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 일주일 더 머무르게 됐습니다. 실습을 마친 이후, 김희호 언니와 이다정 동생이 함께한 일상을 담습니다.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김희호 씨와 교회 가기 위해 다온빌에 갑니다.
다온빌 엘리베이터 안, 김희호 씨가 묻습니다. “내가 언니야?”
“네, 언니라 부를까요?”
“응.”
“그래요, 희호 언니.”
그래도 아직은 희호 씨가 익숙합니다.
교회에 도착합니다. 김희호 씨가 한 권사님을 보시고는 “이다정 학생이야.” 소개합니다.
“알지~ 희호, 이제 안 아파?” 저번 주일에는 김희호 씨가 몸살에 걸려 교회에 가지 못했습니다. 걱정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분이 제게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글씨는 모르니 (악보 넘기는 척) 하는 척만 하는 거야.”
‘알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성가대를 같이 섭니다.
이번에도 김희호 씨 옆자리에 앉습니다.
찬양 시간입니다. “000장입니다.” 다들 찬송가를 폅니다.
처음 한 번은 옆자리 집사님의 찬송가에 적힌 숫자를 짚고, 제가 넘깁니다.
속닥거렸습니다.
“제가 넘겨도 돼요?”
“응.”
두 번째부터는 김희호 씨가 하도록 기다려 봅니다. 옆 사람이 펴둔 찬송가 숫자만 짚어드립니다. 김희호 씨가 넘기다가, 안 되면 그제야 근처까지만 넘겨드립니다. 옆자리 집사님도 “희호 씨 숫자 몰라.”라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본인의 찬송가 페이지를 짚어주고, 더 넘겨야 한다는 손짓만 하십니다.
예배 중에, 당장 찬송가로 찬양드리는 자리에서 이런 모습은 적절치 않아 보이기도,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예배 중에 이리하였지만, 나중에는 다른 시간에, 혹은 성가대 연습 시간에 시도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그때는 어떤 이가 김희호 씨에게 알려주기에도, 기다려주기에도 넉넉할 테니까요.
"희호 씨 케어는 끝난거야?" 누군가 물어보십니다.
"아뇨, 케어를 하러 온 건 아니고요. 두 번 여행 가는데 잘 가시나 거들러 온 겁니다. 희호 씨가 할 줄 아니까…. 일일이 도우러 온 사람은 아닙니다. 오늘 온 것도 희호 씨 둘레 분들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교육관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잠시 휴식을 즐기다 김희호 씨가 말합니다. “성가대 연습 가야 하는데.”
이에 “희호 씨 먼저 가 계세요. 저는 성가대 연습 안 가고 싶어요.”라 말합니다.
옆에서 듣던 권사님이 김희호 씨는 길 모른다며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하십니다.
“엇, 희호 씨가 길 알 텐데요.”
“못 가.”
“저번에 길거리에서 저 교회까지 데려다주셨는데요?”
“못 가.”
결국 김희호 씨 발이 묶였습니다.
“성가대 찬양 가야 해.”
몇 분 후, 김희호 씨가 다시 연습 가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같이 가기로 합니다.
문밖으로 나서려 하니, 교회 어른들이 놀랍니다.
“희호 혼자 가?” 뒤따르는 저를 보시고는 “아, 동행하네. 동행해야 해요.”
김희호 씨 혼자 갈 수 있다고 알리고 싶었는데 결국 동행해주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희호 씨, 저 안내해 주세요. 저 길 몰라요.”
김희호 씨가 교육관부터 교회 예배당까지 손짓하며 길을 알려줍니다. 앞장섭니다.
이 모습을 나만 보다니. 아쉽습니다.
“희호 씨, 희호 씨가 이제 ‘나 길 알아요~’해도 될 것 같아요.”
