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거듭난다는 것” 新しく生まれるということ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도 먼저 여러분께 질문을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자, 우선 가슴에 손을 얹으시고, 제가 드리는 말씀에 대해서 <그렇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서는 큰 소리로 <아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두 번째 질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세 번째 질문. 나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확신합니다.
네 번째 질문, 나는 주님 안에서 거듭났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런 질문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특히 마지막 질문, 저는 지금까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보고 하는 말이 예수 믿고 거듭 났냐는 거예요.
글쎄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예전에는 좀 당혹스러웠고, 요즘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아, 이런 가엾은 어린 양을 어쩌면 좋을까……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 잠시 화제를 바꾸어서 모세의 기적에 대한 말씀을 떠올려볼까 합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 60여 명이 애굽으로 들어간 지
400여 년 만에, 모세의 인도로 다시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몇 백 년 동안 노예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도 그들의 할아버지도 모두가 태어나서부터
노예였습니다.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들은 자유의 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며칠을 가자 홍해가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뒤에서는
애굽의 정예부대가 전속력으로 추격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절망했습니다. 좌절했습니다. 차라리 눈앞에 산이 가로막고 있었더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넘어볼 수 있었을 텐데, 이건
노력하면 건널 수 있는 강이나 개천이 아닙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지금 성인 남성만 60만 명이었습니다. 남녀노소 모두 합하면 200만 명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갓난 아기, 그리고 갓난 아기들을 업거나 안고 가는 여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좀 어느 정도라야 어떻게 해보든지 하지요. 이는 99%가 아니라 100%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우리를 애굽에서 탈출시켜준 하나님이 대단한 분인 줄 알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기껏 여기까지 인도해놓고, 이게 뭘 어쩌자는 것인가……. 이거야말로 철저한 배신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안
들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홍해가 없는 길로, 조금 편안한 길로 인도하실 능력이 없으신 분이십니까. 아니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 이 순간도 천지만물을 다스리고 계신 분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가 없는 길로 인도하실 정도가 아니라, 한 순간에 애굽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실 수도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차라리 그게 더 편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런 만군의 주께서 왜 굳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번거롭게
홍해 앞으로 인도해오셨을까요.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니, 반드시 그러셔야만 했던 세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애굽에서 열 가지 놀라운 재앙을 내리게 됩니다. 그 재앙들이 무엇이었습니까.
첫 번째 재앙은 온 나라의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마실 물도 없어지고 온 나라에 악취가 가득하게 됩니다.
두 번째 재앙은 나일 강에서 개구리가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집안에도 들어오고 왕이 있는 궁 안으로도 들어오고 침실에까지
들어옵니다.
세 번째 재앙은 온 나라에 이가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멀쩡히 있다가 막 여기저기가 가려워집니다. 목욕을 해도
소용이 없고 옷을 빨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가 사람과 짐승들을 낮이나 밤이나 괴롭힙니다.
네 번째 재앙은 이번에는 어디서 날라왔는지 온 나라에 파리가 가득해집니다.
다섯 번째 재앙은 질병으로 인해서 가축들이 죽습니다.
여섯 번째 재앙은 사람이나 짐승들에게 악성 종기가 생겨요.
일곱 번째 재앙은 우박이 내립니다. 그 모습을 출애굽기 9장 2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9장 24절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雹が降り、火が雹のただ中をひらめき渡った。それは、エジプトの地で国が始まって以来どこにもなかったような、きわめて激しいものであった。
애굽이 어디입니까. 아프리카 대륙이지요. 거기에 우박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우박이 또 그냥 우박이 아닙니다.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렸다고 하니 얼마나 난리였겠습니까. 이렇게 되니 사람도 다치고 짐승들도 다치고, 밭에 있는 농작물들도 모두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재앙은 이것으로도 끝나지 않습니다.
