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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매일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폭설 밴드/ 노은
팝콘은 함성이라서 우리는 스네어 드럼을 밟는다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이 오면
저 멀리서 늑대의 우두머리가 하울링하는 소리가 들렸다
교실 안 아이들의 핸드폰에 폭설 경보음이 울리고
뒤적거리다 발견한 서랍 속에서 눅눅해진 팝콘
밴드 합주실은 꼭대기 층에 있어서
아이들은 지붕 없는 교실에서 자습을 했다
쿵, 쿵
우리는 무언가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는데
무언가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옥상에서 어떤 아이가 얻어터진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다
누군가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너는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퓨즈가 나가고 모두 조용해지는 한 순간
기억 속의 학교는 영원히 어두울 것만 같아,
내가 말했다
셀 때마다 달라지는 계단의 수
잡히는 대로 꽉 쥘 수밖에 없어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하얗게 질린 손에 온기가 돌아오길 바라며
우린 완전히 고립된 거야
둘 중 누군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교문이 눈에 묻혀도
이곳은 폭설 밴드
너와 나는 깨진 전구와 베이스 기타 줄을 들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신발장을 지날 때마다 교실에서 이탈한 아이들은 배로 늘어나서
일렬로 늘어선 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지 않는 담임 선생님께,
추워서 옷을 벗었어요 우린 아직 힘이 넘치고 유순하답니다 서로의 입에 팝콘을 넣어주곤 겨드랑이에도 손을 넣어요,
구두 소리가 마룻바닥을 두드리면 학교는 움직입니다 교시음은 필요 없어요 베이스도요
너는 머리말을 이렇게 장식하기로 마음먹었고
늑대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2025 매일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평
심사위원 : 송재학 이병률 김기연
예심과 본심이 동시에 진행된 이후, 최종심에서 거론된 작품은 노은 씨의 '폭설밴드'와 방성원 씨의 '이사할 때는 누구나 호구가 된다', 두 편이다. '폭설밴드'에서 폭설이라는 고립 공간에서 음악성에 기대어 현실과 환상이 조립되었다면, '이사할 때는 누구나 호구가 된다'의 생활은 일상어의 발화이다. 전자가 시적 장치로 다채로운 발상을 사용한다면 후자는 관찰의 시선이 돋보인다. 당연히 전자는 활발하고 후자는 페이소스에 근접한다.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서로 다른 이 두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다.
'폭설밴드'에서 "쿵, 쿵 / 우리는 무언가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는데 / 무언가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 옥상에서 어떤 아이가 얻어터진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다 / 누군가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 너는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라는 부분은 거대 폭설 군락이라는 상징이 에워싼 교실의 분위기와 감정에 대한 빛나는 묘사이다. 그런 시간 그런 장소에서 시가 왜 필요한가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폭설이라는 썸네일을 가진 기묘하고 역동적인 한 편의 영상이 아닌가. "퓨즈가 나가고 모두 조용해지는 한 순간 / 기억 속의 학교는 영원히 어두울 것만 같아"라는 어두운 반전 또한 이 시의 매혹이다. 폭설 속의 다채로운 수다는 어떤 감정으로도 번안 가능한 노은 씨의 고유한 영역이다.
폭발하는 시적 감수성의 넓이와 깊이야말로 심사위원들이 '폭설밴드'의 손을 들어준 타당한 이유이겠다. 언어와 음악이 에워싼 폭설이라는 늑대의 울음은 이 시가 당선작으로 선정되는데 결정적이었다. 당선된 노은씨는 20대 초반, 우리 문학의 전면에 낯선 확장성을 가져주리라 예감한다. 축하를 드린다.
https://youtu.be/OumShEuBVtQ?si=ZKRHJ-dkcP_DU1nb 조창규 시인의 조선 별다방
조창규 시인 해석
폭설이라는 고립 공간에서 음악성에 기대어 현실과 환상이 조립
폭설 밴드/ 노은
팝콘은 함성이라서 우리는 스네어 드럼을 밟는다
팝콘은 함성, A=B(은유법).제목이 폭설 밴드니까 폭설, 눈송이를 상징하죠.팝콘과 눈송이가 이미지가 서로 비숫하잖아요.폭설이 내리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싫어하지만 어린 아이들이나 학생들은 어때요?
함성을 지르죠. 눈이 오는 게 좋으니까.순수하면 순수할수록 눈이 많이 내리면 흥분되고 들뜨잖아요.
