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50분에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 출근 준비.
7시 30분 집에서 출발. 8시 20분까지 출근.
저녁 7시 퇴근.
매일 쳇바퀴 도는 생활이다. 내가 사는 이곳을 잠시 탈출하여 일상적이지 않은 일과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싶단 생각이 들 때 즈음 대산농촌재단으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우리 가족은 두 식구밖에 안 되어서 아들 친구네와 함께 경남 산청 얼레지 피는 마을로 향했다.
얼레지 피는 마을에 도착하여 1박 2일간 함께 생활할 가족들과 인사하고 마을대표님 똥샘과 이준 사무장님의 설명을 듣고 첫 번째 체험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이름도 참 희한하다.
“똥네 한 바퀴!”
아무래도 ‘동네 한 바퀴’를 잘 못 적은 것 같다.
물어보니 ‘똥네 한 바퀴’가 맞단다.
지도를 보며 동네를 돌면서 각 지점마다 적혀 있는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마치 규모가 작은 오리엔티어링을 하는 것 같다. 지도를 이렇게 돌렸다가 저렇게 돌렸다가 하며 미션이 적힌 지점을 찾아가는 재미, 미션을 해내는 재미, 가족끼리 협동하는 재미, 내가 이렇게 재미난데 아이들한테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나는 게임이었다.
미션을 수행하면서 아하~~ 왜 ‘똥네 한 바퀴’인지 알겠다. 왜 ‘똥’과 관련된 낱말이 많은지 알겠다.
이 곳 얼레지 피는 마을에서는 생태화장실을 사용하는 집이 많다. 나도 아들도 이번에 생태화장실을 처음 사용해봤다. 이런 생태화장실의 변기에 앉는 것이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생태화장실이란 것이 산이나 축제장 같은 곳에 가면 가끔 볼 수 있는 물이 적게 드는 간이화장실 정도로 생각했었다. 분변을 내릴 때 물이 적게 드니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함 정도...
하지만 생태화장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우선 소변과 대변을 따로 모아야 한다. 이것들이 물과 섞이면 악취가 진동하게 된다.
변기에 앉으면 대변과 소변이 따로 모이게끔 해 놓았다. 여기에다 왕겨, 톱밥, 부엽토 등 삭힐 수 있는 재료들을 넣는다. 그러면 미생물과 질소, 탄소 등의 발효작용으로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농작물에는 아주 좋은 영양분이 된다.
똥네 한 바퀴를 하던 중에 ‘똥장군’을 찾아내는 미션이 있었다. 그 때 아들도 나도 ‘똥장군’이 무엇인지 알았다. 비료가 부족했던 옛날, 똥을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 똥을 옮기던 기구이다.
‘똥장군’으로 삼행시를 지었다.
똥. 똥네 한 바퀴 미션!
장. 장장 16코스나 되네요.
군. 군대 다녀오는 것보다 더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다음에 또 꼭 오고말거야.
‘똥네 한 바퀴’ 후 근처 계곡으로 가서 신나게 놀았다. 산청은 예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며칠 전 비가 와서 그런지 물의 유량이 풍부하고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 속에 신발 벗고 바지 걷고서 들어갔다. 차가웠지만 다슬기 잡는 재미에 푹 빠져서 다리가 시퍼렇게 되는 줄도 몰랐다.
“아들아, 다슬기 실컷 잡았제? 이제 다시 놓아주자.”
“엥? 이렇게나 많이 잡았는데 놓아주자고?”
“그 귀엽고 예쁜 다슬기들이 니 뱃속으로 들어가는면 좀 슬프지 않을까?”
아이들은 맑은 계곡물에 다시 생명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다슬기들을 곱게 놓아주었다.
여기 산청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은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것 한 가지 더! 산청에 천문대가 있다는 사실!