여덟 번째 재앙은 메뚜기 떼가 올려왔습니다. 출애굽기 10장 13절~1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10장 13절~14절
“13.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14.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モーセはエジプトの地の上に杖を伸ばした。主は終日終夜、その地の上に東風を吹かせた。朝になると東風がいなごの大群を運んで来た。
いなごの大群はエジプト全土を襲い、エジプト全域にとどまった。これは、かつてなく、この後もないほどおびただしいいなごの大群だった。
다음으로 아홉 번째 재앙은 온 나라를 흑암이 덮치게 됩니다.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어느 정도냐 하면 출애굽기 10장 23절에 보면
사람들이 서로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캄캄해졌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마지막 재앙입니다. 모든 나라의 장자, 그러니까 첫 아들이 다 죽는데 이는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들 새끼들도 모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이제 애굽 왕 바로는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열 가지 재앙을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입장에 서서 봤을 때의 일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하면, 똑 같은 재앙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스라엘 자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일어난 열 가지 재앙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만, 반면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어땠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들도 역시 이 열 가지 재앙을 모두 경험했을까요?
출애굽기 9장 6절, 9장 26절, 10장 23절, 12장 23절 등의 기록에 의하면 이 열 가지 재앙 중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확실히 미치지 않은 재앙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네 가지 재앙입니다.
다섯 번째 가축이 죽은 재앙, 일곱 번째 우박이 내린 재앙, 아홉 번째 흑암이 덮인 재앙, 그리고 열 번째 장자가 죽는 재앙입니다.
다른 재앙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네 재앙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들, 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는 지역에는 이와 같은
재앙이 미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재앙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또 어떤 일이 발생할 수가 있냐 하면, 다시 말해서
가축들이 죽은 재앙, 우박이 불덩이와 함께 내린 재앙, 흑암이 덮인 재앙, 그리고 장자가 죽는 재앙이 애굽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자손들은 몰랐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습니까. 물이 벌겋게 피처럼 돼? 개구리나 파리나 메뚜기가 막 늘어나? 몸에 종기가 나? 이거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거 아니야? 왜냐하면 적어도 이것만은 자기들도 겪었고 다른 재앙은 겪지 못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어쩌다가,
우연히 일어났을 뿐 아니야? 이런 생각을, 이스라엘 자손들 모두가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해도,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안 가졌다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냐 하면, 그렇습니다. 홍해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모습을
직접 보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진 게 아니라, 물이 점점 줄어들어서 얕은 곳에 길이 났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현상은 지금도
있으니까 기적이랄 것도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 분들은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14장 21절~22절
“21.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モーセが手を海に向けて伸ばすと、主は一晩中、強い東風で海を押し戻し、海を乾いた地とされた。水は分かれた。
イスラエルの子らは、海の真ん中の乾いた地面を進んで行った。水は彼らのために右も左も壁になった。
그냥 물이 줄어들고 얕은 곳에 있는 길이 드러난 게 아닙니다. 바다 한 가운데에 길이 나고 바닷물들은 좌우에 벽이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금이 21세기라 하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일이 이렇게 되면
그 때까지 1%의 의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로 인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리고 지혜 있는
사람, 지혜 없는 사람을 불문하고, 믿음이 있었던 사람, 믿음이 없었던 사람을 불문하고 모두가 100%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찬양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된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통과해야 했던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홍해를 건넌 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23절~28절
“23.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2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エジプト人は追跡し、ファラオの馬も戦車も騎兵もみな、イスラエルの子らの後を海の中に入って行った。
朝の見張りのころ、主は火と雲の柱の中からエジプトの陣営を見下ろし、エジプトの陣営を混乱に陥れ、
戦車の車輪を外してその動きを阻んだ。それでエジプト人は言った。「イスラエルの前から逃げよう。主が彼らのためにエジプトと戦っているのだ。」
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あなたの手を海に向けて伸ばし、エジプト人と、その戦車、その騎兵の上に水が戻るようにせよ。」
モーセが手を海に向けて伸ばすと、夜明けに海が元の状態に戻った。エジプト人は迫り来る水から逃れようとしたが、主はエジプト人を海のただ中に投げ込まれた。
水は元に戻り、後を追って海に入ったファラオの全軍勢の戦車と騎兵をおおった。残った者は一人もいなかった。
애굽 군대들도 눈앞에 홍해가 펼쳐진 상황을 보고는 놀랐겠지요.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 애굽 왕 바로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굽 군대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추격하여 그들도 역시 홍해 한 가운데에 난 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다시 길을 막아버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무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두가 홍해를 건너게 되고, 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말을 타면서 달려온 애굽 군대들은 이 또한 한 사람도
