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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장코뱅 추천 4 조회 338 24.07.20 07:22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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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7.20 07:32

    첫댓글 박윤선 목사님의 설명은 독특하고 저의 취지와 조금 다르지만 다양한 이해를 위해서 첨부합니다.
    ------------------------------------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나는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게 한다(10:12~18)

    이러한 거짓 교사들은 “상호 칭찬 협회”의 회원들이었으며, 스스로 서로를 비교하였다. 그결과, 그들은 자신들을 매우 높게 생각하였다(마5:43~48/갈6/3~4 참조).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에서 교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생명을 무릅쓰고 있을 때 이 위대한 교사들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 어려운 일이 끝난 후에야 나타난 설립자를 비판하고 모든 영광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가!

    비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의 손을 뻗쳤으며, 또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저해 주는 일에 그들이 조력해 주기를 원하였다. 유대주의자들은 화서 그들이 성취하지도 않은 일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바울의 주관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복음을 가지고 가는 일이었으나(롬15:20), 반면에 유대주의자들의 정책은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여 그가 한 일을 망하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매우 지혜롭게도 칭찬에 관한 문제를 주님께 맡긴다.

  • 작성자 24.07.20 07:33

    그는 17절에서 예레미야 9장 24절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고린도전서 1장 31절에서도 인용되었던 구절이다. 결국,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그분만이 마음과 동기를 알고 계신다. 바울이 하나님계서 “잘 하였도다”라는 마씀을 하실 것을 기꺼이 기대하였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러해야 한다.

    이 장을 복습해 보면, 그리스도인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의 봉사에 관한 문제에 이르러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교훈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 육신적인 문제들로 영향을 받지 말라. 하나님의 가장 위해한 종은 인간적으로 말해서 반드시 가장 잘생기고, 가장 강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할리우드의 영화배우” 같은 이에게 곧 위압감 느끼는데, 이들은 인상적인 외모와 최면술적인 웅변으로 그들을 사로잡는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고의적으로 무관심해지거나 거짓 겸손을 실천하라는 뜻은 아니다.

    󰊲 영적인 무기들과 도구들을 사용할 때에 가장 지속적인 사역을 이루게 된다. 군중을 많이 모이게 하는 일이 한 가지면 교회를 양육한다는 것은 또다른 일이다. 연극 프로그램, 광고를 통한 진흥 책략, 육신을 의존하여

  • 작성자 24.07.20 07:33

    인간을 높이는 능력발휘, 이러한 모든 일들은 육신의 관심을 끌지는 모르지만, 결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다. 우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세워 나가며, 이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

    󰊳 때가 이르기 전에 판단하지 말라(고전4:5).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게 하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살라. 그리하면 당시의 생애와 사역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 24.07.20 16:54

    @장코뱅 큰 틀에서는 본문 묵상과 비슷하지만 작게 보면 박목사님의 해석이 의외로 참신하네요.

  • 작성자 24.07.20 08:03

    <매튜 헨리 주석>

    주 안에서 자랑하는 것(고린도 후서 10:12-18)

    Ⅰ. 바울은 자기를 내세우거나 거짓 사도들이 한 것처럼 그러한 규칙으로 행동하기를 거절했다(12절). 그들은 자기를 추천하는 잘못된 방법을 취하였다.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며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업적을 생각하고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의 은혜와 은사와 권위와 능력을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든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보다 우월한 자와 비교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우리의 은혜와 은사를 감사하여야 하나 교만해서는 안 된다. 자기만이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바울은 속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결심하자.

    Ⅱ. 바울은 자기 행동에 대한 보다 좋은 규칙을 세웠다. 즉 "그러나 우리는 분량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라"(13절). 그의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권위 이상으로 자랑하지 않거나 그에게 위탁된 일과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 작성자 24.07.20 08:04

    거짓 선지자는 "남의 한계를 자랑하는 것이다." 바울의 결심은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바울은 여러 곳에서 이방인들에게 전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했다.

    Ⅲ. 그는 이 규칙에 의하여 행동했다.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14절) 특히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러하였다. 사도의 권위로써 그곳 에서 많은 사람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바울은 다른 사람의 노력을 자랑하지 않았다(15절).

