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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9~2014)-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나 외조부의 손에서 자랐다.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하지만 정치적 혼란속에서 학교를 중퇴하고 자유파 신문인<엘 에스펙타도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로마에 파견된 그는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떠돌며 유재 아닌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낙엽>, <아무도 대통령에게 편지 하지 않다>, <불행한 시간>,<백년의 고독> 등 저항적이고 풍자 정신이 넘치는 작품을 발표하며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전 세계 문인들로부터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받은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후 발표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통해 다시금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 받았다. 그밖의 작품 <순박한 에렌디라와 포악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미로 속의 장군>,<사랑과 다른 악마들>등이 있다.」
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씁쓸한 아몬드 향내는 언제나 그에게 짝사랑의 운명을 떠올리게 했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아직도 어둠에 잠겨 있는 집으로 들어갈 때부터 그런 사실을 감지했다.
그는 야전 침대 위에 담요로 싸인 채 눕혀져 있는 시체를 보았다. 항상 그가 잠을 자곤 했던 침대 근처에는 의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독극물을 증류시키는데 사용했던 사진 현상 접시가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가슴에 눈처럼 흰 얼룩이 있는 커다란 검은색 개의 시체가 누워 있었는데 그 덴마크 산 개는 침대 다리에 발이 묶여 있었다. 그 옆에는 목발이 놓여져 있었다.
경찰 수사관 한 명이 지방 보건소에서 법의학 실습중인 아주 젊은 의대생과 함께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완전히 발가벗은 시체는 눈을 뜬 채로 비틀린 채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몸은 푸르스름했다.
그는 그 도시에서 가장 나이 많고 훌륭한 의사일 뿐만 아니라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정확하고 신속하게 경찰 수사관과 인턴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검할 필요는 없었다. 집 안의 냄새만으로도 사인이 사진을 현상할 때 쓰이는 어떤 산 때문에 쟁반에서 활성화된 시안화 증기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신문사에 사진사가 자연사했다고 알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날 아침 6시, 마지막 순찰을 돌고 있던 야경꾼이 대문에 ‘문을 두드리지 말고 들어오시오. 그리고 경찰에게 알리시오’라는 종이쪽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수사관은 책상 위에 놓인 종이들 사이에서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에게 보내는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그의 입술은 시체와 똑같이 파랗게 변했고, 편지를 접어 조끼 주머니에 넣을 때는 손이 떨리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그가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지, 영광도 얻지 못한 어떤 전투에서 불구가 되었고 불화를 입었는지 전혀 알아보지도 안은 채, 무조건적인 보호자가 되었고 모든 것의 보증인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진관을 차릴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었다. ~~~~성당에 헌금을 내듯이 정기적으로 돈을 갚기 시작해서 결국 한 푼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갚았다. 이 모든 것이 체스 덕택이었다. 처음에 두 삶은 저녁을 먹고서 밤 7시에 체스 게임을 벌이곤 했다. 처음에는 상대의 실력이 너무나 우월했기 때문에 우르비노 박사에게 몇 수를 접어주곤 했지만,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더니 마침내는 맞수가 되고 말았다.
성스러운 일요일에는 아주 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환자를 보러 나가지 않았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아닌 이상 그 어떤 약속도 만들지 않았다. 성령강림대축제일이었던 바로 그날 아주 드문 사건 두 개가 일어났는데, 이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우연의 일치였다. 하나는 친구의 죽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훌륭한 그의 제자가 의사가 된지 이십오 년이 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그는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 생각했던 것처럼 집으로 곧장 돌아가는 대신 호기심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급히 유서를 다시 훑어보고는, 마부에게 노예들이 살던 옛 구역의 알 수 없는 주소로 마차를 몰라고 지시했다.
주소는 아주 분명하게 적혀 있었고, 그 주소를 쓴 사람은 그곳을 아주 잘 알고 있을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마침내 그 주소를 찾았을 때, 벌거벗은 아이들 무리가 마부의 우스꽝스럽게 화려한 옷을 놀려대면서 마차를 쫓아오는 바람에 마차는 채찍을 휘둘러 그 아이들을 쫓아버려야만 했다.
집 안에는 까만 옷을 입고 귀에는 빨간 장미를 꽃은 나이든 여자가 있었다. 못해도 마흔 살은 돼 보였지만, 그녀는 오만한 몰라토(흑인과 백인의 혼혈) 여인의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독기가 서린 그녀의 눈은 황금빛이었고, 머리칼은 쇠줄로 짠 헬멧처럼 그녀의 머리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사진사의 작업실에서 체스를 두다가 그녀를 번 적이 여러 번 있고, 한번은 삼일열에 걸린 그녀에게 키니네를 처방해 주기도 했지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죽기 몇 시간 전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거의 이십 년에 이르는 세월을 그와 함께했다. 두 사람은 그녀가 태어난 곳이자 그가 망명객 생활의 초기를 보냈던 포르토프랭스의 행려 병원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사진관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일을 맡았는데, 나쁘게 생각하길 좋아하는 이웃 사람들도 눈에 보이는 것과 진실을 혼동하지는 않는다.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가 불구라는 사실이 단지 걷는 데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어쨌거나 과거도 없는 자유로운 두 성인 남녀가 폐쇄된 사회의 편견 언저리에서 살아가면서 금지된 사랑이라는 우연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그런 사랑을 ‘그의 뜻이었죠.’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한 번도 완전히 그녀의 것인 적이 없었던 남자와 비밀스러운 삶을 함께 나누면서 그녀는 종종 갑작스러운 행복의 폭발을 경험하였지만,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날 밤 그들은 영화관에 가서 각자 극장표를 사서 다른 좌석에 앉았다.
그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려고 체스를 두자고 제안했고, 그는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박사는 마지막 게임의 상대가 자신이 짐작했던 헤로니모 아르고데 장군이 아니라 그녀였음을 깨닫고는 놀라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대단한 시합이었소!” 그녀는 자기가 잘 두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음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가 아무런 애정도 없이 말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고 노예 제도가 폐지되자,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의 영광스러운 몰락은 가속화되었다. 과거의 훌륭한 가문들은 폐허가 되어버린 그들의 궁궐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침몰해 갔다.
한 해 동안에도 여러 번 포토시, 키토, 베라쿠르스의 보물을 실은 갈레온선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곤 했는데, 그때가 이 도시의 영광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장소도 서재처럼 섬세한 엄숙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르비노 박사가 늙기 전까지 서재는 그의 은신처였다.
집은 북풍이 지붕을 날려 보내고 밤새 배고픈 늑대처럼 스며들 틈을 찾아 집 주위를 맴도는 12월에서 3월까지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날 아침은 행복하지 않았다. 10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성령강림대축일 미사를 빠지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끝난 듯 한 나이에 그를 변화시킬 것 같았던 두 차례의 방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는 라시데스 올리베야 박사의 점심 만찬 시간이 되기 전에 잠시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하인들이 소란을 피우는 소리가 들렸다. 날개의 깃털을 깎아주기 위해 앵무새를 새장에서 꺼내는 순간 새가 망고 나무 꼭대기로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하인들이 이를 잡으려고 쫓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십여 년 동안 함께 한 앵무새는 ~~~~ 마치 학자처럼 프랑스어를 말하게 되었다.
그는 최근 유럽 여행에서 당시 유행 중이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 레코드판과 함께 스피커가 달린 최초의 축음기를 가져왔다. 그 후로 몇 달 동안 ~~~~이베트 길베르와 아리스티브 브뤼앙의 노래를 들려주었고, 마침내 앵무새는 그 노래들을 줄줄 외우게 되었다. 그 노래가 여자 가수인 이베트 길베르의 노래면 여자 목소리로, 그리고 남자의 노래면 테너로 부르며 깔깔거리면서 노래를 끝맺곤 했다. 그것은 바로 앵무새가 노래하는 것을 들을 때면 하녀들이 터뜨리던 웃음소리를 맛지게 흉내 낸 것이었다.
