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KIA) 없이는 못 살아 / 조미숙
어제는 슈퍼 루키(뛰어난 기량이나 활약을 보여 주목을 받는 신인 선수) 윤영철이 프로 데뷔전을 치뤘다. 떨린 가슴을 부여잡고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요즘 승리의 맛을 잊어버린 기아타이거즈이지만 실력이 뛰어나다는 투수가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원정 경기라 우리 팀이 먼저 공격한다. 상대의 실책과 이어지는 행운의 안타로 기회를 잡아 놓고도 어이없이 무너졌다. 1회의 공격을 보면 그날 성적이 대충 그려진다. 오늘도 그른 것 같다. 이어지는 부진에 한숨이 깊다. 어제도 된통 당했는데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 화가 치민다.
1회 말, 우리의 수비다. 앳된 얼굴을 한 올해 신인 윤영철이 마운드(mound)에 오른다. 긴장도 안 했는지 공을 던지고 씩 웃는다. 하지만 땀범벅이 되고 길어지는 시간과 던지는 공 개수가 늘어가면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무차별적으로 난타를 당한 선수가 애처롭기만 하다. 예전에도 그런 투수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상처가 깊었는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해설진이 바꿔 주지 않은 감독과 코치를 맹렬하게 비난했던 것이 기억난다. 트라우마가 심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내 눈에도 그 투수가 제발 자기 좀 구해달라고 간절하게 매달리는 것 같아 너무 짠했다. 정신이 나간 채 무의식적으로 던지는 것 같았다. 왜 한 번도 투수를 진정시키거나 도닥거려 주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포수조차 투수에게 나가보지 않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대부분 흐름을 끊으려고 일부러 나간다. 지나간 일이 겹쳐 떠오르며 제발 얼른 끝나기만을 빌었다. 기나긴 수비가 끝나고 이어지는 우리 공격은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한다. 투수를 생각해서라도 선배로서 그렇게 하면 되겠냐고 혀를 차며 혼잣말을 해 본다.
투수는 다행히 2회부터는 안정을 찾았다. 깔끔하게 한 회를 마무리 짓는다. 특히 홈런을 맞았던 선수에게 과감하게 직구를 던져 아웃을 잡는 배짱엔 저절로 박수를 보낸다. 우리 팀 공격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게 밖에 못하냐는 핀잔을 준다. 혼자서 울고 웃는다. 최하위 팀을 만나 2패를 당하고도 5연패에 있는 상대에게도 열심히 끌려가고 있다. 덕분에 그 팀은 물 만난 물고기다. 작년에 좋은 성적을 거둔 터라 지금 순위가 말이 안 되는 팀이다. 그래서인지 그 선수들이 타석에 설 때마다 이름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주말 3연전에 맥없이 지고 있다. 야구명가의 자존심은 어디에 팽개쳐버렸는지 10위 꼴찌다.
지난 시즌에 우연한 기회에 그 비싸다는 스카이박스(야구장 4층에 있는 방,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고 밖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 표가 있다는 지인의 도움으로 우리 가족 다섯 명도 합류했다. 그 집은 남편만 야구를 좋아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 집 여자들은 모두 가만히 앉아있는데 우리는 방방 뜬다. 큰딸과 막내와 나는 처음부터 시원한 방에서 티비로 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 열심히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야구장이 한 눈에 시원스레 펼쳐지는 위치여서 기분은 하늘을 날았다. 혹시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나 가끔씩 체크도 하면서 응원봉을 두드린다. 제일 유명한 선수의 응원가는 나도 따라 불렀다. 수비하면 방으로 들어가서 주전부리를 먹으며 응원하고 공격하면 밖으로 나가서 응원가에 맞춰 정신없이 뛰었다. 그날은 멋진 역전승을 안겨 줬다.
