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이익을 늘리는 것보다 ,,,,,,,,,,,,,
모든 기업의 화두가 된 ‘고객 가치 경영’
이기우 기자
입력 2022.07.28 21:42
“돈 받고 불량품을 만들다니, 고객이 두렵지도 않으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5년 ‘무선전화기 화형식’ 때 남긴 어록이다. 설 선물로 삼성전자가 임직원들에게 돌린 휴대전화 2000여 대가 제대로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전해 들은 이 회장은 회사가 생산한 무선전화기 15만대를 불태워버리도록 지시했다.
이때 폐기한 무선전화기 시가만 총 500억원어치에 이르렀다. 7년 후인 2002년, 삼성전자는 휴대폰 4500만대를 팔아 3조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회장의 극약 처방으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고객을 기업의 경영 중심에 두는 ‘고객 가치 경영’은 모든 기업의 화두가 되고 있다. 단순히 질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서 이익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의 만족과 감동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공통 목표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눈앞의 재무적 성과보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고객의 삶이 개선될 수 있을지 궁리하고 그에 맞춰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기업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고객 가치 위해 다양한 경험 제공·재무 전략 재구축
삼성전자는 고객들이 스마트폰·TV·가전제품 등 어떤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동일한 경험을 느끼고, 편안하게 다양한 기기를 사용해 차원이 다른 가치를 느끼게 하겠다는 경영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다양한 기기를 통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생태계 확장을 위해 고객들에게 개인 맞춤형 멀티 디바이스 경험을 제안하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 일상도감’ 캠페인도 시작했다.
삼성전자 제품·서비스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기기도 함께 연결해 고객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편안하게 삼성전자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SK그룹도 고객 가치와 사회적 가치 등을 함께 반영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파이낸셜 스토리(중·장기 재무 전략) 재구축에 나서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6월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2022년 확대경영회의’에서 “기업 가치는 재무 성과·미래 성장성과 같은 경제적 가치 외에도 사회적 가치·유무형의 자산·고객 가치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돼 있다”면서 “이 중 어떤 요소를 끌어올리고, 어떤 요소에 집중해 기업 가치를 높일지 분석해 이해관계자의 더 큰 신뢰와 지지,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 방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파이낸셜 스토리를 다시 구성해 보자”고 했다.
현대자동차는 온라인에서 고객 제안을 수시로 듣고 고객과 함께 상품 및 서비스를 개발해 나가는 플랫폼 ‘히어(H-ear)’를 운영하고 있다. 2016년부터 실시해 온 고객 소통 프로그램 ‘H옴부즈맨’을 2019년부터 온라인으로 확대 개편한 것으로, 선별된 참가자들이 오프라인 모임에서만 만나던 기존 방식 대신 누구나 언제라도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히어에 가입하면 단순히 고객과 기업의 소통뿐만 아니라 고객과 고객이 서로 자신의 아이디어와 제안을 자유롭게 주고받고 토론할 수 있다.
◇고객 가치 경영, 고객·기업 상호 작용으로 이어져야
고객 가치 경영은 기업들의 조직 이름에도 반영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조직 명칭을 변경하고 사업 부문 재정비에 나섰다. 기존 무선사업부를 MX(Mobile Experience) 부문으로 이름을 바꿨고, 소비자 가전과 IT·모바일 부문을 합쳐 신설된 세트 부문을 DX(Digital Experience) 부문으로 명명했다. 경험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experience’ 를 조직 이름에 반영한 것은 그만큼 고객 경험이 중요하다는 한종희 대표의 지론 때문이다. LG전자 역시 생활가전·TV·전장 등 핵심 사업부 곳곳의 ‘상품기획’ 부서 명칭을 모두 고객 경험을 뜻하는 CX(Customer Experience)로 바꿨다.
앞으로의 고객 가치 경영은 단순히 고객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차원을 넘어 고객과 기업의 상호 작용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모든 기업이 고객의 만족도를 경영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차별화를 위해서는 고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고객 자신도 가치를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 가치 경영 전문가인 이유재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객 가치 경영은 가치 창출을 위해 기업만 노력하는 일방적인 경영이 아니라, 기업과 고객이 주체로서 서로 소통하고 상호 보완함으로써 가치 창출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양방향적인 경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