남김 없이 홍해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는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여러분께서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믿음이 없었던 사람들마저도 모두를 믿게 만들었던
이 놀라운 홍해의 기적. 이제 애굽에는 그들을 추격할 왕도 군대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라고 한다면, 홍해를 갈라진 그대로 놔둬도
되지 않겠어요? 나중에라도 홍해가 갈라져 있다고 하는 놀라운 광경을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그야말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대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들이 문제였다면 그들이 죽고 난 다음에 다시 한 번 홍해를 갈라놓으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홍해를 다시
닫아버리셨을까요. 홍해를 갈라놓은 채로 두면 하나님이 버티기 힘드시기 때문에요? 설마 하나님이 그 정도 가지고 힘들어 하셨겠습니까.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홍해는 반드시 닫혀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큰 힌트가 바로 출애굽기 13장 17절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7절
“17.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さて、ファラオがこの民を去らせたとき、神は彼らを、近道であっても、ペリシテ人の地への道には導かれなかった。神はこう考えられた。「民が戦いを見て心変
わりし、エジプトに引き返すといけない。」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목이 다른 길도 있었으나 굳이 홍해 쪽으로 인도해 오신 세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 쪽으로 인도하신 세 번째 이유, 그것은 지름길로 가게 될 경우 거기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땅이 있는데, 괜히 이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할까봐요? 그렇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버릴까봐 굳이 홍해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돌아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뻑 하면 노예로 살았던 세월,
종살이를 했던 세월을 그리워합니다.
출애굽기 16장 3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イスラエルの子らは彼らに言った。「エジプトの地で、肉鍋のそばに座り、パンを満ち足りるまで食べていたときに、われわれは主の手にかかって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のだ。事実、あなたがたは、われわれをこの荒野に導き出し、この集団全体を飢え死にさせようとしている。」
민수기 11장 5절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エジプトで、ただで魚を食べていたことを思い出す。きゅうりも、すいか、にら、玉ねぎ、にんにくも。
여러분, 이는 말하자면 교도소에서 나오게 해주었는데, 그 교도소 생활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그들의 불평은 끊이지 않습니다.
민수기 14장 2절~5절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イスラエルの子らはみな、モーセとアロンに不平を言った。全会衆
は彼らに言った。「われわれはエジプトの地で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あるいは、この荒野で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のだ。
なぜ主は、われわれをこの地に導いて来
て、剣に倒れるようにされるのか。妻や子どもは、かすめ奪われてしまう。エジプトに帰るほうが、われわれにとって良くはないか。」
そして互いに言った。「さあ、われわれは、かしらを一人立ててエジプトに帰ろう。」
そこで、モーセとアロンは、イスラエルの会衆の集会全体の前でひれ伏した。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버리고 또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자가 사로잡힐 것이 분명하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와 같은 불순종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한 발 자국 들어가보지도 못한 채, 아니,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해본 채,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떠돌며 쓸쓸히 죽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걱정했던 그들의
자녀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홍해 바다가 막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뻑 하면 돌아가자고 하는데, 홍해 바다가 그대로 열려 있었다면
오죽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홍해 바다 외에도 그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놓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22절
“21.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主は、昼は、途上の彼らを導くため雲の柱の中に、また夜は、彼らを照らすため火の柱の中にいて、彼らの前を進まれた。彼らが昼も夜も進んで行くためであった。
昼はこの雲の柱が、夜はこの火の柱が、民の前から離れることはなかった。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한 후 지도와 나침반을 주면서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을 뿐입니다.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이렇게 며칠만 이동을 하게 되면 자기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지요.
누구는 이렇게 말하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지도나 나침반이 없었다 하더라도 옛날 사람들은 별을 보고 방향을 알았을 것이다……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여러분,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요? 예,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노예한테
의무교육이 있나요? 천문학을 가르치나요? 아니에요. 노예들은 주인이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런 지식이 있을
리도 만무했습니다.
아니, 동서남북을 알아야 애굽으로 가든지 할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런 지식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애굽으로 가려고 해도 어느 쪽으로 가야 할 지 방향을 알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들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식량문제였습니다. 우선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강도 없고
호수도 없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보면, 그들이 가는 곳마다 물이 없어서 그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곳에서는 물을 가죽 부대 같은 곳에 담아서 간다 하더라도 얼마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 또 어떤 분은 이러실지 모르지요. 아니, 홍해 물을 마시면 되지 않냐 하실지 모르지만, 홍해는 말 그대로 바다입니다.
