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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사랑하는 한 목사님 교회 오니까 모든 교우들이 다 사랑스럽습니다.
미국 이민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주 성경을 사랑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이 부부가 토요일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너무 화가 나 가지고 2층 안방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아침 식사도 차려주지 않고 점심 때가 됐는데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내 아내가 성경을 사랑하니까 성경 말씀으로 풀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2층 안방에 올라가서 문을 똑똑똑 두드리고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암송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이 말씀을 암송하고 나니까 드디어 방 안에 있던 아내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고, 문을 열면서 부인께서는 요한복음 15장 5절 하반절을 암송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정말 부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되는 게 없죠. 오늘도 말씀 가운데 우리 가운데 이런 화해와 용납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파워포인트로 준비했는데 슬라이드를 좀 띄우셨나요? 좀 띄워주시기 바랍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책을 말하죠. 두 번째로는 선포된 말씀입니다. 설교를 말합니다. 세 번째로는 보이는 말씀입니다. 성찬을 말합니다. 제가 노란색으로 하이라이트 한 선포된 말씀 설교를 조금 더 오늘은 강조하고자 합니다.
데살로가전서 2장 13절 함께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이 서신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 사도가 가장 짧게 사역했던 3주 사역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 중에 가장 건강한 교회로 믿음이 좋은 교회로 소문나 있었죠. 그 비밀 중의 하나를 오늘 보게 됩니다. 바울 사도 일행이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이유는 바울 사도의 선교팀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들은 사람의 말로 받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거죠.
진실로 그러하도다. 진짜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요즘은 설교를 무시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인문학적 강의 정도로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실 것은 성령의 인도 가운데 준비되고 선포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이 우리 영혼과 삶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매주 사랑하는 한 목사님께서 이 강단에서 설교할 때마다 우리 모두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더 스포큰 워드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인이 블링거라는 스위스의 종교개혁가는 이런 말을 했어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프라이디카티오 라티노죠 선포입니다. 베리비 데이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 설교라는 거죠. 에스트 비동사입니다. 그것은 베르데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매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여러분은 강의를 들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다는 태도로 예배에 참여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영혼을 살리시는 은혜를 경험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 나라 모습, 교회 모습입니다. 지금도 킹스크로스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지만 더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모습을 가진 교회가 되는 것이죠.
성경의 하나님의 나라는 세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함께 누가복음 23장 42절로 43절을 읽습니다. 시작
이르되 십자가상의 강도가 구원받는 장면인데 그의 신앙 고백은 굉장히 짧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기억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이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 천국에 있으리라.
이 짧은 문장이 어떤 의미이기에 바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가요? 당신의 나라 소유격은 이 나라의 소유권자 왕이 예수님이라는 고백이죠. 왕은 유대 개념에 메시아 개념이 있기 때문에 짧은 고백 속에 예수님을 메시아 구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내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죽자마자 천국 가는 거죠.
바울 사도는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 쓴 디모데후서 4장 1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박해 상황 속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순교한 후에 반드시 천국 간다는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가 있다. 하늘나라가 있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루이스 볼콥이라고 하는 유명한 조직 신학자가 예수님의 승천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천국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승천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장소의 이동이었다. 로컬 트랜잭션이었다. 이것은 지상뿐만 아니라 천국이 분명히 장소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천국은 인성을 입고 계신 그리스도 왜냐하면 부활하실 때 부활의 몸을 입으셨으니까요. 그리고 승천하여 그곳에 가셨으니까. 그리고 죽은 성도들과 천사들이 거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성경은 장수로서의 하늘나라를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부활하신 주님 성부와 성령께서 계시며 앞서간 성도들이 계시는 천국이, 또 우리도 죽어서 갈 천국이 분명히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 나라는 종말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죠. 요한계시록 21장 1절 함께 읽어요. 시작 2절은 제가 읽습니다.
또 내가 봄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결혼식 날 웨딩 드레스를 입고 아름답게 꾸민 신부처럼 정말 멋진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재림하실 때 이루어지는 종말론적인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현재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이라는 말은 현재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해 주고 있죠. 현재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냐면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은혜의 경험을 이루는 말이죠. 이 은혜 때문에 내 영원히 살고 내 인생이 살고, 그리고 내 가정이 살고 내 삶의 영향력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을 다 살리는 거죠.
