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기타 연주에 바쳐온 거장 에릭 클랩튼의 노련미와 진솔함이 뚝뚝 묻어나는 음반, 바로 어쿠스틱 라이브 앨범 <Unplugged>다. 1992년 초 엘튼 존과 함께 유럽 미국 순회공연을 한 뒤 MTV에서 가진 특별 공연 실황을 엮은 것이다. MTV의 'Unplugged' 시리즈는 건스 앤 로지스, 포이즌, 머라이어 캐리 등 인기 있는 실력파 아티스트들이 출연해 순수한 음악성을 들려주는 코너로 이름이 났다. 전기기타나 오버 더빙 같은 일체의 포장이나 조작 없이 있는 날 것 그대로의 연주와 모습을 보여줘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앨범에서 에릭 클랩튼은 기타와 보컬을 맡았고, 밴드 멤버인 Ray Cooper(퍼커션), Nathan East(베이스), Steve Ferrone(드럼), Chuck Leavell(키보드), Andy Fairweather(기타), Katie Kisson(백 보컬), Tessa Niles(백 보컬) 등이 함께 참여해 차분하고 잔잔하게 14곡을 연주했다.
첫 곡 'Signe'은 에릭 클랩튼 자신의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6현을 자유자재로 요리하며 솜씨를 뽐낸다. 이어지는 'Before you accuse me'는 다니엘의 작품이고, 빅 빌리 브론즈의 고전인 'Hey hey'는 가스펠적인 내용인데 슬라이드 기타 연주가 듣기 좋다. 영회 주제곡으로 크게 히트한 'Tears in heaven'은 에릭 클랩튼이 윌 제닝스와 공동으로 만든 작품으로 여러 음악을 두루 섭렵한 그의 솔직한 사운드가 감동을 자아낸다. 'Lonley stranger'는 에릭 클랩튼의 자작곡으로 방랑 속에 지내온 자신의 기타 여정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자전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이어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 out'은 지미 콕스 작사·작곡의 블루스 넘버로 피아노 선율이 재즈적인 흐름을 보이는 게 특징. 은은하게 다가오는 에릭 클랩튼의 보컬이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에릭 클랩튼의 명곡 'Layla'는 짐 고든과 에릭 클랩튼이 만든 곡으로 데릭 앤 더 도니노스 시절 발표해 오늘날까지도 기타 교습의 필독서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동안 일렉트릭 기타의 빠르고 하드한 사운드로 듣던 것과는 달리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연주로 듣는 것도 다정다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어서 블루스의 명인 로버트 존슨의 'Walkin' Blues'를 통해 초기 1920년대 기타 사운드를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데, 존경하는 뮤지션의 곡을 연주하는 에릭 클랩튼의 모습에는 경건과 숙연함마저 배어 있다.
민속곡인 'Alberta'는 후디 레드베터가 어레인지해 널리 알려진 블루스 넘버로 랙타임의 피아노와 어우러진 기타와 보컬이 향수를 자아낸다. 너무나 유명한 'San Francisco Bay Blues'는 제시 풀러의 작품으로 흥겨운 리듬에 하모니카가 가미된 홍크 통크Honk-Tonk(랙타임을 연주하던 싸구려 술집에서 탄생한 블루스 음악) 스타일로 연주, 관중들과 함께 박수 치며 노래하는 정겨운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로버트 존슨의 'Malted milk'는 1930년대 말에 이르러 패턴→브라운→하우스의 전통을 맥으로 하는 소위 'Downhome'이라는 새로운 붐에 편승한 작품이다. 슬라이드 기타 주법이 빚어내는 서정성이 뛰어나다. 에릭 클랩튼과 로버트 크레이가 만든 'Old love'는 현대판 블루스로 그가 존경하는 로버트 존슨의 'Ramblin' on my mind'의 소절과 유사한 애조 띤 작품이다. 마지막 곡 'Rollin' & tumblin''은 흥겹게 연주하는 기타와 퍼커션, 드럼 등이 돌고 도는 세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모겐필드의 작품. 에릭 클랩튼은 이곡을 마지막으로 앨범을 마무리하는데, 시간 문제로 LP에는 실리지 못하고 카세트와 CD에만 수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