소금물이에요. 제가 알아보니까 소금 농도가 다른 바다들보다도 높기 때문에, 이걸 사람이 벌컥벌컥 마시면 오히려 큰일 납니다.
그래요. 뭐, 애굽으로 돌아가기 위해, 물은 어떻게든 준비를 했다고 칩시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만나였습니다.
풀 한 포기 안 나는 광야에서 그들은 식량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식량을 준비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만나>입니다.
성경에서는 만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16장 13절~15절
“13.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すると、その夕方、うずらが飛んで来て宿営をおおった。また、朝になると、宿営の周り一面に露が降りた。
その一面の露が消えると、見よ、荒野の面には薄く細かいもの、地に降りた霜のような細かいものがあった。
イスラエルの子らはこれを見て、「これは何だろう」と言い合った。それが何なのかを知らなかったからであった。モーセは彼らに言った。「これは主があなたがたに食物として下さったパンだ。
출애굽기 16장 35절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イスラエルの子らは、人が住んでいる土地に来るまで、四十年の間マナを食べた。彼らはカナンの地の境に来るまでマナを食べた。
이스라엘 자손은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광야에서도 한 두 사람도 아닌 2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40일도 아니고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신비한 만나를 먹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 만나에는 재미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19절~24절
“19.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22.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23.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4.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モーセは彼らに言った。「だれも、それを朝まで残しておいてはならない。」
しかし、彼らはモーセの言うことを聞かず、ある者は朝までその一部を残しておいた。すると、それに虫がわき、臭くなった。モーセは彼らに向かって怒った。
彼らは朝ごとに、各自が食べる分量を集め、日が高くなると、それは溶けた。
六日目に、彼らは二倍のパンを、一人当たり二オメルずつを集めた。会衆の上に立つ者たちがみなモーセのところに来て、告げると、
モーセは彼らに言った。「主の語られたことはこうだ。『明日は全き休
みの日、主の聖なる安息である。焼きたいものは焼き、煮たいものは煮よ。残ったものはすべて取っておき、朝まで保存せよ。』」
モーセの命じたとおりに、彼らはそれを朝まで取っておいた。しかし、それは臭くもならず、そこにうじ虫もわかなかった。
이 신비한 만나의 상미기간이 대단히 짧습니다. 딱 하루예요. 그러니까 하는 수 없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만나를 거두고는 그날
동안에 다 먹어야지, 다음 날까지 두면 벌레가 생겨서 먹을 수가 없게 된대요. 그러면 조금 더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 좀 늦게
나가서 거두면 되겠지 하고 늦게 나가면 어떻게 되요? 예, 해가 높이 뜨고 햇볕이 뜨거워지면 없어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럼 자연 현상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증거가 있지요. 매일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만나를 거두는데, 그게 다음 날
아침까지 놔두면 벌레가 생겨요. 그런데 안식일은 일을 하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안식일 전날에는 안식일에 먹을 것까지 두 배를
거두어서 보관하는데, 그러면 안식일에는 그 때까지 두더라도 벌레가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연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무리가
있지요. 자연이 어떻게 안식일과 평일을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기록을 보면 만나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 그것도 특별히 이스라엘 자손들만을 위해서 내리시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곳 외에는 만나가 안 내렸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만약에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무리들이 있어요. 걸어서 며칠이나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도시락이 있어야 하겠지요. 만나를
많이 거두었습니다. 유통기한이 얼마요? 예, 단 하루. 안식일에는 원래 먼 길을 가면 안 되지만, 안식일을 어긴다 하더라도 길어봤자
이틀입니다. 그 정도의 식량으로 그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애굽은 고사하고, 출반한지 얼마 못 가서 길 잃고 목 마르고 배
고파서 쓰러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두심으로써 그들이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고생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놀라운 축복, 넘치는 축복을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만에 하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칩시다. 만약에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구, 먼 길을 오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애굽에서 편안하게 사세요……그랬을까요?
생각해보십시오.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추격하다가 애굽 왕 바로가 죽었습니다. 정예 애굽 군대가 홍해에 빠져 죽었어요. 애굽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만든 것이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렇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렇다면, 애굽 왕의 원수 애굽 군대의 원수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이 살려두었겠습니까.