    Ⅳ. 바울은 이 규칙을 잘 지켰다. 바울의 소망은 그들의 믿음이 증가되며 그들의 범위를 넘어서 아가야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했다. 바울은 그의 임무나 다른 사람의 선을 넘은 적이 없다.

    Ⅴ. 바울은 자기의 자랑을 너무 한 것같이 자기를 억제한다. 그의 원수들의 부당한 비난과 생각이 바울의 자랑을 일으켰다. 그들의 나쁜 방법이 바울이 지킨 옳은 방법을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너무 자랑하였을까 염려한다. 두 가지 일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1.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17절).

  • 작성자 24.07.20 08:05

    만약 우리가 좋은 규칙으로써 선한 일을 하였다면 모든 영광과 칭찬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특히 목사들은 자기들의 사역에 영광을 누리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며 성공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2.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라"(18절). 모든 아첨 중에서 자기 아첨이 가장 나쁘고 자기 칭찬도 그만큼 나쁘다. 자기 자랑은 교만만큼 헛되다. 우리 자신을 자랑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24.07.20 16:58

    @장코뱅 칭찬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아첨이 되는데 자기 아첨이라는 표현이 신박한 것 같습니다.

  • 24.07.21 15:07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7.20 08:10

    <호크마 주석>, “고린도후서

    =====10:12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없노라 - 본문에서 바울은 적대자들을 가리켜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이 자찬(自讚)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아마 자기들을 내세우기 위한 추천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적대자들은 추천서의 권위에 의존하여 자기들이 진정한 사도임을 과시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만 바울은 스스로를 추천하지도 않고 추천서에 의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3:1;5:12). 적대자들은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사도라고 자랑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도이다(갈 1:1). 그들은 비교를 통해 자기의 우월성을 과시하려 하지만 바울은 그런 것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로서...헤아리고...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 사실 적대자들이 만든 표준이나척도 즉 인간적인 지혜, 사도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려는 위압적인 태도, 수사학적인 웅변술 등은 당시에 어느 정도 일반성을 갖는 것이었다(Barrett)). 그러나 바울은 그런기준들을 이미 오래 전에 하찮은 것으로 버렸다(4:5; 고전 2:1-5). 바울이 보기에 그런 척도들은 천박한 것이었고 그 척도를 가지고

  • 작성자 24.07.20 08:08

    자신을 추정하고 과시하는 것이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10:13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 - 바울은 적대자들의 자랑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선교의 영역을 무시한 것이므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한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노노스'(* )는 '길이를 재는 막대기','줄자'라는 뜻인데 규범이나 표준의 의미로도 쓰이고(갈 6:16), 일정하게 한정된 영역을 가리키기도 한다(10:14-16). 본절에서 이 말은 후자의 의미이며 바울이 여기서 문제삼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선교 영역의 준수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고(행 9:15; 롬 1:5;15:18), 그에게 이방(異邦)을 선교영역으로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도 합의된 바 있다(갈 2:9).이런 한계에 입각하여 바울은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롬 15:20). 바울이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의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한계를 지키면서 행한 것이었

    =====10:14
    미치지 못할 자로서...이른 것이라 - 본절에는 두 가지 요점이

  • 작성자 24.07.20 08:09

    제시되어 있는데 첫째는 바울이 고린도에 갈 자격이 있고 고린도는 바울이 정당하게 선교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고린도에 복음을 처음 전한 사람은 바울 자신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바울의 적대자들이 남의 선교 영역에 손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은 참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들어와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11:4).

    =====10:15
    남의 수고를 가지고...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 바울은 결코 남이 수고한 것의 결과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롬 15:20). 고린도 교회는 다른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 때 바울이 최초로 복음을 전하여 설립되었기에 고린도에 교인들이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결과였다.그러나 적대자들은 남의 선교 영역에 들어와서 바울의 업적이 자기들의 것인 양 자랑하였다. 믿음이 더할수록...
    바라노라 - 바울이 바라는 것은 자기가 복음을 전파하여 믿음을갖게된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비례하여 자신의 선교영역이 더욱 확장되기를 바라는 것이었고(롬 15:23, 24), 그것과 더불어 복음으로 말미암는 그의 영향력이확대되기를 원했다.

