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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밖 강연 시리즈] 오늘을 성찰하는 고전 읽기: 한국 현대문화 / 김소월<진달래꽃> / 정지용 <시 전집> 유종호 교수는 “20세기 전반기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라 할 김소월과 정지용의 작품을 다루면서 우선 김소월에 대해 “구비적 전통에 대한 청각적 충실에서 음률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비록 그가 “인간 삶의 본원적인 슬픔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보여 주진 않았으나 보편적인 슬픔의 표출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감의 위로를 안겨주었다”라고 평가한다. 한편 정지용에 대해서는 “우리 시가 우리말로 빚어진다”는 사실이 그에 이르러서야 직관적 통찰이 아닌 비로소 “방법적 자각과 시범적 실천”으로 이루어졌다고 인정한다. 그와 같은 정지용의 성취가 이후 많은 추종자를 통해 오히려 “일반화되고 주류화됨으로써 마침내는 관례화되어 범상해진 것”이 역설이라면 역설일 수도 있다고 짚는다.
열린연단 강연 (고전 50강) –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 강의록 전문 보기 (3) 강연자 소개
(전회에서 계속)
고향 상실 시대의 민족 시인 자칭 시 애호가들은 흔히 현대 시가 어렵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현대 시는 대체로 20세기 후반에 활약한 시인들의 작품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들은 20세기 전반의 시는 제대로 수용하는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김소월을 난해한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도 제대로 이해하는 독자들은 많지 않다. 빼어난 4행시이지만 별로 거론되는 바 없는 작품이 있다. 밤마다 밤마다 이 작품의 밑그림이 되는 것은 “하룻밤을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라는 속담이다. 잠깐 만나 헤어질 사람이라도 정은 깊게 맺는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시인은 창조적 변형을 가해서 이 생각 저 생각, 이것저것 상상하고 걱정하며 잠 못 이룬다는 뜻을 일구어 내었다. 실제로 밤에 잠 못 이루고 이 생각 저 궁리 하는 것을 “밤새 기와집 짓느라고 잠 못 잤다” 혹은 “밤새 벽돌 쌓느라고 뜬눈으로 새웠다”라고 말한다. 불면의 밤이 절묘하게 시각화된 이 작품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미를 알고 나면 기막히게 아름다운 시이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문과 대학생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이 소품이 보여 주는 4행시의 매력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팔베개노래」다. 지극한 정한의 노래다. 집뒷산 솔밭에 어느 뉘집 가문에 두루두루 살펴도
정지용: 시는 언어로 빚는다 넒은 벌 동쪽 끝으로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최근 연변 교포 화가의 그림에서 하얀 얼룩이 보이는 황소를 보고 잃어버린 황소를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설피”는 ‘해가 설핏할 무렵에’라는 뜻으로 부사적으로 씌었다. 그러한 용례는 지용의 다른 작품에서도 보인다. 「태극선太極扇」에는 “나도 일즉이, 점두룩 흐르는 강가에 이 아이를/ 뜻도 아니한 시름에 겨워/ 풀피리만 찢은 일 있다”란 대목이 보인다. ‘점두룩’은 해가 질 때까지 강가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해설피’와 ‘점두룩’의 부사 쓰임새에는 공통점이 있고 이 시인의 창의적 용법이라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은 발표 당시에는 놀라운 공감각 표현이었을 것이다. 단 넉 줄로 고향 마을의 정경을 인상적으로 떠올리는 서경의 솜씨는 놀랄 만하다. 완전히 새로운 수법이요 솜씨다. 실개천과 황소는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의 정경이다. 제4연은 한 시절의 아내와 누이 상을 보여 준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는 과중한 노동 시간으로 시달렸던 농촌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를 두고 아무리 가난한 집안의 아내라도 신발도 신지 않고 사는 여성이 어디 있느냐는 투의 반론이 있다. 그건 사실이다. 문전걸식하는 사람이 많았던 시절 거지도 겨울에 신발 없이 다니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의 “발벗은 안해”는 양말이나 버선을 신지 않았다는 뜻이다. ‘맨발로 다닌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라는 직유는 휘황하기가 대낮과 같은 도시의 밤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작위적이고 과장된 것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렇지만 전기가 들어오기 이전의 흐릿한 호롱불 불빛이나 어둠이라는 맥락을 고려할 때 그 시각적 선명성은 감탄에 값하는 것이다. ‘귀밑머리’를 ‘귀 밑에 난 머리’ 정도로 이해하고 의아해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 귀밑머리란 앞쪽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땋은 뒤 귀 뒤로 넘겨 치렁치렁한 머리를 말한다. 