여러분, 사랑하는 자기 아이의 손목을 잡고 가는 엄마가, 빨간 신호 때 아이가 길을 건너려고 하면, 보내줘야 하겠습니까. 그게
사랑인가요? 아닙니다. 손을 잡아 끌어야지요. 그래도 가려고 막 난리를 쳐요. 그러면 보내줘야 되나요? 아닙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로 가지 못하도록 잡아야지요. 그게 사랑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다가도,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금새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지금까지 주님
안에 있으면서, 지금까지 주님과 동행하면서 수많은 주님의 능력을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우리들은 금새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성경에서 애굽은 단지 그 나라가 아니라 <믿음>의 반대의 의미인 <세상>을 뜻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반복해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1장 1절~3절
“1.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ああ、助けを求めてエジプトに下る者たち。彼らは馬に頼り、数が多いといって戦車に、非常に強いといって騎兵に拠り頼
み、イスラエルの聖なる方に目を向けず、主を求めない。
しかし、主は知恵のある方。わざわいをもたらし、みことばを取り消さない。主は、悪を行う者の家と、不法を行う者を助ける者に対して立ち上がる。
エジプト人は人間であって神ではなく、彼らの馬も肉であって霊ではない。主が御手を伸ばされると、助ける者はつまずき、助けられる者は倒れて、皆ともに滅
び果てる。
예레미야 46장 25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의 아몬과 바로와 애굽과 애굽 신들과 왕들 곧 바로와 및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라”
エレミヤ書 46章 25節
イスラエルの神、万軍の主は言われる。「見よ。わたしは、テーベのアモン、ファラオとエジプト、その神々と王たち、ファラオと彼に拠り頼む者たちを罰する。
여러분, 돌아가려고 했던 발걸음을 멈춰야 합니다.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멈춰야 합니다.
로마서 8장 5절~6절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肉に従う者は肉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が、御霊に従う者は御霊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
肉の思いは死ですが、御霊の思いはいのちと平安です。
여러분,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따르려고 하는 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영의 생각을 가져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바라보던 하와의 눈빛을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そこで、女が見ると、その木は食べるのに良さそうで、目に慕わしく、またその木は賢くしてくれそうで好ましかった。それで、女はその実を取
って食べ、ともにいた夫にも与えたので、夫も食べた。
세상이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그처럼 아름답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탐스럽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육신의
생각, 사망의 생각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생각 영의 생각을 가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닫아버리셨던 것처럼 믿음을 갖기 전의 생각, 세상적인 방법에 젖어
살았던 자신의 생각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거듭난 사람의 모습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나는 거듭난 사람이다”라고 해서 거듭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본인의 주장인 것이지요. 본인이
주장한다고 해서 모두가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될 경우 잘못하면 신앙적인 교만에 사로잡힐 수가 있습니다. 이 신앙적인
교만에 사로잡히게 되면요 “나는 거듭난 사람이다. 그런데 넌 왜 제대로 못 믿냐” 뭐 이러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나는 거듭난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은 이는 마치, 시험을 보고 나와서 “나는 합격했다”라고 외치는
사람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합격 여부는 본인이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거듭남도 마찬가지지요. 판단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주님께서 판단하시는 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궁금하세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겠어요?
그렇다면 끝으로 제가 주님의 판단을 미리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몰래 오늘만 특별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이를 주님 말고 누가 먼저 알아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오히려 본인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나야 뭐 교회 다니기 전이나 다닌 다음이나 똑같은데 뭘……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야. 너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 믿으면서 뭔지 잘 모르겠지만, 참 괜찮아 진 것 같아……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그럼
한 번 교회 나가볼까?” 이런 말이 나오면 이는 정말 그 사람은 거듭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는 하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어보면, 아이구 난 교회에 다니고 싶다가도 저 사람만 보면 교회
다니고 싶어지지 않아……. 이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하겠지요.
에베소서 4장 21절~24절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ただし、本当にあなたがたがキリストについて聞き、キリストにあって教えられているとすれば、です。真理はイエスにあるのですから。
その教えとは、あなたがたの以前の生活について言えば、人を欺く情欲によって腐敗していく古い人を、あなたがたが脱ぎ捨てること、
また、あなたがたが霊と心において新しくされ続け、
真理に基づく義と聖をもって、神にかたどり造られた新しい人を着ることでした。
우리 모두 뒤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은 거듭난 사람으로서,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을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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