가장 영광스러웠던 날은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마르코 피델 수아레스 씨가 장관들을 이끌고 그 명성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왔을 때였다. ~~~그들을 초청했던 우르비노 박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앵무새에게 애걸복걸하고 자기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고 위협도 해보았지만, 앵무새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비굴하게 구는 것이고, 고양이는 기회주의자에 배신자이며, 공작새는 죽음의 사신이고, 금강 앵무새는 성가신 장식품에 불과하며, 토끼는 탐욕을 조장하고, 원숭이는 음욕이란 열병을 전염시키며, 수탉은 그리스도를 새 번이나 부정하게 만든 공범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당시에 일흔 두 살로 젊은 시절에 사슴처럼 사뿐히 걷던 걸음걸이를 잃은 지 오래된 그의 아내 페르미나 다사는 적도의 꽃과 가축을 비이성적일 정도로 숭배했다. 결혼 초기에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이용해 양식(良識)이 충고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동물을 집 안에 두었다. 처음에 둔 동물은 로마 황제들의 이름을 딴 세 마리의 달마시안이었다. 이 개들이 메살리나라는 이름에 걸맞은 암컷의 호감을 사기 위해 걸핏하면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곤 한 덕에 암컷은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자마자 다시 열 마리를 배곤 했다. ~~~아비시니아 고양이들이었는데 , 이 동물의 옆모습은 독수리와 흡사했으며, 태도는 파라오처럼 거만했다. 한편 샘고양이들은 사팔뜨기였고, 오랜지색 눈을 가진 페르시아 황실 고양이들은 마치 유령의 그림자처럼 방 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악마들이 사랑 파티를 벌이듯이 울부짖으며 밤을 소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몇 년간 정원의 망고 나무에 허리가 묶인 채 있었던 아마존의 원숭이도 있었다. 그 원숭이는 대주교 웁둘리오 이 레이를 닮은 슬픔에 찬 표정과 순수한 눈, 그리고 설득력 있는 손으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페르미나 다사가 그 원숭이를 치워버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숙녀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자위를 해대는 그의 못된 버릇 때문이었다.
복도의 새장에는 온갖 종류의 과테말라 산새들을 비롯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징조를 미리 알려주는 알락 해오라기, 길고 노란 다리를 지닌 늪지의 해오라기, 화분속의 안투리움을 먹어치우기 위해 창문을 엿보던 어린 사슴도 한 마리 있었다.
도둑들이 다락방의 채광창을 통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려 했던 날 밤에 ~~~ 앵무새는 진짜 사냥개보다 더 그럴듯하게 개 짖는 소리를 내어 도둑들을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도둑이야, 도둑이야, 도둑이야 하고 외쳐대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우르비노 박사는 앵무새 기르는 일을 책임졌다.
우르비노 박사는 앵무새의 만성적인 탄저병이 인간의 건강한 호흡기에 해롭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새장에 담요를 덮어 방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어느 날 앵무새는 부엌의 대들보에서 곡예를 하며 재주를 부리다가 국을 끓이던 솥으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누구든지 도와줘 하고 선원처럼 소리 질렀다. ~~~천만다행으로 요리사가 국자로 앵무새를 건져내었다.
앵무새가 망고 나무 꼭대기까지 도망친 것이었다. 세 시간 동안 노력 했지만, 앵무새는 잡지 못했다. 이웃집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 우르비노 박사의 하녀들은 앵무새를 내려오게 하려고 온갖 종류의 속임수를 썼지만, 앵무새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행복한 취객들 중 네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무서운 구호인 ‘자유당 만세, 자유당 만세!’를 외치며 죽을 듯이 웃어대고 있었다. 우르비노 박사는 잎사귀 사이로 간신히 앵무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심지어는 라틴어로 앵무새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앵무새는 박사와 똑같은 언어와 똑같은 음색, 그리고 똑같은 강세로 대답할 뿐, 나뭇잎 속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든 한 살의 나이였지만 , 잠을 자다가 자세만 바꾸어도 고통 없이 끊어질 가느다란 실로 이 세상을 붙잡고 있으며, 그 실을 붙잡고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죽음이라는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우르비노 박사는 충분히 명민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앵무새의 목을 잡고 ‘휴.’ 하며 승리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즉시 앵무새를 놓아주어야만 했다. 발밑에 있던 사다리가 미끄러지면서 쓰러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공중에 떠 있었다. 그때 그는 자기가 영성체를 받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뉘우칠 시간도 없이, 그리고 누구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채 성령강림대축일의 일요일 오후 4시 7분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르미나 다사는 부엌에서 저녁에 먹을 수프 맛을 보고 있었다. ~~~~자기 남편이 진흙탕 위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가 이미 세상의 삶을 마감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그녀가 그에게 올 수 있도록 죽음의 마지막 숨을 쉬며 버티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의학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과감하게 새로운 치료법을 도입하여 그 지방을 휩쓸고 있던 최후의 콜레라 전염병을 제때에 퇴치했고, 그런 까닭에 그 나라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아직 유럽에 있을 때 발생했던 그 이전의 콜레라는 채 석달도 되기 전에 도시 인구의 4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그 희생자들 가운데는 아주 훌륭한 의사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얻은 명성과 유산으로 물려받은 상당한 액수의 돈으로 오랫동안 카리브 해 지방의 최초이자 유일한 의사 단체가 된 의학 협회를 설립하고, 그 단체의 종신회장을 맡았다.
어쨌거나 그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식구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일들에게도 전염되어 영향을 끼쳤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된 유명한 화가는 비애감이 담긴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사다리를 올라간 우르비노 박사가 앵무새를 잡기 위해 손을 뻗은 죽음의 순간을 커다란 캔버스에 그렸다.
미망인이 된 첫 순간부터 페르미나 다사는 남편이 두려워했던 것과는 달리 무력해지지 않았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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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페르미나 다사가 길고 지난했던 사랑이 지나간 후 가차 없이 자신을 버린 51년 9개월 하고도 4일 전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이 헤어졌을 때 그는 어머니 트란시토 아리사와 단둘이서 ‘창문의 거리에서 집 반쪽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곳은 트란시토 아리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잡화점을 했고, 낡은 셔츠와 넝마를 찢어서 붕대로 만들어 전쟁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에게 팔던 곳이었다. 그는 외아들이었는데, 유명한 선주인 피오 5세 로아이사와 그의 어머니가 나눈 우연한 사랑의 산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카리브 하천 회사를 설립하였고 그로 인해 마그델라나 강의 증기선 운행에 새로운 자극을 가한 세 형제 중에서 장남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로타리오 투구트가 주소도 정확하게 적히지 않은 전보를 주면서 로렌소 다사라는 사람에게 갖다 주라고 했던 어느 날 오후였다.
뚱뚱한 사람이 책상을 마주 보고 앉아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이 로렌소 다사였다. ~~~재봉실 앞을 지날 때 그는 창문으로 나이 지긋한 여인 한 명과 소녀 하나를 보았다. 두 사람은 의자를 나란히 붙이고 앉아서, 나이 지긋한 여인의 무릎에 펼쳐진 책을 함께 읽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모습이었다. 딸이 어머니에게 읽는 범을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소녀는 눈을 들어 창밖으로 누가 지나가는지 쳐다보았다. 그 우연한 시선은 오십 년이 지난 후에도 끝나지 않고 세상을 뒤흔든 사랑의 시작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로렌소 다사에 관해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콜레라 전염병이 휩쓴 후 얼마 되지 않아 외동딸과 미혼 여동생을 데리고 산 후안 데 라 시에나가에서 왔다는 것뿐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로렌소 다사가 엄청난 재산가라고 생각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이처럼 순진하게 외로운 사냥꾼의 비밀스러운 삶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 페르미나 다사를 기른 그녀는 오빠 로렌소 다사와의 관계로 인해 고모라기 보다는 오히려 공범자처럼 행동했다.
