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아마샤와 여로보암
[1-4절]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2년에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25세라. 예루살렘에서 29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않았다.
그는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그는 믿음이 있었고 경건했으나 산당들을 없애지 않은 부족이 있었다.
산당들은 우상숭배의 온상이었다.
산당은 사무엘 시대부터 있었다(삼상 9:12-14; 10:5; 왕상 3:2-3).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된 후에도 산당 제사는 없어지지 않았고 점차 우상숭배로 변질되었다(왕하 23:5; 렘 2:20).
아사나 여호사밧 같은 경건한 왕들도 산당들을 없애지 않았다(왕상 15:14; 22:43).
그러나 히스기야는 산당들을 제했다(왕하 18:4).
그 아들 므낫세가 부친이 헐었던 산당들을 다시 세웠으나(왕하 21:3) 후에 요시야 왕은 대개혁을 단행해 모든 산당을 제거했다(왕하 23:5, 8, 13, 15, 19).
오늘날도 성도가 믿기는 하나 불완전하고 흠과 부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흠과 점이 없는 온전한 자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후서 3:14는 우리에게,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교훈한다.
[5-7절]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1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아마샤는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다.
그러나 그가 모세의 율법대로 그들의 자녀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8-14절]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나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400규빗[약 184미터]을 헐고 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그릇들]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인질]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역대하 25장은 아마샤가 패전한 원인을 증거한다.
그것은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쳐서 이기고 돌아올 때 에돔 사람들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신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하였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진노하셨고 그와 유다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붙여 패전케 하신 것이었다(역대하 25:14-15, 20).
[15-16절]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권력과 또 유다 왕 아마샤와 서로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죽었고]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유다 나라와 싸워 이긴 후 죽었던 것 같다.
[17-22절]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15년을 생존하였더라.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 열조와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16세라. 아마샤가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아마샤가 신하들의 반란으로 죽임 당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버리고 에돔의 우상들을 섬겼기 때문이다(역대하 25:27).
아마샤가 하나님을 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게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떨어질 때 실패한다.
[23-27절]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15년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주전 793-753년경 통치)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41년을 위(位)에 있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갈릴리 나사렛 부근)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부족과 결점이 많고 그래서 때때로 그들을 징계하시고 징벌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오래 참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시시때때로 은혜를 베푸셨다.
고난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크셨다.
[28-29절]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그 권력으로 싸운 일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로보암이 그 열조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유다 왕 아마샤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않았으며 산당을 제하지 않았고, 또 북방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악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전함을 원하신다.
창세기 17:1,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책이다(딤후 3:16-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 안에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흠과 점 없는 온전한 개인이 되고 또 온전한 교회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둘째로, 아마샤는 말년에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징벌을 받아 패전하였고 신하들의 반란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
말세는 배교의 시대이다(마 24:11, 24; 살후 2:3; 딤전 4:1).
성경은 말세에 우리를 미혹하는 거짓된 목사들과 거짓된 교훈들이 많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다.
우리는 그런 거짓된 교훈들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들과,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포용하며 심지어 이방종교를 포용하려 하는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연합운동과, 또 교회를 혼란시키는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고난을 각오하며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딤후 4:3-7).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큰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때때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택함 받은 자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오래 참으신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는 고난 많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날마다 그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