밴드니까 드럼이라는 악기가 나오죠.그래서 실질적으로 스네어 드럼을 밟을 수도 있고 폭설이 내려서 너무 마음이 기쁘고 흥분되니까 발을 구를 수도 있잖아요.그래서 이 두 가지의 의미로 스네어 드럼을 밟는다라고 표현을 했고요.
● 고급 창작팁
드럼이 나왔는데 왜 많은 드럼 중에서 굳이 스네어 드럼일까? 스네어 드럼이 대표적인 드럼의 한 종류이고
폭설, 눈, 스노우(snow)와 스네어(snare)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이 오면
(폭설이 내리면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죠.폭설로 세상이 가득 차니까 그렇겠죠.폭설이 안 내리면 산과 하늘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타나잖아요.)
저 멀리서 늑대의 우두머리가 하울링하는 소리가 들렸다
(폭설이 내리는 시베리아 벌판을 생각하면 무슨 동물이 떠올라요?늑대가 떠오르죠.폭설이 내리는데 늑대가 순록을 잡아먹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연상 되잖아요.이런 문장이 아까 심사위원이 이야기했던 환상적인 장면들이에요)
교실 안 아이들의 핸드폰에 폭설 경보음이 울리고
(여기서는 구체적인 공간과 인물, 상황, 행동이 나오죠.공간은 교실, 학교 인물은 아이들, 학생들.상황은 폭설 경보음이 울리는 것)
뒤적거리다 발견한 서랍 속에서 눅눅해진 팝콘
(서랍이니까 이 공간이 학교 교실니까 당연히 책상 서랍이겠죠.그런데 팝콘. 여기서 팝콘은 1행에 나왔던 눈송이를 비유하는 팝콘이 아니라 진짜 팝콘을 말해요.왜냐하면 눅눅하다라고 하는 형용사가 수식.눈송이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눈송이는 서랍 안에서 녹을 거고 책상 서랍엔 학생들이 먹다 남은 과자가 있잖아요.그 과자가 먹다 남았으니까 눅눅해지겠죠.그 과자 대신 대신에 팝콘을 먹고 넣었다.1행에서 이야기했던 팝콘을 버리지 않고 여기서 다시 책임졌다.
밴드 합주실은 꼭대기 층에 있어서
아이들은 지붕 없는 교실에서 자습을 했다
(밴드 합주실이 꼭대기 층에 있으니까 지붕이 없다라고 표현.이 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설국' 소설이긴 합니다만 눈이 내리는 아름다운 서정, 풍경, 순백 이미지를 미학적으로 이야기할 것 같지만 계속 읽다 보면
중간 중간에 눈 내리는 아름다운 서정과 풍경과는 대척점에 있는 현실의 폭력성,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눈 내리는 환상적인, 아름다운 풍경에 가려져 있는 현실의 그늘을 발견하는 시적 감수성이 나와요.심사위원들이 말한 폭발하는 시적 감수성의 폭설 밴드의 손을 들어준 타당한 이유죠.해석을 하자면 아이들이 지붕 없는 교실에서 자습을 해요. 이것은 아이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죠.왜? 아이들이 보호를 받으려면 사람이 보호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지붕이 있는 집, 지붕이 있는 교실에서 살거나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그런데 밖에는 눈이 오는데 지붕이 없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자습을 하는 거니까 이 문장은 이 시를 쓴 시인이 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반말로 하겠습니다만
너희들(독자들아)! 내가 이 순백의 아름다운 폭설 풍경만을 이 시에서 이야기하려는 것 같지? 아니야!나는 이 매력적인 폭설 풍경에 감춰져 있는 어두운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야.그래서 이렇게 자세히 보면 알 수 없는 시인의 의도를 제가 지금 여러분께 가르쳐 드리고 있어요.
쿵, 쿵
우리는 무언가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는데
무언가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옥상에서 어떤 아이가 얻어터진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다
누군가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너는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이 부분이 바로 어두운 현실이죠. 왜냐하면 무언가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는데 무언가와 바닥이 부딪치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면 소리가 나죠.큰 소리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소리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그 뒤의 문장을 보면 무언가가 뭔지를 유추할 수 있어요. 그 뒤에 보니까 옥상에서 어떤 아이가 얻어터진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다.그러니까 이 문장은 학교 폭력을 말하는 거죠. 누군가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 기묘한 문장. 너는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이 앞뒤 문장을 연결해서 어떤 상황을 유추하면 어떤 아이가 옥상에서 얻어터지고 있어요.그런데 무언가가 떨어지잖아요. 그럼 이 상황에서 옥상에서 뭔가가 떨어진다면?문맥상으로 본다면 그 뭔가는 얻어터지는 아이겠죠. 왜? 그걸 얻어맞는 게 너무 괴롭기 때문에
자살의 의미로 떨어지는 걸 수도 있고 더 안좋게 해석하자면 그 아이를 밀어서 떨어뜨린 걸 수도 있는데
그래서 크고 무거운 물건, 즉 사람의 몸이 바닥이나 물체 위에 떨어지거나 부딪쳐 나는 소리인 쿵,이라는 의성어를
쓴 거예요.누군가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옥상에서 폭력을 당하는 아이가 떨어지면 그 아이가 죽잖아요.다행히도 누군가가 아직 옥상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너는 말할 것 같다고
내가 추측하는 거죠(~할 것 같았다)
폭설이 내리는 상황에서 옥상에서 누군가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기묘하고 기괴한 장면.
