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 / 박선애
지난 5월부터 어머니는 요양 병원에서 지낸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다친 지 40여 일 만이었다. 고관절 뼈가 부러졌지만 수술하고 곧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만 더 재활 치료를 받으면 집에 가게 될 거라 믿고,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이 운동했다. 좀 더 있다가 집으로 퇴원하면 될 텐데 병원을 옮기자고 한다고 화를 냈다. 시골 할머니들끼리 나눈 정보로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정해놓아서 거부감이 크니 운동 잘 시켜 주는 재활 병원이라고 속이고 달랬다. “집으로 갈 줄 알았더니 병원을 또 옮겨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입원하는 날, 병원에 가자마자 어머니는 기본 검사를 받으러 가고 우리는 설명을 듣고 몇 가지 서약서에 서명했다. 짐을 들고 안내해 주는 직원을 따라 2층의 제일 끝에 있는 방으로 갔다. 두 분의 할머니가 떨떠름한 얼굴로 쳐다본다. 비어 있는 침대 셋 중 가운데 자리를 어머니에게 준다. 방은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다. 그래서 그쪽에는 침대가 두 개 놓였다. 왼쪽으로는 침대가 세 개 있다. 이미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은 화장실 벽 옆 침대에 있다. 밖에서 보이지 않고 아늑해서 좋을 것 같다. 한 분은 왼편 제일 안쪽 창가에 자리 잡았다.
어머니 자리를 중심으로 맞은편, 그러니까 화장실 옆에 있는 분은 영애 할머니다. 이분은 아흔두 살인데 10년 전부터 병원에서 살고 있다. 집에서 미끄러지면서 허리뼈가 부서져 병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몸이 부자유스럽다 보니 자주 넘어져서 어깨, 다리뼈가 부러져 집에 가지 못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꽤 자유롭게 움직이신다. 그걸 타고 화장실에서 손수 빨래도 하고 그릇도 씻어서 입으로 물고 나온다. 내가 없을 때는 우리 어머니 손수건도 빨아주셨다. 머리도 하얗고 피부도 깨끗하다. 몸집이 커서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허리둘레가 엄청나다. 정신이 총총하고 몸가짐도 깔끔하시다. 눈이 얼마나 밝은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작은 글씨도 다 읽는다. 안경도 안 끼고 바느질을 하고 있어서 놀랐다. 그런데 귀는 꽉 먹었다.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반 의사다. 두통약, 설사약, 파스 등을 준비해 놓고 있다. 여기서는 아프다고 해도 “원장님께 말씀드릴게요.” 하면서 바로 약을 안 주니까 자신이 비상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분 생각이다. 어머니가 아프다고 가지고 있는 약을 먹여서 곤란한 적도 있다. 그러지 말고 간호사 호출 벨만 눌러 달라고 해도 약간 코 먹은 소리로 “소용없어. 그래도 잘 안 와. 나한테 약 많이 있으니 걱정 마.”라고 하며 막무가내다. 영애 할머니는 리모컨을 쥐고 있다. 그분이 트는 대로 텔레비전을 봐야 한다. 본인 청력에 맞춰서 소리를 크게 해 놓는다. 어머니는 처음에 텔레비전 소리, 말소리가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자꾸 복도에 나가 있었다. 이제는 적응해서 똑같이 목소리가 커지고 작은 소리는 더 못 듣는 것 같다.
어머니 옆, 창가에 계시는 분은 순금 할머니다. 올해 여든두 살인데 병원에 온 지 2년이 되었다. 걸음을 잘 못 걷게 되어 집에서 혼자 살 수 없었다. 식당을 30년 동안 하면서 칼질을 하도 많이 해서 손이 잘 쥐어지지 않는다고 반쯤 쥔 주먹을 보여 준다. 냉장고에서 유리 반찬 그릇을 꺼내다 떨어뜨렸다. 그 깨진 유리 조각에 발을 다쳤는데 상처가 낫지 않아 발을 자를 뻔했다. 서울까지 가서 고쳤다고 자기 발이 1000만 원짜리라고 한다. 우리 어머니처럼 보조기를 의지해야 걷는다. 당뇨가 심한지 배에다 주사를 맞는다. 누워 있어도 배가 둥실하게 올라와 있다. 우리 어머니는 저렇게 배가 나와서 얼마나 불편하겠냐고 목소리도 안 줄이고 내게 말한다. 내가 듣겠다고 하지 말라고 했더니 귀먹어서 괜찮다고 한다. 나이도 젊은데 이분도 잘 못 듣는다. 그래서 두 분이 이야기하면 정말 시끄럽다. 두 분은 친해서 소리 질러가며 대화를 자주 한다. 서로 상대방이 귀를 더 먹었다고 하면서.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은 젊은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흔히 쓴다. 가는 순서가 없는 것은 저 세상만이 아니라 요양원(요양 병원)도 해당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흔여섯 살 어머니는 두 분의 요양 병원 후배가 되었다.
