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묵상: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7대 왕이었다.
열왕기상 저자는 그를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했다고 정의했다. (33절)
지난 시간 12~13장에서 살펴본대로 북이스라엘 1대 왕은 여로보암이었고,
그 후 14장부터 오늘 본문이 나오는 16장까지 북이스라엘의 2대 왕부터 7대 왕이 나오는 것이다.
이들 2~7대 왕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1대 왕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했다는 것이다.
북이스라엘 2대 왕 나답:
왕상 15:26, "그(나답)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북이스라엘 3대 왕 바아사:
왕상 15: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북이스라엘 4대 왕 엘라:
왕상 16:7, "바아사와 그(엘라)의 집을 꾸짖으심은 그(엘라)가 여로보암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북이스라엘 5대 왕 시므리:
왕상 16:19, "이는 그(시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시므리)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북이스라엘 6대 왕 오므리:
왕상 16:26, "오므리가 ~ ~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러니까
북이스라엘 2~6대 왕들 모두가 1대 왕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로보암의 길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금 송아지를 두 개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어서 그 우상을 섬기도록 했던 것이다.
레위인이 아닌 일반인이 제사장이 되도록 해서 제사 직분을 멸시했던 것이다.
절기의 날짜를 자기 마음대로 변경해서 말씀을 왜곡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활로 화살을 쏠 때,
활을 쏘는 위치에서 그 각도가 조금만 비틀어져서 화살을 쏘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그 각도가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화살이 멀리 날아가면 갈수록 그 각도는 더 커질 것이고,
마지막 도착 지점은 처음 의도한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될 것이다.
무슨 말인가?
여로보암의 죄가 북이스라엘 왕들을 거쳐 그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7대 왕 아합 시대에 와서는 그 죄가 이제 완전히 다른 내용의 죄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자.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했다는 표현은
아합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1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아합의 죄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그치지 않았고,
전혀 다른 내용의 죄들이 더해져서 타락의 끝판 왕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31절,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엣바알은 아스다롯 신전의 제사장이었는데 아스다롯은 바알의 아내가 되는 여신이었다.
아합이 그런 이방 여인의 제사장의 딸과 결혼을 했던 것이다.
32절,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6대 왕 오므리가 건설하여 수도로 삼은 곳이었다.
그 다음 7대 왕 아합이 이곳 북이스라엘의 수도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던 것이었다.
33절,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아세라는 바알의 어머니가 되는 여신이었고,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다.
아합이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의 비롯한 온갖 우상들의 어머니 아세라의 상까지 만들어 섬겼던 것이다.
1대 왕 여로보암이 쏘아올린 죄가
7대 왕 아합에게 와서는 너무나 크게 확장되어 엄청난 타락의 결과를 가져오고 만 것이었다.
이제 북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북이스라엘의 타락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실까?
다음 장에서 한 사람이 등장하게 된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왕상 17:2)
엘리야가 누구인가?
신약시대에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예수님을 만났던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의 끝판 왕 아합에 맞서
선지자의 끝판 왕 엘리야를 준비시키신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북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더 크게 역사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가?
혹시 우리 중에 여로보암의 죄를 반복했던 이스라엘의 왕들처럼, 같은 죄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가?
7대 왕 아합 시대에 와서 그 죄가 크게 확장되었던 것처럼, 작은 죄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큰 죄도 스스럼없이 범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는가?
한 가지만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합을 위해 엘리야를 준비시키셨던 것처럼,
그런 사람을 위해 더 큰 은혜를 준비하시고, 더 큰 선지자를 보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은혜와 그 선지자를 알고 있다.
아무리 큰 죄도, 주홍같이 붉은 죄도 양털같이 다 희게 씻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합으로 하여금 엘리야를 만나게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신다.
문제는 이것이다.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
북이스라엘의 왕들을 통하여 죄가 반복되고 더욱 더 심각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반복해서 행하는 죄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저희의 힘으로 이길 수 없사오니, 주님 도와 주옵소서.
주님,
저희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주장해 주옵시고,
전심으로 주님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