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의 「다보탑을 줍다」평설 / 홍일표
다보탑을 줍다
유안진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橫財)를 했다
석존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行人)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 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았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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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을 줍는 시인
언젠가 시인은 어느 문학 행사장에서 “시인은 어깃장 놓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지요. 그 말 그대로 낡고 고루한 사고의 틀을 깨고, 언제나 젊고 싱싱한 상상력으로 존재의 내밀한 숨결을 잡아내는 시인의 능력은 탁월합니다.
부처가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을 설파할 때 다보여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둔 탑이 땅 밑에서 솟아나 부처의 설법을 찬탄하고 증명하였다는데 그 탑이 바로 다보탑이지요. 아득히 먼 영취산은 지금 시인의 발밑에 있습니다. 툭툭 어깨를 치고 걸어가는 행인들은 곧 부처이지요. 살아있는 생불이지요.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가 되구요. 그러나 고개 숙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모두 위를 향해, 한 뼘이라도 더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합니다. 거치적거리는 것은 가차 없이 베어 없애면서 앞만 보고 내달립니다.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삶의 현장이 곧 불국토인데 고개 들어 높은 곳만 쳐다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그러해도 시인은 고개 떨구고 걷습니다. 다보탑은 고개 숙인 외로운 목숨에게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석가도 불국정토도 시인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 환한 빛을 발합니다.
그런데, 정신 차려 다시 들여다보니 붉은 빛이 도는 구리동전 하나 눈앞에 있습니다. 다보탑도 부처도 모두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습니다. 눈앞에 실체를 드러낸 현실은 악다구니 들끓는 오욕의 현장입니다. 거기에 10원짜리 동전 한 잎 눈을 빛내고 있습니다. 아니, 있는 듯 없는 듯 버려져 있습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걸인조차 외면하는 동전 한 잎!
방금 전 보았던 다보탑, 빛나는 아우라는 사라졌지만 시인의 눈길은 여전히 동전 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전의 이면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아가라는 전언을 10원 짜리 동전을 통해 다시 듣습니다.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동전 같은 삶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동전 위에서 진아(眞我)는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시인은 한 산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자 솔로몬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전도서>(1장 9~10절)에는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씌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새것에 목마르다, 새롭게 거듭나서 헌것을 새로운 시로 새롭게 재탄생시키고 싶다. 계통 발생과 개체 발생에서 완전 절연된 돌연변이 신생종 신인류가 되어, 새로운 시를 쓰고 싶다."
이처럼 치열한 시정신은 나이를 넘어 활활 불타고 있습니다. 마치 시단 새내기의 당찬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유안진 시인은 연륜을 더할수록 더욱 뜨겁고, 상상의 평원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집 가까운 거리를 걸어보시지요. 운이 좋으면 다보탑을 줍는 횡재를 하거나 길 위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로부터 한 말씀 얻어 들을지도 모르지요.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