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탐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므로 어떤 것이나 무슨 일에 대하여 만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정도, 이 선에서 족한 줄 알아야 하는데, 어쩌다 보면 벌써 욕심을 부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그 욕망을 채우지 못하게 되면 불평과 붊만이 쌓이게 되어 결국 정신 건강에도 해로움을 끼치게 됨을 알게 된다.
그래서 주어진 자신의 환경이나 형편에 대하여 족한 줄을 알고 만족할 수 있는 것은 복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고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이 없거나 좀더 좋은 것이 없을 때에도, 부족하고 궁색할지라도 그 상태로 족한 줄을 아는, 즉 지족(知足)할 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성도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하고 부족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더욱 깊이 체감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이 여물어가는 성숙의 때이기 때문이다. 욥도 극한의 시련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체험하는 성숙한 신앙의 자리가 되었다. 귀로만 들어 알고 있던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는 대면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42:5).
그 당시 최고의 부(富)를 누렸던 욥이었지만 그 풍족함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올바르고 마땅한 신앙이라고 여겨 왔지만, 정작 참된 신앙은 그 부요가, 그 행복이 다 사라져버리고 고통만 남겨진 자리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그 신앙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임을 욥은 실천적인 믿음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사도 바울도 자족하고 지족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주께서 맡기신 복음 전파의 사역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다. 수 많은 위험과 곤란 가운데서도 만족함과 지족하는 은혜로 사명 감당에 매진하였다. 바울은 이렇게 그 은혜를 고백하였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립보서4:11).
그러면서 바울은 자족하는 처신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4:12).
그 비결은 다름이 아니라 주 예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다. 그것을 알고 확신하며 그래서 그 주님을 굳건하게 의뢰하는 믿음이다. 그렇게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관리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도록 주 예수께 맡기신 그 사실을 믿고 의심치 않는 신앙을 바울은 견지하였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으로 의뢰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렇게 외쳤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4:13).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먹을까 염려치 말라고 하셨다. 천부, 곧 하늘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에서 극한 곤란 가운데 살지 않는다. 그래서 생활에 조금은 불편하고 모자란것들이 있을지라도 그 상태를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신 복을 만족하게 여기며 사는 지족(知足)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하겠다.
"그러나 지족(知足)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디모데전서6:6).
지족하는 마음이 세상의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멀리하고 이 세상의 자기 자랑거리의 유혹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을 덧입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