100년 전에 저 평안북도 선천 근방의 곽부라는 마을에 무당이 살고 있었습니다. 남자 무당인데요. 백시성을 가진 무당이었습니다. 이 무당은요. 어느 날 자기 집 앞에 앉아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전도하는 거였어요. 어이 백무당 자식들 망하게 하는 짓 그만두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무당이 전도를 받으니까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그래서 화를 냈어요. 야 이놈들아 천당이든 백당이든 너나 가라 이렇게 쫓아버렸는데 밤에 잠을 자려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백무당 자식들 망하게 하는 짓 그만두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계속 들려와가지고 잠을 잘 수 없어서 그다음 주일에 교회를 나가요.
선천읍교회 맥퀸 선교사님이 담임 목사님이었는데 그 선교사님을 통해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네 집의 아들 중에 아주 총명한 아들이 있었어요.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고 암송하고 서열의 문답을 가르치면 17문항을 다 외우는 거예요.
근데 어느 날 신방을 가면서 이 아들에게 장작을 패놓으라고 쪼개놓으라는 일을 좀 맡겼어요.
몇 시간 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그날따라 맥킨 선교사님의 신방이 늦게 끝났어요. 그 아들이 이제는 집에 갔겠거니 생각하는데 귀가하는 매킨 선교사님의 귀에 장작 패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깊은 감동을 받죠. 성실하구나 믿음이 있고 총명하고 거기에 성실성이 있으니까 이 아들을 미국 유학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 아들이 1927년도에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인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놀라야 될 때 안 놀라면 제가 놀라게 됩니다. 지금도 예일대학에서 박사 받기 어려운데 1927년도에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돼요. 1950년도에는 교육부 장관이 돼요. 그리고 군목 제도를 창설하는 일에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서 그 일을 성취합니다.
1957년도에는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대가 합쳐져서 연세대학교가 될 때 초대 총장이 됩니다. 그분이 바로 지금도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앉아 계시는 용재 백낙준 박사입니다. 어쩌면 이분도 무당의 아들이기 때문에 무당이 될 가능성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분의 마음에 임하니까 이분의 인생을 살릴 뿐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별처럼 빛나는 인물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의미의 하나님 나라는 내 마음에 임하지만 내 인생을 살리고 그리고 가정과 역사를 살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 나라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목회할 때 김시성의 여성도의 간증입니다. 새가족으로 나온 다음에 몇 달이 지나고 새 가족 환연 잔치에 간증을 했어요. 45세였는데 이 여성은 알코올 중독 환자였습니다. 남편이 출근할 때는 술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점심 먹고 나면 어김없이 여성 친구들을 불러서 술을 마시고 그러다 보니까 살림이 되지 않아 퇴근한 남편하고 싸우고 우울증이 찾아오고 자살 충동을 느끼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자살하고 인생을 끝낼 것 같은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딸들이 다니고 있는 제가 섬기던 부전교회 나왔습니다.
맨 뒤에 앉았는데요. 첫날 와서는 목사의 설교가 들리지 않았답니다. 조금 전에 우리 찬양팀 찬양하고 또 우리 자매님 특성화하셨는데 찬양하는 가운데 그렇게 눈물이 나오더래요.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가는데 마음이 푸근해지더래요.
두 번째 주에 또 왔답니다. 역시 목사의 설교는 안 들려오고 찬양의 감동을 받았답니다. 세 번째 주 왔는데 역시 목사의 설교가 안 들렸다고 해서 간증 듣던 제가 시험을 받았습니다. 역시 찬양을 통해 치유가 일어났대요.
근데 넷째 주부터 설교가 조금씩 들어오더래요. 두 달이 지나니까 술이 끊어지더래요. 본인이 놀랐고 또 한 분이 놀란 건 남편이었어요.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교회에 나가서 가능했다. 남편이 같이 나오기 시작했고 남편이 함께 세례받고요. 작년 4월 16일날 제가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서 총장직 수행을 위해서 올라가기 위해서 마지막 설교를 하는데 2부 예배에 설교자 맞은편에 이 부부가 앉아 있는데요. 제가 속으로 그랬어요.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저분의 마음에 은혜의 나라가 임하니까 저분의 영혼과 인생과 가족이 살았거든 맞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우리의 마음에 임하지만 우리 영혼과 인생과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민족을 살리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현재적 의미의 하나님 나라가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먼저 합니다. 현재적 의미의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때 왜 이 전제 조건을 달았을까요?
이것은 1세기 로마 교회의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다신교 사회인 로마 사회는 짐승을 도축하면 모든 짐승 도축된 짐승의 고기는 우상의 제단에 바쳤다가 시장으로 유통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고민이 있었죠. 우상의 제단에 바쳤던 고기를 먹는 것이 내 영혼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바울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3절 여성들이 한번 읽어주세요. 시작.
