法身本界,無增無減,不動不變。但從無始世來,與無明心俱,癡闇因緣熏習力故,現妄境界。以依妄境界熏習因緣故,起妄想相應心,計我、我所,造集諸業,受生死苦,說彼法身名爲衆生。若如是衆生中,法身熏習而有力者,煩惱漸薄,能厭世閒,求涅槃道,信歸一實,修六波羅蜜等一切菩提分法,名爲菩薩。若如是菩薩中,修行一切善法滿足,究竟得離無明睡者,轉名爲佛。當知如是衆生、菩薩、佛等,但依世閒假名言說,故有差別。而法身之體,畢竟平等,無有異相。 선남자여, 이상이 하나의 진실한 경계[一實境界]의 이치를 간략히 해설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의 진실한 경계에 의지하여 신해(信解)를 닦고자 하는 사람은 응당 두 가지 도를 관하는 법[觀道]을 배워 익혀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첫째는 유심식관(唯心識觀)이요, 둘째는 진여실관(眞如實觀)입니다. 유심식관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이른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몸과 입과 뜻이 짓는 온갖 업을 따라 모두 자세히 관찰해서 오직 이 마음인 줄로 알아야 하며, 나아가서는 일체의 경계에 대하여 만일 마음이 생각에 머무르면 반드시 모두 살펴 알아서 마음으로 하여금 무기(無記)32)에 반연하여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생각 사이에 있어 마땅히 모두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니, 마음이 반연하여 생각하는 것을 따라서 도리어 마음으로 하여금 그 생각을 따르고 쫓게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스스로 알게 하여야 합니다. 자기의 속마음에 스스로 생각이 일어나는 줄을 아는 것은 일체의 경계에 대하여 생각이 있고 분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속마음에 스스로 길고ㆍ짧고ㆍ좋아하고ㆍ미워하고ㆍ옳고ㆍ그르고ㆍ얻고ㆍ잃고ㆍ손해를 보고ㆍ이익을 보고ㆍ있고ㆍ없는 것이라는 등의 소견과 한량없이 많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내었다 하더라도 일체의 경계에 대해서는 일찍이 생각이 있어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善男子!是名略說一實境界義。若欲依一實境界,修信解者,應當學習二種觀道。何等爲二?一者唯心識觀,二者眞如實觀。學惟心識觀者,所謂於一切時一切處,隨身口意所有作業,悉當觀察,知唯是心。乃至一切境界,若心住念,皆當察,勿令使心無記攀緣,不自覺知。於念念閒,悉應觀察。隨心有所緣念,還當使心隨逐彼念,令心自知。知己內心自生想念,非一切境界,有念有分別也。所謂內心,自生長短、好惡、是非、得失、衰利、有無等見,無量諸想。而一切境界,未曾有想,起於分別。 일체의 경계는 저절로 분별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곧 스스로는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며, 좋은 것도 아니고, 미운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일체의 형상을 여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직 마음의 생각에서 날 뿐이니, 만일 마음을 여의게 되면 곧 하나의 법과 하나의 생각도 스스로 차별이 있음을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속마음을 지키고 기억하는 것은 오직 허망한 생각이요 진실한 경계가 없는 것인 줄 마땅히 알아서 쉬어 버리거나 그만두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것을 유심식관을 닦아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마음은 무기(無記)이어서 자기 마음의 생각인 줄로 알지 못하는 이는 곧 앞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니, 유심식관이라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當知一切境界,自無分別想故,卽自非長非短、非好非惡,乃至非有非無,離一切相。如是觀察,一切法唯心想生。若使離心,則無一法一想,而能自見有差別也。常應如是守記內心,知唯妄念,無實境界,勿令休廢。是名修學唯心識觀。若心無記,不知自心念者,卽謂有前境界,不名唯心識觀。 또 속마음을 지키고 기억하는 이는 곧 탐내는 생각ㆍ성내는 생각ㆍ어리석고 삿된 소견의 생각을 알며, 선을 알고, 선하지 않음을 알며, 무기를 알고, 마음의 근심과 여러 가지 모든 고통을 알 것입니다. 또 앉았을 때에 마음이 반연하는 것을 따라 생각생각마다 오직 마음에서 나고 없어지는 것이라고 자세히 살펴 알아야 할 것이니, 비유하면 물의 흐름과 등의 불꽃이 잠시라도 머무르지 않는 것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색적삼매(色寂三昧)를 얻는 것이니, 이 삼매를 얻고 나면 그 다음에 당연히 사마타관심(奢摩他觀心)법을 믿고, 비바사나관심(毗婆舍那觀心)법을 믿고 배워 익혀야만 합니다. 又守記內心者,則知貪想、瞋想,及愚癡、邪見想。知善、知不善、知無記,知心勞慮種種諸苦。若於坐時,隨心所緣,念念觀知唯心生滅。譬如水流燈炎,無暫時住。從是當得色寂三昧。得此三昧已,次應學習信奢摩他觀心,及信毘婆舍那觀心。 사마타관심법을 믿고 익힌다는 것은 볼 수 없는 속마음의 형상을 생각하는 것이니, 원만하여 움직이지 않고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본래의 성품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분별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비바사나관심법을 믿고 익힌다는 것은 안팎의 물질을 생각하고 보는 것이니, 마음을 따라 나고 마음을 따라 없어지며, 나아가서는 생각을 익혀서 부처님의 색신을 볼 적에도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따라 나고 마음을 따라 없어지는 것은 허깨비와 같고 변화와 같은 것이며, 물속에 비친 달과 같고 거울 속에 나타나는 형상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도 아니고 마음을 여읜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 것도 아니며,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생겨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조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習信奢摩他觀心者,思惟內心不可見相,圓滿不動,無來無去,本性不生,離分別故。習信毘婆舍那觀心者,想見內外色,隨心生,隨心滅。乃至習想見佛色身,亦復如是。隨心生,隨心滅,如幻如化,如水中月,如鏡中像。非心不離心,非來非不來,非去非不去,非生非不生,非作非不作。 『점찰선악업보경』 2권(ABC, K0421 v13, p.665a01-667a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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