찬물에 씿기어 대웅성좌大熊星座가 이렇게 별의 위치가 바뀌기 때문에 “발을 옮기고”라 했고 모래성은 아무래도 금모래를 흘리는 은하와 연관된다는 것이 필자의 추정이다. (이러한 추정에 이르기 전 필자는 별똥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한 적이 있다.) 그다음 대목에 모호한 구석은 없다. “서리 까마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여 그 연원을 이백의 「상오霜烏」에서 찾는 고심 어린 의견도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서리 묻은 까마귀 즉 서리철의 까마귀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리말에 서리병아리란 말이 있다. 서리 내리는 철에 부화된 병아리를 말한다. 아주 많이 쓰이는 말이었다. 이 서리병아리를 서리까마귀로 창조적으로 변용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냥 까마귀라 하지 않고 “서리 까마귀”라 함으로써 작품의 유장(悠長)한 가락에 기여하고 그것은 자연히 긴 가을밤이나 겨울밤을 함축하면서 가족이 불빛에 돌아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전부 5연 26행으로 되어 있는 「향수」는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란 환정적(喚情的) 후렴의 되풀이가 특징인데 그 구도가 복잡하면서도 정연하다. 제1연에서 고향 마을의 정경을 떠올린 후, 질화로가 있는 방에서 짚 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 아버지, 어린 시절의 놀이, 가난한 집 지어미와 딸이 이삭 줍는 모습을 떠올린 후 긴 가을밤 가족의 단란이 정연하게 그려진다. 26행의 시편은 우리 20세기 시로선 긴 시편인데 소품에서 멀어질수록 밀도가 낮아지면서 소루해지는 일반적 경향에서 벗어나 있다. 이 시편은 “전설”을 빼고는 모두 토박이말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 자신이 의도적으로 “흙에서 자란” 토박이말만을 골라 쓴 것으로서 토착어의 배타적 조직이 그 특징이다. 1920년대 일제 한자어를 마구잡이로 빌려 쓰던 시절에 이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의 모든 시가 이렇게 토착어의 배타적 조직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고 그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주류 사회에서 소홀히 되고 배제된 토박이말을 찾아내어 그것을 시어로서 조직하는 일을 선도했을 뿐 아니라 그 시적 유효성을 보여 주면서 결과적으로 부족 방언의 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가 언어로 빚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 시가 우리말로 빚어진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통찰하고 방법적으로 자각한 시인은 많지 않았다. 소월 시에서는 직관적 통찰이 보이지만 방법적 자각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정지용에 와서 방법적 자각과 시범적 실천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한국 현대 시의 아버지다. 시사적으로 볼 때 정지용 이전과 이후에 한국 시의 언어는 크게 변한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윤동주, 김춘수의 시어는 지용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생각된다. 한편 서정주, 유치환, 백석의 경우에는 역주행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초기 유치환의 한자어 숭상은 거의 의도적인 역주행이라 할 수 있다. 초기 백석은 그 나름의 토착어 축구가 방언주의로 귀착되었고 그것은 낯설게하기 효과를 내었다. 서정주도 초기엔 강렬성의 추구에서 토박이말과 한자어를 활용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토착어에 경도해서 가장 푸지고 능란한 토착어 구사자로 자신을 정립하였다. 오늘날 지용 시는 상당히 평범해진 느낌이 없지 않다. 그것은 그의 시어 조직이 많은 추종자를 통해서 일반화되고 주류화됨으로써 마침내는 관례화되어 범상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대한 영향력이 도리어 당사자의 시를 범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정지용의 「향수」가 모작이라는 얘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떠돈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벌써 1980년대에도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서 인터넷 공간에서 거세게 유포 확산되었다. 그 요지는 미국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Trumbull Stickney)의 「추억(Mnemosyne)」을 모방해서 짜깁기했다는 것이다. 스티크니의 이 작품은 1950년대에 나온 『미국의 현대 시』(루이스 보건 지음, 김용권 옮김)에 전문이 소개되어 있다. 트럼블 스티크니는 미국의 고전학자로 요절하였고 1905년에 친구들의 노력으로 그 유고가 묶여 『시집』으로 간행되었다. 「추억」이 처음으로 사화집에 실려 얼마쯤 알려지게 된 것은 1929년 ‘모던 라이브러리’판으로 나온 콘래드 에이킨의 『미국 시 선집(A Comprehesive Anthology of American Poetry)』을 통해서였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널리 교과서로 쓰인 『노튼 미국문학사화집』에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뒤늦게 2004년에 나온 해럴드 블룸의 『영어 최고 시편(The Best Poems of the English Language)』에 수록되어 있다. 