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찬미가와 비밀(B)
"아니, 그건 좋은 생각입니다." 알료샤가 말했다.
"하느님이 불쌍하다는 것 말이냐? 하지만 얘, 그것은 화학(化學)이란 말이다. 화학! 그건 어쩔수 없는 거야. 신부님, 좀 옆으로 비켜 주세요. 화학님이 지나가시니! 하는 식이지. 라키친은 하느님을 좋아하지 않아. 아니,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미워하고 있어! 이게 바로 그녀석들의 급소야! 그러나 그들은 그걸 감추고 있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모르는 체하고 있는 거지. '그래 자넨 비평 분야에서도 그런 식으로 해나갈 건가? 하고 내가 물었더니, 그 녀석은 '아마 그렇게 노골적으로 쓰게 하진 않을거요' 하면서 웃질 않겠니. 그래서 나도 또 물었지. '그럼 대체 인간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느님도 내세도 없다면 말이야? 그렇게 되면 인간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말이 되지 않느냐 말이야?' 그랬더니 녀석은 '아니 그것도 몰랐소?' 하고 히죽 웃었어. '현명한 사람은 무슨 짓이든 다 할수 있어요.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잇속을 차릴 줄 알아요. 그런데 당신은 사람을 죽였다 해서 대번에 걸려들어 감옥에서 이렇게 썩고 있으니 말이오!' 하고 나한테 맞대 놓고 말하지를 않겠니. 그 자식은 정말 돼지와 다름없다니까! 전 같으면 그런 놈은 당장 내쫒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그저 들어주는 거야. 녀석은 꽤 재치있는 말도 많이 하고 글도 제법 잘 쓰거든. 1주일쯤 전에 나한테 어떤 논문을 읽어 주었는데, 그때 한 서너 줄 베껴 둔 게 있어. 잠깐 기다려. 아, 여기 있군."
미챠는 급히 조끼 호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인격과 자기의 현실을 대결시킬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모르겠는데요." 알료샤가 말했다. 그는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미챠를 바라보면서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어. 애매하고 모호해서 말이야. 그 대신 재치는 있거든. '지금은 모두들 이렇게 쓰고 있죠. 왜냐하면 주위 환경이 그러니까'라고 말하는 거야. 환경을 몹시 무서워하더구나. 그 녀석 시도 쓴답시고 글쎄 호흘라코바 부인의 발에 대해 시를 쓰지 않았겠니. 하, 하, 하!"
"그건 나도 들었어요." 알료샤가 말했다.
"들었어? 그럼 그 시도 들었니?"
"아뇨."
"그 시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어. 너한테 읽어 줄께. 내가 얘기하지 않아서 너는 아직 모를 테지만, 여기엔 굉장한 사연이 있단다. 그 녀석은 보통 악당이 아냐! 3주일 전에 그 녀석이 나를 놀려 주려고 이런 말을 하지 않겠니. '당신은 단돈 3천 루블 때문에 걸려들고 말았지만, 나는 그 과부와 결혼해서 15만 루블을 우려낸 다음 페테르부르크의 석조 건물을 마련할 테니 두고 보시오.' 그리고는 지금 호흘라코바 부인을 구슬리고 있는 중인데, 그 여자는 젊을 때도 그다지 영리하지 못했지만 나이 40이 되니까 완전히 바보가 되고 말았다는 거야. '하지만 매우 감상적인 여자지요. 나는 그 점을 이용해서 그 여자를 반드시 손에 넣고 말 겁니다. 그 다음 페테르부르크로 데리고 가서 신문을 발간할 생각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 더러운 침을 흘리는 거야. 그런데 그 침은 호흘라코바 부인이 탐나서가 아니라 그 15만 루블이 탐나서 흘리고 있으니 말이야. 그 녀석은 매일처럼 나를 찾아와서는 반드시 손에 넣어 보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면서 싱글벙글 웃질 않겠니.
그런데 그 녀석은 갑자기 그 집에서 쫒겨나고 말았어. 표트르 페르호친이 선수를 친 거지. 페르호친도 보통이 아니거든! 라키친은 마치 자기 자신이 쫒겨나려고 그 늙은 바보 여편네한테 키스를 한 셈이 됐지 뭐냐! 그 녀석이 나를 찾아 다닐 무렵에 이 시를 쓴 거야. '난생 처음 시라는 걸 써서 손을 더럽힌 거죠. 그 여자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죠. 즉 유익한 일을 위해서입니다. 그 바보 여편네한테서 자본을 끌어내면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글쎄 이렇게 말하지 않겠니.
그 녀석들은 온갖 추악한 짓을 다 하면서도 공익을 위한다고 정당화하니 말이야! '아무튼 당신의 그 푸슈킨보다는 잘 쓴 겁니다. 나는 이 익살스런 시 속에 시민의 비애를 교묘히 가미했으니까요.' 이러는 거야. 나도 왜 그 녀석이 푸슈킨을 들먹였는지는 알 만해. 만약 정말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여자의 발에 대해서만 쓴다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데도 그 너절한 시를 가지고 자랑하는 꼴이라니! 그 녀석의 자만심이란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정도라니까! <그대의 병든 발의 치유를 빌며> ㅡ 그 녀석은 이런 제목을 생각해 냈어. 참 익살맞은 놈이거든!
어쩌면 이다지도 아름다울까
다소곳이 부어오른 이 발은!
의사를 불러다 치료를 하면
붕대나 감아 주고 병신 만드네.
나는 그 발을 슬퍼하지 않노라.
그건 푸슈킨이 맡아 찬미할지니.
나는 슬퍼하노라, 그 머리를
사상을 못 깨닫는 그 머리를
이제 조금 깨닫는가 싶으면
그 발이 그걸 방해하나니!
