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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사53:1-5)
1 The people reply,
“Who would have believed what we now report?
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2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hat his servant
grow like a plant taking root in dry ground.
He had no dignity or beauty
to make us take notice of him.
There was nothing attractive about him,
nothing that would draw us to him.
3 We despised him and rejected him;
he endured suffering and pain.
No one would even look at him—
we ignored him as if he were nothing.
4 “But he endured the suffering that should have been ours,
the pain that we should have borne.
All the while we thought that his suffering
was punishment sent by God.
5 But because of our sins he was wounded,
beaten because of the evil we did.
We are healed by the punishment he suffered,
made whole by the blows he received.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1 The people reply,
“Who would have believed what we now report?
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10년 만에 10여 일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아들 결혼식 때문이었습니다.
아들 결혼식을 돕고, 친척 만나고, 알던 사람 만나고, 사진 찍고.......
바쁜 일정을 보내고 왔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자 주일을 맞은 것입니다.
당장 설교를 준비한다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제가 책상에 엎어져서 자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정확하게 밤과 낮이 뒤집어진 곳을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거기 십여 일 있었는데 내 몸은 낮을 밤으로 완전히 혼돈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문 걸어 잠그고 잠자리에 드러누워서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밤과 낮이 다른 것 말고 또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공항에 내리니 온통 영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하면 그들은 방금 무슨 말 했냐고 되묻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앙인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죄인의 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죄인의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말을 사용하며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을 적용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낮과 밤이 뒤집어진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의 지식이 너무 어설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통할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을 잘못해서 단순히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1 “Who would have believed what we now report?
첫째 우리는 지금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을 맞다 달내 교회에서 예수님의 사건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들려지고 있는 예수님(what we now report)의 내용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1 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님의 손을 보이셨습니다.
그 구원의 손이십니다.
우리를 죽음의 존재에서 영생의 존재로 옮기신 것입니다.
홍해 가운데에 길을 여시고 죽음의 땅에서 영생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어서 그 길을 건너야 바로왕의 칼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홍해 가운데 길이 보이지 않고 온통 바다뿐입니다.
바로가 칼을 들고 오는데 도대체 거기에서 주섬거리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지금 그리스도를 두고 심각한 두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리스도를 믿으려 할까?(“Who would have believed what we now report?)
사람들은 의지적으로 그리스도를 거부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누구의 눈에 하나님의 손이 보일까?(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그들은 모조리 바다에 빠져 죽게 생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그 길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바다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과의 소통의 문제입니다.
이곳을 바다가 아니고 길이다.
미국에서 smoke free라는 팻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이 smoke (담배 피우는 것)이 free(자유)인 줄 안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담배를 막 피워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뜻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담배 연기에서 자유로운 곳이라는 뜻입니다.
즉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오해할 경우 억울하게 100달러 정도 벌금 내면 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경우 그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죽음과 생명을 가르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이해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 사업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대속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지 40일 후 즉 사순이 지나서 오순절을 맞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결정적인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한 일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른 나라의 방언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말씀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하신 것입니다.
3.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행2:3,4)
영어야 학원을 다니며 학교에서 습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 말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을 통한 소통의 사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세상은 믿을 수도 없는 일을 믿게 하시기 위해 이 자리에 우리는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 시퍼런 홍해가 길로 보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의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1.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1 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영적인 맹인에게 성령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손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우리로 하나님의 손을 못 보게 하는 방해물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하나님의 손을 못보게 하는 것들을 나열하십니다.
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2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hat his servant
grow like a plant taking root in dry ground.
He had no dignity or beauty
to make us take notice of him.
There was nothing attractive about him,
nothing that would draw us to him.
*하나님의 뜻(It was the will of the Lord)
사람들의 눈에 주님의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들입니다.
막상 그리스도에게는 그런 방해물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사람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설교를 믿지 않으려 귀를 막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아주 꺼리는 외모를 취하셨던 것입니다.
그 분은 전혀 볼 품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높아지려 합니다.
많이 가지려 합니다.
