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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달 전, 6년 간의 미국 유학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동화는 미국에서 만난 애인과 결혼식을 준비 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동화야 너 결혼식에 축가는 어떻게 할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제가 깜짝 놀랄 만한 사람으로 섭외해놨어요.'
동화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속닥속닥 무슨 말을 한다.
'어머나 그 사람이 할 거라고? 근데 걔가 네 옛날 친구라고? 잘 됐다~ 난리 나겠구먼.'
'그렇겠죠? 근데 이건 비밀로 해주세요. 저랑 어머니, 그리고 이번에 사회 봐주기로한 지원이 이렇게 셋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두들 깜짝 놀래켜 주려구요.'
축가를 부를 사람은 바로 1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가수 '시원' 이었다.
애절한 음색과 폭발적인 가창력에 훌륭한 비주얼까지 더해져 전국의 여심을 흔들고 있는 주인공.
나이 31살까지 제대로 밥벌이도 못하고 알바 생활을 전전했으나 음악의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결과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요즘에는 음악 뿐만 아니라 타고난 입담과 호감형 성격으로 각종 예능까지 섭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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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이었다. 지인을 통해 시원의 번호를 알아낸 동화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시원아 나 동화야. 잘 지냈어? 정말 오랜만이지? 한 6년 만인가. 내가 그동안 미국에 살아서 잘 몰랐었는데 얼마 전에 서울로 돌아오니까 너 엄청 유명한 가수가 돼 있더라. 네 노래 다 들어봤는데 엄청 좋더라. 짜식 역시 나는 너 될 놈이라고 생각했었어.'
수화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동화야 반갑다야. 잘 지냈어? 그동안 고생 많이 했는데 작년에 운좋게 일이 잘 풀려가지구 요새 기분이 좋네 헤헤.'
못본 지도 오래되었고 예전과는 사회적 지위가 완전히 달라진 시원이지만 다행히도 예전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실 나 다음 달에 결혼해. 미국에서 만난 여자친구랑 같이 한국에 들어와서 살기로 했어.'
'그래? 정말 축하한다. 야 내가 축가라도 불러줄까?'
이거 웬 일? 마침 동화가 부탁하려던 것을 시원이 먼저 제안하는 것 아닌가.
'정말?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사실 나도 너한테 축가 부탁하고 싶었어. 네가 작곡한 노래중에서 summer propose란 노 래가 참 좋던데 그걸로 해주면 안될까? 결혼식 날이 여름이기도 하고 사실 예비 신부 이름도 여름이거든.'
'여름? ... 하하하 이름이 참 예쁘시네. 그럼 이따 소속사로 청첩장 보내줘. 준비해 갈테니까. 6년 만에 처음 보는 게 네 결혼식에서라니 진짜 신기하다.'
둘은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조금 더 하다가 통화를 마무리하였다.
3.
7월 16일, 드디어 결혼식 날이다.
오늘따라 유독 날씨가 좋다.
한여름이지만 별로 덥지도 습하지도 않다.
햇볕은 따스했고 시원한 바람이 끝임없이 솔솔 불어왔다.
결혼식장은 유력인사들이 애용한다던 강남역에 있는 J 호텔이다.
호텔 입구에는 '축 결혼, 11시 00분, 신랑: 姜冬花(강동화) 군 신부: 韓(한)여름 양' 이라고 써 있는 축지가 걸려 있다.
아버지가 S 그룹의 임원이고, 미국의 명문 대학원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금의환향한 동화와
D 제약회사 사장의 딸이자 S대 약대를 졸업한 약사 여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결혼식 시작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신랑과 신부는 축하하러 온 수많은 지인들과 인사하고 사진을 찍느라 매우 분주하다.
바쁜 와중에 동화는 시원을 떠올린다.
'축가가 11시 30분 정도에 시작할거라고 했으니 시원이는 지금쯤 오고 있겠지? 근데 그녀석 스케줄 때문에 축가만 부르고 바로 떠나야한다니... 아쉽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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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지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다음으로 신랑 신부의 결합을 축하하기 위한 축가를 부를 차례인데요. 아... 사실 오늘 여러분들이 정말 깜~~짝 놀랄만한 유명한 분이 축가를 불러 주시기로 했었습니다. 근데 음... 도착이 조금 늦어지고 있나봅니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객들은 웅성웅성한다.