예. 어떤 음식물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 우상의 제단에 바쳤던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겠지만, 그 음식물 그 소나 양도 하나님이 지으셨다. 이제 남성들이 한번 읽어주세요. 4장 4절 하나님께서 소나 양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니까 감사함으로 받으면 우상의 제단에 바쳤을지라도 먹을 수 있다. 왜냐하면 4장 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뭡니까? 하나님이 다 만드셨다. 기도는 뭡니까? 감사의 기도를 하면 거룩해져서 우상의 제단에 바쳤던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죠.
교회 안에 이 두 그룹의 생각의 차이로 말미암은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이 갈등, 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오늘 본문인데, 바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나라는이라고 하는 성경의 매우 중요한 주제로 로마 교회의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개혁자들이 많이 쓴 라틴어 경구 중에 하나가 아드 폰테스입니다. 아드는 전치사로 어디 어디까지 폰테스는 셈입니다. 그래서 샘까지 한 번 더 풀이하면 근원까지 한 번 더 풀이하면 본질로 돌아가자. 그 본질이 성경이고요. 그 성경의 중요한 본질적인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바울 사도는 지금 로마 교회 안에 있는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를 먹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가지고 갈등하는 교회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먼저 의의 나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입니다. 여기서 의는 무엇을 뜻할까요? 성경에 보면 이의 라이처스 네스 핼라말로는 디카이오시네라는 단어는 칭의를 뜻할 때 있어요. 믿을 때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는 그 칭의 구원의 차원이죠.
두 번째로는 정의, 정의의 반대는 불이고 죄를 짓는 건데, 죄짓지 않고 사는 삶 정의를 뜻할 때도 라이처스네스가 쓰이기도 합니다.
근데 여기서는 관계적 의를 말해주고 있어요. 본문에서는 칭의와 정의의 차원이 아니라 관계적 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관계적 의는 뭐를 말할까요?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인 것이 하나님 나라는 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은 왕이시고요. 우리는 종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높이고 내가 종의 위치에 서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은혜의 나라를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제가 지나간 41년 동안 설교자로 살아오면서 성경을 묵상할 때 성경의 가장 중요한 사상은 하나님은 나의 왕, 나는 그분의 종이라는 사상입니다. 여러분 그 유명한 다윗의 이 찬양을 함께 읽어볼까요? 시편 145편 1절 한번 크게 읽어볼까요? 시작
왕이신 네 정말 중요한 말씀이죠. 하나님이 그토록 좋아했던 다윗의 삶의 비밀이 뭔지 압니까? 내가 이스라엘 왕이지만 더 높으신 왕이 계시다.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주를 높이고 내가 이스라엘의 주인인 왕이지만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이 여러분이 정말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가장 복된 성도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정말 우리의 삶 속에 은혜가 경험되는 거죠. 여기 성축하다는 단어를 여러분에게 좀 강조하려고 그래요. 이거는 여러분이 신학생이라면 중간고사에 낼 만한 중요한 단어입니다. 조금 과로가 밖으로 나가야 되는데 한번 따라해볼까요?
바르라 거의 신대원 수준으로 발음해 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바라크 동사는 세 가지 의미가 있어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바라카 할 때는 축복하답니다. 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사람을 바라카 할 때는 복 주시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분이 아니라 복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죠. 축복은 빌축자 복복자니까 복을 빌어준다는 뜻인데 하나님은 복을 빌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이죠. 우리가 복을 비는 거죠. 세 번째 중요한 뜻은 송축하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 한다고 할 때는 송축하다입니다. 찬송한다는 뜻이죠. 사전 그대로 본다면 이 뜻입니다. 투어도 찬미하다 위드 밴디드 니즈 무릎 하나가 아니고 무릎 두 개를 다 꿇은 거죠.
두 무릎을 꿇는 태도는 고대의 왕 앞에 취하는 태도인 거죠. 히브리어에 찬양하다란 단어가 할랄도 있습니다. 여기서 할렐루야가 오는데요. 대표적인 찬양하다 손을 들고 찬양하다는 야다라는 말이 있어요. 악기를 동원해서 찬양하였다는 얘기는 자마르라는 단어가 있어요. 송축하다는 이 모든 단어보다 최고의 찬송하다의 뜻입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며 나는 종이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이 송축하다는 거죠. 그래서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찬송한 단어를 바라크, 송축하다다를 쓴 거죠. 매치가 딱 되는 거죠.
오전에 목사님과 함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목회하셨던 웨스트민스터채플에 다녀왔습니다. 찬양 인도자 1명과 백인 형제 있었고, 흑인 자매 한 분이었어요. 주님의 보혈을 찬양할 때 자매가 무릎을 꿇고 찬양하더라고요. 저는 바라크다 그러면서 보열 찬영하는데 휴지를 꺼내서 눈물을 닦으면서 찬양하더라고요. 저게 진짜 송축이구나 느꼈습니다.
