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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의 싸움
이사야 59:15하~21
오늘 우리가 읽는 본문 말씀은 지난 주에 살펴본 15절 하반절과 16절 상반절에 이어진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타락한 모습을 살펴보시고 그들에게 있어야 할 정의와 공법이 없음과 불의와 거짓과 배교가 가득함을 보시고 진노하시고 책벌하시지만, 그런 중에 그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줄 중보자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그들을 죄악에서 건져내줄 인물, 믿음의 장부가 있는가 찾아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 가운데 간절히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가운데 가로막고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려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주고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기를 청하는 중재자가 있는가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꼼짝없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고 처참하게 멸망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심과 더불어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멸망치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멸망에서 구원을 받기를 누구보다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하여 구원하시는 일을 직접 나서신다고 16절 하반절에서 말씀하십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그렇습니다. 그의 백성의 편에서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어떤 인물도 나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설 중재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그들을 구할 자로 나서십니까? 하나님 자신이 친히 나서십니다.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신다고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사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모두 범죄함으로 인하여 무능력해졌고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람 중에서 누가 저주를 이길 수 있으며 사망을 이길 수 있으며 마귀와 그 하수인인 귀신들을 이길 자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이 친히 나서서 그의 무한하신 능력으로 모든 죄의 세력을 무찌르고 저주를 막으시고 사망의 권세를 철폐하시고 마귀와 귀신들의 결박에서 그 백성을 권능으로 지켜주시어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그들을 보호해주시고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공의와 달리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아무런 흠이 없이 순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들인 인간들과 달리 그 누구도 인간의 구원자로 나서신 하나님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공격할 수 없습니다. 마귀도 귀신도 그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려고 해도 절대 공격할 수 없는 것은 그는 죄가 없는 완전 무결한 의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능력이 무궁하시고 완전 무결한 의 자체가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 백성을 의롭게 하실진대 누가 감히 그의 백성들을 망칠 수 있겠고 누가 감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거늘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으며, 우리를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만유의 대주재자이신 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실진대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 무서운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에서 우리를 그의 강한 팔로 붙잡아주셨으며 그의 완전한 의로 우리를 변호하시고 지켜주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의 구원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점에서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강한 힘과 누구도 감히 트집잡을 수 없는 완전한 의로움으로 우리를 건지셨으니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인하여 그에게만 온전한 찬양과 감사를 돌려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우리 인간 편의 어떠한 공로와 수고에 대한 찬사를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기준으로 볼 때에 우리가 나름대로 좀 의롭고 나름대로 좀 잘 낫고 나름대로 좀 수고한 것이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기에는 무가치한 것이요 무능력한 것이요 너무 더럽고 오염된 의로움에 불과함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의 것들을 절대로 자랑하거나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오직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 한분 뿐이며 그가 보내신 바 구원자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10 말씀의 고백은 그 사실을 절감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입니다. 인생 중에는 의로운 자가 아무도 없고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구원할 자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가 친히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시고 친히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그의 능력으로 그의 의로서 우리를 깊은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마귀의 강한 손에서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찬양하며 감사하며 의지하며 자랑하는 자가 됩시다. 할렐루야.
