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史99卷-列傳12-崔均-003
○甫淳器識宏深
최보순은 기국이 크고 학식도 심오하였다.
少孤力學登第調黃州掌書記政尙淸白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공부에 전력을 다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황주 장서기(黃州掌書記)로 되었는데 정사는 청백을 주로 하였다.
累遷小府監常典制誥撰賀
후에 여러 번 승직되어 소부감(小府監)으로 되었으며 항상 제고(制誥)를 맡았었다.
金主卽位表云:
금나라 임금이 새로 즉위하였을 때 그가 축하문을 지었는데
"五馬渡江表晉朝之開新主六龍御極符羲易之見大人."
“태수로서 강을 건너는 것은 진나라(晋)가 새로 왕조를 세운 것과 같고 황제로의 등극은 주역에서 말한바 나타난 용(龍)이 밭에 있다는 쾌(卦)에 부합한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金主兄弟爭位惡其逼中書省詰云:
이것은 당시 금나라 임금이 형제간에 임금자리를 서로 쟁탈한 데 대한 것을 폭로한 것이라 하여 중서성(中書省)에서 힐문하기를
"我聖上龍飛非若晉朝渡江之
“우리 황제의 등극을 동진(東晋) 왕조의 강을 건너서 왕으로 된 것과 비유할 수 없다.
比何用此語?"
어찌 이런 문구를 사용하였는가?”라고 하였다.
遂罷甫淳職未幾拜吏部侍郞右諫議大夫高宗朝累官至守太師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卒謚文定
그리하여 최보순을 파면시켰으나 미구에 이부시랑 우간의 대부(吏部侍郞右諫議大夫)로 임명되고 고종 때에는 여러 번 승직되어 수 태사 문하시랑평장사 판 이부사(守大師門下侍郞平章事 判吏部事)에 이르러서 죽었으며 시호는 문정(文定)이라고 하였다.
嘗撰明宗實錄.
그는 일찍이 명종 실록(明宗實錄)을 편찬하였다.
子允偁允愷允偁奉御允愷登科累轉尙書右丞
아들은 최윤칭, 최윤개(崔允愷)인데 최윤칭은 봉어 벼슬을 지냈고 최윤개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다.
時崔竩累世柄國擧朝趨附允愷獨不至其門
당시 최의의 집에서 여러 대로 내려 오면서 국권을 잡고 있었으므로 온 조정의 관리들이 최의에게 아부하였으나 최윤개만은 그 집 문에 이르지 아니하였다.
金仁俊誅竩以允愷廉平擢爲右副承宣掌吏兵部選官至樞密院使御史大夫.
그 후 김인준(金仁俊)이 최의를 처단한 후에 최윤개가 청렴하고 공정하다 하여 우 부승선(右副丞宣)으로 등용시키고 이병부(吏兵部)의 인재 선발 사무를 주관하게 하였으며 나중에 벼슬이 추밀원사 어사대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