낭만적이고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현실의 폭력도 있다라고 이 시인이 꼬집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퓨즈가 나가고 모두 조용해지는 한 순간
기억 속의 학교는 영원히 어두울 것만 같아,
내가 말했다
(폭설이 많이 내려서 정전이 돼서 퓨즈가 나가고 조명이 나가니까 모두 조용해지겠죠.그렇게 기억하는 학교는 당연히 조명이 나갔으니까 어둡겠죠.그런데 학교가 어두운 것은 전등이 나가서 그렇다기 보다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그런 폭력성 때문에 내 기억 속에서 학교는 영원히 어두울 거라고 이렇게 암울하게 내가 말을 하죠.
심사위원이 이 부분에 대해서 매혹적으로 느낀다고 아까 심사평에서 언급을 했었죠.
셀 때마다 달라지는 계단의 수
잡히는 대로 꽉 쥘 수밖에 없어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하얗게 질린 손에 온기가 돌아오길 바라며
(얻어터지기 위해서 옥상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계단을 올라갈 때 얼마나 힘들겠어요.그래서 셀 때마다 달라지는 계단의 수라고 표현했고 잡히는 대로 꽉 질 수밖에 없어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하얗게 질린 손에 온기가 돌아오길 바라며 초조한 마음에 무언가를 꽉 잡고 싶어서 잡히는 대로 꽉 쥐었고 (긴장감에)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죠.누군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하얗게 질려 있죠.내가 올라갈 수도 있고 또 다른 화자인 얻어맞는 아이가 계단을 올라가면서 하얗게 질려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해야만 하는 그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잡히는 대로 무언가를 붙잡으면서(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손을 쥐었다 펴면서) 뭐라도 해야 되는 그 상황 속에서 온기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온기는 자기자신의 생명, 삶을 말하죠.
그래서 내가 다시 살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 아니면 얻어터진 아이라든가 이 시의 또다른 누군가 어떻게든 살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죠.
우린 완전히 고립된 거야
(폭설이 많이 내리니까 점점 고립된 상황으로 나아가고
둘 중 누군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교문이 눈에 묻혀도
이곳은 폭설 밴드
(그런데 이 시가 현실을 너무 암울하게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폭설이 내려서 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교문이 눈에 묻혀도 이곳은 폭설 밴드라고 하면서 위트있게 농담을 하죠)
너와 나는 깨진 전구와 베이스 기타 줄을 들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위에서 퓨즈가 나갔으니까 여기서 깨진 전구가 나왔구요.밴드니까 드럼에 이어서 베이스 기타 줄이 나오죠.폭설이 내려서 고립된 상황이고 누군가는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너와 나는 깨진 전구와 베이스 기타 줄을 들고 학교를 한 바퀴 돌만큼 밴드부의 역할을 열심히 하죠. 반어적으로 위트있게 표현.그래서 어떤 하나의 감정에 매몰하는 것이 아니라 폭설 속의 다채로운 수다는 어떤 감정으로도 번안 가능.다양한 감정으로 계속해서 변화, 변주해 시를 전개하는 것.그것이 이 시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발장을 지날 때마다 교실에서 이탈한 아이들은 배로 늘어나서
일렬로 늘어선 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부분은 다시 폭설로 고립된 학교의 처참한 상황으로 돌아오죠.교실을 빠져나가고 싶은 빨리 폭설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모습들을 묘사)
오지 않는 담임 선생님께,
(그런데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담임 선생은 도망갔나 봐요.이것도 역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나타냄(아이러니).원래는 눈이 내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교실 속에서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그 눈을 보면서 웃고 깔깔깔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와야 되는데 여기서 담임 선생님은 도망가고 없어요.그래서 폭설로 학교가 고립되니까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담임 선생님이 어딘가로 갔다고 유추. 그 담임 선생님께 너는 편지를 쓰죠.이것도 굉장히 재밌고 상식을 깨는 행동이죠.)