그는 말했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단지 이 편지를 받아달라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페르미나 다사가 생각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너무나 분명하고 또렷하며 자신에 찬 것이, 그의 유약한 태도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수놓던 바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우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 편지를 받을 수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럼 허락을 받으세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 다음 ‘이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라는 애원하는 말로 그런 명령조를 부드럽게 들리게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오후에 이리로 오세요. 그리고 내가 자리를 바꿀 때까지 기다리세요.’
양복 옷깃에 흰 동백꽃을 꽂고 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길을 건너 그녀 앞에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입니다’라고 말했다. 페르미나 다사는 그를 향해 눈을 들지는 않았지만,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건기의 푹푹 찌는 거리에 아무도 없고, 마른 낙엽들만이 바람에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편지를 주세요.”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하도 많이 읽어서 외워 낭송할 수 있을 정도였던 칠십 장의 편지를 가져가려고 생각했다가, 간결하고 명확하게 적은 반 페이지만을 가져가기로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그녀는 두려움으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손에서 떨리고 있는 파란 봉투를 보고서, 그가 편지를 놓을 수 있도록 자수틀을 올렸다. 그것은 그녀가 그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간파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자 일이 벌어졌다. 새 한 마리가 아몬드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몸을 흔들자, 바로 수를 놓고 있던 곳에 새똥이 떨어졌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손에 편지를 든 채 태연한 표정으로 “그건 행운의 징조입니다.”라고 말했다. ~~~거의 빼앗듯이 편지를 낚아채서 접고는 자기 브래지어 속에 숨겼다. 그러자 그는 옷깃에 꽂혀 있던 동백꽃을 주었다. 그녀는 “그건 약혼의 꽃이에요.”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이제 가세요. 내가 연락할 때까지 더 이상 이곳으로 오지 마세요.
첫 편지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설사를 하고 푸른색의 물질을 토하는 등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방향 감각을 잃고 갑자기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상태가 상사병이 아니라 콜레라의 끔찍한 증세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트란시토 아리사는 행복을 추구하는 본능이 가난으로 인해 좌절되었던 아픈 과거를 지닌, 사십 대의 자유로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인 양 지켜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었다.
편지를 받았는데 답장을 하지 않은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날 내내 장미를 먹으면서 편지를 읽었다. ~~~그해는 두 사람이 처절할 정도로 사랑에 빠진 해였다. -p122
에스콜라스티카 고모는 거의 매일 거리에서 우연을 가장하여 그를 만나 편지를 전해 주었다.
폭군과 같은 오빠의 성격으로 볼 때 철석같이 믿었던 동생의 배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후의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 되자 그녀는 자기가 젊었을 때부터 지녀야 했던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조카에게- 안겨줄 정도로 몰인정해지지 못했다.
페르미나 다사가 매일 오가는 집과 학교 사이의 어느 숨겨진 장소에 편지를 놓고, 그 편지에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어디에 답장을 놓을지를 지시하는 것이었다.
열성적인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은 지 이 년이 될 무렵,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단 한 단락의 편지로 페르미나 다사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했다.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그녀는 에스콜라스티카 고모에게 그런 사실을 이야기했고, 그녀는 용감하고 명민하게 그녀의 자문에 응해 주었다. 그러한 자세는 에스콜라스티카 고모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만 했던 스무 살 때에는 지니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스콜라스티카 고모가 말했다. “좋다고 대답해. 지금은 두려움에 질려 어쩔 줄 모르겠고, 나중에 후회할지 모른다 해도 말이야. 어쨌거나 싫다고 대답하면 넌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러나 페르미나 다사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나머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넉 달이 흘러가자, 그녀는 다시 흰 동백꽃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번과는 달리 봉투 속에 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단호한 쪽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봉투를 받았을 때 죽음의 얼굴을 본 사람은 바로 플로렌티노 아리사였다. 그 봉투에는 학교 공책을 찢은 조각이 담겨 있었는데, 거기에는 연필로 쓴, 다음과 같은 단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좋아요. 나한테 가지를 먹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그러나 트란시토 아리사는 마지막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로렌소 다사가 정말로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그가 누구이고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는 두 사람이 충분히 상대방을 알 수 잇도록 연애 기간이 길어야 하며, 서로의 애정을 확신할 수 잇을 때까지 완벽한 비밀로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완벽하게 비밀을 지키는 데 동의했다.
페르미나 다사는 이 년의 기간과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그녀가 고등학교를 마치는 크리스마스 방학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청혼해 줄 것을 제안했다.
정식으로 약혼을 하기 넉 달 전에 로렌소 다사가 아침 7시에 전신실에 나타나 그를 찾았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긴 의자에 앉아서 8시 10분까지 그를 기다리면서 고상한 오팔이 박힌 무거운 반지를 한쪽 손가락에서 빼서 다른 손가락에 끼었다. 그가 우체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로렌소 다사는 즉시 전신을 배달했던 청년을 알아보았다.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팔짱을 끼고는 이렇게 말했다. “같이 가세, 남자대 남자로 오 분간만 이야기하세.” 죽은 사람처럼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냥 그에게 끌려갔다.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토요일 성모봉헌 학교의 교장 선생님인 프랑카 데 라 크루스 수녀는 우주 창조 사상에 관한 수업시간에 뱀처럼 살며시 들어와 어깨 너머로 학생들의 태도를 몰래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페르미나 다사가 공책에 필기를 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연애편지를 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급히 교장 선생님의 호출을 받은 로렌소 다사는 자신의 강철 같은 체제가 새고 있는 틈을 발견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용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페르미나 다사는 편지를 쓴 것은 잘못이라고 시인했지만, 비밀의 애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거부했다. 그녀는 수녀원 위원회 앞에서도 밝히기를 거부했고, 그런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침입할 수 없는 성역이었던 그녀의 침실을 샅샅이 뒤진 끝에 트렁크의 이중 바닥에서 삼 년간의 편지 뭉치를 찾아냈다. 그 편지들은 정성 들여 쓰여진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정성 들여 숨겨저 있었다. 편지에는 분명하게 서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렌소 다사는 자기 딸이 숨겨놓은 애인에 대해 전신실에서 일한다는 것과 바이올린을 좋아한다는 것밖에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뿐만 아니라 나중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힘든 관계가 유지되려면 자기 여동생과 공모를 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신한 그는 그녀에게 변명이나 용서를 빌 기회도 주지 않고 산 후안 데 라 시에나가로 가는 배에 태워버렸다. 페르미나 다사는 결코 고모와의 마지막 기억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 거무죽죽한 수도복 아래 고열에 시달리는 수척한 몸을 감추고 잿빛이 된 얼굴의 고모는 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한 뒤 평생을 살면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독신녀의 이불을 짊어진 채, 한 달을 살 수 있는 돈을 손수건에 싸서 꼭 쥐고 이슬비가 내리는 공원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고모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은 거의 삼십 년이란 세월이 지나서였다. 페르미나 다사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는데. 그 편지는 그녀가 ‘하나님의 성수’라는 나환자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로렌소 다사는 페르미나 다사가 에스콜라스티카 고모에게 부당한 처벌을 내린 것에 그토록 심하게 반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온갖 달콤한 말을 동원해 딸을 달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목에 나이프를 들이댔다. ~~~바로 그때 자신은 만나본 기억도 전혀 나지 않지만 자기 인생에 커다란 슬픔을 안겨준 빌어먹을 신출내기와 남자대 남자로 오 분 간 얘기해 보겠다는 위협을 받아 들였다. 그는 집에서 나가기 전에 습관대로 권총을 집어 들고는 셔츠 밑에 아주 조심스럽게 숨겼다.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테라스에 앉으라고 말했다.
