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는 도시
양상태
비운다.
감았던 눈을 뜨니 네온은 도시를 빨아들이고 문 닫을 상가의 간판만이 하품한다. 불빛은 서서히 번화가 후미진 곳에서부터 혀를 내밀어 맛을 보기 시작하여 전체를 삼키려 든다. 때를 놓친 귀뚜라미 어둠 찾아 짖어 대고 바퀴벌레보다 강인한 턱을 가진 사마귀도 끼어들려 한다. 순간을 벗어나려는 자들을 거미는 포집할 악보를 펼쳐 든다. 찾기 어려운 한편에서 생쥐들은 뽕을 갉으며 지구를 온통 갉아먹으려고 종말의 시동을 건다. 파렴치한 잠룡들의 구토물에서 역한 냄새를 맡은 고양이는 교회의 종탑으로 다급히 뛰어올라 울부짖는다.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보이지 않던 교회의 십자가는 계면쩍다는 듯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쓰디쓴 약을 물고 있는 것처럼 종소리는 메시지를 빠뜨린 채 침묵의 소리를 바람 속에 흩뿌린다. 빨간 등불보다는 파란 불빛을 사랑하는 이데아는 평화를 꿈꾸는 무지개를 생각해 낸다. 길을 잃은 양 비틀 휘청거리며, 도심을 벗어나 어둑한 도로를 달리는 퇴근 버스 속의 아버지는 주억거리며 오늘 하루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되돌리려 한다. 버스는 말없이 집 앞에 그를 내려놓고 모르는 체하기로 한다. 중력을 거부하며 한쪽 발을 땅 위로 뻗은 플라타너스 뿌리는 날로 쇠약해져 간다. 그도 이제껏 아 금박 차게 버텨왔다. 깊은 도심은 미처 떠나지 못한 귀신들을 보내려 바리데기를 불러주고 그래도 잡신들은 보도블록에 붙은 껌처럼 눅진거리며 붙어 떠날 줄을 모른다. 더하여, 쇳조각이 지남철에 끌리듯 악마의 불빛은 애매한 젊은이를 빨아들인다. 이 밤을 찢어 바람에 실려 보내고, 진정 당신네를 위하여 준비해 놓은 아침상을 펼쳐 보이고 싶어 한다. 좌심실에서 피를 뿜어 손끝을 움직여 반성문을 쓴다. 다시 나선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11.06 09:10
첫댓글 의견 고맙습니다.
귀담아 듣겠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11.06 0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