프로야구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좋아했다. 어린 시절 논에서 부모님을 도와 드리다가도 중계시간이 되면 각종 핑계를 대고 집에 가서 잠깐씩 보고 왔던 기억이 있다. 1번부터 9번까지 선수 이름도 죄다 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야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다시 불이 붙기 시작했다. 남편은 시간이, 난 차가 없어 행동이 자유롭지 않았을 때도 아이들 셋 데리고 광주 야구장에 종종 갔다. 그때는 지정석이 아니라 일찍 가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광주에 도착하면 또 터미널에서 햄버거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사서 두 손에 보따리 무겁게 들고 갔다. 여름에는 가방에 얼린 물도 가득했다. 야구가 끝나고 돌아오려면 만만치 않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시 이어지는 일요일 오후 야구 중계. 오늘은 대투수라 불리는 양현종이 등판한다. 글을 쓰다 쫓기듯 티비를 켠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다. 예견한 것처럼 강력한 투수전으로 이어졌다. 오늘도 방망이는 조용하다. 기회가 와도 잡을 줄 모른다. 짜증과 한숨이 절로 난다. 남편은 양현종도 이제는 아니라고 하지만 오늘은 거침없이 삼진을 잡아내는 그에게 강인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기아는 여전히 선취 득점 기회를 놓친다. 사냥감을 놓치는 이빨 빠진 호랑이다.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라도 듣게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어느덧 8회 초다. 키움 투수는 여전히 선발 최원태다. 시작하자마자 3명의 타자가 힘없이 죽는다. 7회까지 9개의 삼진을 잡아낸 투수를 격찬하는 “우리는 여전히 양현종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중계진의 말을 듣자마자 시작된 공격이 무색하리만치 선수들은 그의 빛을 가려버렸다. 바뀐 투수는 무사의 볼넷으로 위기를 맞는다. 공이 제자리로 가지 않고 춤을 춘다. 손에 땀을 쥔다. 마무리도 시원찮은데 아직 0대0이다. 결국 연장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고 무릎을 꿇었다.
유난히 경쟁하는 것은 못 견뎌하면서도 승부욕은 강한 편이다. 9회까지 기나긴 이닝(inning)이 있는데 1회에 못하면 오늘도 졌다며 흥분한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도 있는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한다. 경기를 항상 잘할 수는 없는데 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응원하며 지켜보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성적이 좋지 못한 선수가 나오면 또 간절히 “제발, 제발” 하며 기도한다. 내 아픈 손가락 같다. 가슴 졸이다가, 한숨 쉬다가 화를 내다가도 열렬히 박수도 치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시간이다. 스트레스 받아가며 아까운 시간 버린다고 자책하면서도 난 야구를 끊지 못한다. 아쉽게 텔레비전으로만 중계를 보지만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 우리는 하나가 된다. 그것 자체만으로 희열이다. 이기면 광주 구장에 흘러나오는 “비 내리는 호남선”으로 시작하는 ‘남행 열차’가 기아 팬으로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치게 한다. 바닥까지 떨어졌으니 이젠 순위가 오를 일만 남았다.
오늘도 난 애증의 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한다.
첫댓글 저는 올해 개막전을 인천에서 봤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지더라고요. 야구를 좀 더 박진감 있고 빠르게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마음엔 기아타이거즈의 피가 흐른답니다.
나는 야구 보는 것에 별 흥미가 없는 데 아들은 매우 좋아합니다. 집에서 걸어서 야구장에 갈 수 있는데도 아들과 함께 몇 번밖에 가지 않았습니다. 조선생님 글을 읽고 이제 야구장에 자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에 아들이 집에 오면 한번 가자고 해야겟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조 선생님은 야구광이시네요. 티비로 가끔 보는데 자연스럽게 기아를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글이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조 선생님은 조용한 것 같은데, 애들 데리고 버스 타고 야구장을 찾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하하,기아 없이는 못 살만큼 야구광이셨네요.
모든 운동은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걸 좋아하는 저도 기아가 경기하는 야구 중계를 봅니다.
광주에 사는 여섯 살 손자도 기아 선수들의 응원 구호를 외워 응원하는 걸 보면 광주·전남에서 기아를 아끼는 정도를 알 것 같습니다.
글이 너무 재밌어요.
현장까지 가는 응원하는 찐팬이라는 건 글로 압니다.
멋져요.
아이 셋 데리고 버스 타고 가는 그 열정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