아내가 죽은 뒤 그는 한 가지 목표를 자신에게 부과했는데, 그것은 자기 딸을 훌륭한 숙녀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노새 장사꾼에게 그것은 멀고도 불확실한 길이었다.
딸이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맞고 졸업식에서 1등상을 타면서 초등학교를 마치자, 그는 산 후안 데 라 시에나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좁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땅과 가축들을 팔고서 새로운 마음과 7만 페소를 가지고 폐허가 된 채 과거의 영광을 좀먹고 있던 이 도시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을 하려고 찾아온 것일세. ~우리 앞길에서 제발 물러나 주게.~~어쨌거나 따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배신행위일 테니까요. ~~자네를 총으로 쏘아 죽이게 만들지 말게. ~~~쏘십시오. 사랑 때문에 죽는 것보다 더한 영광은 없습니다. ~~개-자-식~
바로 그 주일에 로렌소 다사는 딸에게 망각의 여행을 떠나게 했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가방을 꾸리라고 명령했다. 그녀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는 ‘죽으러 가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것에 돌아올 수 없는 여행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미친 여행이었다. 안데스의 노새 몰이꾼들과 함께 한 첫 번 째 여정은 노새의 등을 타고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산등성이를 따라가면서 열하루나 계속되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아버지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으며.
여행을 떠나기 전에 로렌소 다사는 전신 기사를 통해 처남인 리시마코 산체스에게 그곳으로 여행할 것을 알리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의 처남은 그 지방의 수많은 마을과 계곡에 흩어져 살고 있던 많은 친척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들의 여행 계획을 완벽하게 꿰었을 뿐만 아니라, 전신 기사들과 장거리로 동료애를 나누면서 카보 데 라 벨라의 최종 종착지까지 페르미나 다사의 흔적을 쫓았던 것이다.
페르미나 산체스의 가족은 그녀가 그와 결혼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반대했었다.
바로 그 무렵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편지에 그녀를 위해 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에서 보물을 인양하겠다는 결심을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심심풀이로 부둣가에 나가 어떻게 어부들이 잠에 빠진 물고기들로 가득한 엄청나게 큰 그물을 통나무배에 싣는지 지켜보곤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진짜 계획을 모두 밝히지 않고, 단지 잠수하고 항해하는 그의 능력에 대한 정보만을 들었다. 그가 산소통 없이 20미터 깊이까지 내려갈 수 있느냐고 묻자 에우클리데스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침내 에우클리데스는 탐험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했다. 통나무 배 한 척을 빌리는 값과 노를 빌리는 비용을 더한 뒤, 사람들이 그들의 항해 뒤에 다른 진실이 숨어 잇는지 의심하지 않도록 낚시 도구를 빌리는 값까지 계산에 넣었다.
그 아이는 열두 살이었고, 빠르고 영리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다음 일요일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거기에는 페루와 베라크루스에서 가져온 은 300상자와 콘타도라 섬에서 모아 온 진주 110상자가 실려 있었다.
바람은 너무나 잔잔하고, 바다는 너무나 고요하고 맑아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물속에 자기의 얼굴이 비친다고 느낄 정도였다. 가장 큰 섬에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그 내해의 끝에 바로 배가 침몰된 장소가 있었다.
그들은 삼 주일을 헛되이 보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비밀을 털어놓자, 에우클리테스는 탐색 계획 전체를 수정했고, 두 사람은 보물선의 옛 항로를 따라 항해하기 시작했다. 그 장소는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예측했던데서 동쪽으로 20레구아 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마침내 배에 오르자, 그는 자기가 바다 밑에서 오래 버틴 대가인 양 입에서 두 개의 여성 장신구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러나 조만간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그의 모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보석이 박힌 금속을 이빨로 물어보고 보석을 햇빛에 비추어보고는 그것이 유리임을 확인하였고, 누군가가 아들의 순진함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을 때 그녀의 귀환 소식이 전해졌다.
“제발 부탁인데, 이제 그만 잊어버려요.” 그날 오후, 아버지가 낮잠을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해 그녀는 갈라 플라시디아 편으로 두 줄 짜리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오늘 당신을 보자 우리의 사랑은 꿈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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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의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여자들이 가장 탐내던 미혼 남성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의과학 외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귀국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육 년 전에 그 마을을 휩쓴 아시아형 콜레라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문의 영혼도 죽어버렸다.
도착한 그날 밤, 집 안의 어둠과 침묵에 놀란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한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도시의 위생 상태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집착했다. ~~~그는 식수의 치명적인 위험도 알고 있었다.
삼 주째가 되자 산타클라라 수도원은 포플러 가로수 길까지 시체로 꽉 차게 되었고. 그래서 수도원 마당보다 두 배나 큰 수도원 과수원을 묘지로 사용해야만 했다.
콜레라 발생이 공포되자, 지방 수비대의 요새에서는 화약이 대기를 정화시킨다는 미신에 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십오 분마다 대포를 쏘았다. 콜레라는 가장 숫자가 많은 가난한 흑인들에게 더 잔인했지만, 실제로는 피부색이나 가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콜레라는 갑작스럽게 시작 된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전염병의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후베날 아버지인 마르코 아우렐리오 우르비노 박사는 그 악몽 같은 시기에 시민 영웅이었던 동시에 콜레라에 희생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불과 삼십년 전에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일대에서 14만 명 이상이 콜레라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뒤로 그는 콜레라의 다양한 형태에 관해 온몸을 바쳐 연구했다.
그래서 조국으로 돌아와 바다에서 풍겨 오는 역한 냄새를 맏고, 하수구에서 쥐들을 보고, 거리의 흙탕물에서 아이들이 벌거벗고 뒹구는 것을 보자 과거에 어떻게 해서 비극이 벌어졌는지 까달았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그것이 반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일 년도 채 지나기 전에 자선 병원의 학생들이 온몸이 이상할 정도로 파랗게 된 어느 구호 대상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문간에서 그를 보자 즉시 적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운이 좋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운이 좋았다. ~~~환자는 사흘 전에 쿠라사오에서 출항한 스쿠너를 타고 도착했으며, 스스로 병원 외래 진료실에 찾아왔기에 아무에게도 병을 전염시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환자는 흰 알갱이를 토하다가 숨이 막혀 나흘 만에 죽었다. ~~~그런데 얼마 후<상업신문>은 그 도시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두 아이가 콜레라로 숨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3개월간 11건의 사례가 보고되었고, 5개월째에는 재차 증가추세를 보였지만, 그 해가 끝날 무렵 전염병의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었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엄격한 위생관이 이런 기적을 가능하게 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여덟 살의 어느 여자 환자에게서 콜레라의 예비 증상이 보인다고 생각했던 그의 동료 의사가 그녀를 찾아가 달라면서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콜레라가 이미 옛 도시 지역의 성소에 침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깜짝 놀란 나머지, 그는 그날 어후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복음 공원의 아몬드 나무들이 짙게 그늘을 드리운 그 집은, 밖에서 볼 때는 식민지 구역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폐허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집 안은 아름다웠고 눈이 부실 정도여서...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 안은 투명하리만큼 조용해졌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죽는 날까지 함께 살게 될 여인을 만났을 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경험하지 못했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딸이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인 로렌소 다사는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를 마차 문 앞까지 배웅해 주면서 왕진료로 1페소를 지불했다.