법외로우신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 때마다 관람객이 아니라 마음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왕으로 높여드리는 예배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바라크라는 단어는 말씀드린 대로 축복하다, 복 주시다 복을 베풀다 송축하다의 뜻으로 번역되죠. 창세기 12장 3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3자가 아브라함에게 바라카 하는 것을 우리 말 성경에 정확하게 축복으로 번역합니다.
영어로는 똑같이 블레이지만 의미는 다르다는 거죠. 내가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내리고 복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내리시는 분이죠. 히브리어는 바라크, 영어로는 전부 블레스지만 주어와 목적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고 조금 전에 말씀드렸죠. 하나님이 목적어가 될 때는 우리 찬양 그대로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그 가사가 블레시돌로드로 돼 있죠. 이때는 이 블레스는 찬양한다는 뜻으로 송축으로 번역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비결은 무엇이냐 하면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내가 주인 될 때가 너무나 많죠. 특별히 젊은이들은 컴퓨터와 SNS에 종이 되어 살 때가 많죠. 그래서 컴퓨터를 위한 기도문도 나왔다고 합니다. 메모리에 있는 우리 프로그램 아모를 거룩하게 하옵시며 운영 체계에 임하옵시며 명령이 모니터에서 이룬 것 같이 프린터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데이터를 주옵시고 파일에 에러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다운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다만 정전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CPU와 하드와 USB가 컴퓨터에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엔터.
그러나 컴퓨터는 우리를 속죄하거나 영생하게 할 수 없죠.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정말 복된 인생을 살려면 우리 교회가 정말 복된 교회가 되려면 우리 모두가 종이 돼야 할 줄 믿습니다.
옆에 있는 분을 축복합시다. 좋은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정도 표현 가지고는 여러분이 제가 떠난 다음에 다 잊어버릴 거예요. 저 예배당 문을 열고 나갈 때 다 잊어버릴 거예요. 기억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남성들 따라 합시다.
좋은 종놈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 너무 좋으십니다. 여성들 따라 합시다.
좋은 종이 되겠습니다.
저는 죄송해서 작게 했지만 여러분은 크게 해야 됩니다. 두 번째 글자를 이 시간 옆에 있는 분 두세 분에게 하이파이브 하면서 좋은 정론이 돼서요. 좋은 런이 돼서요. 축복합시다. 시작
이게 왜 축복이냐 하면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죠. 사도행전 13장 22절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2세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nib 성경에 그렇게 돼 있죠. 헤 파운드 데이빗 맨 o 헐 내 마음에 합한이라는 뜻이 뭐냐 하면 하나님 뒤따라간다는 뜻입니다. 에프터 유플리스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가시면 저 뒤따라갈게요. 이게 종의 삶이죠. 하나님이 다윗을 그렇게 기뻐하셨던 이유. 바세바 범한일과 인구 조사 빼놓고는 일생을 하나님 뒤따라갔죠. 그 마음을 종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신 겁니다. 킹스크로스 한인 교회 성도들이 모두가 종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교회로 이민 교회 가운데 세우시고 하나님의 뜻을 역사의 무대 속에 펼치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떠나도 여러분 꼭 기억하지 기억하십시오.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왕, 나는 종놈입니다. 아멘 여성들은 예 그거입니다.
고대의 종은 네 가지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자기의 뜻이 없었어. 정말 우리가 종의 삶을 산다는 게 고대의 종을 통해 배울 수 있는데 첫 번째 자기 뜻이 없었어요.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주인이 누나 하면 딱 멈추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얘기는 내 마음속에 이거 하고 싶은데 성경 말씀과 설교를 통해 기도할 때 일상의 삶을 사는데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하지 마 하면 딱 멈추는 게 좋은 종이에요. 그게 종놈이에요. 내가 정말 하기 싫은데 왕이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거예요. 두 하면 하는 게 중요해요.
여러분 하나님 입장에서 이런 성도 보면 얼마나 기쁘실까요? 마음속에는 막 하고 싶은데 하지 마 했더니 딱 멈추는 거예요. 마음속엔 거부감이 많은데 하라고 하니까 바로 순종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런 성도를 정말 복 주시고 사용하십시오. 그런 성도가 이 교회에 가득 차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 좋은 종은 자기 돈이 없는 종입니다. 죄인이 맡긴 돈을 내 마음대로 쓰지 않고 주인 뜻대로 쓰고 결산의 때를 생각하며 쓰는 것이죠.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여러분의 경제 생활이 하나님의 뜻에 맞춰져야 됩니다.