추워서 옷을 벗었어요 우린 아직 힘이 넘치고 유순하답니다 서로의 입에 팝콘을 넣어주곤 겨드랑이에도 손을 넣어요,
(이 문장들도 반어적으로 재치있게 쓴 문장.추우면 옷을 입어야 되고, 폭설로 고립된 상황이면 폭력을 당할 때처럼 하얗게 질려야 할 텐데 추워서 옷을 벗고 아직 힘이 넘치고 유순.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입에 팝콘을 넣어주는 낭만적인 장면과 겨드랑이에 손을 넣을 만큼 철이 없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그걸 통해서 담임선생님을 비꼬는 거죠.담임 선생님께 구구절절 우리 추워요.그래서 울며 괴로워요. 빨리 도와주러 오세요.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누구나 예측가능한 일반적인 생각.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수준의 상투적 전개.그걸 역으로 생각해서 반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렇게 철이 없이 낭만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이들의 행동이고 더 감정의 극대화가 일어나는 거죠 )
구두 소리가 마룻바닥을 두드리면 학교는 움직입니다 교시음은 필요 없어요 베이스도요
(앞에서 신발장이 나왔죠. 그래서 그 신발 중에 하나인 구두 소리가 다시 등장.그 구두는 아이들이 신는 건데 마루 바닥을 두드리면
아까 1행에서 어떤 문장이 나왔었죠.우리는 스네어 드럼을 밟는다.드럼을 밟는 게 환상적인 세계에서는 드럼을 밟는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현실적인 세계에서는 (초조해서) 발을 구른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구두 소리가 마롯바닥을 (드럼처럼) 두드리면 학교는 움직입니다.예를 들어서 학교 운동장에 백 명의 아이들이 있어요.백 명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발을 구르며 어떻게 되죠?운동장이 움직이겠죠.학교 교실에서 백 명의 아이들이 마룻바닥을 계속 두드리거나 뛰면 어때요?그 교실이 흔들리겠죠.
이렇게 상상하는 것.학교가 움직인다고 표현을 했고요)
너는 머리말을 이렇게 장식하기로 마음먹었고
("추워서 옷을 벗었어요 우린 아직 힘이 넘치고 유순하답니다 서로의 입에 팝콘을 넣어주곤 겨드랑이에도 손을 넣어요,구두 소리가 마룻바닥을 두드리면 학교는 움직입니다 교시음은 필요 없어요 베이스도요"
이 문장들을 너는 오지 않는 담임 선생님께 쓰는 편지의 머리말로 쓰겠다고 이야기하는 거죠.1행부터 29행(끝이 보이지 않았다)까지.일반적인 운문시의 시적 형태인데 오지 않는 담임 선생님께, 여기서부터는 편지로 형식이 전환.이것도 굉장히 독특하잖아요.계속 시를 쓰다보면 운문시, 산문시의 시적 형식을 밀고 나가는데 그 시를 쓰다가 편지의 형식을 집어 넣은 거예요.시적 형식 + 편지 형식.시를 쓰는 경우는 대부분 산문시를 쓴다고 하면 쭉 산문시를 쓴다든가 어떤 시적인 형식을 쓰게 되면 쭉 맞춰서 쓰잖아요.이 시 같은 경우는 앞에는 운문시 형식,
맨 마지막 결말 부분에 가서 편지 형식으로 전환한 굉장히 독특한 구성
늑대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이 마지막 부분은 다시 환상적인 세계.3행에서 저 멀리서 늑대의 우두머리가 하울링하는 소리가 들렸다.그 우두머리 늑대의 하울링 소리를 듣고 아이들을 잡아먹으러 늑대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죠
(X소녀를 잡아먹는 빨간 모자 동화 같은 환상적인 세계)
그래서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죠.부분은 환상적인 세계.
왜? 한국의 교실에서는 늑대들이 아이들을 잡아먹으러 산에서 내려올 수가 없으니까.현실의 폭력과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그리고 폭설이라는 재난 이런 현실적인 세계가 있고 폭설이 내리니까 환상적인 세계에 사는 늑대라는 동물을 등장시켜서 현실과 환상을 잘 조합.