일데브란다는 몸집이 크고 단단했으며, 피부는 황금빛이었고 체모는 철사뭉치처럼 짧았으며 곱슬곱슬했다.
일데브란다의 여행은 페르미나가 좋은 베필감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는 구실이 붙긴 했지만, 사실은 일데브란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멀리하도록 억지로 강요된 여행이었다.
페르미나 다사는 사촌 언니에게 자기의 사랑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던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즈음에 벨기에 출신의 사진사가 와서 필경사의 거리가 끝나는 곳에 사진관을 차렸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두 여자에게 말했다. 부탁이니 이 마차를 타십시오. 가시고자 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페르미나 다사가 명문가 출신에 돈도 많고 유럽에서 공부 했으며, 나이에 비해 상당한 명성을 지닌 의사와 결혼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사흘 동안 순항했지만 갑작스러운 모래톱과 위선적인 급류를 만나면서 항해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 가축을 싣고 자메이카로 가던 다른 배를 만나, 노란 깃발을 꼽은 배에는 두 명의 콜레라 환자가 타고 있으며, 그 전염병은 아직 그들이 항해해야 할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자 다음 항구들뿐만 아니라 장작을 싣기 위해 잠시 정박하던 사람이 없는 지역에서도 승객들의 하선을 금했다.
Ⅱ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대성당의 안뜰에서 임신 육 개월째이자 상류 사회의 여자로서 완전히 조건을 갖춘 페르미나 다사를 보았을 때, 그녀에게 걸맞은 상대가 되기 위해 명성을 얻고 돈을 벌겠다고 모질게 결심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쓸데없이 보낸 이십칠 년이란 세월의 짐을 지고 음산한 모습으로 자신의 사무실에 나타나 일거리를 달라고 부탁한 날부터, 그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무릎을 꿇을 정도의 군대식 훈련으로 그를 혹독하게 시험했다. ~~~~작은 아버지 레온 12세는 조카의 그런 용기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필요성이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잔인할 정도의 냉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이 세상이나 또 다른 세상의 그 어떤 장애물도 부술 수 없는 사랑의 야망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 레온 12세의 옛날 음악 선생님이었던 로타리오 투구트가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좋은 작품이건 나쁜 작품이건 가리지 않고 탐욕스럽게 읽어 대는 ‘도매 독자’이니 글 쓰는 자리를 주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불굴의 고집과 헌신으로 삼십년 동안 모든 시험을 이겨내면서 모든 직책을 두루 거치게 되었다.
아버지의 형제들은 요리사였던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서로 다른 사생아들이었다. 그래서 아들들은 성인의 날이 기록된 달력에서 어머니가 마구 선택한 교황의 이름 뒤에 어머니의 성을 달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만 예외였는데, 레온 12세는 그가 태어났을 때 바티칸을 통치하던 교황의 이름이었다. 플로렌티노란 이름은 그들 외할아버지의 이름으로, 교황의 이름으로 점철된 한 세대를 통째로 뛰어넘어 트란시토 아리사의 아들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플로렌티노는 아버지가 사랑의 시를 쓰곤 했던 공책 한권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창문의 거리에 왔던 기억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트란시토 아리사와 사랑을 나누던 초기에는 잠시 그곳에서 잠을 잤지만, 자신이 태어난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은 게 틀림없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아들의 양육비를 몰래 대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신학교의 문을 통과할 수 없었지만, 또한 전쟁으로 피비린내 나던 가장 참혹한 시기에 미혼모의 외아들이란 이유로 징집을 피할 수 있었다.
‘이거 받고 이젠 다시 오지 마라.‘ 그것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때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아버지보다 열 살이나 어린 작은 아버지 레온 12세가 계_t고해서 트란시토 아리사에게 생활비를 가져다주었으며, 피오 5세가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외아들인 거리의 아들을 위해 어떤 준비도 해놓을 시간도 없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복통으로 세상을 떠나자, 트란시토 아리사의 생활을 책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사무실을 나서려고 하다가, 레오나 카시아니의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내 영혼의 암사자여. 하나만 말해줘요. 도대체 우린 언제 이 일을 끝낼거요? 그녀는 놀라는 기색 없이 침착하게 안경을 벗고는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아, 플로렌티노 아리사! 여기에 십 년 동안이나 당신이 물어봐 주길 기다렸어요.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오후 3시의 더위를 견디기 위해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잠시 숨을 돌리면서 카리브 하천 회사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서는 바지까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사무실에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그러고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곧 태풍이 덮칠 것 같군요.” 라고 말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작은 아버지 레온 12세를 찾아온 그를 여러 번 보았지만, 이때처럼 보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이 자신의 삶과 관계가 있다는 선명한 인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 무렵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직업상의 여러 위험과 암초를 극복하고서, 예술 사업에 필요한 기부금을 모금하러 거의 거지처럼 손에 모자를 들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장 열성적이고 후덕한 기부자 중의 하나가 작은 아버지 레온 12세였다.
의사는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음악 좋아하십니까?” 그는 일격을 당한 느낌이었다. ~~~난 가르델(아르헨티나 탱고 가수)을 좋아합니다. 우르비노 박사는 말뜻을 알아듣고는 “알겠어요. 요즘 유행하는 가수죠.”라고 말했다.
갑자기 맥락에 닿지 않게 자기 아내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죠. 라고 말했다.
그녀를 기다리면서 보낸 끝없는 이십칠 년이란 세월 동안 처음으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 한 슬픔을 느꼈다.
마지막 박수갈채의 소란 속에서 그녀는 솔직하게 슬픈 표정을 짓고는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말 유감이에요. 이건 진심이에요.”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아연실색했다. 그것은 그가 받아 마땅한 위로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의 비밀을 누군가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경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봉투가 열릴 때마다 당신 옷깃에 꽂힌 꽃이 떨리는 것을 보고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 손에 들고 있던 벨벳 동백꽃을 보여주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난 내 꽃을 떼어버렸어요.”
“그년은 창녀예요“ 그녀는 가면무도회에 검은 암표범으로 변장한 페르미나 다사의 사진을 보고 지나가는 투로 한 말이었다. 그녀가 누구를 향해 한 말인지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알도록 이름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급히 조심스럽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는 페르미나 다사를 조금만 알고 있을 뿐이며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사를 나눈 적도 없고, 그녀의 사생활이 어떤지 아무런 소문도 들은 바 없지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자신이 지닌 훌륭한 자질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훌륭한 여자라는 것은 틀림없다고 반론했다. 그러자 사라 노리에가가 그의 말을 가로막고서 말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정략결혼을 해서 얻은 작품이자 은총이지요. 그건 창녀가 되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천박한 방법이에요.“
은밀한 사냥꾼이 되어 새벽을 방황하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 여자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어깨에는 운명의 까마귀를 앉인 채 새벽 5시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곤 했다.
페르미나 다사는 성공해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버렸고, 그로 인해 즉시 쓰라린 연민을 느껴야 했지만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늘그막에 플로렌티노 아리사에 관해 우연히 대화를 나누다가,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른 채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카리브 하천 회사의 후계자로 확정되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고, 모두들 그를 수없이 보았고 심지어는 그와 거래 관계를 맺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확신했지만, 그 누구도 과거의 그가 어떠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페르미나 다사는 그를 사랑할 수 없었던 무의식적인 동기를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그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와는 정반대인 남자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끈질긴 구혼 공세를 거부하는 동안, 그녀는 죄의식의 환영에 고통 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그녀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일한 감정이었다. 그가 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일종의 공포심이 그녀를 휘감았는데, 그녀의 양심을 달래줄 누군가를 발견할 때만 비로소 그런 감정을 통제할 수 있었다.
