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이니까 모두 361개의 교차점이 만들어지지요. 체스는 가로 세로 8줄, 그러니까 모두 64개의 교차점이 만들어집니다. 당연히 바둑이 체스보다 훨씬 복잡하고 재미있다는 것이지요. 1996년에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는 ‘딥 블루(Deep Blue)’라는 이름을 가진 컴퓨터와 시합을 벌였으나 결국 패배했습니다. 그 후로도 인간 체스 챔피언은 연거푸 컴퓨터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둑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바둑이 더 복잡하고, 논리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적인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라운씨는 논리학 교수답게 바둑과 체스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글을 시라큐스 대학신문에 기고하였는데, 그 글을 내가 우연히 읽어 보았습니다. 그 분의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첫째 바둑은 시간이 갈수록 판이 채워지는데, 체스는 시간이 갈수록 판이 비워진다. 알다시피 체스는 상대방 말을 하나씩 잡으면 판에서 내려 놓는다. 물론 바둑에서도 무리진 돌들을 포위하여 잡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바둑판에는 돌이 많아지고 공간이 적어진다. 둘째로, 바둑에서는 죽은 돌도 나중에는 상대방 집을 메우는 역할을 하지만 체스에서 죽은 말은 임무가 끝나고 만다. 셋째로, 바둑은 돌을 배치하여 진지를 구축하는 게임이고 체스는 말을 전략적으로 이동시키는 게임이다. 우리말로는 뜻이 모호한데, 영어로는 game of positioning과 game of strategy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바둑은 농경민족처럼 정착하는 게임이고 체스는 유목민족처럼 이동하는 게임이다. 넷째로 바둑에서는 하수와 고수가 실력 차이를 감안하여 접바둑을 두기 때문에 하수가 고수를 이길 수도 있지만, 체스에서는 장기처럼 말을 떼고 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고수가 이기는 게임이다.
(체스에서는 말을 한 두 개 빼면 전략을 짜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개는 그냥 맞둔다고 한다. 그러니까 항상 고수가 이기게 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최근에 체스에서는 시간제한이라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단다. 고수에게는 적은 시간을 하수에게는 많은 시간을 주어서 하수에게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한다.)
체스의 규칙은 바둑에 비하여 단순하기 때문에 1990년 대에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이 나와서 사람을 쉽게 이겼습니다. 물론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도 나왔지만 아직도 10급 수준(1998년 당시)을 넘지 못하고 있답니다. 바둑은 매번 착점 후에 가능한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일이 다 계산하기가 어렵고, 또 일부러 엉뚱한 수를 두면 컴퓨터 프로그램이 당황하여 대응을 못한다고 합니다. 미래에 언젠가 바둑 9단을 능가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될지는 몰라도 당분간 사람의 직관적인 능력이 컴퓨터의 논리적인 능력을 이길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은 아마4단 정도의 실력까지 향상되었다고 한다. 2013년 3월, 일본에서는 컴퓨터와 사람의 공식 기전인 ‘전성전(電聖戦)’이 열렸다. 전성전에서 프랑스의 전산학과 교수인 쿨롬이 만든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크레이지 스톤(Crazy Stone)은 4점을 깔고서 일본 챔피언을 5차례나 지냈던 이시다 요시오 9단을 이겼다. 그러나 구글 연구센터 소장이자 인공지능의 전문가인 피터 노르빅은 구글이나 IBM이 수백명의 인력을 쏟아 붇는다 하더라도 컴퓨터가 맞바둑에서 인간을 이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바둑의 모호성 때문이라고 한다. 바둑돌 하나 하나의 가치는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한다. 두터움과 실리의 가치 또한 수시로 달라진다. 이러한 바둑돌의 모호성을 컴퓨터는 정확히 구별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감각과 경험으로 돌 하나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비교 판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포석과 중반전술에서 인간은 컴퓨터를 앞서고 있다. 그러나 정석과 끝내기에서는 컴퓨터가 인간 두뇌를 이긴다고 한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더욱 발달하여 컴퓨터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분간은 인간의 직관력이 컴퓨터의 분석력을 이길 것이라고 본다.)
바둑 이야기를 하다가 언뜻 고개를 들어 보니 미스K가 카운터에 서 있다. 미스K를 먼저 발견한 K교수가 눈으로 미소를 던지자 미스K는 그 미소를 받아 거울처럼 반사시킨다. 조금 후에 미스K가 교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 왔다.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어요?”
“아이고, 하마터면 미녀를 보지도 못하고 갈 뻔했네요.” K교수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달려왔잖아요.”
“누구를 보려고요?” ㅍ교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세 분 교수님들을 다 보려고요.” 미스K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닌 것 같은 데요. 사장님은 K교수만 바라보고 있는데요.” ㅎ교수가 이의를 제기했다.
“어떻게 아셨죠?” 미스K가 부정하지 않고서 물었다.
“남녀 간의 좋아하는 감정은 숨길 수가 없지요.” ㅎ교수가 노골적으로 발언했다.
“그게 아닌데 ... ” K교수는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인을 했다.
“아니, K교수가 얼굴 빨개졌네.” ㅍ교수가 놀렸다.
“그럴 리가 있나!” K교수가 서둘러 변명을 했다.
그러다가 다른 손님이 들어오자 미스K는 주문을 받으러 가고, 조금 후에 강의시간에 늦지 않기 위하여 일행은 일어섰다. 세 사람이 일어서는 것을 본 미스K는 경쾌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대접이 소홀했습니다. 다음에 꼭 오세요.” 미스K는 아쉬운 듯 문 밖에까지 나와서 일행을 배웅했다.
필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