폭설 밴드라고 하면서 '폭설'과 '폭력'이라는 단어가 서로 유사. 폭설(暴雪) ≒ 폭력(暴力) *사나울폭(暴)
폭설이라고 하는 것도 날씨에 대한 폭력이라고 볼 수가 있잖아요.
https://naver.me/5PSUWjyU
설국
1935년부터 《분케이슌주》 등의 잡지를 통해 연재되었으며, 1937년 처음 간행된 이래 내용 보강을 거쳐 1948년에 완전판이 공개되었다. 작가는 1968년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온천 마을을 배경으로 게이샤 고마코(駒子), 소녀 요코(葉子)와 주인공 간의 인간관계가 일본적인 관점의 서정적인 표현으로 묘사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등장인물
시마무라(島村) - 물려받은 유산으로 무위도식의 생활을 보내고 있는, 외국 무용의 비평이나 프랑스 문학의 번역 등을 하고 있는 문필가. 기혼.
고마코(駒子) - 동기(童妓) 시절 몸 값을 지불해준 남편의 사망 후 온천으로 들어옴. 춤 스승의 아들인 유키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로 일함.
유키오와 혼담 얘기가 있었음. 요코와 설명하기 어려운 동질감을 갖고 있음.
요코(葉子) - 유키오의 새로운 애인. 유키오를 간호하기 위해 간호사 공부를 함. 유키오가 죽고 나서 온천에 정착. 화재 사건 때 사망.
줄거리
국경[3]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4]이었다.
밤의 밑바닥[5]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나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여자는 한껏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는 듯이,
"역장니임, 역장니임ー"
등불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남자는 목도리를 콧등까지 두르고, 귀에 모자의 모피를 드리우고 있었다.
(제7행까지)
소설의 첫 문장이 대단히 유명하다. 설국의 도입부는 일본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리는데, 시마무라의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 묘사를 수 행의 간결체를 통해 서술함으로써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설국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주입시킨다. 특히 첫 문장인 '국경의~' 부분은 일본 국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문장으로 각종 문장론 서적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며, 이 문장만 연구한 논문이 있을 정도이다. 이는 사실 가와바타가 퇴고하면서 탄생한 문장으로, 처음에 썼을 때는 "국경의 긴 터널을 넘어서자, 그곳은 설국이었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越えたら、そこは雪國だった)"였다고 한다. 일본 대중매체에서도 라이트노벨, 만화 등에서 자주 이 구절을 패러디하곤 한다.
'국경의 긴 터널'은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잇는 조에츠선의 시미즈(清水) 터널이며, 신호소는 츠치타루역(당시에는 츠치타루 신호소)이다. 현재는 신 시미즈 터널 및 다이시미즈터널(조에츠 신칸센 전용)이 개통되었고, 시미즈 터널은 니가타에서 군마로 가는 열차가, 신 시미즈 터널은 군마에서 니가타로 가는 열차가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어 오늘날에는 시미즈 터널을 나오면 그곳은 설국(니가타현)이 아니라 미개의 땅 군마현이 된다.
한중일 가릴 것 없이 국경이 나라 간의 경계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지만, 일본에서는 지방 간의 경계도 관용적으로 국경으로 부른다.
소설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무용 연구가이다. 그는 북쪽 지방 눈이 많이 내리는 온천 거리의 고마코라는 기생에 끌려 몇 년 동안 계속 온천장에 찾아오곤 한다. 물론, 적극적으로 그 여인에게 구애를 하기 위함도 아니요, 헛되고 보람 없음을 알면서도 시마무라의 마음은 그녀에게 끌린다. 그때, 고마코를 통해 알게 된 젊은 요코. 시마무라에 대한 고마코의 사랑이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시마무라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혹되면서도 요코의 신비스러움과 지순함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끼게 된다. 소설의 결말에서 화재로 인한 여인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만, 죽음 자체도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처럼 그려지고 있다.
집필
《설국》이 전개되는 구체적 무대는 니가타현의 에치고유자와(越後湯澤) 온천으로, 작가는 이곳에 직접 머물면서 작품을 집필해 나갔다. 이는 자연 풍경 묘사에 대한 작가의 관심 때문으로 여겨지는데,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며 집필했다.[3]
작가와 작품간의 관계
어려서부터 부모, 누나, 조부모의 죽음을 차례로 겪으며 혼자 남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가와바타는 중학 시절, 화가가 되려던 꿈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그는 1924년 《문예시대》를 창간하면서 가와바타가 요코미쓰 리이치와 함께 하면서 전개한 '신감각파 운동'은 소박한 현실 묘사와 재현에만 머물러 있는 종래의 문학을 벗어나, 현실을 주관적으로 파악하여 지적으로 구성된 새로운 현실을 풍부한 감각의 세계로 창조하려는 시도였다. 이를 '설국'에 적용했다고 흔히 본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