페르미나 다사는 여러 달 동안 매일 아침 마다 발코니를 열었으며, 아무도 없는 공원에 숨어 자기를 기다리던 고독한 유령을 그리워했고, 그의 것이었던 나무와 그녀를 생각하면서 그녀 때문에 고통 받으면서 책을 읽으며 앉아 있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벤치를 쳐다보곤 했다. 그러고 나서 “불쌍한 사람.” 이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면서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리고 과거를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늦었을 때, 자기가 생각했던 만큼 그가 집요하지 않은 것이 환멸을 느끼기도 하면서 때때로 절대로 도착하지 않을 편지를 뒤늦게 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베날 우르비노와의 결혼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자, 아무런 타당한 이유도 없이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거부했지만 후베날 우르비노를 선호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요인은 프로렌스 다사가 자기 딸을 위해 그토록 원했던 장상적인 남자와 그가 흡사한 정도가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똑같다는 것이었다. 비록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아버지와의 공모로 탄생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인 블랑카 부인의 지독한 잔소리와 정신 지체아와 흡사한 시누이들 때문에 절망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고독과 공동묘지와 같은 정원, 창문도 없는 거대한 방에서 시간을 탕진하는 삶은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페르미나 다사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안도의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고, 귀찮은 질문을 피하기 위해 상복도 입지 않았다.
어느 겨울 오후에 그녀는 사나운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발코니를 닫으려 하다가, 공원의 아몬드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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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동안 국가를 합창하던 순진한 사람들 틈에 뭍여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에 누군가 이것은 여자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모험이며, 페르미나 다사처럼 나이 많은 여자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어두운 바다와 같은 바나나 농장 위를 날아갔다. ~~~작은 망원경으로 아래 세상을 살펴보며 가고 있던 기구 조종사는 “모든 농장 인부들이 죽은 것 같아여.”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망원경을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밭들 사이에 있는 소달구지와 철길의 경계표와 싸늘하게 얼어붙은 관개 수로를 보았다.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어디든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누군가가 콜레라가 시에나가 그란데의 마을들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우르비노 박사는 한시도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했다. “아주 특별한 종류의 콜레라임에 틀림없군. 시체들의 목덜미에 하나같이 확인 사살한 총구멍이 나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잠시 후 포말이 일렁이는 바다 위를 날았고, 아무런 사고 없이 뜨거운 해변에 착륙했다.
페르미나 다사는 아주 어렸을 때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그곳을 지나간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자 여러 번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는 그녀가 떠올리는 것은 잇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고집을 부리며 세상을 떠났다.
사흘 후 기구 탐험 대원들은 처음 출발했던 항구로 되돌아왔다. ~~~군중 속에 파묻혀 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페르미나 다사의 얼굴에 공포의 흔적이 잇음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바로 그날 오후 역시 남편이 후원하는 자전거 전시회에서 그녀를 다시 보았는데, 그때는 이미 피곤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진 뒤였다.
기나긴 세월동안, 그날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날들의 오후에도 그녀의 덧없는 모습들은 운명의 장난처럼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갑자기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면서 그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느 날 밤, 그는 식민지풍의 고급 식당인 돈 산초 호텔에 들어가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았다. 간단한 간식을 먹으러 혼자 갈 때면 습관적으로 항상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때 안쪽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서 페르미나 다사를 보았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부부 두 쌍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가 그녀의 찬란한 모습을 거울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각도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아하게 대화를 주도하고 잇었고, 폭죽을 터뜨리듯이 요란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눈물 모양의 거대한 상들리에 아래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숨을 죽인 채 그녀를 마음껏 바라보았다. 그녀가 먹는 모습, 포도주에 입만 대는 모습, 가문에서 대대로 운영해 온 돈 산초 호텔의 사 대째 주인과 농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외로운 식탁에서 그녀와 삶의 한순간을 살았다.
그날 이후 거의 일 년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호텔 주인을 끈질기게 공략하면서 돈이든 부탁이든, 아니면 그가 인생에서 가장 갈망한 것이든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 줄 테니 그 거울을 자신에게 팔라고 애원했다. ~~마침내 산초 씨가 그 거울을 주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자기 집의 거실에 걸어놓았다.
페르미나 다사를 볼 때면 거의 언제나 남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완벽하게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두 사람은 샴고양이처럼 놀랄 정도로 유연하게 자신들의 공간 속에서 움직였으나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인사를 할 때만은 그런 조화가 깨지곤 했다. 사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뜨거운 애정을 느끼면서 그와 악수를 했으며, 심지어 몇 번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기까지 했다. 반면에 그녀는 개인적인 감정이 없는 형식적인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고, 미혼시절부터 그를 알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가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반면, 그녀는 반대 방향이 아니라면 한 발짝도 내딛지 않았다.
그때 문득 그는 조선소에서 건조된 첫 담수선에 세례를 주는 행사가 떠올랐다. 그것은 또한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카리브 하천 회사의 수석 부회장으로서 작은 아버지 레온 12세를 대표한 첫 번째 공식 행사였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자기를 맞이하기 위해 정렬해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손을 내밀자 페르미나 다사는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군 사령관은 두 사람을 소개시킬 요량으로 페르미나 다사에게 서로 모르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하지 않고,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의례적인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p123
그런 생각을 하자 젊은 시절의 욕망이 타올랐다. 그는 오래 전에 복음 공원에서 느꼈던 그런 열망을 가지고 페르미나 다사의 저택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를 볼 것이라는 계산된 의도는 없었고, 단지 그녀를 보고 그녀가 세상에 아직 존재하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바람만 있었다.
그해가 끝날 때까지 페르미나 다사는 그 어떤 시민 행사나 사교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가 지난 6월의 한밤중에 파나마로 가는 큐나드 대서양 횡단선을 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데 ~~~검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더라는 이야기였다. ~~그토록 유명한 여자가 걸릴 수 있는 병이 폐결핵밖에 더 있겠소?
페르미나 다사는 플로렌스 데 마리아 마을에서 반 레구아 떨어져 있는 사촌 언니 일데브란다가 세상을 잊고 살아가는 농장에 건강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동의 아래 아무도 모르게 그곳으로 떠났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십 오년동안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해오다가 딱 한 번 심각한 위기를 겪자, 사춘기의 소녀처럼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실 당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노년의 경계선을 넘은 상태였다. 이미 쉰여섯 살 생일이 지났지만, 사랑의 세월이었기에 그는 아주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육 개월 후, 조합원들의 만장일치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이사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p191
앵무새를 잡으려 하다가 그만 망고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면서 여든 한 살의 나이로 척추가 부러져 죽었던 것이다. ~~~운전사에게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집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는 죽음의 모욕 속에 뒹굴면서 부부용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옆에는, 파티에 가기 위해 갓 결혼한 할머니처럼 옷을 입고 있던 페르미나 다사가 풀이 죽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 때문에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와 재산을 손에 넣었고, 그녀 때문에 건강을 유지했으며 ~~~한 시도 절망하지 않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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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미나 다사는 자기가 분노에 눈이 멀어 쓴 편지를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사랑의 편지로 이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종속된 생활을 하면서 양보해야 했던 모든 것을 되찾고 싶었다. 물론 남편은 그를 행복하게 해주었지만 그가 죽자 그녀는 누구인지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어두운 바다의 한가운데에 자기를 혼자 남겨둔 남편에 대해 마음속 깊이 느껴지는 증오심을 피할 수가 없었다.
열여덟 살 때 그를 거절한 이후, 그녀는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기는커녕 커져만 가는 증오의 씨앗을 그에게 남겨놓았다고 줄곧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답장이 오리라 기대하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정말로 편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고통은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통, 그 다음에는 두 통, 그리고 마침내는 매일 한 통씩 쓸 수 있게 되었다.
