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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그릿 시냇가의 훈련 / 안효관 목사
디모데전서 4: 6-7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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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면 가장 먼저 거치는 곳이 있습니다. 훈련소입니다. 훈련소에서 6주간 고된 훈련을 받아야 대한민국의 군인이 됩니다. 그 훈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군대에 갖다 오신 분들은 훈련소 생활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27살 때에 늦게 군대에 갔습니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모든 일에 큰 소리로 고함을 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6시 일어나서 점호를 할 때부터 힘찬 구령소리와 함께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자기 이름을 댈 때에도 고함치듯 큰 소리로 말해야 하고, 군가를 부를 때에도 가락은 무시하고 무조건 고함을 질러야 잘 부른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가 원래 조용한 성격이라 고함을 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고함을 치르고 나면, 머리가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왜 훈련소에서는 그렇게 고되게 훈련을 시킬 뿐만 아니라, 고함을 치게 해서 사람의 정신을 다 빼버리는가?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다 훈련의 방법이었습니다. 군대 오기 이전에 가졌던 모든 생활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고된 훈련을 해야 하고, 사회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했고 평안하게 생각해왔던 모든
사고들을 군대식으로 바꾸기 위해서 고함을 쳐서라도 딴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군인을 만드는 훈련방법이었습니다.
군인다운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훈련소에서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 데모데전서의 말씀에 보면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말씀과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고, 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한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양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나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한다"는 말이나 모두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걸 디모데전서에서는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군인이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는 것처럼, 육체적인 훈련을 받는 것도 유익이 되지만,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훈련은 영적인 훈련, 경건에 이르는 훈련입니다.
그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훈련 없이 성장해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쓰시기 위해서 반드시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만드십니다.
오늘은 새해 첫주일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교우님들이 올 한해는 하나님의 훈련학교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훈련받아서,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엘리야의 훈련과정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립니다.
엘리야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모세라고 한다면,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다윗 왕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는 엘리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모세와 함께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와 대결하여 당당하게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을 태움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신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능력의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장 위대한 선지자요, 가장 큰 능력을 나타냈던 선지자 엘리야도 하나님의 훈련학교에서 훈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큰 선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열왕기상 17장의 말씀이 바로 엘리야가 훈련을 받는 장면입니다. 본문 1절에서 엘리야를 소개할 때에 "디셉 사람 엘리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셉 사람'이라는 말은 '디셉이라는 마을 출신' 그런 말입니다. 당시 모든 사람을 그렇게 출신 마을 이름을 따서 "어디 출신 아무개" 그렇게 불렀습니다. 엘리야도 그렇게 불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엘리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는 선지자입니다.
1절에 보면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이렇게 예언을 합니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이긴 선지자인데, 아직까지 선지자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훈련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아니라, 단지 "디셉 사람 엘리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훈련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 24절에 보면 그 때서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본문 1절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훈련학교인 그릿 시냇가로 부르신 '입영영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만 해도 엘리야는 무명 선지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입니다. 당시 왕이라고 하면 무서운 권력자입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아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아합 뒤에는 이세벨이라고 하는 무서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세벨은 열왕기상 18:4절에 의하면, 왕비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수도 없이 죽였습니다. 마치 파리를 때려잡은 것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무서운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런 막강한 권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권력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파리 죽이듯 죽인 사악한 아합왕과 이세벨 앞에 무명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있을 것인데, 내가 비가 올 것이라고 말할 때까지 몇 년 동안 가뭄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리적 여건상 몇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만 비가 오지 않아도 가뭄 때문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곳이 바로 팔레스틴 땅입니다.
그런데 몇 달이 아니고 몇 년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선언은 곧 저주의 선언과도 같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외쳐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이 왕 앞에 나타나더니 '몇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저주를 선언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 말씀을 선포한 후에 엘리야는 굉장히 두려웠을 것입니다. 엘리야도 아합과 이세벨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맘만 먹으면 자기 목숨을 또 파리 죽이듯 죽일 수 있습니다. 이미 이세벨이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그릿 시냇가로 가서 거기서 숨어 있으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훈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가장 먼저 받아야 하는 훈련은 숨는 훈련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삶의 자리를 버리고 혼자 있는 곳으로 피해 숨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기 위해서는 숨어야 합니다.
신약시대에 가장 위대한 사도라고 불리우는 바울은 다메섹 언덕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 그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이나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없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이나 숨는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숨는 훈련'이라는 것은 모든 분주한 삶을 떠나서 조용히 하나님과만 만나는 훈련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만나는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묵상하고, 하나님과만 대화하는 거룩한 시간을 갖는 훈련입니다. 우리의 삶이 분주하다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조용한 시간, 숨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수요일 수요성경공부를 할 때 몇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절기를 지킬 때에는 반드시 "아무 노동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면서 '노동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 그 절기기간 동안에는 온전히 하나님만 생각하며 지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숨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원에 가도 좋고, 몇일씩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조용한 새벽시간에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또 조용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 훈련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없습니다. '교회의 하나님'은 있어도 '나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봉사를 해도 가슴이 허전합니다. 어려운 시련이 오면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여러분, '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 훈련소로 보내신 후에 그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이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살리시는 방법입니다. 까마귀들이 하나님의 음식배달부가 되어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에게 양식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시냇가로 가면 물이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까마귀를 통해서 먹을 것을 가져다 주시겠다니, 그 말씀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그릿 시냇가로 갔습니다.
