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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대인관계(27-30)
사람은 이상하고 신비한 존재입니다. 사람을 다른 존재들과 구분하는 것은 인격과 이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자기 인생을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행복이 기다린 길이 있는데도 불행을 좌초하는 선택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27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27-30)
제자들의 온전한 삶에는 적대자들에 대한 응대도 포함됩니다. 적대자를 유형별로 여덟 가지로 나누고 대처 방안을 말씀하십니다. 27-28절은 한 문장이지만, ‘사랑하라’, ‘선을 행하라’, ‘축복하라’, ‘기도하라’는 네 가지 명령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의 사랑법입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고
(1) 원수 사랑을 위한 네 가지 명령(27-28)
앞 단락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네 가지 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나님 나라 백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윤리적 삶을 살 것인지 교훈하십니다. 가장 첫 번째 교훈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윤리를 함축하면서도, 더 짧고 분명하게 하나님 나라 윤리를 설명하십니다. 레위기 19:18은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간결하지만, 더 직접적으로 원수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단순히 원수를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처음 두 개의 구절(27-28)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개의 명령형 동사를 사용하여, 원수를 사랑하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반복하십니다. 마태복음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출 21:24, 레 24:20; 신 19:21)는 율법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재해석하시는 문짝에서 원수 사랑을 말씀하십니다(마 5:38-48).
(2) 원수 사랑을 위한 네 가지 실천(29-30)
이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원수 사랑을 교훈하십니다. 원수 사랑을 실천할 네 가지 예를 드십니다(29-30). 뺨을 치는 것은 폭력적인 공격이라기보다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겉옷을 빼앗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침범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한사람의 겉옷은 해가 지도록 전당 잡을 수 없으니, 겉옷은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필요이기 때문입니다(출 22:26-27). 예수님께서는 원수가 심각한 손실을 입힐 때조차도 복수를 하기 보다 오히려 속옷까지 주며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것을 주문하십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2)(31-34)
사랑과 선행을 베풀 때, 보답을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도우며, 그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보상보다는 진심을 다해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과 선행이 진정한 신앙 생활의 모습입니다.
31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31-34)
본문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강조하며, 조건 없이 사랑과 선행을 베풀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기뻐하십니다.
(1)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는 말씀은 마태복음과 다른 문맥에서 사용됩니다. 마태복음은 이 황금률 구절을 ‘기도를 강조하는 단락’(마 7:7-11)과 ‘좁은 길의 제자도를 강조하는 단락’(마 7:13-14) 사이에 위치시킵니다. 그리고 이 황금률이 율법과 선지자의 교훈과 닿아 있음을 밝힙니다(마 7:12).
한편 누가복음은 황금률을 제자도 즉,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시킵니다. 원수 사랑이라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다르게 설명하는 방법으로 황금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 황금률의 세 가지 예(32-34)
이어지는 구절에서(32-34) 황금률의 세 가지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 가지 예는 죄인들과 비교 대조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윤리가 세상의 윤리보다 훨씬 탁월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합니다(32). 죄인들도 자기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합니다(33). 죄인들도 되돌려 받기를 바라며 꾸어 줍니다(34).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백성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선대하지 않는 자조차 선대해야 합니다. 돌려받을 수 없을지라도 꾸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윤리가 예수님께서 세울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의무만을 나열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연결되며, 결국 풍성한 상으로 되돌아올 것임을 밝힙니다.
하나님 나라의 행동 수준(35-38)
우리가 사랑과 선행을 베풀 때, 같은 조건으로 되돌아오지 않을지라도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남에게 하는 모든 행동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긍정적인 행동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고 넉넉하게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측정하고 상을 주시는 기준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베푼 자비와 사랑임을 깨닫게 합니다.
35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35-38)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제자의 삶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정체성과 관련됩니다.
(1) 인자와 자비를 닮아감(35-36)
본문은 문자적으로 ‘원수 사랑을 실천할 때, 큰 상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35)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함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는 그 행함으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십니다(35b). ‘인자한’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크레스토스(χρησστος)는 ‘은혜로운’이라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특히 시편에서 자주 하나님의 선하심(은혜로우심)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시 24:8; 33:9; 85:5; 95:5). 베드로는 주의 인자하심(은혜로우심)을 맛보았으면, 모든 죄를 버리고 갓난 아기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벧전 2:1-3).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다른 말로 감사할 줄 모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은혜로우십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한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입니다(36).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같이,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출 34:6; 신 4:31; 대하 30:9).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런 자비로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그 자비의 최고봉은 원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신 것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역한 세상을 사랑하시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2) 비판하지 말고 너그러움(37-38)
하나님 나라 백성의 네 번째 삶의 원리는 비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입니다(37).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는 것입니다(38).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선악을 분별해야 합니다(12:57). 그러나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시 5:10; 32:2; 잠 12:2). 따라서 바울은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권면합니다(롬 12:19-20).
‘용서하다’를 뜻하는 아포루오(ἀπολύω)는 ‘풀어주다/놓아주다’를 뜻하기도 합니다(예, 23:16,18). 따라서 앞서 나온 ‘비판(심판)’과 ‘정죄’라는 단어와 함께 재판의 상황을 연상하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위치에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여, 감옥에 가두는 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이 아닙니다. 물론 공적인 영역에서 죄인을 판단하고 징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것은 사적인 영역, 개인적인 관계입니다. 개인적으로 원수를 갚거나 심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는 자가 받을 복을 말씀하시므로 주는 것을 격려하십니다(38). 3단계에 걸쳐 풍성하게 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마침내 가지고 있는 되가 넘치도록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관용을 가지고 너그럽게 베풀면, 하나님께서 더 풍성하게 갚아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대접하는 것이 현재에는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더 큰 복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6:27-38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네 가지 원리는 ‘원수 사랑’이라는 한 가지 주제의 서로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곧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고 너그럽게 베푸는 것은 원수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은 이타적입니다. 지독한 타인 중심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안 사람만이 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자격 없는 것을 알고, 나의 강력한 열망에 정직한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행복과 불행이 나의 그것을과 땔 수 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만이 진실하고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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