미국에 가보니 원룸을 얻었는데 달에 2,150달러 사글세였습니다.
300만원이 넘을 것입니다.
그 주인은 앉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한 달 월급을 몸쓰락 차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건물을 많이 가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에게는 그 사글세 방을 얻을 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홈레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홈레스의 모습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의 모습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It was the will of the Lord that his servant grow like a plant taking root in dry ground.)
하나님께서 지붕 위에 일부러 그리스도의 풀을 심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자라겠습니까?
그리스도가 그 지붕 위의 풀과 같다는 것입니다.
외모를 통해 그리스도를 취하려는 사람은 그런 설교 말씀은 믿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Who would have believed what we now report?)
그들은 믿습니다. 부자를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손이 보일 리 없습니다.(Who could have seen the Lord's hand in this?)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3 We despised him and rejected him;
he endured suffering and pain.
No one would even look at him—
we ignored him as if he were nothing.
도대체 우리의 눈에 그리스도는 흠모할 부분이 없었던 것입니다.
위에서 보아도 아래서 보아도......
거적대기를 걸친 몸에서는 냄새가 났습니다.
그랬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멸시하며 배척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사람들로 인해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모조리 그리스도를 그런 식으로 배척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중론이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입니다.
그 교제가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인 유익이 크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그런데 생각 없이 그들을 의존했다는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하는 대로 하다가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제사장 장로 서기관 그들을 따라 하다가 망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바라바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왕따시키고 고통을 주고 병나게 하는지 그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덩달아서 따라 했다가 큰일이 납니다.
덩달이가 되었다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부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과 함께 하는 사람은 주님의 도우심의 손을 분간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적인 맹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4 “But he endured the suffering that should have been ours,
the pain that we should have borne.
All the while we thought that his suffering
was punishment sent by God.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덩달이 되지 말자고 했습니다.
남이 하니 나도 하겠다는 것은 아주 책임 없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경계해야 할 결정적인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내 생각을 고쳐놓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잘못된 내 생각은 내 중심적인 생각을 이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3:16)
세상이 죄를 지어 죽게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죄지은 사람은 벌받아서 죽어야지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사람이 죽을 사건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인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 대신 죽으심을 위해서 하신 일이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내어주신 일입니다.
어떤 사형수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죄로 사형틀에 올라가서 죽게 된 순간입니다.
덜커덩 바닥이 열렸는데 자신의 몸이 그 목줄에 대롱대롱 달릴 순간이었습니다.
그 목줄에 예수님이 달리신 것입니다.
바로 그 일입니다.
어떤 인간이 이 하나님의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십자가의 사건이 바로 그 사건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나의 구속의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해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완전히 잘못 해석했던 것입니다.
로마 군인에게 회초리질을 당한 것은 그리스도가 도둑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혹은 강도질을.......
그런 식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도둑질과 강도질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타적 사랑이라니 그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그 그리스도를 믿을 의사도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기적인 사고에서 이타적 사고로!
그 때 비로소 죄인들의 시력이 회복되어서 하나님의 손이 보일 것입니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5 But because of our sins he was wounded,
beaten because of the evil we did.
We are healed by the punishment he suffered,
made whole by the blows he received.
그 하나님의 생각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 그리스도의 덕을 본 것입니다.
전적으로 그의 덕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당한 우리의 죄의 벌을 그 분이 다 당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의 완성을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과제를 주신 것입니다.
24.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마16:24,25)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고백하는 사람은 제 감당할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물론 이 일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강제적 율법이 아닙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한 그것은 우리 안의 하나님의 행위이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행위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말세에 가장 강력한 마귀들이 득실거립니다.
엄청난 재앙은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역사적인 예수님은 알지만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예수 십자가로 깃발을 만들어서 높이 치켜들고 다닙니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며 십자가 정신(the will of the Lord)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사람을 인한 것입니다.
그들로 인해 예수 이름을 내세운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가장 효과적인 전쟁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들은 2,000년 전 역사적인 예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정신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