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 사라지다 / 양선례
중간놀이 시간에 자치활동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학생 셋과 사무실에 들어섰다. 이번 학기에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전교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이다. 지난 2월에 뽑았는데, 4월 상순도 지나고서야 임명장을 주려는 것이다. 키가 작고 여리여리하게 보이는 6학년 전교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다부지게 생긴 5학년 남자 부회장을 앞에 세우고 상장의 내용을 읽었다. 담당 선생님은 그 장면을 사진기에 담았다.
한여름 땡볕 아래 학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한없이 길어진다. 겨우 끝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상장을 전달한다. 시 육상 경기 대회, 교내 과학의 날 행사나 백일장에서 상을 받는 학생의 시상이 이어진다. 옆 사람과 말을 하거나, 줄이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태양은 점점 이글거리고 교사와 학생의 이마에는 땀이 송송 솟는다. 30분이 넘어서면 얼굴이 샛노래지면서 쓰러지는 학생도 한두 명 생긴다. 그는 담임 교사나 주변 친구에 의해 양호실(보건실)이나 그늘로 빠르게 옮겨진다.
바뀔 것 같지 않던 애국 조회의 장면이 2010년대에는 칭찬 주회, 영어 주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등의 의식 행사로 시작하는 건 예전과 같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달랐다. 10분 이상 이어지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거의 생략되었다. 학기 초 새로운 선생님을 소개하거나, 학기 말에 방학 동안 지켜야 할 생활 규칙을 간추려 말하는 정도로 축소되었다.
작은 학교에서는 그 시간을 활용하여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을 통째로 외워 역할 놀이로 꾸며 발표하거나,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이나 친구나 선생님을 칭찬하는 글을 학년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발표하기도 했다. 주로 체육관이나 다목적실 등에서 이뤄지기에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학생도 없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그조차 사라졌다. 도에서는 일제 시대의 잔재인 애국 주회를 아직도 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모 매체의 시민기자는 전라남도 내 84.2%의 초등학교가 ‘애국 주회’라는 이름으로 일제 식민 잔재 의식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상북도, 충청남도, 광주광역시 등에도 그것을 실시하는 학교가 남아있으나 전라남도처럼 도 단위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매우 특이하다고 썼다. 그러면서 국민의례, 학생 시상, 학교장 훈화 등의 의식을 기본으로 하며 그 목적은 ‘애국심 함양’이라고 썼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지역이 심하다며 학교 누리집에서 캡처한 사진까지 올려 근거 자료로 삼았다.
화가 났다. 전교생 60명 이하의 작은 학교에서 10년 넘게 근무했지만 학생의 애국심을 기르고자 월요일마다 모인 적은 없다. 오히려 사회성이 부족한 작은 학교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작은 무대에라도 설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 현실을 제대로 알고 쓴 건지 의문이 들었다. 기사 탓인지, 아니면 코로나 3년의 여파인지 이제는 어느 학교나 정기적인 애국 주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우리 학교처럼 규모가 큰 학교는 전교생이 모일 공간조차 없다. 운동회와 학예 발표회도 학년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오늘처럼 학생 개인에게는 지극히 영광인 임명장도 여러 학생의 축하 박수도 없이 단출하고 쓸쓸하게 전해진다.
언제부턴가 학교 현장에서 상장이 사라졌다. 특히 혁신학교에서는 더 그렇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강조하기에 몇몇 아이가 독점하는 대회나 시험을 없앤 곳이 많다. 육상경기대회나 독서·토론대회 등의 교육장 상이나 4월이면 학교에서 단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과학기술부 장관 표창도 그것을 받는 학생들만 교무실에 불러서 따로 시상하거나 상장만 그 학급으로 보낸다. 학생이나 교직원이 아이의 특성에 맞게 스승의 날이나 학기 말에 자체적으로 주기도 한다. 지난 학년도 졸업식에서도 아이들이 정했다는 상 이름과 문구는 기발하고 발랄하여 톡톡 튀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일기를 잘 써서 상을 받았다. 상품으로 색색의 크레파스를 받았다. 중학교 2학년 때는 군 백일장에서 대상을 탔다. 상품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글을 쓰는 데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줬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 글을 쓰는 건 그런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긴장과 경쟁은 발전의 동력이 된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로 바로 학습이다. 그 결과가 좋아 받는 상이라면 오래전 나처럼 자신의 특기를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꾸준히 가꾸고 계발하면 직업으로도 연결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면 그것처럼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나친 경쟁은 경계해야겠지만 학교를 6년이나 다녔는데도 생활기록부에 적을 상 하나가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획하고, 추진하여 상장 만들고 생활 기록부에 올리는 수고는 사라졌으니 업무 경감 면에서는 득이 될 수도 있겠다.
내가 학교 다닐 때처럼 95점 이상을 맞은 학생에게 한 달 동안 특정한 색깔의 훈장을 달게 하여 구별하거나 전교에서 50등 이내에 든 학생의 이름을 대자보로 써서 게시하는 건 분명 문제가 많다. 그 시험은 오로지 지필 평가로만 이루어지기에 더 그렇다. 그러나 요즘은 평가 방법과 종류가 다양해졌다. 그런데도 상을 받지 못한 아이에게 열등감과 패배 의식을 주기에 아예 없애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닐까? 이러다가 전체가 하향 평준화의 늪에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첫댓글 안타까운 현실같습니다. '하향 평준화'
잘 읽었습니다. 우리 딸이 상을 안 가져오던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하하하.
열등감과 패배 의식을 준다는 근거로 상을 없애는 것은 반대입니다. 그렇다면 칭찬도 하지 말아야지요. 너무 남발해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지만 잘 한 결과를 칭찬하는 의미의 상은 장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친언니가 그렇게 운동장이나 강당에서 교장 선생님이 말씀 하실 때 자주 쓰러지곤 했습니다. 아들 학교도 보니 시상식이나 임명장 수여를 교장실에서 하고 교내 방송으로 내보냅니다. 아들이 상 한 장이라도 졸업 전에 받았으면 좋겠어요.
동감합니다.
쓰러지는 사람들 부러웠는데. 하하.
잘 읽었습니다!
저두 한 번 쓰러져 보는 게 꿈요.
손녀가 학년 말에 다독상을 받아와서 기뻤습니다.
상을 주고 받는 일은 권장해야 되지 않나요?
상이 사라진 시대,
달라진 것들이 많죠? 위 댓글들은 상을 줘야한다 는 이팝나무님을 응원하고 있군요. 하하
상을 너무 남발하면 가치가 떨어지고, 지나치게 경쟁심을 유발하거나 내용이나 사람을 특정한다면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도 있고...
중용의 도가 필요하겠네요.
상을 받으면 좋은데 못 받으면 서운하고 세상 일이라는 게 참 그렇네요.
이팝나무님이 글을 너무 잘 써서 모두 설득되셨군요. 상을 줘야한다에 찬성이 너무 많아서 반대도 한 표 있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기네요. 하하.
몇 명만 받고 나머지는 손뼉 치며 실망하는 그 모습 보는 것이 불편해서 전 요즘 아예 상을 주지 않는 분위기가 좋은데 선생님 글을 읽으니 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상은 동기부여가 되는데 사라지는 추세라니 안타깝습니다.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칭찬하고 격려하는 상 문화는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릴때 전교생 앞에서 상 받을때 엄청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현장에서 보고 느낀 글이라 더 공감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