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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1일(주일) 출애굽기 12:1~20 '무교병을 먹으라' 새찬송가 265장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오늘은 출애굽기 12:1~20 말씀을 중심으로 '무교병을 먹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유월절과 무교절의 규례를 알려주시면서 ‘이 날을 여호와의 절기로 삼아 영원한 규례로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특별히 유월절의 희생제물로 드려진 어린 양을 급히 먹고 그 피를 ‘집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십니다. 또한 유월절에 이어서 이레동안 무교절을 지키며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무교병을 먹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보면은요. 1~10절은 유월절 어린 양을 취하고 먹는 규례에 대한 말씀입니다.
1. 유월절 어린 양을 취하고 먹는 규례(1~10절)
유월절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10재앙중에서 죽음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고 살아 나온 날이 때문입이다. 그 유월절의 주인공은 바로 ‘어린 양’입니다. 흠없고 일년된 수컷인 유월절 어린 양은 ‘거룩하고 악과 더러움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각자가 어린 양을 잡되 가족대로 어린양을 취해야 합니다(3절). 이 규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은 저와 여러분들도 각각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각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듯 누구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구원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식사는 가족단위의 공동식사였습니다(8~10절). 이것은 구원받은 개인은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와 함께 해야만 구원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영적인 젖을 먹이는 교회를 비유하기를 요한 칼빈 목사님은 '교회를 어머니와 같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와 같기 때문에 신자들은 교회 없이 신앙을 가질 수 없고 또 신앙을 가진다고 하여도 그 신앙이 유지되고 돈독해질 수가 없습니다. 소속된 교회가 없는 신자는 영적으로 부모가 없는 고아입니다. 그들은 마치 어머니 없는 소녀 가장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머니 같은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초대 교부인 ‘싸이프리안’은 '네가 교회를 네 어머니로 섬기지 않고는 하나님을 네 아버지로 섬길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하여 더욱 더 어머니와 같은 친근감과 사랑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11~14절은 여호와의 유월절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그 피를 볼 때 넘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2. 그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11~14절)
여호와께서는 11절에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는 급히 먹으라고 합니다. 11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합니다. 이는 언제라도 출애굽 명령의 떨어지면 바로 애굽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은 애굽 땅의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십니다. 이것의 애굽의 모든 신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는데, 애굽인들이 사람과 짐승 형상을 한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게는 ‘심판의 밤’이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밤’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해서 유월절 희생제물의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집은 넘어가십니다(pass over). 유월절이 영어로 ‘pass over’인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오직 ‘어린 양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그 피만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의 표적’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로 자기 죄를 씻는 성도와 그 가정은 심판의 재앙이 왔다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가고 심판의 밤에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살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마치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세상의 어떤 것이 아니라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회개의 자국’이 필요합니다. 나에게는 유월절의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회개자국이 있습니까?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저와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제가 ‘우리요양원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할 때마다 늘 할려고 하는 것이 어떤 본문이든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영접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영접기도문을 통해서 그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초청을 하게 됩니다. 어르신들 이 시간 다 눈을 감으시고 이 동일한 영접기도문을 통해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도할 때 속으로 함께 따라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이시간 함께 해보길 원합니다. 물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신 분도 따라해서도 되구요. 아직 한 번도 영접하지 않으신 분은 이 시간 진심으로 이 영접기도문을 속으로 따라하시고 아멘은 같이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이시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고 돌아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셔드립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님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그 분을 따르며 예배하며 봉사하겠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시간 이 영접기도문을 통하여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신 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이 여러분의 ‘구주’가 되셨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어린 양의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의 집의 장자가 죽음을 면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즉 유월절이 회심으로 인한 성도의 거듭남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후에 있을 무교절은 거듭난 성도의 거룩한 삶을 보여줍니다.
이후 15~20절은 무교절의 규례에 대해서 말씀해 줍니다.
3.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15~20절)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패와 타락’을 상징하는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이레 동안 먹으며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17절에서 20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유월절이 아빕월 14일 밤 어린 양의 희생제사 의식을 가리킨다면, 무교절은 향후 7일간 무교병을 먹는 행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유월절과 무교절 이 둘을 한 절기로 간주합니다. 유월절이 애굽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었고,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었습니다. 또한 무교절은 죄를 넘어가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이레 동안 먹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죄에서 넘어가고 또한 어린양의 고기를 먹은 자가 뒤이어 7일간 무교병을 먹은 것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이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구원의 은혜가 감사하며 살 뿐더러 부패한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함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영원한 규례임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을 지키되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키라고 하고 있고, 무교절 중에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되 누룩을 넣은 유교물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교병을 먹으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무교병을 먹으라’인데, 오늘 말씀을 받으시는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시고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을 말합니다. ‘맛짜’라고도 불리는 이 무교병은 유대교 예배 의식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무교병은 일상에서도 잼을 발라 먹거나 샌드위치용 빵으로 사용하여 먹는 등 이스라엘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음식인데요. 