까마귀를 통해서 음식을 공궤받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엘리야가 그릿 시내가에 살았던 기간이 3년 정도라고 말합니다. 5절에서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머물었다"는 말은 '그곳에 정착하여 살았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몇일 동안 여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여름 휴가 때에 텐트를 치고 몇일 동안 계곡에 머무는 것처럼, 그렇게 잠시 머문게 아니란 말씀입니다. 아예 그곳에 살림을 차린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그곳을 생활근거지로 삼아 3년 동안 살았던 것입니다. 그 3년은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만드는 기간입니다. 까마귀가 매일 먹을 양식을 가져다 줍니다.
어떻게 보면 하루 하루가 불안합니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3년 동안 까마귀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다 줍니다.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는 당시 상황으로 봐서, '혹 오늘 저녁에는 떡을 물고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과연 내일 아침에도 떡을 물어다 줄까?' 늘 그런 걱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통해서 엘리야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법을 배우가게 됩니다. 저녁을 걱정했는데,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떡과 고기를 가져다 주십니다. 아침을 걱정했는데, 아침에도 역시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물어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의 기묘하신 방법을 신뢰하게 됩니다. 모든 불가능 속에서도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철저하게 믿도록 철저한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을 불러놓고 대결할 때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을 태우는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자" 그런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년 동안이나 가뭄과 흉년 중에서도 단 한번도 떡과 물고기를 빠뜨리지 않고 공급해 주신 하나님이라면, 능히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을 태우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신 것은 하나님의 훈련방법이었음을 아셨습니까? 아무리 나라의 경제가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주신 것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바로 그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방법입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채워지지 않은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큰 것을 기대했는데, 너무 작은 것만 얻는 경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엘리야에게는 아침 저녁으로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먹을 것만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다른 것 공급받은 것이 없습니다. 딱 먹을 것만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매일 아침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받았습니다. 그들은 40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했습니다. 처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실 때에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처음 먹을 때에는 만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만나'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을 먹어보고는 그 맛이 꿀 섞은 과자처럼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만나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먹다보니까 이제 신물이 났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1:6절에서 이렇게 불평합니다.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무슨 말입니까? 40년 동안 만나만 먹다보니 정력이 쇠하였는데, 정력을 보충할 먹거리가 아무 것도 없다는 불평입니다. 이제 만나가 지긋지긋해졌습니다. 고기라고 가져다 주신 메추라기를 40년 동안 먹었더니, 이제 이빨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불평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이나 먹을 것 마실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훈련받기를 거부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3년 동안 아침 저녁으로 먹을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그게 엘리야로 하여금 능력있는 선지자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훈련하십니다.
여러분, 올 한해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주신 작은 것 하나 하나를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훈련을 잘 받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있는 일꾼으로 성숙해져 가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대치보다 작게 주신다고 불평하지 말고, 먹을 것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주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엘리야가 훈련을 받던 그릿 시냇가는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한가지 유일한 자연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시냇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7절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 시냇물을 마셨는데, '가뭄이 오래 계속되자 얼마 후에는 그 시냇물까지도 말라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냇물을 마르게 하신 것도 엘리야를 훈련시키기시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지금까지 훈련을 받은 것은 까마귀를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시냇물을 마시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냇물이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시냇물이 말랐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버리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시냇물이 말랐다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시고 우리를 버리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걸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감성으로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빼앗아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단 물을 주시면 그 물을 평생 빼앗아가지 않으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의지했던 것들까지도 다 빼앗으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훈련시키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중한 것까지도 잠시 거두어 가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업이 번창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내 사업을 빼앗아가지 않게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사업이 망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우리에게 자녀를 주셨는데, 일단 우리에게 자녀를 선물로 주시면 절대로 자녀를 빼앗아가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 주변에서 보면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먼저 거두어 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번창했던 사업이 망하고, 알뜰살뜰 모아두었던 재산을 한 순간에 다 빼앗길 수도 있고, 심지어 사랑하는 자녀나 가족을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게 우리를 훈련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굉장히 혹독한 방법으로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때로는 아주 소중한 것을 잃게 만드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우리를 훈련시기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임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것을 통해서 가장 궁극적인 훈련을 하시는데, 그게 바로 '어떤 순간에도 나를 잊어버리지 않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4-16)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지 못하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버리셨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어본 적이 없노라. 어미가 자기 자식을 잊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나는 너를 한 순간도 잊지 않는다.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겨놓았다."
엘리야는 시냇물이 마르는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시냇물을 마실 때에는 참 좋았는데, 왜 이제는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게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3년 동안이나 가뭄이 계속된 때이기 때문에 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물도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내가 네 생명을 위한 다른 계획을 마련해 놓았노라" 그렇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릿 시냇가 훈련소에서 3년 동안 훈련을 받은 엘리야를 드디어 세상으로 파송하시는데, 마실 물조차 없는 모습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한 과부를 통해서 엘리야의 생명을 부지시켜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네 생명만은 내가 내 손바닥에 새겨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붙어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 길을 주시고,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지켜주십니다.
그걸 깨닫게 하시는 게 하나님의 훈력학교의 마지막 훈련과정입니다.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지켜주시고,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고, 능력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0 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올 한해를 살아갈 때에 우리에게 때로는 시련도 있고, 때로는 아픔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우리는 하나님의 훈련학교에 입학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때로는 시련이나 어려움을 통해서, 때로는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믿음의 훈련을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훈련을 잘 받아서, 더욱 성숙해지는 신앙으로, 더욱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갈 수 있는 축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