미국의 침례교회에서 세례를 주는데 목사님이 침례조에 성도를 이렇게 잠그려고 하는 순간 목사님 잠깐만요. 왜 그러십니까? 저 지갑이 뒤 호주머니에 있습니다. 이거 꺼내놓고 받겠습니다. 그냥 목사님이 눌러버리면서 지갑도 침례받아야 됩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공수훈련을 받았습니다. 400m에서 지상 400m에서 주낙하산을 메고 생명줄을 걸고 뛰어내리면 4초 만에 낙하산이 펴집니다. 4초 동안 70m를 빠져요. 근데 이 특수부대들은 군목이 있을 때는 1번으로 뛰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군목입니다. 군목은 하나님과 가깝기 때문에 군목이 안전하면 우리가 더 안전하다는 믿음을 그분들이 가지고 계십니다.
근데 1번 강화자인 군목도 굉장히 겁납니다. 400m에 서면 근데 4초 동안 70m를 쫙 빠져요. 숫자를 세야 돼요. 4초 만에 안 펴지면 앞에 있는 예비 낙하산을 펴야 되는데 이 사초가 너무나 길게 느껴집니다. 공중에서는 입으로 바람이 들어오니까 숫자를 셉니다. 1초 2초 이렇게 하지 않고 1만 2만 이렇게 해야 내 귀에 소리가 들리니까 확인할 수 있죠. 4만 산계 검사했는데요. 이 낙하산이 정말 천이 큰데 펴져 있더라고요.
얼마나 기쁜지요? 찬송을 했습니다. 여러분 아래서 바라보는 하늘도 아름답지만 400m, 300m 상공에서 바라보는 하늘 정말 아름답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꼭 뛰어보시기를 바랍니다. 28개의 낙하산 줄이 있는데 좌우에 조정 줄이 있어요. 테크 라인이라고 볼펜 깍지 같은 게 이렇게 있는데요. 쫙 당기면 오른쪽 방향으로 왼쪽 끝 당기면 왼쪽 방향으로 둘 다를 당기면 빨리 떨어집니다. 지상 30m에서 다리를 털고 앞꿈치 무릎을 모으고 착륙하니까 전혀 충격이 없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렇게 창공에서 내려오는 기쁨을 맛보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되는 관문이 지상 3주 교육이고 그 교육의 마지막 관문이 모형탑에서 뛰어내리는 겁니다. 그 높이가 11m인데 왜 거기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하냐면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1m입니다.
근데 모형탑은 안전해요. 이 콘크리트 구조물의 앞에 케이블이 있고 도르래를 걸어놓고 거기에 모형 낙하산 줄을 걸기 때문에 안전한데 희한하게 거기 있으면 겁이 나는 거예요. 병사들이 밑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올라가면 겁나니까 뛰어 하면 도약해서 나가야 되는데 안 뛰면 수백 명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조교가 발로 뻥 찹니다. 그럼 으악 하고 떨어지는데 죽지 않고 저기 살아서 잘 가고 있습니다.
근데 희한하게 11m 앞에 서면 겁납니다. 그러나 이 관문을 통과해야 창공에서 내려오는 기쁨을 누리죠. 저는 신앙생활에도 공포에 11m가 있으니 이는 곧 11조 원금이라고 하겠습니다. 11조 설명하려고 공수교육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10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습니다. 등록금을 제때 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후배들 대학생들과 신대원생들 보면 제가 참 짠한 마음이 있죠. 그 어려운 가운데도 어머님이 저 어릴 때 11조를 하셨어요. 그러면서 어머님이 드리는 기쁨이 있다 그러셨어요.
근데 놀랍게도 오랜 세월이 지나서 한 30년이 지나고 나니까 아버님 돌아가시고 이제 10살 때였는데요. 제가 40이 넘어가니까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저의 피로도를 채우시는 걸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헌금으로도 경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할 때 경험하는 은혜의 나라라고 말했죠.
두 번째, 하나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의와 평강과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무엇을 뜻할까요?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학문적인 비평을 크리틱은 할 수 있지만 인격적인 모독을 가하는 블레임과 컨뎀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 함께 오늘 본문의 맨 앞부분인 로마서 14장 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비판의 문제가 본문의 문제이죠. 2절 여성들이요.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믿음이 연약하니까 먹는 거예요. 채소만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죠. 형제들 3절이요. 먹는 자는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연약한 손들 아 그것도 못 먹어 없신 여기지 말라.
그러나 먹지 않는 연약한 사람들은 왜 먹냐고 고기를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성도를 받으셨기 때문에 용납하셨기 때문에 죄인 된 우리를 용납하셨기 때문에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죠.