교회 어른들은 김희호 씨가 이전에 교회 근처에서 사라졌었다고 알려주십니다. 다른 길로 새서 길을 잃은 겁니다. 온 성도들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 것을 언급하십니다. 어떡해요, 희호 씨. 이건 희호 씨가 감당해야겠습니다. 제대로 걱정 끼쳐드렸는데요.
한 번 길치로 씌워진 이미지, 탈피하기까지 한동안 꽤나 걸릴 것 같습니다.
성가대 연습하러 교회로 돌아옵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희호 여행 어땠어요?”
“고모 봤어요.”
양어머니, 고모와 함께 여행 다녀왔다 알립니다.
“같이 앉자.” 연습도 같이하자고 하십니다.
“희호 씨, 저는 연습 안 하고 좀 있다 들어갈게요.”
“내가 언니야?”
“네, 저는 희호 언니 잘하나 보고 있을게요.”
김희호 씨가 연습하러 성가대석으로 다가갑니다. 이미 연습 중이라 안쪽에 있는 제자리로 들어가기 곤란한 듯합니다. 저를 멀뚱히 바라보십니다.
“희호 씨, 다른 자리에 앉아도 괜찮아요.”
머뭇거리는 게 보여, 사모님께 부탁드립니다.
“희호 씨가 성가대 연습하러 왔는데 (다른 분들이 앉아 계셔서) 자리로 들어가는 길목이 막힌 것 같아요.”
“희호 자매, 다른 자리 앉아도 돼.”
그럼에도 가만히 서 있습니다.
아, 저 안쪽 희호 씨 자리에 악보가 놓여 있습니다. 악보를 챙겨야 하나 봅니다.
“희호 씨, 악보 없어서 그렇죠?”
“응.”
이에 사모님이 김희호 씨 악보를 챙겨주십니다.
처음일까요. 김희호 씨가 다른 자리에 앉아서 연습하는 건. 그간 연습에 참여했을까요? 예배 시간에만 성가대 자리에 앉아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김희호 씨는 연습까지 성가대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는 듯싶은데요….
2024년 7월 24일 수요일
수요일에 장애 개념 공부하고자 다온빌로 갑니다.
사모님 댁에서 다온빌까지 버스 타고 갔습니다. 어느 정류장에서 김*남 씨도 탑니다. 같은 버스에서 마주쳐 가까운 이웃 주민 만난 듯이 서로 반가워합니다. “누군가 했네!” “그러니까요!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요?”
오전, 3층에서 국장님과 실습하러 오신 선생님과 공부합니다. 김희호 씨도 자기 할 거리를 챙겨와 다른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퍼즐 맞추기에 집중합니다. 중간중간 다른 이들이 공부할 때 와서 말을 걸면 김희호 씨가 나서서 “공부해야 해, 학생 공부해야 해.”하며 제지해 주셨습니다. 고마워요.
김희호 씨가 온종일 저와 함께 있으려 합니다. 제가 남은 기록하고자 직원분들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있으면, 김희호 씨도 한켠에 자리 잡습니다.
음. 3층으로 다시, 함께 올라갑니다.
“희호 씨, 마지막이라서 같이 있고 싶은 거죠? 저 없이도 잘 지내실 거죠?”
“응.”
이때만 이렇다고 하니 안심합니다.
오후에는 3층에서 마저 기록하였습니다. 김희호 씨가 책상 맞은편에 다가와 같은 자기가 할 거리를 펼쳐둡니다.
김희호 씨는 퍼즐, 저는 기록.
둘 다 지루해질 때쯤 잠깐 대화 나눕니다.
“희호 씨, 한글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제 기록 봐주세요.”
“응.”
김희호 씨가 퍼즐은 너무 많이 해서 질리셨는지, 한글 공부 책과 노트를 꺼냅니다.
연습했던 노트를 보여주십니다.
김희호 씨에게 카페에 올리고 싶은 김희호 씨 사진, 올려도 되는지, 다른 사람들이 봐도 괜찮은지 확인까지 받아둡니다.
“응! 보여줘!”
“감사합니다!”
