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종합주가지수 500선마저 붕괴되며 시작된 1월 객장에는 곡소리가 가득했다 국제통화기금 IMF의 혹독한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대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맞았고 보유 주식을 헐값에 던지는 반대매매가 쏟아졌다 개미 투자자는 깡통 계좌를 부여잡고 "이러다 정말 나라가 망하는 건가" 아무도 주식을 사려 하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입구였다
2월이 되자 금융권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눈앞에 들이닥쳤다 다수의 종합금융회사들이 영업정지를 당하고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금융 시스템 자체가 마비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금융주들이 연일 하한가를 쳤다 객장 전광판 가득 칠해진 파란색 불빛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살아남을 은행이 어디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대혼란의 정점이었다
3월 정부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3월 2일부터 주가 상하한가 제한폭을 기존 8%에서 12%로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시중 금리가 무려 10%대 후반에서 20% 가까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자금줄이 완전히 말라붙었다
4월 1일 금융감독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부실기업 정리에 속도가 붙었다 시장에는 퇴출 기업 명단이 돌며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주가는 작은 루머 하나에도 널뛰기를 반복했다 외국인들은 헐값이 된 우량 수출주를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했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무서워서 손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5월은 5대 대기업 그룹 간의 사업 교환 이른바 '빅딜' 소문으로 시장이 요동쳤다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전면 재편 소식에 해당 종목들의 주가는 하루 주가 제한폭인 12%를 오르내렸다 기업이 살아남을지 다른 곳에 흡수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도박판 같은 장세가 이어졌다
6월 16일 코스피는 사상 최저치 수준인 280.0포인트(장중 277.37)까지 추락하며 바닥을 찍었다 주식 가치가 완전히 휴지 조각이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객장의 적막 속에서 묘한 신호를 읽었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면 이제 올라갈 길뿐이라는 대담한 확신이었다 우량주를 분할 매수하기 시작했다
7월에 접어들며 살인적이었던 고금리 기조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정부와 IMF의 협상으로 금리가 서서히 내려가자 시중의 뭉칫돈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주가는 바닥을 치고 눈물겨운 반등을 시도했다 매수했던 우량주들이 서서히 상승 불을 켜기 시작했고 작은 희망의 불씨가 지펴졌다
8월 중순 초대형 대외 악재가 한국 시장을 덮쳤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채무 지불 유예)을 선언했다 미국 월가에 블랙 먼데이급 폭락이 찾아왔고 국내 증시도 다시 비틀거렸다 이번엔 대외 변수일 뿐 한국의 기초체력은 회복 중이다 라며 입술을 깨물고 버텼다
9월이 되자 정부가 발표한 외환보유고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마침내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환율이 안정세를 찾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강해졌고 낙폭이 과대했던 대형주들을 중심으로 강한 반등 장세가 연출되었다 계좌도 드디어 수익권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유동성 장세의 화려한 개막10월은 기적의 달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깜짝 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글로벌 자금이 아시아 시장으로 밀려들었다 시중 금리가 급락하자 은행에 묶여있던 돈들이 증시로 대거 유입되는 유동성 장세가 폭발했다 주식형 펀드에 돈을 넣으려는 사람들이 은행 문전성시를 이루며 증시는 거침없이 질주했다
11월의 주인공은 우선주들이었다 한화증권 우선주를 비롯한 중소형 우선주들이 연초 대비 수십 배 이상 폭등하는 광풍이 불었다 증권사 객장은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전광판은 온통 붉은색 상승 기류로 가득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1998년 주식시장은 신기록의 해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12월 7일부터 주가 제한폭이 15%로 확대되었고 토요일 휴장제가 도입되었다 12월 10일에는 종합주가지수가 하루 만에 무려 41.09포인트나 폭등하며 사상 최고 상승 폭을 기록했다 하루 거래량이 3억 주를 돌파했다
IMF의 지옥 같은 폭락장을 의지와 끈기로 버텨내며 살아남은 개미들 앞에는 더 잔혹하고 거대한 도살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1999년~2000년의 닷컴 버블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