우리나라로 말하면 ‘아이비나 참크랙커’ 정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5:7-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는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게 된 다는 것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이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누룩 없는 떡덩이가 되어 갑니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의 몸은 악하고 악의의 차고 악독한 누룩이 퍼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묵은 누룩으로 반죽된 부패하고 타락한 죄악덩어리였습니다. 아마도 몸의 한 장기에 퍼진 암덩어리와도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와 성도는 순전하고 진실함으로 빚어진 누룩 없는 새덩어리로 되어 갑니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먹고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여 회복되어 갑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성화는 헬라어 ‘거룩’과 동의어이며 두 단어 모두 “분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분리의 의미는 첫째, 구원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단 번에 완전히 일어나는 상태적 분리이고, 둘째는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면서 삶으로 살아내는 실천적이고 점진적인 거룩이며, 마지막으로 천국에 이르러 죄와 영원히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셨듯이, 성화는 믿는 자들을 세상에 보낼 목적으로서의 분리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8,19).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목적으로 성부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되신 것은 우리가 세상에 보내지기 위해 분리되는 것의 근거이자 조건이 됩니다(요 10:36). 예수님의 성화는 우리가 성화되기 위해 따라야 할 본보기이며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보냄’과 ‘성화’는 불가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믿는 자들은 헬라어로 “성화된 자”를 뜻하는 ‘하기오이’, 즉 ‘성도’로 언급됩니다. 성도들이 이전 예수 믿기 이전의 행동이 세상에 속한 자로서 ‘하나님과의 분리’를 보여주었다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세상과 분리’되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의 구원과 더불어 이 성화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지 모릅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5:27)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죄악의 누룩이 가득한 이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신 사랑의 능력으로 저희로 하여금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케 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날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빚어가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늘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큐티인에 실린 간증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제목은 ‘제 몸에 새겨진 누룩’ 조민지 오래 전 저는 목 뒤에 곪은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흉터가 없어지지 않는 피부라 수술 자국이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긴 머리일 때는 티가 잘 나지 않았는데, 단발로 자른 후부터는 사람들에게 ‘목 뒤가 왜 그러냐?’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어느 새 목의 흉터는 제 콤플렉스가 되었고, 저는 이 흉터를 덮기 위해 타투(문신)로 목 뒤에 십자가를 크게 새겼습니다. 하지만 이내 타투 중독이 되어 이후에도 여러 모양의 타투를 몸에 새겼습니다. 그러면서 그 중에는 성경구절도 있으니깐 괜찮다며 합리화했습니다. 가족은 이런 저를 걱정하며 강하게 제지했지만, 그럴수록 저는 가족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 큰 상처를 받았고, 죽고 싶은 마음마저 올라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힘든 마음을 해소하고자 또 타투를 하러 갔습니다. 제게 타투를 하러 가는 것은 차마 자해는 못하니 나를 대신해 몸에 상처를 내줄 사람을 찾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타투를 받을 때의 고통은 제게 쾌락을 즐긴 것에 대한 벌이었고, 저는 아픈 만큼 내 죄가 사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중독이 잘못된 죄의식을 낳고, 그것이 또 다른 중독에 빠지게 하는 악순환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렇게 가족과 대립을 지속하던 어느날, 저는 울면서 “나 정말 죽고 싶은데, 자살이 죄라고 해서 죽지 못하고 있는거라”라고 가족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아빠가 어떻게 살겠니?”하며 많이 속상해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동안 가족 중에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저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이 일을 나누니 한 지체가 “어린 양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았는데, 왜 그것을 믿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타투중독은 제가 세상 쾌락이라는 누룩을 제거하지 못해 온 사건임이 인정되어 눈물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중독이 끊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전만큼 타투를 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요즘도 유혹이 올라오지만, 그 때마다 내 몸에 새겨진 타투 누룩과 십자가의 표적을 기억하며 죄의 유혹을 불살라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적용) 타투를 하고 싶은 유혹이 올라오면 교회 공동체에 즉시 나누고 기도를 부탁하겠습니다. 이 성도님은 자신의 타투중독을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제거해야 할 세상쾌락이라는 누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 뿐 아니라 부패한 옛 생활을 청산하기를 원하십니다. 살전 5:19-22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죄악은 흉내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하고 죄된 것을 흉내 내고 모방하려고 하면 마침내 내 마음까지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결단코 악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죄악은 시초부터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큰 죄가 아닐지라도 죄악된 것은 아예 근본부터 멀리하고 배격해야 타락하지 않습니다 "코끼리는 코만 들어오면 어떻게 하든지 다 들어오고 만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에 “요것쯤 괜찮다”고 유혹하나 범죄하고나면 그것을 핑계 삼아 "너 같은 놈 이제 용서 받지 못한다"고 겁을 주면서 그 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처음부터 경계토록 하시면서 죄지은 자의 애통함을 보시고 용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 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흥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흥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기꾼이 "내가 사기꾼입니다"하고 나타내지 않듯이 죄도 처음에는 가장 합리적인 것의 가면을 쓰고 시작합니다. 노래가 좋다고 하여 사람의 마음을 둔감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유행가를 자주 부르는 것이나, 독서가 좋다고 자신을 합리화해서 음란 서적을 본다든가, 남녀간에 교제가 좋다고 하여 도덕 윤리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교제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가 죄의 테두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역사는 우리의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이는 폐가 약하고 어떤 이는 심장이 약한 분이 있습니다. 몸의 약한 점은 특별히 그 부위에 조심해야 하듯이 신앙생활에도 모든 것이 다 좋지만 특별히 무엇이 약한 곳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특별히 물질에 약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명예심에 약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스스로에게 어떤 약점이 있는가를 알아서 조심해야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마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은 말씀을 늘 마음 속에 간직하여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새벽 말씀을 들으셔서 무장하시고, 매일 주어지는 말씀을 쓰심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시고, 성경을 필사하시거나 읽으시면서도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무시로 성령안에서 깨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고, 봉사의 직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로 우리의 언행심사를 언제가 육신의 소욕대로 하지말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7일간 ‘누룩이 제거된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구원받은 것에 머물지 말고, 누룩을 제거한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은 후 제하여 버려야 할 누룩 같은 옛 습관은 무엇입니까? 딱딱하고 소박하지만, 내가 말씀대로 취해야 할 무교병과 같은 새로운 습관은 무엇입니까? 이제 얼마남지 않은 2022년을 살펴보시면서 내년 새해에는 이런 무교병과 같은 경건한 습관들을 들여서, ‘무교병을 먹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