여러분 종교개혁 이후에 30년 종교 전쟁으로 카톨릭 측과 개신교 측의 교회들, 그 국가들이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당시 역사 속에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전쟁이 끝날 무렵에 독일의 신학자인 루퍼트스 멜데니우스가 중요한 메시지를 정했어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 정말 중요한 메시지죠.
이것을 오늘 우리 교회에 적용한다면 본질은 무엇입니까? 성경 말씀이 본질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압축해 놓은 웨스트 미스터 신앙고백 사도신경들이 본질입니다. 이걸 떠나면 이단이죠. 또 하나는 수많은 목사님 가운데 한영석 목사님을 담임 목사님으로 세우실 때는 하나님의 뜻이 있겠죠.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본질입니다. 여기에는 모두가 일치할 때 교회의 평화가 임하게 되죠.
그럼 비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말씀드린 것 외에는 거의 다 비본질적인 것이죠. 젊은이들이 금발로 염색을 하고 온다고 해도 여러분들 그거 가지고 너무 마음에 부담 가지지 마세요. 흰머리 검은 물들이나 검은 머리 노란 물들이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존경하는 선배님 가운데 한 25년 전에 아들이 중학생 때 방황할 때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고 온 겁니다. 제가 속한 교단은 굉장히 보수적인 교단이기 때문에 이 성도님이 아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대요.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근데 아들이 방황할 때니까 야단을 치면 뛰쳐나갈 것 같아서 어깨에 손을 얹고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이런 말을 했대요.
아들아 머리는 노랗게 물들어도 가슴은 예수로 물들기를 바란다.
정말 멋진 아빠죠. 이 아들이 나중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총신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어요. 제가 결혼 주례 했는데 너무나 좋은 부목사님으로 지금 사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제일 힘들었던 것이 식사하는 거였습니다. 제 아내는 생선을 좋아하는 바닷가 출신이고 채소를 좋아하는 지방이었어요. 저희는 고기를 못 하면 튀김이나 부침개를 하는 기름기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집안이었어요. 제가 식사를 차려오면 우리 돈이 없는 군목 중이니까 저 튀김이나 부침개 달라면 절대 안 해주는 거예요. 밥상을 차려놓으면 풀이 가득했어요. 어느 날은 진짜 풀이 너무 많은 날이었어요. 제가 너무 화가 나가지고 와 숲이 올라오는구나. 그다음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어요. 좀 있으면 뱀 나올 것 같다. 지금까지 상처가 된 말입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 보면 저희 6남매 중에 누나 한 분 빼놓고는 거의 다가 고혈압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레시피를 따랐기 때문이죠. 저는 약을 먹지 않고 120에 80 어라운드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동시에 풀을 열심히 먹인 제 아내의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것의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은 자유로이죠. 대신 단백질은 콩과 계란 같은 걸로, 두부 같은 걸로 채워줬습니다.
교회 안에도 정말 중요한 것은 성경과 신앙고백, 목사님의 목회 철학 이외에는 자유를 주는 이 난 에센셜 리버티 너무 중요한 것이죠. 이것을 유지할 때 교회의 평화가 유지되고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거죠.
교회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시댁 같은 교회와 친정집 같은 교회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따뜻하게 환대하는 교회는 친정집 같은 교회. 그러나 냉대하는 교회는 시댁 같은 교회죠. 며느리들은 시댁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씻자 들어가는 것도 거부하죠. 그래서 나물 중에 시금치를 드시지 않고 성경을 읽다가도 시편이 나오면 잠언으로 건너뛰고 그러죠.
여러분 우리 모두 환대 공동체를 세워가기를 바랍니다.
구약 성경학자인 월트브르그마는 하나님의 나라는 환대 공동체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납하는 공동체.
오늘 기도하신 안수 집사님이십니까? 그거죠. 용납하려는 거 없이 정말 성경과 신앙고백과 사도 신경 목사님의 목회 철학을 어긋나는 것, 아니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환대 공동체.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교회 킹스크로스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기독교 윤리학의 용어 중에 아디아포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한번 발음해 볼까요? 아디아포라 예 잘하셨어요. 아디아포라의 뜻은 이 뜻입니다. 구별할 수 없는 a를 선택해도 죄가 되지 않고 b를 선택해도 죄가 되지 않는 문제. 다시 말하면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 먹어도 죄가 되지 않고 사 먹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 문제. 조금 전에 말씀으로 바꾼다면 비본질적인 것에 자유를 주는 것이 기독교 윤리학의 매우 중요한 용어 아디아포라입니다. 아디아포라 단수는 아디아포런이고 복수는 아디아포라 중성명사입니다.