이 두 분은 어머니를 잘 도와 주신다. 본인들 몸무게의 반도 안 나갈 작을 몸집의 나이 많은 할머니라 돌봐 줘야 할 후배로 느낀 모양이다. 간식이나 반찬을 가져가면 영애 할머니가 좁은 냉장고를 정리하고 자리를 만들어 넣어 놓는다. 넉넉히 가져가 같이 드시라고 하면, 때맞춰 간식도 잘 챙겨 드리고 반찬도 갖다 준다. 날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어머니도 타 준다고 해서 커피를 한 통 사다 드렸다. 어머니가 위궤양이 심해서 커피를 주지 말라고 했더니 천마차를 타 주신다. 떨어지면 사 오라고 해서 얼른 그렇게 했다.
순금 할머니는 병원에 서툰 어머니를 잘 데리고 다니신다. 심지어 자신이 예약된 시간에 물리 치료 받으러 가면서 어머니를 데리고 가 무조건 해 주라고 떼를 쓴 모양이다. 오후에 갔더니 간호사가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물리 치료를 받으려는 대기자가 많은데, 그렇게 억지를 부려서 이제부터 그 시간에 해 주겠다고 한다. 밖에 있는 테라스 정원에도 어머니를 데리고 가서 함께 모여서 노는 친구들 사이에 끼워 주었다. 어머니가 그나마 병원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처음 들어가니 두 분이 “여기는 기저귀 안 차는 사람만 있는 방이다, 이 방에 있던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져 기저귀를 차게 되어 다른 방으로 갔다.”고 말했다. 기저귀 차게 되면 나가라는 압력인 것 같다. 텃세를 부릴 기세라 걱정했는데 어머니한테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 후로 몇 번은 선배로서 텃세를 톡톡히 부렸다. 한 번은 새 환자가 이 방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영애 할머니를 화나게 해서 크게 악을 쓴 일이 있었다. 마침 병원에 갔는데 2층 입구에까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방이 제일 안쪽에 있는데 거기까지 소리가 들리니 보통 큰 게 아니었다. 그걸 보고 놀란 그 환자는 다른 방으로 가겠다고 했다. 또 그 후로 한 분이 왔는데, 소변줄을 끼고 있었다. 화장실을 더럽게 쓴다, 소변줄을 만지니 비위 상한다 등의 이유로 자꾸 뭐라고 해서 다른 방으로 보내 버렸다.
8월에 어머니가 염증 수치가 높아져서 항생제 주사로 치료받아야 할 때가 있었다. 혈관이 약해서 터진다고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10여 일 누워만 지나다 보니 치료가 끝나도 바로 걷지를 못했다. 보름쯤 기저귀를 찼는데 그분들 눈치가 보였다. 그런데 그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괜찮다고 하며 오히려 걱정하고 위로해 줬다.
지난주에 5층에 있던 분이 옮겨 왔는데, 아직 정을 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70대 중반의 젊은 분인데 좀 특이하다. 침대 위에 텐트를 쳐 놓고 지낸다. 짐이 많아서 복잡하고 어수선하다고 깔끔한 영애 할머니가 입을 삐죽인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두 분이 싫어한다. 어머니는 그러지 말고 따뜻하게 대해 주라고 했다. 이미 했는지, “진짜로 냄새가 나긴 하더라.”고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우리 어머니도 이제 선배가 되었나 보다.
첫댓글 수년전, 우리어머니가 요양 병원에 있어 들락거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병원에 들어서면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불쾌한 냄새, 힘없이 누워있는 노인들, 쉴세 없이 켜져있는 텔레비젼 등. 갈 때마다 사위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 가득했지요. 그래도 살아계실 적에 얼굴보고 손잡아드릴 수 있어 좋았어요. 돌아가시니 이제 볼 수도 없네요.
요양원(병원) 풍경이 자세하게 보입니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선생님은 눈물 흘리지 않을 것 같아요. 어머니 생전에 원 없이 잘해드려서요.
그래도 어머니께서 요양원에 잘 적응하고 계셔서 다행이예요. 선생님이 자주 찾아 뵈시면서 잘 돌보시니 안심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글이 깊이 박히네요. 생노병사는 인간의 필연적 과정이라 받아들이긴하지만 그 깨끗한 분이 참 힘드시겠어요. 선생님 같은 효녀가 가까이 있어 많은 위안이 되시겠네요.
아마도 텃세 심한 두 분도 어머니의 인품과 넉넉함에 감복하셔서 잘해드리지 않나 싶습니다.
뵙지는 않았지만 글로 만나는 어머니는 참 따뜻한 분이셔요.
선생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