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동국대 교수들의 선언>
미래의 주역을 우민화ㆍ획일화시키는
반교육적․반민주적․반역사적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
1.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요하기 위해 역사와의 대화를 외면하지 말라.
한국사 교육의 목적은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 바탕한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데 있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역사적 판단력․비판력․창조력을 함양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 검정제도는 완벽하지 않지만 다양한 역사적 관점 아래 학문적 성과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보장해주고 있다. 반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획일적인 역사관을 강요함으로써 학생들의 다양성․창의성을 말살하고 결국 우민화로 나아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정제 추진자들은 현행 검정교과서가 이념적인 편향성 때문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여 국민통합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사 교육의 기본적인 목적도 이해하지 못한 몰지각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가장 민주적인 국가들은 왜 국정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는가? 일부 선진국들은 검정제마저도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와 창의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역사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특정 세력의 편협하고 획일적인 역사관을 미래의 주역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반교육적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결연히 반대한다.
2. 민주주의를 부정하기 위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리지 말라.
현재 정부와 여당은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제도를 국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방 이후 검인정으로 발행되던 한국사 교과서가 처음으로 국정화된 것은 독재가 극단적으로 치닫던 유신 시대에 들어서였다. 한국사 국정화는 민주주의 혁명으로 몰락한 이승만 정권 때에도 시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민주주의의 사망 선고와 다름없는 조치였다. 민주화를 외친 수많은 국민의 희생과 노력으로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나서야 국정화는 비로소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이 민주화운동의 결실인 검정제를 폐지하고 독재 정권의 산물인 국정제를 부활시키려는 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유신 시대의 ‘국사’ 국정교과서가 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로 미화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였던 것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근거해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로 나아가려는 반민주주의적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결단코 반대한다.
3. 정권의 입맛에 길들이기 위해 역사의 거울을 깨트리지 말라.
현재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논리와 입맛에 맞는 역사 인식을 주입하기 위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 그 동안에도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좌편향 매도, 수준 미달의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의 검정 통과, 강제 명령에 의한 부당한 수정 요구 등 사실과 국정과 다름없는 여러 조치들이 시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역사는 특정 정권이나 세력에 의해 통제․소유되어서 안 되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국정화 추진자들은 조선 시대에 역사가 권력에 의해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국왕조차 실록을 열람할 수 없도록 했던 사실을 듣지 못했는가? 그들은 만약 정권이 바뀌었을 경우에도 과연 그 정권에 의해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집필되는 것을 흔쾌히 찬성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따라서 우리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마저 무시하고 오로지 정권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는 반역사적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단호히 거부한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공론을 외면하고 미래의 주역을 우민화․획일화시키는 반교육적․반민주적․반역사적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와 발전은 절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정화 추진자들은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시대착오적인 조치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끝>
2015년 9월 2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동국대 교수들
강택구(역사교육과), 권승구(식품산업관리학과), 권재현(영상의학과), 고재석(국어교육과), 김병곤(다르마칼리지), 김상일(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김승호(국어교육과), 김신재(국사학과), 김양수(중어중문학과), 김영우(약학과), 김용태(불교학술원), 김 준(멀티미디어학과), 김태준(국문학 명예교수), 김형용(사회언론정보학부 사회학), 김혜숙(국어교육과), 김환기(일어일문학과), 김홍일(건축공학부), 김효규(광고홍보학과), 남근우(다르마칼리지), 남진숙(다르마칼리지), 노대환(사학과), 박광현(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박석홍(중어중문학과), 박순성(북한학과), 박영환(중어중문학과), 박용희(국사학과), 박종배(교육학과), 박종호(영화영상학과), 박진희(다르마칼리지), 변종필(법학과), 봉일원(독어문화학), 서인범(사학과), 안홍엽(통계학과), 양홍석(사학과), 유흔우(철학과), 윤선태(역사교육과), 윤재웅(국어교육과), 이상일(건설환경공학과), 이승철(지리교육과), 이승호(의학과), 이원석(다르마칼리지), 이장욱(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이주하(행정학과), 이창훈(약학과), 이호규(신문방송학과), 이효정(교육학과), 임호일(독문학 명예교수), 장시기(영어영문학부), 전미경(가정교육과), 전승우(경영학부), 정윤길(다르마칼리지), 정환국(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조상식(교육학과), 조 은(사회학 명예교수), 조의연(영어영문학부), 차승재(영화영상제작학과), 최연식(사학과), 최원준(약학과), 최인숙(철학과), 최중철(화학과), 한만수(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한용수(중어중문학과), 한철호(역사교육과), 홍윤기(철학과), 황인규(역사교육과) 이상 6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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