엘리엇을 경원하고 낭만주의 시인을 재평가한 블룸의 개인 취향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시집은 처음 고가의 하드커버로 나오다가 시장의 수요가 있으면 나중에 값싼 페이퍼백으로 나온다. 일본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무명 시인의 시집을 비치했을 리 없다. 또 일정한 성가를 지닌 시인을 번역하지 무명 시인의 시를 번역하는 만용을 가진 번역가는 없다. 휘트먼이나 예이츠 같은 유명 시인이 산발적으로 1920년대에 번역되었다. 일찍이 일본에서 논의된 가령 윌리엄 블레이크만 하더라도 『순수의 노래』가 번역되어 나온 것은 1932년이고 『경험의 노래』가 번역된 것은 1935년의 일이다. 스티크니의 작품을 1929년 전에는 일본에서 원문으로 접하거나 번역으로 접할 기회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번영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의 일이다. 「향수」가 1927년에 활자화되었고 그 제작 시기는 훨씬 이전이란 사실은 중요하다. 모작설의 진원이라 생각되는 글을 검토한 뒤 사실은 「추억」의 번역이 정지용 「향수」의 어휘를 다수 채용하여 흡사 정지용이 스티크니를 모방했다는 착시를 경험한 결과라는 것을 필자는 조목조목 제시하며 반박한 바가 있다.(주6) 모방설의 최대 약점은 스티크니의 원문을 놓고 정지용 작품과 비교 • 대조한다는 제1원리를 소홀히 하고 우리말 번역만 놓고 피상적으로 파악한 유사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곧 모작이라고 속단한 점이다. 「향수」에 보이는 세계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이삭을 줍고 질화로가 있는 방에서 짚 베개를 베고 자며 초라한 초가집이 있는 가난한 옛 마을이다. 그런데 작품에 동원된 세목과 어휘는 유례없이 풍부하고 적정하며 26행으로 이루어진 전체적 구성이 장대하여 화려한 언어의 궁전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림이 실물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비근한 사실을 도외시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우리의 고향일 리 없다는 속단에서 엽기적인 모작설이 생겨난 것이다. 또 텍스트에 대한 경의가 처음부터 결여되어, 남의 말을 자세히 듣기도 전에 심술부터 부리는, 작자에 대한 은폐된 적의가 크게 한몫을 했다. Mnemosyne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 It’s lonely in the country I remember. The babble of our children fills my ears,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 There are the mountains where I lived. The path But that I knew these places are my own, 기억 내 기억하는 땅은 이제 가을 이곳에서 바람은 따뜻하게 불었었지 내 기억하는 땅은 이제 추워 한낮에 비스듬한 날개도 날렵하게 제비들 내 기억하는 땅은 이제 텅 비어있어 내 눈에 사랑스런 누이가 있었지 내 기억하는 땅은 이제 쓸쓸해 내 아이들의 뜻 없는 말소리 내 귀를 채우고 내 기억하는 땅은 이제 캄캄해 내 살던 산들이 있고 길은 이곳이 내 살던 곳임을 몰랐던들 어찌 나 홀로 거기 살게 되었는가, 물어보리라 내 기억하는 땅에 비가 내리네. (2010년 역)
지금은 가을 맞은 내 추억의 고장 길 모롱이 하냥 따사로운 바람결 스치고 태양 향그러이 긴 여름날을 산마루 감돌아 그림자 조우던 곳 지금은 치운 바깥 내 추억의 고장 한낮에 금金빛 보리밭 곁 박차 소소떠는 날씬한 기울은 제비 나래여 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장 칡빛 머릿단에, 수심 짙은 눈망울에 내가 보아도 사랑스런 내 누이와 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장 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장 그 옛날 내 자라던 산마루들 솟고 어찌 이토록 처참에 새塞한 대지大地뇨 지금은 비 뿌리는 내 추억의 고장 (1956년 역)
『정지용시집』에는 바다를 노래한 시편이 많다. 그가 모더니스트란 칭호를 얻게 된 데에는 「카페 프란스」, 「귀로」, 「슬픈 인상화」, 「아츰」 같은 도회 시편, 「비로봉」, 「절정」 같은 선명한 그림 시편과 함께 바다 시편이 많다는 것과 연관된다. 「해협」, 「다시 해협」, 「갑판 위」를 위시하여 「바다」란 표제가 달린 시편만도 7편이나 된다. 바다는 우리의 전통 시가에 등장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것은 농경 사회라는 우리의 전통적 삶과 관련되기도 하지만 중국 시에 바다 시편이 드물었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바다가 시에 도입되고 그것은 새로운 것이고 정지용은 바다를 노래한 최초의 시인의 한 사람이 된다. 힌물결이 치여들때 푸른 물굽이가 나려 앉을 때, 위에서 읽어 본 「향수」가 주제에 걸맞게 느긋한 유장조(悠長調)임에 반해서 바다 시편인 「갈메기」는 가쁜 호흡에 템포가 빠르다. 갈매기의 동작이 빠르고 그것을 지켜보는 눈과 의식이 똑같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허리가 가는 청년이라, 내홀로 사모한 이도 있다” 다음에 나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대추나무 꽃 피는 동네다 두고 왔단다”이다. 구문상으로 신선하다. ‘대추꽃’이 아니라 ‘대추나무 꽃’이라 한 것도 신선하다.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 뿐이었다”라는 미당 「자화상」의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통상적 어법이나 구문에서 일탈함으로써 조그만 대로 신선한 충격을 마련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늬는 목으로 물결을 감는다, 발톱으로 민다./ 물속을 든다, 솟는다, 떠돈다, 모로 날은다.”