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문.
'알아차림'도 10가지 번뇌중의 하나인가요라는 질문은 심청정에 관한 글 중 다음 글의 여덟번째 '흔들림이 없는 알아차림이 뚜렷하게 항상 자리잡고 있다.[現起. upa.t.taana]' 에서 의문이 생겨 말씀 드린 것입니다.
---청정도론에서는 순수 위빠싸나의 대상이 되는 10가지 번뇌[十觀隨染]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마음속에서 강한 빛을 경험한다.[光明. ochaasa]
② 예리한 이해력이 생겨 경전이나 교리의 깊은 의미를 꿰뚫어 이해가 된다.[知. ~naa.na]
③ 몸의 전율을 느끼는 희열이 생긴다.[喜. piiti]
④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 진다.[輕安. passaddhi]
⑤ 마음에서 강렬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樂. sukha]
⑥ 강한 신심이 생긴다.[勝解. adhimokkha]
⑦ 더욱더 수행에 전념하여 정진을 한다.[努力. paggaho]
⑧ 흔들림이 없는 알아차림이 뚜렷하게 항상 자리잡고 있다.[現起. upa.t.taana]
⑨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들에 대해 마음이 평등한 상태가 된다.[捨. upekkhaa]
⑩ 이러한 모든 현상들에 대해 미세한 집착과 욕망이 일어난다.[欲求. nikanti] ---------------------
위 내용중 빛, 희열, 편안함 등은 탐욕이 붙게되는 '번뇌'의 대상으로 이해되는데 정진, 흔들림없는 알아차림, 평등심 등 이런 발전의 상태들이 왜 위빠사나로 알아차려야할 대상인 '번뇌'에 속하게 되는가? 의문이 생깁니다.
답 변
위빠싸나에서 번뇌가 되는 10가지는 이미 밝혔듯이 지혜가 성숙되어야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러므로 축하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불결한 번뇌로 치부하는 것은 바로 위빠싸나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하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빠싸나에서 추구하는 완전한 자유와 지고의 행복은 어떤 것들로부터도 집착함이 없이 그대로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산다는 사실의 에너지는 바로 욕망인데 여하한 욕망을 갖지 않는 다는 사실이 바로 해탈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런 수준의 행복과 해탈을 이해하려면 그만한 의식이 갖추어 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실에 대해 오히려 공포를 느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이 없어야 한다는 이런 사실 자체에 두려움을 갖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수준의 의식은 살고 싶지 않다는 욕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궁극적인 결과까지 가기 위해서는 지혜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집착을 보이지 않아야 다음 단계의 의식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무엇에 대해서나 비작용적인 마음으로 대상에 빠지면 안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거나 라는 것이 없습니다. 윤회하는 세계는 욕계의 세계인데 윤회를 끊으려면 욕망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를 가리지 않고 번뇌로 생각하여 자유로워지는 것이 해탈로 가는 단 하나의 길임을 아셔야 합니다. 해탈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의 해석은 위빠싸나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야할 길이 있는데 좋아하면 머물게 되고 머물면 가라앉습니다. 또한 싫다고 내치면 휘말려 버려 떠내려갑니다. 이것이 위빠싸나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입니다.
말씀하신 10가지 번뇌 중에, 7번째 정진을 왜 번뇌라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진을 노력이라고 하는데 노력이 지나치면 들뜨고 산란해 집니다. 그래서 정진도 알맞게 해야 합니다.
다음에 8번째 흔들림이 없는 알아차림이 뚜렷하게 항상 자리잡고 있다.[現起. upa.t.taana]를 왜 번뇌로 보느냐는 것입니다. 빨리어 우빠타나(upa.t.thaana)는 나타남, 현현(顯現, 명백히 나타남) 현기(現起)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알아차림(sati)이라는 뜻과는 다릅니다. 현재 나타난 대상이 무엇이 되었거나 알아차릴 대상일 뿐이지 그것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좋은 현상이 나타나면 갈애가 생기고 그래서 집착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집착은 어떤 경우에나 번뇌라는 대상의 1순위입니다.
다음으로 평등이 있습니다. 평등을 빨리어로 우뻭카(upekkhaa)라고 합니다. 평등의 뜻은 열 가지나 됩니다. 그러나 느낌에 있어서 평등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무지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느낌으로 아는데 덤덤한 느낌을 평등한 느낌이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 덤덤한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무지의 느낌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평등한 것도 알아차려야 제대로 된 평등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고 보니 세상에 쉬운 것이 없군요. 그렇습니다. 선업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우리는 불선업의 세계에서 선업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 언제나 알아차림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번뇌일 지라도 알아차림 하나만은 번뇌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많을수록 좋고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입니다. 알아차림이 하루 종일 이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누구나 일주일이면 아라한이 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차츰 기간을 늘려 잡으셨습니다. 이 말은 누구나 완전하게 일주일 동안 알아차림을 하면서 집중을 하면 아라한이 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을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불선업의 습관이 가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고도 아라한이 되지 못합니다.
10가지 지혜가 10가지 번뇌로 규정되는 이 의미는 곰곰이 곱씹어 볼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