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머꼬?
중세사회
13강
보금자리센터
희망의 인문학
사람들은 중세(中世)를 일러 ‘이성이 잠든 시대’라고들 말하지. 철학이 종교의 시녀가 되는 시대로 암흑기로 표현하기도 해. 중세시기에는 철학이 발전된 시기가 아니라 단지 종교를 위한, 종교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된 시대로 규정하고 있어. 그렇다면, 중세라는 시기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중세의 출발시기를 언제로 잡느냐에 대해 두 가지 의견이 있어. 하나는, 395년으로 잡아. 왜냐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했고, 380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國敎)로 공인했기 때문이야. 이 시기를 유럽이 기독교를 정신적인 기반으로 출발했던 때로 보는 이유지.
다른 하나는 529년으로 보는 견해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아테네에 있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폐쇄된 해야. 같은 해에 베네딕트 수도회가 창설되어서 철학대신 신학교습이 진행되고, 철학적 사색대신 종교적 명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지. 철학이 퇴장하고 기독교 신학이 로마제국의 중심무대에 등장한 때로부터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14-15세기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약 1000년간의 긴 시간이었어. 중세를 해체시키는 근대의 무서운 물결은 르네상스, 종교개혁, 자연과학의 약진, 신대륙의 발견, 국민국가의 형성 등으로 이전의 유럽의 지형이 해체되고 새롭게 되는 엄청난 변화의 시기로 중세는 종식을 고하고 말아. 요약하자면, 중세는 4세기에서 14세기에 걸친 천년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거야.
중세의 두 가지 거대한 기둥이 있어. 하나는 기독교이고 다른 하나는 봉건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정신적 토양이 기독교라면 제도적 기반은 봉건사회구조라고 할 수 있겠지. 유럽의 봉건사회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시기야. 봉건제도의 특징은 4가지로 말할 수 있어. 주종제도, 기사도, 장원제도 그리고 영주권이야.
우선은 주종제도로 살피자면, 봉건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라고 할 수 있지. 주중관계에는 주군(主君, lord)에게 봉신(封臣, vassal)이 충성을 맹세하고, 주군이 봉신에게 봉토(토지)를 수여함으로 성립되는 제도야. 주군의 의무는 봉신과 봉토를 관리하는 일이고, 봉신은 기사(knight)로 종군하며 주군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했어. 피라미드 형태의 계급제도라고 할 수 있지. 평범한 기사는 백작(count)을 주군으로 섬기고, 백작은 공작(duke)을 주군으로 삼았어. 그리고 공작은 국왕을 주군으로 하는 계급체계야.
다음은 기사도(騎士道)인데, 기사는 말 그대로 말을 탄 전사(戰士)라는 의미야. 봉건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기사라고 할 수 있어. 아래의 말단 기사부터 국왕까지 모조리 기사라고 할 수 있어. 이러한 상위계층에 속한 기사들이 가져야 할 덕목을 가리켜서 ‘기사도’라고 할 수 있어. 기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정신·덕목·규범을 뜻하는데, 용맹과 충성과 신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 비겁과 배신을 가장 흉측한 악덕으로 간주했고, 명예를 존중하고, 여성을 존중할 뿐 아니라 위해 헌신하는 것 역시 명예로 생각했어.
또 하나는 장원제도다. 봉건사회에서 지배층은 모두 넓은 땅을 소유했다. 소유한 땅을 불러서 ‘장원’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기사들 모두는 장원의 영주였지. 장원은 대개 하나의 촌락을 뜻하는데, 작은 촌락들은 몇 개라 묶여 하나의 정원이 되기도 했고, 큰 도시는 분할되어 여러 개의 장원이 되기도 했어. 한 개의 장원만을 가진 작은 영주도 있는가 하면, 수천 개의 장원을 소유한 대영주도 있었어. 장원은 농노(serf)에 의해 재배와 경작이 이루어졌지. 농민이 노예와 구별되는 자유민이기는 했지만, 역할에서는 노예나 농민의 구분이 잘 되지 않았고. 농도들의 경우에는 토지와 함께 묶여 결박된 신분으로 이동의 자유, 혼인의 자유도 제한되어 있었어. 불쌍한 사람들이지.
마지막으로 영주권이야. 영주들이 토지를 경작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위계질서와 강력한 힘이 필요했지. 이러한 권한을 영주권이라고 할 수 있어. 영주권은 봉신에게 봉토를 부여할 때 수반되는 불개입권(immunity)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어. 불개입권이란 봉토 내에서 행사하는 행정·사법 통치권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영주권에는 농노소유권, 도망한 농노를 체포할 추적권, 세금징수권, 화폐 주조권까지 포함되어 있었어. 오늘날로 말하면 강력한 지방분권에 해당되는 권리라 할만 해. 중세 봉건사회는 사회·경제적으로 장원제와 농노제에 기초한 농경사회였고, 정치·행정적으로는 지방분권적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거야.
11-13세기.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있었어. 1096년에 시작된 1차 원정을 시작으로 1291년 8차 원정에서의 폐퇴. 성지회복이라는 본래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성과 없이 끝나자 후폭풍이 심각하게 다가왔어. 교회의 권위 뿐 아니라 봉건귀족의 쇠퇴도 덩달아 발생했어. 14세기 동방에서 흘러온 화양과 총포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봉건영주의 상징이었던 기사의 두꺼운 갑옷들이 뚫리면서 존립기반을 상실하게 되고 말았지. 12-13세기 때를 같이해서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상업과 무역이 부활하고 이탈리아를 중심한 지중해 무역권과 폴란드 중심의 북방 무역권이 형성되면서 도시의 발달이 촉진되었어. 도시의 발달은 봉주와 농노 사이의 중간계층의 형성을 의미했어. 비봉건적, 비농업적인 사회세력이 형성된 것이지.
이슬람문화와의 접촉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고문서들이 유입되면서 고대문화 부흥, 즉 ‘재생’이라는 의미의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고대문화의 복원운동이 힘을 얻었어. 때를 같이해서 종교개혁은 권위주의와 형식주의, 세속화된 기독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었고, 자연과학의 발달로, 지리상의 발견은 사람들의 시야를 크게 넓혀 놓고 말았지. 이로 인해 봉건제도는 몰락하고 대신 국민국가가 형성됨으로 유럽의 분할이 촉진되기 시작했어. 중세를 떠받치고 있던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였던 봉건사회가 퇴장하고 말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