는 갈매기의 동작을 숨 가쁘게 보여 준다. 빠름은 어느 면에서 근대 도시에서의 근대인의 삶이나 의식을 반영한다. 인상파 화가 드가가 그림 속에 속도를 도입하였듯이 역동적인 빠름의 ‘속도’를 시 속에 도입한 것도 모더니스트 정지용이 보여 준 새로움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한 속도는 흔히 인용되는 「바다2」 같은 작품에도 역력하다. 이 작품에 보이는 “내사 어머니도 있다”, “내손이사” 같은 ‘사’란 조사가 박목월의 “내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이후 한동안 널리 퍼진 조사인데 그 연원은 정지용 시다. 그만큼 우리의 토착적인 언어 자원 발굴과 활용에 힘을 쓴 것이고 후배 시인들의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그러나 2행 1연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변주를 보여 준 작품도 많다. 『정지용시집』의 4부를 이루는 신앙 시편이 대체로 이 계열에 속한다. 다음은 2행 1연의 표준형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경우다. 온 고을이 받들만한 장미 한가지가 솟아난다 하기로 나는 나의 나히와 별과 바람에도 피로疲勞웁다. 이제 태양을 금시 잃어 버린다 하기로 실상 나는 또하나 다른 태양으로 살었다. 사랑을 위하얀 입맛도 잃는다. 외로운 사슴처럼 벙어리 되어 산길에 슬지라도― 마지막 행의 “성모 마리아”만 아니라면 지순한 연애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이 지상적 삶의 최고 가치라는 낭만적 사랑관이 11세기 프로방스 지방의 궁정적 사랑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궁정적 사랑이란 요컨대 찬미 대상을 종교적 예배 대상인 성모 마리아로부터 세속 대상으로 옮긴 결과이다. 따라서 낭만적 사랑은 기독교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 (주7) 독신 수도사들이 고립된 수도원에서 마리아 상을 예배할 때 거기 잠재적 에로스 충동이 작동하리라는 것은 추측할 수 있다. 위의 시는 그러한 속사정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에로스 충동의 승화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위의 시는 소월 시보다 한결 기품 있는 격조를 갖추고 있다.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강렬하다. 한편 위에서 “나는 나의 나히와 별과 바람에도 피로疲勞웁다”는 대목은 윤동주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를 연상케 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은 정지용 신앙 시편에 나오는 반복적 모티프이자 어휘이다. 초기의 동요나 습작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윤동주에 끼친 정지용의 영향은 전폭적이고 가시적이다. 그렇다고 윤동주 시의 무구한 시적 개성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시 제작에는 사실상 공동 제작이란 국면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산(離散)의 모티프 말아, 량친 몬보아 스럽더라.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리百里를 돌아 서귀포西歸浦로 달어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힌 송아지는 움매- 움매- 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登山客을 보고도 마고 매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웨저리 놀려 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웨저리 놀려 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동시 흐름의 이 작품의 화자는 어머니 없이 자랐다. 그러나 위에서 읽은 가령 「갈매기」 시편 등에서는 분명히 어머니가 있다. 동시의 화자는 가공적인 인물이며 작품이 일종의 극적 독백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작가보다 작품을 믿으라는 말을 수용하는 입장이어서 작가에 대한 전기적 천착에 나서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고인이 된 시인의 장남으로부터 시인의 생모가 소박맞아 친정에 가 있다가 훨씬 뒷날 복귀했다는 말을 듣고 지용 시에 나오는 이산의 모티프가 개인사적 트라우마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동시에 나오듯이 시인이 “어머니 없이 자란” 것도 사실이고 「갈매기」에 나오듯이 “내사 어머니도 있다”는 것도 사실인 셈이다. (부기: 1. 김소월과 정지용에 관해서 각각 몇 편씩의 독립된 에세이를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시인들을 보는 관점이 크게 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왕에 한 소리가 되풀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만 무엇인가 새 얘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기적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석 주1 Ramin Jahanbegloo, Conversations with Isaiah Berlin (London: Halban Publishers, 2011), Kindle edition, location 2285. 주6 졸저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현대문학, 2011), 195~229쪽 참조. - 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