이제 이어지는 17절에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군인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함께 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며”
여기서 선지자는 하나님을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중무장을 하고 싸우시는 용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움을 그의 갑옷으로, 구원을 그의 투구로, 복수를 속옷으로, 거룩한 질투심인 열심을 겉옷으로 삼아 무장합니다. 이 구절을 본받아서 사도 바울도 주의 백성들의 영적 무장을 갖추도록 권면하는 에베소서 6장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여기서 보면 주의 군사 된 성도들이 입어야 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진리의 허리띠, 의로움의 가슴판인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경의 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영적 전투 중에 힘차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사기의 원동력인 성령의 기도, 이 7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무장해야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노라고 사도 바울이 가르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주의 백성된 우리가 철저하게 신앙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입고 영적 싸움을 싸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역시 거대한 영적 싸움을 친히 싸우실 때 완전 무장을 하고 싸우셔서 적들을 물리치시고 제압하신 것입니다. 죄, 저주, 사망, 영벌 지옥, 그리고 악한 영들의 공격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나님 자신이 철저히 무장하셨으니, 공의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투구를 쓰셨으며, 보복의 속옷을 입고 열심 곧 거룩한 질투의 겉옷을 입고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고 승리하사 우리를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친히 나서서 우리를 구원하러 싸윌 때에 주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주의 백성들을 괴롭힌 자들을 향하여 무서운 보복을 감행하십니다. 이것이 18절과 19절에 나옵니다.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하나님께서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고 열심을 겉옷으로 삼고 전쟁에 임하십니다. ‘열심’은 히브리어로 ‘킨네’라는 단어인데 이는 ‘질투심’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보복하시며, 하나님 백성에 대한 질투하는 사랑을 가지고 그 동안 주의 백성을 괴롭힌 자들을 이제 거룩한 질투심으로 심판적 재앙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하나님께 대적하며 그 이름을 모욕하며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와 성도들 괴롭게 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그 동안 자기 백성의 부족함과 허물과 배역함 때문에 그들을 몽둥이로 쓰셨지만 이제 그들이 행한 분에 넘치는 악행과 하나님에 대한 모욕과 주의 백성들을 능욕하며 괴롭게 한 그대로 몇 배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보복을 바로 앗수르 제국이 당하여 순식간에 멸망당했으며, 바벨론 역시 그러한 보복을 철저히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며 신자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유명한 계몽 철학자 볼테르는 죽음의 고통을 겪을 때 자기를 일년만 더 수명 연장해주면 자기 재산 절반을 주겠다고 애원했으나 죽었으며 평소 성경은 1세기가 지나지 않아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의 집은 그가 죽은 뒤에 성경 보관소로 사용되고 말았습니다. 니체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토록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불신앙을 부추기더니 결국 미치광이가 되어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문들 역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들고 사도들을 죽이려 들었던 헤롯 대왕의 가문은 많은 자식들과 후손들이 생겨 일세기에 수십, 수백 명이 되었지만 그 일세기가 채 못 되어 거의 그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저 북한의 김일성 가문도 머잖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백성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질투하시는 열심이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이렇듯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위하시며 그 대적들을 심판하시는 열성이 가득하므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이러한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온 세상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위하시어 베푸시는 구원의 열심이 강력함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심판만 하는 것으로 끝내지 아니하시고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에도 큰 역사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 곧 남은 자 죄과를 떠난 자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바사의 창시자 고레스를 사용하여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유다 백성들을 해방해주고 고토로 돌아가 성전을 세우도록 조서를 내리게 하사 그들로 다시 돌아와 성전에서 예배하며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 돌아온 백성들이 에스라 학사와 선지자 학개, 스가랴, 말라기와 함께 하사 하나님 백성다움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으로 죄과를 떠나게 되는 일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일은 성령이 임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일에 대하여 2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새 언약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장차 메시야가 도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새로워진 하나님 백성 공동체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상적 공동체입니다. 그 이상적 공동체는 죄과에서 떠나 거룩한 하나님 백성다움 곧 공의와 공법을 실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두 가지 은혜는 하나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입에 지속적으로 떠나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이 약속은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도 예언된 새 언약 시대에 일어날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고, 그것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과 그가 보내신 성령의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탄생하게 된 신약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완전한 실현은 주님의 재림으로 인하여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때까지 우리는 이 말씀처럼, 주님의 보내신 성령을 늘 의지하며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입술에서 떠나지 아니하게 하는 이 일을 힘씁시다. 2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었고 그 입에서 입으로 후손의 입으로 떠나지 아니한다는 말씀이 강조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입술로 하나님 말씀을 늘 읽고 그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에 힘을 씁시다. 그리고 교회에 모여 함께 주의 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하며 주의 종의 입술을 통하여 증거하는 말씀들을 늘 귀히 여기고 또 전파하는 일에 힘을 다합시다. 그리할 때 때가 되면 주님이 오시는 재림의 그 날에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성령 안에서 그 말씀을 영원히 노래하고 찬양하는 새 백성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친히 다 이루셨음을 기억합시다. 그의 공의와 그의 의로움으로, 그의 완전한 무장한 가운데 친히 우리를 위하여 싸우심으로써 우리의 원수들 곧 죄와 저주, 사망, 지옥, 마귀, 이 세상의 모든 의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영원히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립시다. 그의 구원의 영원한 표상인 십자가를 자랑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