김정환 목사님께서 1950년대 말에 미국 여성과 결혼하셨죠? 트루디 사모님이에요. 1959년도에 수원에 왔으니 그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못 살았습니까? 사모님도 참 귀한 분이시죠. 결혼 생활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뭐냐 하면 치약이었어요. 지금의 치약은 플래스틱 튜브라서 중간을 눌러 짜도 복원이 되는데 옛날 거는 알루미늄 재질이었기 때문에 중간을 눌러 짜면 복원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가난한 농가의 아들이었던 김장환 목사님은 치약이 아까우니까 밑에서부터 성실하게 감아올려서 치약을 쓰고 나면 그다음에 들어가면 누군가 중간을 꾹 눌러 쓴 거예요. 그분이 누구냐 하면 트루디 사모님이죠. 풍요로운 미국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이거 가지고 몇 번 말다툼을 하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러시더랍니다.
장원아 너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왔는데 그가 치약 가지고 싸우냐
그 비본질적인 것에 자유를 줘야 되잖아요. 그다음부터 평화가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의 부부의 치약은 무엇입니까? 비본질적인 거 가지고 싸우는 치약은 무엇입니까? 혹시 교회 공동체 안의 치약은 무엇일까요?
거기에 자유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를 경험하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우리 서로 기억하기 위해서 옆에 있는 분에게 하이파이브 하면서 축복합시다. 아디아포라 너무 감사합니다. 멀리 떨어져 계시니까 원격으로 하신 것 같아요. 잘하셨어요. 아디아퍼라 아주 중요한 평화를 유지하는 비결인 것이죠.
함께 고린도후서 8장 8절에 있는데 아디아프라를 설명한 아주 좋은 본문인데요. 고린도교에도 시장에서 파는 고기 사 먹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함께 크게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음식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아디아포라 아주 중요한 본문입니다. 로마서 14장 13절.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뭐 하지 말고 비판하지 말고 아디아호라 비본질적인 것에 자유를 주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비판하면 사람을 넘어뜨리게 한다는 겁니다. 15절 함께요 시작. 예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거냐 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구원한 형제를 실종하게 하는 거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정말 비판 비난이 없어야 됩니다. 격려 아니 먼저 용납 격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교회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경험하는 아주 중요한 비결입니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다 함께요.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옆에 사람에게 축복합니다.
널 사랑하심, 너 사랑하심 널 사랑, 너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나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분도 사랑하기 때문에 신앙 공동체 좁게는 가족 안에서 비난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에 부부싸움 하신 분 집에 가면서 손잡고 아디아포라를 선언하시고 용납을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 나라는 희락의 나라입니다. 여기서의 희락은 무엇을 뜻할까요? 헬라 말로 카라입니다. 젊은이들은 걸그룹 카라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걸그룹 카라는 발음이 또 알파벳이 kara이고 희락의 카라는 chara임을 분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희락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개념이 쾌락입니다. 쾌락은 내 기쁨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피해 입히고 짓밟는 거죠. 그러나 희락은 예수님처럼 내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른 사람을 기뻐하는데 결과적으로는 나도 기쁜 거죠.
교회가 추구해야 될 기쁨은 쾌락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힘들게 만들고 어렵게 만들어서 그걸 기뻐한다면 그거는 예수님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귀적인 겁니다.
예수님적인 교회는 내가 조금 손해 보고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면서 나도 기쁘고 공동체가 다 기쁜 거죠. 이게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희락이 되는 겁니다.
왜 비판하고 비난하면 안 됩니까? 그것은 쾌락이기 때문입니다. 격려하고 용납하는 것은 희락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장과 절은 처음부터 구분되었을까요? 아니죠. 성경의 장의 구분은 켄테베리 대주교 랑톤 1204년에 장을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절의 구분은 프랑스 사람인 평신도 스테파노스가 1551년에 구분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의 아버지였고 인쇄업을 하는 분인데 성도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성경의 장과절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예수님도 이사야서를 인용할 때 53장 6절 이렇게 인용한 적이 없어요.
이사야의 글에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는 14장이 끝났다고 해도 15장까지 가야 14장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죠. 바로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15장 1절 우리 자매들이 한번 읽어주세요. 시작
자기를 기쁘게 하면 쾌락이에요. 이제 형제들이 2절을 읽어주세요. 시작.
네 이게 희락입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는 거죠.