2024년 7월 26일 금요일
금요일 아침, 11시 40분쯤 온다는 버스를 타고 다온빌로 갑니다.
버스정류장에서 김희호 씨와 실습하러 오신 선생님을 마주쳤습니다. ‘한글교실 끝날 때쯤 됐는데.’ 생각하기는 했어도 이리 만날 줄이야. 김희호 씨와 기념사진(?) 찍습니다.
직원분들께 마지막 인사하러 다온빌을 누빕니다. 김희호 씨가 제 손 붙잡고 앞장섭니다. 첫째 날 인사가 떠오릅니다. 이제는 김희호 씨가 “마지막.”이라며 소식을 알립니다. 묘합니다.
쌍둥이 형제님들이 “사진 마지막으로 찍자, 찍어줄게.” 하십니다. 덕분에 다온빌 앞에서 김희호 씨와 또 한 번, 사진 남깁니다.
김희호 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저는 확실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주일 더 있겠다고, 그간 김희호 씨를 헷갈리게 했지요. 마지막이라면서 또 왔으니까요.
온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했습니다.
이제 진짜, 오늘이 진짜 마지막임을 알릴 차례입니다. 떠나기 전, 주섬주섬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꺼냅니다.
“희호 씨, 제가 한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죠? 이건 편지! 이거는 손거울! 이건 펭귄(김희호 씨: “퍼즐이야?”) 레고….”
담담하게 전하려 했는데. 슬펐던 걸까요. 시원섭섭했던 걸까요. 음, 잘 모르겠습니다.
“희호 씨, 이제 다른 사람 손 빌리지 말고, 거울 보면서 혼자 입 닦아요? 이렇게 보고, 닦으면 돼요?”
편지에는 그간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 담겨있고, 거울에는 함께하며 괜스레, 대신 속상했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거울만 있으면 김희호 씨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인데…' 군산에 놀러 간 날, 김희호 씨가 좋아하는 레고가 눈에 띄어 선물로 사두었습니다.
김희호 씨를 향한 진심을 담았습니다.
제 진심을 한꺼번에, 전한 날은 몇 번 없습니다. 잠시 머무는 사람이니, 금세 잊힐 사람이 되고파 꽁꽁 싸매두었던 마음입니다. 이리 비추려 하니 울컥했나 봅니다.
김희호 씨는 고기 굽는 손짓을 하며 “고기 사줄게!”라 말합니다. 또 오면 고기 사준다고 하십니다.
다온빌 1층에서 주차된 차까지. 김희호 씨는 “언니가 들어줄게.” 하시며 무거운 화분을 대신 들어주셨습니다. 차에 타라며, 차 문 열어주시고, 안전벨트까지 매주십니다. '김희호 씨 처음에는 벨트 잘 매지도 않았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손 휘저으며 인사하십니다.
본격적이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헤어짐입니다.
내일도, 언젠가 또 만나리라 여겨지는 헤어짐입니다.
평범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갑니다.
마지막 날, 떠나는 이가 감춰왔던 진심을 전합니다.
그 거울, 누가 주었는지 잊어버려도 됩니다. 잃어버려도, 깨져도 상관없는 물건입니다.
그 편지, 누가 썼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됩니다. 스쳐 가는 이가 해준 말이고, 또 다른 이도 건넬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해지길 바랍니다.
첫댓글 찬양.
글과 숫자를 꼭 읽을 줄 알아야만 찬양드릴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김희호 씨는 지금도 찬양드리고 있는데.
이를 첫째 날 알아차려 놓고.
나는 왜 굳이. 왜 그랬을까.
순간에 휩쓸렸습니다.
목격한 그 순간 외에 내가 모르는, 그들이 쌓아온 시간이 있을 텐데.
잠시 머무는 나는 무엇을 바랐나.
교회 공동체에 나는 어떤 기대가 있었나.
‘더불어 살기를 바랐습니다.’
김희호 씨는 무엇을 바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