동화는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민망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이 자식 안오고 뭐하는 거야.'
지원이 동화에게 다가가서 휴대폰을 보여준다.
'분명히 아까 도착했다는 문자 받았어. 이것 좀 봐. 근데 갑자기 연락이 안 돼.'
'진짜네. 에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순 없잖아. 축가는 내가 직접 부를게 나도 한노래 하잖냐 지원아 좀 도와주라.'
지원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진행한다
'여러분 사실은 가수 시원씨가 신랑 님의 오랜 친구여서 축가를 불러주러 오시기로 했는데 오시는 길에 경미한 교통사고가 있으셔서 못오신다고 합니다.'
식장은 시장통 마냥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내가 아는 그 시원이 축가 부르기로 했다고?'
'어머 어머 시원 오빠가 오기로 했었다고? 근데 어떡해 교통사고 났대. 몸은 괜찮을까? 시원 오빠 직접 볼 수 있었는데 아쉽다.'
옆에 있는 신부를 바라보니 그녀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많이 당황했는지 혼이 쏙 빠진 모습이다.
'아아아. 여러분 식장 안에서는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타깝지만 축가는 신랑님께서 직접 사랑하는 신부님께 불러드리는 걸로 합시다. 제가 아는 바로는 신랑님도 노래를 잘 하십니다. 자 다같이 큰 박수 부탁드려요~'
짝짝짝 박수소리가 식장을 가득 메웠다.
동화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마이크를 집어들고 신부 앞에 선다.
5.
'죄송합니다 여러분!'
반주가 막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뜬금없는 소리가 사회자 뒤쪽에서 들려왔다.
시원이다.
동화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야 안시원! 아니 넌 뭐하느라고 ...'
'미안해.'
시원은 짧게 사과한 후, 재빠르게 동화를 지나쳐서 신부 앞으로 다가가 90도로 정중하게 숙여 인사를 한다.
'저 안시원... 한, 한여름 양의 결혼을 지,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는 고개를 푹 숙인채 말을 더듬거린다.
자세히 살펴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TV에서 봤을 때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하얗고 윤기가 흐르는 피부에 탐스러운 볼살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볼이 움푹 패여서 광대가 살짝 튀어나왔다. 눈은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고 온 듯 퀭하였고 낯빛은 흙빛이었다.
그의 느릿느릿한 음성이 가느다랗게 떨리는게 느껴진다.
'summer... propose 라는 노래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동화는 저 녀석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
6.
그래도 가수는 가수였다.
처음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해 음정이 많이 불안했지만 이내 안정감을 찾은 그는 음원인지 라이브인지 헷갈릴 정도로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다.
하객들은 달달한 그의 목소리에 매료되었고, 동화도 가슴이 뭉클했다.
신부 여름이도 동화의 정성과, 시원의 훌륭한 축가에 많이 감동을 받았는지 말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다시 한 번 축하한다는 말씀드리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원은 신부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서둘러 식장을 빠져나간다.
'정말 미안하다.'
시원이 급하게 식장을 빠져나가며 동화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 한마디였다.
7.
동화와 여름은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오래전부터 여름이가 가고 싶어했던 곳이었지만 결혼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였던지 여행 내내 그녀는 축 쳐져 있었다.
첫 날에 와이키키 해변에 한 번 간 뒤로는 피곤하다며 호텔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커플 버킷리스트였던 다이아몬드헤드 트레킹은 결국 하지 못한 채 귀국하였다.
여름이는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계속 우울해 보였으며 말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시원에게는 고마웠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 날의 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의도적으로 연락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고 묻지 않기로 했다.
귀국 이후 결혼식 날 시원에 관한 소문이 하나 둘씩 들려왔다.
하객으로 왔던 친구 동석이는 예식이 시작되기 직전 쯤 식장과 조금 동 떨어진 화장실에서 그를 목격했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급하게 나오는 시원을 마주쳤는데 울고 있었던 것 같았다고 하였다.
