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차례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은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1954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무시무시한 대괴수 ‘고지라’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핵에너지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1955년 ‘원자력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원자력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1950년대부터 일찌감치 핵에너지 개발에 시동을 걸었고, 그 결과 미국과 프랑스의 뒤를 잇는 ‘원전 강국’이 됐다. 뿌리 깊은 공포와 불안에도 일본이 핵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평화적 이용’을 앞세워 ‘반핵’ 목소리를 억누른 대대적인 심리전이 있었다. 이면에는 냉전 시대 핵무기를 자유롭게 배치하려던 미국의 속내와 전후 일본의 권력을 유지하려던 일본 지배층의 욕망의 결합이 있었다.
<요미우리신문>과 일본 최초의 상업방송 <니혼티브이>의 창업주로서 일본 매스컴계의 거물로 손꼽히는 쇼리키 마쓰타로(1885~1969)는 ‘일본 원자력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쇼리키는 1955년 원자력 박람회를 열고 이를 자신이 소유한 미디어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등 1950년대 일본의 핵에너지 도입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원자력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나중에 기밀 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문서들은, 당시 쇼리키가 미국 중앙정보국과의 긴밀한 협조 관계 아래 핵에너지 도입을 위한 심리전을 주도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쇼리키가 수행한 프로젝트는 ‘KMCASHIER’, 쇼리키 자신은 ‘POJACKPOT-1’이란 코드명으로 불렸다. 잭팟이라니,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