밤에 꼬불꼬불 한참을 올라가서 산청 둔철산천문대에 도착했다. 오늘의 이 프로그램을 위해 천문 동아리 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이 멀리서 오셨다. 그리고 레이져빔으로 밤하늘 여기저기를 쏘아 별을 가리키시며 설명을 해 주셨다. 신비한 천체의 비밀을 하나하나씩 알아가는 기쁨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드디어 토성을 보았다. 고리가 선명하게 있는 토성을... 가슴이 벅차올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진 찍어 주시는 선생님이 입 좀 다물라고 하셔서 내 입이 벌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날 보았던 토성은 내 머릿속에서 평생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옛 어른들이 별을 보며 빌었듯이 나도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이 별, 저 별을 보니 저절도 마음이 숙연해지며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천체의 커다란 힘에 이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가족 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모두 그 날 밤은 천체와 우주와 별을 생각하며 뭔지 모를 뿌듯함을 안고 천문대를 내려오는 것 같았다.
유정란 농장 대표님이 농촌체험 온 가족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셨다. 우리는 그 강의를 듣고 나서 닭들이 있는 농장으로 다함께 가 보았다.
TV에서 봤던 닭의 생활 모습. 케이지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움직일 공간도 없이 모이를 쪼다가 알만 낳는 기계가 되어버린 닭들을 상상했다.
그런데~~ 우리가 본 유정란 농장 안의 닭들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다. 울타리 안과 밖에서 마음껏 다니며 모래목욕과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를 해서 유정란을 낳고 있단다. 수컷 한 마리가 암컷 15마리 정도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완전 일부다처제...
“농장 대표님, 수컷과 암컷은 겉모습으로 어떻게 구분해요?”
“농장 대표님, 살충제나 항생제 쓰나요?”
“농장 대표님, 올해 여름처럼 폭염 때 농장의 닭들이 폐사하는 걸 봤는데, 이 간디농장의 닭들은 어떻게 견뎠나요? 선풍기를 돌렸나요?”
“농장 대표님, 한 달 순수입이 어떻게 되나요?”
유정란 농장 대표님을 향한 아이들과 어른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모든 질문에 허허 웃으며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해주시는 농장 대표님의 얼굴에서 여유와 자신만만을 읽을 수 있었다.
아들은 고사리 손을 넣어서 알들을 꺼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유정란아, 고마워. 너희들이 희생해서 내가 맛있고 건강한 계란을 먹을 수 있게 되었어. 정말 고마워.”
체험장 바로 옆에 간디학교(고등학교)가 있어서 간디학교에도 가 보았다. 즉시 스마트폰으로 검색도 해보고, 체험마을 대표님과 대화도 하면서 간디학교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학생 자치 동아리가 매우 활발하다고 한다. 노작활동도 열심히 하고, 먼 곳에서 수준 높은 강사님들이 강의를 하러 오신다고 한다.
대안학교라 하면 일반학교 부적응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얄팍하게 알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1박 2일 간의 짧은 체험,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 곳 산청에서 많은 것을 알고 배우게 되었다. 주인이 직접 지었다는 황토집에서 천창이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을 보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밤, 아침엔 머얼리 산자락에 걸친 구름을 보며 아침식사와 차를 마시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곳, 동네를 걷다보면 밤이 가시를 뒤집어 쓴 채로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어 그 자리에서 까서 먹었던 그 맛, 네 끼의 식사를 너무 맛나게 지어주셨던 마을 할머님들의 손맛과 인심...
어느 것 하나 섭섭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꽉 꽉 차고 넘치도록 느끼고 즐긴 1박 2일이었다.
농촌에서 체험을 하고 나면 마음의 여유와 푸근함과 추억을 한 아름 담아서 도시로 돌아온다. 각박한 도시에서 그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다. 아들에게도 얘기한다.
“아들아, 농촌은 없어져서는 안 될 우리나라를 떠 받쳐주는 곳이란다.”
매일 비슷한 일상으로 살다가 어쩌다 가끔 겪는 한 번의 일상 탈출이 우리 삶을 풍요롭고 재미나고 웃음 짓게 만든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가 내 속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