또 다른 지인에게서 건너 들은 바로는 어떤 주차장 알바생이 결혼식이 진행 되던 중에 자동차 안에서 연거푸 담배를 피고 있던 시원을 봤다고 하였다.
8.
동화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도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날의 시원의 행동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궁금증은 더해져갔다.
생각난 김에 유튜브에 들어가서 시원의 summer propose를 다시 한 번 감상한다.
'자식, 노래 정말 잘하더만. 역시 넌 내가 옛날부터 알아봤지만 음악 천재였어. 노래도 거의 다 직접 작곡하던데.'
노래가 끝나갈 무렵 오른쪽 창에 위치한 연관 영상 리스트가 보인다.
스크롤을 내려본다.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하나 있다.
'요즘 대세 싱어송 라이터 시원, 노래에 얽힌 사연은?'
방송 날짜를 보니 약 10개월 전, 시원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우승한 직후 한창 예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본능적으로 극도의 불안함을 느끼며 떨리는 손가락을 마우스에 갖다 댄다.
9.
한창 잘나가는 연예인들만 출연한다는 인기 예능 오디오스타였다.
'요즘 대세, 우리 시원씨~ 가창력도 엄청난데 심지어 거의 모든 곡을 직접 작곡작사까지 하시네요.'
'천재야 천재 ~ 게다가 잘생겼어. 이거 너무 불공평한거 아닙니꽈아?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요새 제 노래가 나름 인기가 있다보니
저도 내가 혹시 천잰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하하'
'그런데 시원씨, 혹시 본인이 작곡하신 것 중에 깊은 사연이 있는 노래가 있나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연이 있는 노래들이 있죠. 제 노래 중에서 summer propose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이 노래는 예전에 정말 많이 사랑했던 분을 위해서 만들었던 노래에요.'
'이런거 묻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혹시 그 분 하고는 어떻게 되셨나요?'
'그렇게 어렵게 물어보실 필요는 없으세요. 다 지난 일인데요 하하하.
그 분하고는 서로 많이 사랑해서 결혼하려고 했었는데요. 그분은 굉장히 능력 있고 집안도 엄청 나셨던 것에 비해서 저는 능력도 없고 가난해서 그 분의 부모님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제가 워낙 모자랐으니까 반대하신 것도 이해는 가요.
그래도 둘이 어떻게든 결혼하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고 억지로 결혼식 날짜도 잡았었는데 결국은 헤어지고 말았어요.
summer propose는 그 분하고 결혼식 날에 제가 직접 불러주려고 만들었던 노래에요. 그 때 잡아놨던 결혼식 날이 여름이기도 했고 그 분과도 관련 있는 계절이라 제목을 그렇게 지었어요. 그 분도 꼭 듣고 싶다고 기대 많이 한다고 하셨는데 써먹을 일이 없었네요 하하.'
'이제는 시원 씨가 스타가 됐지 않습니까? 그 여자 분이나 그 분의 부모님들이 지금 시원 씨를 보시면 참 아깝겠어요.'
'글쎄요. 그 분은 저랑 헤어지고 미국으로 아예 가버리셨기 때문에 제 존재를 아시기는 할까 싶네요. 어디서 뭐하고 사는 지는 모르지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구요, 이미 늦었지만 이 노래는 꼭 들려드리고 싶네요.'
'노래에 얽힌 슬픈 사연 잘 들었습니다!
시원 씨가 유명한 가수가 됐으니 그 분도 언젠가는 그 노래를 듣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제 시원 씨가 부르는 summ er propose 한 번 들어 ~~ 봅시다!'
<Summer propose>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햇살 아래 불타는 내 맘 고백할게.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어 영원히 네 곁을 맴돌고 싶어.
차가운 겨울도 뜨거운 여름 같던 우리의 사랑 영원하리
누구도 떼어 놓을 수 없는 너와 나 우리의 만남 운명인걸
너무나 부족하고 모자란 나이지만 염치없이 너만을 원해
언젠가 지금 내 모습이 너에게 어울리게 훨씬 더 커질 때
온 세상 거친 바람에 맞서 나의 등 뒤로 너를 지켜 주고 싶은데
너 하나만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줘
한여름밤의 꿈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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