근데 술 사주고 마약 사주면서 기쁘게 하면 안 되겠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이 시간 옆에 있는 분에게 우리 덕담을 한번 하시면 어떨까요? 우리 한 번 둘씩 둘씩 마주 보면서 또는 두세 분이 마주 보면서 한 달 안에 꼭 식사 한 끼 대접하겠습니다. 한 번 우리 축복합시다. 시작
이제 3절 제가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이게 희락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성도들 모두가 나의 기쁨을 추구하지 않고 옆에 있는 성도의 기쁨을 추구하는 교회가 된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일이 풍성해지는 거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거예요. 우리 킹스크로스 하는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기쁨이 아니라 옆에 있는 분의 기쁨을 추구하는 교회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닮은 희락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게 희락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의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인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내가 종이 되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 내가 주인 되고 싶고 내가 왕이 되고 싶죠. 그래서 우리 죄성에 반하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의 평강은 비난하지 않는 것인데 우리는 비난할 때 나를 정당화시키며 일종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느님 나라의 은혜의 나라를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죠.
하나님 나라의 희락은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사는 건데 자꾸 나는 나의 기쁨을 추구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죄성을 가진 우리의 본성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본성을 이기는 나라가 돼야 되는 거죠.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은 로마서 14장 17절 말씀 중에 하이라이트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강조의 부사인 오직이 사용되었죠. 오직 오직 좀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이 포인트가 작동이 안 되네요.
네 그다음까지 예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성령 안에 있을 때에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관계적 의, 비난하지 않는 평강,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추구하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인 희락이 가능한 거죠.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입니다. 이 아내라는 말은 헬라어 말로 엔이라고 합니다. 이 전치사는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으로 첫 번째로는 장소 우리가 지금 예배당 안에 있을 때 이 아내가 엔입니다.
다른 의미는 인격적 의미입니다. 어떤 뜻이냐면 개인적으로 a와 b가 가까운 상태일 때 누구 안에 있다는 얘기죠? 성령 안에 있다는 얘기는 성령님과 개인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를 의미하죠. 이것은 우리 말에도 있었고, 파리의 연인이라는 미니시리즈 드라마에서 나왔죠. 이동건이라는 배우가 김정은이라는 여배우에게 내 안에 너 있다. 이 대사는 너무 유명하죠. 그만큼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 여러분도 데이트할 때 경험하셨죠?
저도 명일동에 제 아내를 두고 흑석동으로 올 때 버스를 타고 오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을 때 그 달래서 제 아내의 얼굴을 봤습니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전도사 때인데 밥은 먹는데 숟가락을 떠서 밥을 먹는데 숟가락이 그 여인의 얼굴로 바뀌던 순간 저도 굉장히 당황했었습니다.
전도사가 이래도 됩니까? 하나님 이러면서 아마 여러분도 이런 경험하셨겠죠? 이게 안에 있다는 개념이에요. 우리가 맨정신으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못 삽니다. 비난하기, 비난을 그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기쁨을 추구하기보다 내 기쁨을 추구하는 게 더 쉬워지죠.
근데 성령님과 가까워지면 성령이 도와주시는 힘으로 우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 나라 모습, 교회 모습 우리 교회가 진짜 지금보다 더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 모습을 가져야 돼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님들이 이 하나님 나라 모습을 가져야 되겠죠.
그것은 첫 번째 의의 나라입니다. 여기서 의는 관계적 의로서 하나님은 나의 왕, 나는 그분의 종이 되는 겁니다. 중요하니까 한 번만 더 따라합시다.
나는 종놈입니다.
여성들은 알아서 하시면 되겠고요.
그다음 두 번째 하나님 나라는 평강의 나라예요. 비난을 금지하는 겁니다. 용납과 격려가 가득한 친정집 같은 교회를 세워야 되는 거죠.
마지막 세 번째로는 하나님 나라는 희락의 나라예요. 쾌락의 나라가 아니에요. 여기 와서 내 기쁨을 추구하려고 하지 마세요. 서로의 기쁨을 추구하는 그 교회가 하나님 나라 모습을 가진 교회고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정현정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저는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한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곧 그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너무나 소중한 분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일생을 가지고 온 거예요. 우리 서로 서로를 정말 보듬고 환대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용납하는 그런 교회를 꼭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뭐가 필요합니까? 성령 안에 있을 때 가능해요. 언제 성령 안에 있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예배드리는 게 그래서 중요해요. 성령님과 가까워지죠.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게 마지막으로는 순종할 때 성령 안에 있습니다. 예배와 개인의 경건과 순종의 삶을 통해 성령 안에 있는 삶을, 사심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종의 삶, 비난하지 않는 용납과 격려의 삶, 그리고 내 기쁨이 아니라 서로의 기쁨을 추구하는 희락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여러분의 개인과 교회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