후베날 우리비노 박사가 세상을 떠난지 1주기가 되는 날, 우르비노 가족은 대성당에서 열릴 기념 미사에 초대한다는 초청장을 보냈다. 그때까지 132번째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한 통도 받지 못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초대받지 못하더라도 그 미사에 참석하겠다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중앙 통로의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서 창끝과 같은 두 눈은 생기 있어 보였다. 거만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로 똑바로 걷는 그녀의 모습은 아들보다 늙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본 것이다. 사실 페르미나 다사는 사교 모임에서처럼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서 아주 부드럽게 빠져나와 그에게 손을 내밀고는 정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녀는 편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주 관심 있게 읽었고,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진지한 동기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녀는 딸과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첫 편지를 받았다.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나 즉시 침착한 모습을 되찾고 그 편지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으면서 “정부에서 보낸 조문 편지야.”라고 둘러댔다.
침실 문을 걸어 잠근 뒤 숨도 쉬지 않고 세 번이나 읽었다. 그것은 인생과 사랑, 늙음과 죽음에 관한 명상이었다. 마치 밤새들처럼 수없이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그녀의 머리 위로 날아갔지만, 잡으려고 하면 깃털만 흩날리며 도망치던 생각들이 바로 거기에 정학하고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그때 하녀 중의 하나가 그녀의 낮잠을 깨우고는 놀란 듯이 귀엣말로 속삭였다. “마닌, 플로렌티노 씨가 오셨어요.” 그는 거기에 있었다. 페르미나의 첫 번째 반응은 당황 그 자체였다. 그녀는 안 된다고, 다음 말보다 적당한 시간에 다시 오라고, 지금은 방문을 받을 상황이 아니라고. 그리고 할 말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날 때부터 변비에 시달리던 그이지만,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사람들 앞에서 그의 배는 서너 번 정도 그를 배신했고, 그 서너 번 때 그는 손을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하듯이 열렬히 그 주문을 반복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스프링의 코일처럼 창자가 비비 꼬인 탓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수록 부글거리며 고통스러운 뱃속의 거품 때문에 그는 신음 소리를 냈고.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뒤덮였다. 커피를 가져오던 하녀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진 그의 안색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더워서 그래요.” 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하녀는 그를 편안하게 해줄 요량으로 창문을 열었지만, 오후의 햇빛이 그의 얼굴에 가득 내리쬐었기 때문에 다시 창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는 더 이상 일 분도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때 페르미나 다사가 나타났다. 어둠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플로렌티노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상의를 벗으세요.” 그는 죽을 것처럼 장이 꼬인 것보다 그녀가 자기 창자에서 나는 꾸르륵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그러나 그는 잠시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는, 아니라고, 단지 언제 자기가 찾아오면 좋겠느냐고 묻기 위해서 들른 것이라는 말만 간신히 할 수 있었다. 당황한 그녀는 선 채로 “지금 여기 계시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좀 더 서늘한 정원의 테라스로 가자고 권했지만 그는 사양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유감의 한숨 소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탁인데 내일 방문하게 해 주세요.”
운전사는 태연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대문 앞에서 차 문을 열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심하세요, 플로렌티노 씨. 콜레라 같아요.”
금요일 오후 5시 정각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하녀가 어두운 거실을 지나 정원의 테라스로 안내하자 바로 그곳에 페르미나 다사가 있었던 것이다. ~~서로가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보고 앉은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녀의 대답을 듣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아무 때나 오세요. 대부분 혼자 있거든요.”
나흘 후 화요일에 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하녀들이 차를 갖다 주기도 전에 그의 편지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얼마 전에 일흔두 살이 된 늙은인데.
어느날 밤 마치 이웃집에서 들려오듯이 힘차고 분명한 소리가 알지 못하던 방송에서 흘러 나왔는데, 거기서 그녀는 가슴 이에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십 년 전부터 해마다 밀월여행을 즐기던 노인 부부가 뱃사공의 노에 맞아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태우고 가던 뱃사공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돈 14달러를 빼앗기 위해 그런 짓을 저질렀다. ~~~경찰은 노에 맞아 죽은 노인들이 여자는 일흔 여덟살이고 남자는 여든 네 살인데, 사십 년 전부터 함께 휴가를 보내던 내연 관계의 연인이었지만 두 사람은 각자 안정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가족도 많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p278
우르비노 다사 박사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방문이 다시 시작되어 어머니가 기운을 차리게 되자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동생 오펠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우르비노 다사 박사가 고독한 두 노인의 건강한 애정으로 생각했던 것을 그녀는 비밀스러운 내연 관계라는 부도덕적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남녀 사이의 순수한 우정이란 다섯 살 때에도 불가능한데 심지어 팔십 대에 그런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 세기 전에는 우리가 너무 젊다는 이유로 그 불쌍한 남자와 날 괴롭히더니, 이제는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그러는군. 그러고는 피우던 담배꽁초로 다른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마음을 온통 갉아먹고 있던 독을 이렇게 내뱉었다. 빌어먹을. 모두 지옥이나 가라고 해. 우리 과부들이 좋은 게 있다면, 우리에게 명령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야.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복음 공원에서 감상에 젖은 시구를 읽던 오후와 등하교 길에 편지를 숨겨놓던 장소, 아몬드 나무 밑에서 자수를 배우던 시간을 계속해서 떠올릴 때면 더욱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사마리타노 선장은 매너티들에게 거의 어미니 같은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관례화 되어 있던, 배 위에서 매너티에게 사격을 하는 행위에 항상 반대했다. 한번은 신분이 확실한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어느 사냥꾼이 그의 명령을 어기고서 스프링필드 총으로 정확히 조준을 하고 사격하여 어느 어미 매너티의 머리를 박살냈었다. 그러자 그 매너티의 새끼는 축 늘어진 몸 위에서 슬픔을 참지 못한 채 미친 듯이 큰 소리로 울어댔다. 선장은 고아가 되어버린 그 매너티 새끼를 자기가 책임지고 돌보기 위해 배 위로 올라오게 했다. 그러고는 죽은 어머니 매너티의 시체 옆에 있던 황량한 모래톱에 그 사냥꾼을 버려두고 그곳을 떠났다. 미국 외무성의 항의로 인해 그는 육 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고 선장 자격증까지 박탈당할 뻔 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몸을 떨었다. 그녀가 말했던 대로 나이를 먹은 그녀에게서는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잠에 든 해먹의 미로 사이로 길을 헤치면서 자기의 선실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네 살 더 먹은 자기도 똑같은 냄새를 풍겼을 것이고, 그녀 역시 동일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그가 막 잠들려고 할 무렵인 새벽 5시경, 배의 사무장이 그를 깨웠다. 배는 삼브라노 항구에 있었다. 사무장은 그에게 급한 전보 한 통을 건네주었다. 그 전보는 카시에나가 전날 보낸 것으로, 그녀의 모든 두려움과 공포는 “아메리카 바쿠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어제 죽었음. 이라는 한 줄 속에 삽입되어 있었다. ▣
[Review]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몸을 떨었다. 그녀가 말했던 대로 나이를 먹은 그녀에게서는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잠에 든 해먹의 미로 사이로 길을 헤치면서 자기의 선실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네 살 더 먹은 자기도 똑같은 냄새를 풍겼을 것이고, 그녀 역시 동일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았다.”(본문)
입에서 시큼한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 작가 ‘마르케스’는 53 년간 서로의 사랑을 간직해 온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을 일순간에 혐오스럽게 했다. ‘페르미나 다사’의 딸은 어머니를 향해 노인의 사랑은 추잡한 짓이라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작 14달러를 뺏으려고 사십 년간 밀회를 지속해온 두 노인을 살해한 예화를 지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올리게 함으로써, ‘페르미나 다사’의 마음에 의미 없는 사랑이라는 죄책감을 남기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을 다시 얻었지만, 현실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들이 함께 탄 배에서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타고 온 배를 강으로 돌리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당황해하며 언제까지 이런 왕복을 계속할 것이냐고 묻는 선장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죽는 날까지" 그리고 소설을 끝난다.
