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또 어떤 가요: 가요계의 원-히트-원더 외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형기 선생만큼이나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어떤 가요: 원-히트-원더 톱20'에 보여준 기대 이상의 반응에 약간 고무되고 살짝 등 떠밀려 이렇게 '외전' 형식의 원고를 하나 더 쓰게 됐다. 왜 이 곡은 빠졌느냐 하는 물음에 답하는 일종의 애프터서비스(A/S) 원고다. 댓글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된 노래 5곡에 대한 얘기를 풀어봤다. 또 하나, 맨 처음 기획을 하고 머리말을 쓸 때도 밝혔듯이 선곡된 노래들은 전적으로 나의 기억에 의존해 정해졌다. 그래서 나의 기억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주기 바란다. 다음에 좀 더 참신한 기획이 생기는 대로 2PM처럼 'I'll Be Back'하겠다. 토끼춤은 추지 못하겠지만. 마지막으로, 원고 작성에 많은 영감을 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전한다.
1. 이덕진 - 내가 아는 한 가지 (1992)
이덕진을 원-히트-원더 명단에 넣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에겐 숨은(?) 히트곡 하나가 더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있다. '내가 아는 한 가지'만큼의 인기는 아니었지만 하드 록 스타일로는 드물게 [가요톱텐] 순위 상위권까지 올라갔던 노래다. 그렇지만 2집 '굿바이 엑스트라'로 1집의 인기를 이어가지 못한 건 분명 아쉬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조금만 머리가 길고 잘 생기면 무조건 테리우스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덕진 역시 '가요계의 테리우스'라고 불렸다. 하지만 문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상대적으로 좀 더 잘 생기고 좀 더 인기가 많았던 신성우라는 또 다른 테리우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비교될 수밖에 없었고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왕 그렇게 된 거, 테리우스 말고 '가요계의 안소니' 정도로 틈새시장을 노렸으면 어땠을까?
2. 조영남 – ‘화개장터’ (1988)
조영남이 원-히트-원더라고 말하는 분들은 연령대가 어리거나 가요에 별 다른 관심이 없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무릎팍도사]에서 이장희가 증언한 것처럼 조영남에게는 이미 톰 존스의 노래를 번안해 부른 '딜라일라'라는 히트곡이 있었고, 그 외에도 '사랑이란'이나 '제비' 같은 노래들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화개장터' 이후의 히트곡 '도시여 안녕'이 있지 않은가. 이 노래는 인기는 차치하고라도 미국을 대표하는 펑크 밴드 그린 데이의 'American Idiot'이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게 만든 노래다. 두 노래 모두 미국의 민요 멜로디를 차용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확실한 건, 조영남은 결코 원-히트-원더 가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의 얼굴이 자연산이라는 것이다.
3. 김흥국 – ‘호랑나비’ (1989)
'59년 왕십리'를 흑싸리 껍데기로 보지 않는 이상, 김흥국을 원-히트-원더 가수로 모는 건 부당하다. 단기간의 임팩트는 '호랑나비'였지만 은근하게 지속적인 인기를 얻은 건 '59년 왕십리'였다. 행사장에서도 김흥국은 더 이상 호랑나비 춤을 추지 않지만 '59년 왕십리'만은 아직도 애창하고 있다. 김흥국의 왕십리 사랑을 매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다른 괴작 '레게파티'도 있지 않은가. 이건 노래보다 음반 재킷 사진이 더 화제가 됐는데, 이번에도 김흥국은 자신의 무지를 증명하려는 듯 레게 음악을 들고 나와서는 정작 중동의 터번을 쓰고서 재킷 사진을 찍었다(물론 축구공도 함께였다). 그는 레게가 저기 어디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서 만들어진 줄 알았나보다. 으아~ 무지 돋네.
4. 김민교 – ‘마지막 승부’ (1991)
김민교를 제외한 이유는 지난 회에 장현철의 '걸어서 하늘까지' 글에서 잠시 언급했었다. 거기에 나는 "'걸어서 하늘까지'를 비롯해서 '질투', '마지막 승부' 등의 주제가들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가운데서 굳이 이 노래 '걸어서 하늘까지'를 고른 건, 다른 주제가들이 '표절'이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표절 시비가 일면 교묘하게 그 부분만 고쳐서 다시 부르던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그런 편법으로 주제가를 불러 인기를 얻었던 어떤 가수는 지금도 행사를 뛰며 그때의 노래를 부끄럼 없이 부르고 다닌다. 격노할 일이다. 이래선 공정사회를 이룰 수가 없다구!"라고 썼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가수'가 바로 김민교다. 김민교는 이 노래가 큰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전히 행사를 돌며 자랑스레 이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이게 과연 공정한 일인가? 그래서 굳이 거론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이 노래는 여기서 듣지 말도록 하자. 이 불공정한 노래에 클릭을 해 경제적 도움을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 유튜브로 가서 듣자. 공정사회구현!
5. 마로니에 - '칵테일 사랑’ (1994)
마로니에는 김선민이 곡을 만들고 주도하던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3집에서 '칵테일 사랑'이 큰 인기를 얻긴 했지만, 그 전에 권인하와 신윤미가 부른 '동숭로에서'가 먼저 히트했었다. 1980년대 대학생들과 대학로의 낭만을 노래한 이 노래는 라디오를 중심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이후 '칵테일 사랑'이 워낙 큰 인기를 얻으며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다. 하지만 '칵테일 사랑' 역시 불공정한 노래였다. 녹음을 마친 보컬 신윤미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노래가 인기를 얻자 기획사에선 립싱크 가수들을 내세워 그들이 노래한 것처럼 무대에 세운 것이다. 말하자면 포탄인 것처럼 행동했는데 알고 보니 보온병이었던 것. 그 가수들은 '한국의 밀리 바닐리'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립싱크에 매진했으나 신윤미의 소송에 의해 정체가 드러났다. 안타깝게도 립싱크를 하나의 장르로 규정했던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는 이들을 영입하지 않았다. 입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