  • 작성자 24.07.20 08:09

    이로써 그는 자기에 대한 성도들의 존경도 심화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그의 선교 영역을 준수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도록 할것이다(16절).

    =====10:16
    너희 지경을 넘어 - 본문의 의미는 고린도 지역을 넘어 로마와 서바나에 이르는 지역에까지 복음을 증거하려 한다는 것이다(행 19:21; 롬 15:19, 22-24). 그 지역들은남의 선교 영역이 아니며 그 누구도 복음을 증거하지 않은 불모지(不毛地)였다.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 본절은 고전 1:31에서와 같이 렘 9:22-24를 인용한 것인데, 그 내용은 사람이 자기가 가진 바 지혜나 용맹이나 부함을 자랑치말고 하나님 아는 것을 자랑하며,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자신을 자랑하기보다는 자신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누구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고 참된 사도라면 그는 자기를 자랑하기보다는 자기를 통해 섭리하신 주님을 자랑할 것이다(공동번역, RSV). 바울은 적대자들의 허위적 자랑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업적을 정당화 하였지만 그는 그런 것이 궁극적으로는

  • 작성자 24.07.20 08:10

    어리석은 일임을 알고 있다.
    이런점에서 본절은 바울이 자랑하는 자가된 것은 주를 더 자랑하기 위함이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 본절 '자랑'에 관한 주제의 핵심이 드러나고 있다. 바울은 진정으로 자신을 통해 인정받아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자들이 자기들이 만든 기준을 가지고 자신들을 자랑하는 행위가 어리석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결코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12절). 참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사도는 자신이 언젠가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을 알아(5:10) 자중하는 자이며 사람들로부터 안정받기보다는(마 6:2 ,6, 16)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는 자이다(고전4:5; 롬 2:29).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 앞에 전개되는 일들을 똑바로 보아야 하며 이러한 기준에 의해 바울과 적대자들 중 누가 진정으로 권위있는 사도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 24.07.20 17:04

    @장코뱅 호크마 주석의 내용은 매우 충실해서 공부하기에 좋습니다.

  • 24.07.20 09:45

    나르시스트가 교회 안에서 활동하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는 말씀이 허투루 들리지 않네요. 우선은 담임목사가 나르시스트가 되기에 좋은 조건들이 교회에 많아서 그런 점이 안타깝게 생각되고요, 교회 직책을 맡은 분들도 여기에 걸려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똑똑하고 영리한 애들보다는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격려와 칭찬을 자주 하다가 칭찬병에 걸리면 나르시스트가 되겠죠. 그래서 과도한 칭찬이 오히려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고 하더군요. 칭찬이 당장에는 편하고 꾸중과 엄격한 교육은 불편함을 초래하겠지만 장래를 위한다면 초달을 아끼지 않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들은 꾸중과 질책이 양약이 되었음을 커서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구약교회와 신약교회를 이렇게 양육하셨지요.
    요즘의 육아는 칭찬을 많이 하고 사랑의 매도 허용하지 않으며 아동 인권을 주장하다가 정작 교육의 때를 많이 놓치는 것 같습니다.

  • 24.07.20 17:08

    좋은 분별과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좋은 댓글로 보입니다.

  • 24.07.20 10:08

    지금까지도 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 같아요.
    말씀하셨듯이 교인들이 더 분별력을 키워서 자기 자랑과 칭찬에 사로잡힌 자들을 분별하고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겠습니다. 자체 교육을 해서 나르시스트들이 자중하고, 그런 기미가 있는 자들도 사전에 조심하도록 일깨워야겠습니다.
    신자들은 자기애에 빠지지 말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자랑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배워야겠어요. 설교자나 교회 리더들도 공중 앞에서 자기 얘기 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 24.07.20 17:10

    네, 매우 공감합니다.

  • 24.07.20 17:18

    공감합니다22

  • 24.07.20 17:12

    묵상 내용을 잘 읽고 주석에 첨부된 내용을 보면서 공부도 하고 은혜도 받습니다.

  • 24.07.22 19:58

    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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