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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과 발람의 모략 (민수기 23장 1-30절)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락은 지속적인 저주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장소를 옮겨가며 저주를 시도했다. 하나님께서 저주 대신 복의 메시지를 주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이스라엘에게 대항할 것이 아니라 항복을 하던지, 아니면 도망을 가던지 해야하는데, 완악해진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의 입에서 저주가 나올 때까지 저주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데리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옮겨 다닌 세 곳은 바알의 산당, 비스가 꼭대기, 브올 산 꼭대기였다. 첫 장소인 바알의 산당은 가나안의 신이며, 농작물과 가축의 다산과 번성을 보장하는 신으로 믿었던 바알을 숭배하는 산당이었다. 두 번째 장소인 비스가 산은 사해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아바림 산맥의 한 높은 봉우리다. 이곳 정상에서 보면 약속의 땅인 가나안과 모압 평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사해까지도 볼 수 있다. 세 번째 장소인 브올산 꼭대기는 비스가 산과 마찬가지로 아바림 산맥에 위치한 산으로 추정된다.
모압 왕 발락은 옮겨 다니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수송아지와 숫양을 각각의 제단에 진설하여 희생제사를 드렸다. 이 제사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다 노출시키겠다는 의미와 함께 이스라엘의 영적인 문제들을 공략하겠다는 의미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들추어내어 시시비비를 가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완전히 떼어놓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두가지 유형의 신자들이 있다. 첫째의유형은 아주 극히 적은 숫자이겠지만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속량으로 인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들에 대해서 다 사해주었다고 믿으며, 그로 인해 하늘의 부활생명으로 태어난 것을 믿는 자들이다.
또 한 그룹은 대부분 신자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과거의 죄를 다 용서해주었을 뿐 현재와 미래에 대한 죄는 여전히 죄를 회개해야 하고, 예수의 피로 날마다 죄를 씻어야 한다고 믿으며, 부활도 장차 육체가 죽은 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두번째에 해당되는 신도들은 첫번째에 해당하는 신도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죄가 현재 그들에게 이렇게 남아 있는데, 무슨 이유로 거룩한 성도가 되었는가 비웃고 이단취급을 하는 것이다.
만약 모압 왕 발락의 계획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이스라엘의 죄악과 문제들이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진다면 이스라엘에게는 매우 피곤하고 힘든 일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죄악을 이야기하려는 발락과 발람은 정작 그들이 공의롭지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돈으로 맺어진 관계이며, 자기들의 이익만을 위해 만난 관계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있는 자가 누구든 돈을 주고 선지자를 데려왔을 것이다. 선지자 발람은 자신이 저주해야 할 이스라엘이 어떤 민족인지 알려하기 보다 많은 재물에 현혹되어 저주하려던 선지자였다. 이 수준 낮은 야합은 결국 바알의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민수기 23장 1-5절「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발람은 자기 고향의 풍습대로,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고자 하였다. 제단과 제물의 일곱이란 숫자는 그들이 믿는 신을 하나님의 일곱이라는 숫자로 흉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을 주관하신 것은 여호와는 각종 우상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살아계신 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번제물은 하나님께 속죄제물로 드리는 것으로, 그 곁에 선다는 것은 자신도 번제물과 연합되어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말씀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시더라도 발락이 있으므로 임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자신이 저리로 가서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 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선지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발람의 말대로 하나님이 발람에게 나타나 말씀을 주셨다.
민수기 23장 7-10절「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아람은 밧단아람으로 창세기 11장 31절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정착했던 하란 성읍은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위치한 "강 사이의 아람"인 아람나하라임의 일부인 밧단아람에 있었다. 밧단아람은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며,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기도 한다.
발락과 모압 왕은 같은 인물이다. 아람에서 발람과 발락과의 관계는 야곱과 외삼촌 라반과의 관계를 빗대어 표현한다. 그리고 동쪽 산에서의 발람과 모압왕의 관계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사탄과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을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백성을 선지자가 일방적으로 현재의 행동을 통해서 악하다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백성은 외로우며,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야곱의 티끌이란 창세기 28장 14절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라고 하신 표현으로서, 곧 티끌처럼 많아진 이스라엘 백성을 일컫는다.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은 수많은 사람으로 확대되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스라엘의 사분지 일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로, 행진의 대열을 사등분하여 행진한 것을 표현한 것으로, 영적으로 열두지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고, 오늘날 성도들을 의미한다.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의인의 죽음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이며, 종말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부활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참소하며 저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발람의 입을 막으셨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어느 누구도 참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8장 33-34절에서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심으로 인해 발락과 발람이 어떤 일을 꾸미고 있었는지 깨닫게 하셨다.
발락은 거듭 거듭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요구했으나, 발람은 진실된 선지자로서 답을 한 것이다.
민수기 23장 19-21절『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의 허물과 잘못을 보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발락과 발람에게도 이런 하나님이시기를 원하셨다. 발람의 예언을 통하여 이 두 사람을 부르시는 크신 하나님을 나타내주셨다. 이들은 결코 하나님의 계획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저주의 실패를 통해 깨달아야 했다. 이 실패가 곧 발락과 발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의 메시지는 발락과 발람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순간 이 두 사람에도 임할 수 있는 복이었다. 그러나 발락은 끝까지 불순종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민수기 23장 27-30절『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에 이르니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제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행하여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이교도들의 특징은 자신의 끈질긴 노력 여하에 따라서 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신념이었다. 발락 역시 그러한 신념에 따라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의 사악한 의지를 꺽지 않고 있었다.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신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자신이 계획한 바를 이뤄보고자 하는 발락의 악한 탐욕의 마음이다.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탁월케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알면서도, 이처럼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보려 한 발락은 곧 멸망을 눈앞에 두고서도 계속 자신의 고집을 실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거듭 반역하는 악인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도,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을 지키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오늘날 신도들도 이와 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자기의 원하는 대로 하나님을 움직여 보려는 생각을 한다.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에 이르니”
발람은 모압 평지와 보다 가까운 이곳에서 이스라엘 진영을 뚜렷이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이 브올산은 이스라엘이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우상숭배에 빠진 장소인 바알브올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이며, 발람은 이곳에서 이스라엘을 함정에 빠뜨릴만한 악한 꾀를 지어 발락에게 알려주었던 장소로 추정되고 있다.
산 꼭대기는 인간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자기의 의를 의미한다.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거듭 시도되는 이 악한 계획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종교인의 끈덕진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멸망으로 치닫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실체를 제시함과 더불어 앞의 두 예언이 발람의 확고한 신앙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이는 또한 옛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임을 알면서도, 자신이 꼭대기에 있다고 여겨지면, 타락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옛사람은 마음 속에 깊히 뿌리 박히고, 꼭대기에 앉아 행동을 통제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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