철부지 어린 시절에 이루지 못한 사랑은 53년을 한순간도 잊지 못하고 기다리게 했으며 결국 결실을 얻는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주선으로 콜롬비아 남북을 횡단하는 ‘마그달레나 강’ 여행, 유람선에서 두 사람은 극적으로 반세기 만에 가장 가까이 얼굴을 마주 보고 입을 맞추었다. 그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빼앗긴 사랑을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와 재산을 손에 넣었고, 그녀 때문에 건강을 유지했으며, 한 시도 절망하지 않고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이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선박회사의 배에서 그녀를 최고의 귀빈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첫사랑이었던 ‘페르미나 다사’의 남편인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앵무새를 잡으려고 망고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여든한 살의 나이로 척추가 부러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 편지를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통, 그다음에는 두 통, 그리고 마침내는 매일 한 통씩 쓸 수 있게 되었고, 1주기가 되는 날에는 132통의 편자가 보내졌다. 그리고 결국 그날 대성당에서 열린 기념 미사에 초청장은 받지 못했지만 참석하겠다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고 재회하는 기회를 얻었다.
“중앙 통로의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서 창끝과 같은 두 눈은 생기 있어 보였다. 거만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로 똑바로 걷는 그녀의 모습은 아들보다 늙어 보이지 않았다.”(본문)
그는 멀리서 그녀를 지켜만 보았다. 그때 그녀가 그를 알아보고 사람들 숲을 부드럽게 빠져나와 그에게 손을 내밀고는 정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그 후 두 사람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그는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으며 “아무 때나 오세요. 대부분 혼자 있거든요.”라는 허락까지 얻어냈다. 그리고 일흔두 살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그녀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해 준다는 명목으로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우체국 전신 기사인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어느 날 전보를 전해주러 갔다가 창문 너머로 여학생 제복을 입은 ‘페르미나 다사’를 보게 된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열여섯 살이었다. 2년 동안 비밀리에 편지로만 사랑을 고백하던 두 사람은 어느 날 그녀가 학교 수업 시간에 공책에 쓰던 편지가 발각되는 바람에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무지막지한 그녀의 아버지로 인해 깨져버렸다. 그 후 그녀는 영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의사와 결혼을 하고,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실의를 달래기 위해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는 카리브해 선박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며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동안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방탕한 삶에 빠지지만, 첫사랑의 꿈을 버리지 않고, 언젠가 자신의 신분이 상승하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 ‘페르미나 다사’는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이었지만 가정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첫사랑의 그리움은 현실에 가리어지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며, 그때마다 현실에서 새로운 출발을 반복한다. 그녀의 이런 태도는 첫사랑의 시작부터 이별,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과 심지어 자녀를 출산했을 때에도 같았다.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 속에서 명성 높은 가문의 품위를 지키며 남편의 배우자로 그를 보필하는 모든 것들이 자의적 선택이 아닌 의무감이었다. 여인은 모든 것이 풍족했지만 늘 공허한 구석이 남아 있어서 가끔 밀폐된 창문을 열고 젊은 날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고독하게 그녀를 기다리던 공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폭풍이 몰려온다는 생각에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곳을 떠나 남편과 함께 먼 여행에서의 오랜 시간은 작은 위안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임신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로부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글은 반듯하고 어지럽지 않다. 잘생긴 나무와 같다. 수많은 가지가 얽혀 있어도 무질서하지 않고 가지마다 개성이 있어서 아름답다. 계절마다 잎의 모양 색깔이 바뀌지만, 전체로서의 나무는 있는 그대로 더 멋을 더하게 된다.
스페인 지배에서 벗어난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나라는 정치적 혼란기를 거친다. 이 소설은 그런 시기였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가난과 무질서 속에서 콜레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사랑을 나누며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책은 1, 2부로 나뉘어 오백 페이지가 넘는 대하소설로 한 사람의 일생 오십 삼 년의 파란만장한 궤적을 따라간다. 글이 쉽고 소설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인 1985년에 썼으며, 많은 독자의 호평을 받아서 그의 수상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이 흥미 위주만을 목적으로 하는 연애소설과는 다르다는 평을 받는 이유는 그의 뛰어난 현실묘사뿐 아니라, 책 속에 담겨 있는 깊은 인생의 탐구에 있다. 처음 소설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후베날 우르비노’박사의 오랜 친구이자 체스를 함께 두는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목발을 짚은 몸이 부자연스러웠는데 책 속에서 성불구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사진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하러 오는 뮬레타(흑인과 백인 혼혈)여인이 있었는데, 오래전에 행려 병원에서 서로 만난 사이였으며, 실질적으로는 부부관계로 그려진다.
‘생타무르’는 평소에 “나는 절대로 노인이 되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해왔는데 그의 말대로 예순 살이 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뮬레타 여인과 함께 체스를 두며 평소에 그답지 않게 네 수만 더 두면 게임이 지도록 하였고, 스스로 일찍 패배를 인정해버렸다. 남아 있는 삶이 있더라도 그것에 연연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죽기 전에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 앞으로 유서를 남겼다. 그러나 ‘마르케스’는 소설에서 그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 다만 노년의 삶에 대한 회의와 인생의 무상함을 담긴 내용일 것이라는 것만 암시하면서 그 이야기를 마친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그의 아내와 함께 훌륭한 가문과 명성을 누리고 살았지만, 부부의 생활은 늘 인생의 고답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누림보다는 사회적 봉사에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는 부친이 의사였으며 콜레라를 치료하다가 콜레라에 걸려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도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구제에 필요한 돈을 모금하기 위해서는 구차한 발걸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마도 저자는 당시 새로운 개혁의 혼란한 사회 풍조에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성찰을 통하여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다. ‘후베날 우리비노’ 박사가 죽은 후,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페르미나 다사의 아들은 실의에 빠진 어머니를 위로해 주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호의에 감사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부두에 나갔다가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알고 몹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딸 ‘오펠리아’는 처음부터 두 사람 사이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는 “우리 나이에 사랑이란 우스꽝스러운 것이지만, 그들 나이에 사랑이란 더러운 것이에요”라고 소리 질렀다. 페르미나 다사는 그렇게 대드는 딸을 집에서 내어 쫓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딸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극적인 만남을 이루었지만, 자신들이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는 것과 명성 있는 가문의 미망인으로서 도덕적 책임이라는 또 다른 중압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녀는 배가 돌아오는 길에 뭇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본다는 불안감에 두려워하며, 찜통 같은 선실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결국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권한으로 콜레라 환자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하고 뱃머리에 콜레라 환자가 있음을 알리는 노란 깃발을 달고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구에 가까워지자 항구 순찰대의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거짓말이 들통 날까 봐 두려워한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은 다시 얻었으나 다시 자신들이 사는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그동안 험난한 삶에 지쳐 일시적으로 농락했던 많은 여인에 대한 빚이 남아 있었고, ‘페르미나 다사‘에게는 그동안 자신이 누려온, 지켜야 하는 가문의 명성이 남아 있었다. 결국,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선장에게 뱃머리를 돌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라는 지시를 한다. 어리둥절한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가?”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본문)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중남미 문학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에서 출생하였으며 2014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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