빨리 그 발이 치유되는 날
그녀의 머리도 깨달을 수 있으리.
돼지야, 영락없는 돼지라니까. 하지만 그 바보 같은 녀석이 제법 재미있게 썼거든! '시민의 비애'가 가미된 것도 사실이고. 그러니 그 여자에게 쫒겨났을 때 얼마나 화가 났을까. 아마 이를 부드득 갈았을 테지!"
"그 친구는 벌써 복수를 했어요." 알료샤가 말했다. "호흘라코바 부인에 대한 기사를 투고했어요." 알료샤는 <풍문>지에 실린 통신 기사에 대하여 간략하게 미챠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 그건 그 녀석의 짓이야!" 미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맛장구를 쳤다. "그 녀석이 틀림없어! 그 기사는....... 나도 알고 있어. 그루센카에 대해서도 굉장히 지저분한 소릴 다 썼더군. ......그리고 그 여자, 카챠에 대해서도.........흠!"
그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방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형님, 난 여기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요." 잠시 말이 없던 알료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은 형님에겐 무섭고도 중대한 날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이 내려지는 날이니까요. ...... 그런데도 형님은 태연히 걸어다니면서 쓸데없는 말만 하고 있으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군요."
"뭐 놀랄 건 없다." 미챠는 열띤 어조로 말을 가로챘다. "그 구역질 나는 개새끼 얘기라도 하라는 거냐? 그 살인 얘기를? 그 문제라면 이미 충분히 이야기하였잖느냐 말이다. 그 썩은 냄새를 풍기는 스메르쟈시차야의 아들 얘기라면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놈은 하느님의 벌을 받게 될 거야. 이제 두고 봐라. 그러니 넌 잠자코 있어!"
미챠는 흥분에 못 이겨 알료샤한테 다가서더니 갑자기 동생에게 키스를 했다. 그의 두 눈은 이글이글 불타 올랐다.
"라키친은 이걸 이해하지 못해." 그는 마치 무슨 환희에라도 휩싸인 듯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는 죄다 이해할 거야. 그래서 나는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실은 말이다, 난 벌써 오래 전부터 이 헐어빠진 담벽 속에서 너한테 여러 가지 말을 하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단다. 아직도 그 시기가 오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 자, 이제 드디어 그 시기가 왔으니 너한테 모든 걸 털어놓겠다.
알료샤, 난 지난 두 달 동안에 내 내부에서 새로운 인간을 느끼게 되었어. 내 내부에서 새로운 인간이 소생한 거야! 그 인간은 지금까지 내 내부에 갇혀 있었는데, 만일 이번의 타격만 없었더라도 밖에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무서운 일이야! 나는 광산으로 유배되어 10년 동안 곡괭이를 휘두르며 광석을 캐낸다 해도 그런건 조금도 무섭지 않아. 지금 내가 무서워 하는 건 다른 거야. 새로 소생한 그 인간이 어디론가 가 버릴까봐 그게 무서운 거야! 나는 거기서도, 광산의 동굴에서도 나와 같은 죄수나 살인범 속에서 인간다운 마음을 발견하여 그들과 합류할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거기서도 생활하고 사랑하고 괴로워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들 죄수 속에서 얼어붙은 마음을 소생시킬 수도 있고, 몇 년이고 그들을 보살펴 주어 그 땅굴 속에서 고귀한 정신과 헌신적인 정신을 세상에 내보낼 수도 있는 거야. 나는 천사를 낳고 영웅을 소생시킬 수도 있어!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많아. 수백 수천은 될거야.
우리는 모두 그들을 위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돼! 나는 왜 그때 그 순간에 '아귀'의 꿈을 꾸었을까? "왜 아귀는 저렇게 불쌍하지?' 하는 물음은 그 순간 내게는 하나의 예언이었던 거야! 나는 그 '아귀'를 위해 가는 거야. 왜냐하면 우린 모든 사람, 모든 '아귀'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이지. 거기에는 조그만 어린애도 있고 큰 어린애도 있으니까 결국 모두가 다 '아귀'야. 난 모든 사람을 위해 가는 거야. 사실 누구든 한 사람쯤은 남을 위해 가야 하지 않겠니. 난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역시 가지 않으면 안 돼. 난 그걸 감수하겠어. 난 여기서......... 칠이 다 벗겨진 이 담벽 속에서 바로 이런 생각을 했던 거야. 그러나 그런 사람은 많아. 땅굴 속에서 곡괭이를 휘두르는 사람이 수백 수천은 되니까. 그야 물론 우리는 사슬에 묶여 자유를 잃게 되겠지.
그러나 그때 우리는 그 크나큰 비애 속에서도 다시 환희를 향해 소생하는 거야. 인간은 이 환희 없인 살 수 없어. 그래서 하느님은 있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에게 환희를 주는 건 하느님이니까. 환희는 하느님의 특권이야, 위대한 특권이지........ 아아, 인간이여. 기도 속에 융화할지어다! 그곳 땅 밑에서 하느님 없이 내가 어떻게 살수 있겠니? 라키친의 말은 거짓말이야. 만일 하느님을 지상에서 내쫒는다면 우린 지하에서 하느님을 만날 거야. 유형수는 하느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 유형수가 아닌 사람 보다도 더욱 불가능한 거야. 그래서 우리 지하의 인간들은 깊은 땅속에서부터 환희의 소유자인 하느님께 비창한 찬미가를 부를 거야. 하느님과 그 환희에 영광 있으라! 나는 하느님을 사랑해."
첫댓글 드미트리 카라마조프.....인간의 모든 면을 쏟아부어 놓고 주조해 놓은 듯한 상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을 느낍니다. 아귀들을 위한 십자가~
극한의 절망속에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낀 미챠...!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