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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시내를 이동하는 주요 교통수단이지만 장애인들이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몇 대 없는 저상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망부석이 될 지경이며, 사실상 저상버스로 출퇴근하거나 지인과 약속 장소에 늦지 않게 이동하는 건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천장애인자립생활네트워크를 구성한 인천지역 9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는 지난 17일 각 센터에서 출발해 도심인 인천시청으로 오후 2시까지 저상버스만 이용해 이동하는, 일종의 ‘실험’을 진행했다. 인천 계양구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민들레센터)에서 활동하는 신경수 씨(뇌병변 1급, 32), 정명호 씨(뇌병변 1급, 25)도 이 실험에 동참했다.
민들레센터 일행이 이동하게 될 구간은 인천 계양구에 있는 센터에서 남동구에 있는 인천시청까지 약 12km로 비장애인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시 1시간 내외의 거리다. 이들 일행은 넉넉하게 오전 11시 50분경 민들레센터를 출발했다. 이들은 오후 2시까지 인천시청에 도착할 수 있었을까?
![]() ▲버스를 기다리는 신경수 씨(가운데), 정명호 씨(왼쪽 두 번째). 24-1번 계단 버스가 이들을 지나치고 있다. |
6대 보내도 올 생각 않는 저상버스, 버스 대기 시간만 1시간 40분
낮 12시, 민들레센터 일행은 롯데마트 계양점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이 정류장에는 13개의 버스 노선이 운행된다. 이들은 이 중 24-1번 노선에서 저상버스를 운행한다는 지인들의 목격담, 인터넷 검색 정보 등을 토대로 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24-1번 버스를 타면 약 7km 거리에 있는 부평역 정류장에서 34번 버스로 갈아탄 뒤 약 5km 더 가서 인천시청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버스가 안 와도 너무 안 왔다. 물론 저상버스가 아닌 계단이 있는 버스는 약 12분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왔다. 이들이 처음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시민뿐 아니라 이들보다 한참 늦게 온 사람들도 각자 자신들이 타고자 한 버스에 올라타고 떠났다. 버스가 한 대, 두 대 지나칠 때마다 기다리는 사람이 줄더니 어느 순간 정류장엔 이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오후 12시 40분, 24-1번 버스를 네 대째 보내고 나서, 이들은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언제 저상버스가 오는지 물었다. 그러나 버스 회사 측은 특별히 저상버스만 배차 시간을 알 수는 없다고 했다.
이후에도 24-1번 버스를 두 대 더 보낸 끝에, 오후 1시 15분께 24-1번 저상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린 지 1시간 15분 만이었다. 버스가 언제 오는지 정보만 알았더라도 점심이라도 먹고 올 수 있었던 시간을 정류장에서 낭비했다.
![]() ▲다른 시민들이 모두 버스를 타고, 덩그러니 남은 일행. |
이후 운송회사에 확인해보니 24-1번 버스 12대 중 저상버스는 고작 2대(16.7%)에 불과했다. 산술적으로 보면 저상버스는 6대 중 1대꼴. 1시간을 넘게 저상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집과 센터, 병원을 오가며 매일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신경수 씨는 경험상 “운이 좋을 때는 저상버스를 놓쳐도 바로 저상버스가 온다. 그러나 어떨 때는 버스 두 대, 세 대 보내야 겨우 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예상 시간보다 20분 정도 더 늦고, 최대 40분까지도 기다려봤다.”라고 했다. 신 씨는 경사로 고장으로 저상버스를 타지 못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며, 이날 겨우 탄 24-1번 버스에 “경사로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정명호 씨의 경우는 야학도 다니고 장애인단체에서 활동이 활발해 외출 빈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저상버스를 이용한 적은 열 손가락에 꼽는 수준이라고 했다. 정 씨는 “저상버스 대수가 부족해 자주 이용할 수가 없다. 보통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지하철이 지나지 않는 곳에 가려면 휠체어로 굴러가거나 아예 이동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인천시에서) 저상버스와 같이 보편적 이동수단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는 건 차별이자 장애인 분리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오후 1시 45분경 겨우 부평역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버스 1대를 보내고 10분을 기다린 뒤에 2시 10분경 인천시청으로 가는 34번 저상버스로 갈아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천시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30분, 민들레센터를 출발한 지 2시간 40분 만이었다. 이중 순수 이동 시간은 1시간, 버스 대기시간만 1시간 40분이었다.
![]() ▲버스에 탑승하는 정명호 씨. |
![]() ▲버스에 탑승한 신경수, 정명호 씨. 이들이 저상버스를 이용하기까지 1시간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
장애인도 빠르고 편한, 저상버스 중심 버스 체계 필요
민들레센터 일행의 고행은 사실 그들이 운이 나빠서 겪었던 일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인천에서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수십 가지 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인천장차연)에 의하면 인천의 교통약자는 장애인 16만 7000명을 포함해 72만 명(2014년 기준), 즉 인천시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2014년 말 기준 인천에서 운행되는 2312대 버스 중 저상버스는 280대로 그 비율은 12.1%에 불과했다. 이는 전국 평균인 18.7%보다 낮은 수치다. 이외에 저상버스 배차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 저상버스 이용자가 일정한 패턴으로 버스를 이용할 수 없고, 저상버스 운행 정보를 알 수 없는 것도 저상버스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편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그것은 ‘계획’일 뿐 실제 이행률은 현저히 낮다. 예컨대 국토교통부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따라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2012~2016)을 세우며, 각 지자체 또한 이 법에 근거해 이동편의증진계획을 수립한다. 인천시가 수립한 '제2차 인천광역시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에 따르면, 인천시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저상버스 736대를 새로 도입해 39.1%의 도입률을 달성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천시의 2014년 말 기준 저상버스 도입률은 12.1%. 이동편의증진계획상 도입 계획률 17.5%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더군다나 올해 인천시에서 도입할 예정인 저상버스는 43대로, 원래 계획했던 70대에서 대폭 줄었다. 인천시가 이렇게 예산상의 이유로 저상버스 도입 예산을 삭감하면서 저상버스 구매 명목으로 국토부에서 지원받은 국비도 국가에 다시 반납하게 됐다.
이에 인천지역 장애인단체들은 인천시에 저상버스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인천장차연은 지난 10일 인천지역 교통약자 이동권 증진방안 토론회에서 “인천시가 현재와 같이 저상버스를 도입한다면 도입률 50%를 넘기는 데 2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모든 시민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이동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확한 지향을 갖고 저상버스 도입 목표를 향후 5년 이내 50%로 과감하게 상향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시내버스 정책을 저상버스 중심으로 전환하여 버스정류장 및 도로의 정비, 버스회사의 운영비 경감 등의 방안을 종합적으로 수립하고, 나아가 대폐차 수요 및 신규차량의 100%를 저상버스로 도입하도록 하는 저상버스 중심 버스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