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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상 38 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성인
안나푸르나 어라운드
네팔여행은 대기 오염, 교통체증, 허름한 건물들 , 중앙선도 없는 도로, 낡은 집들,길에서 놀고 있는 많은 실직자들, 거리 곳곳에 산재해 있는 힌두교 사원들을 보며 시작됩니다. 네팔은 인구 2700만명중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인구의40%가 하루1$의 빈곤선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여행을 앞두고 우선 체력이 뒤따라야 하므로 등산과 조깅 등으로 기초 체력을 다진 것은 16박 17일이라는 긴 여정에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였습니다. 다음에 준비할 사항은 고산에 적응해야 하는 훈련인데 한번 고산적응을 하면 6개월간은 적응력이 있다고 합니다.. 2006년 안나 푸르나 베이스 캠프인 ABC,MBC 를 다녀왔고 일본 북알프스, 말레이지아 코타키나바루, 대만 옥산등을 다녀왔기 때문에 큰 우려는 없었었습니다
드디어
기내에서 비행코스를 보며 클래식음악을 듣다가 졸다가 7시간정도 지나서 마침내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했다.네팔과 한국의 시차는 3시간15분이다 . 현지 시간
입국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카투만두 시내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달리는 창 밖의 거리는 우리나라 50년대와 비슷하다..
이윽고
왕정에 대한 민주화 데모라고한다. 자기네끼리 길을 막고 토론을 한다. 기다리다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약 4시간이 지체되어
아침식사는
나의 포터는 이름이 섬부인데 6남매 중 막내라고 했다
이곳은 공업이 발달하지 않아 농업인구가 많고 집집마다 자녀가 5-6명으로 많다 .
그렇게 네팔의 오지를 걸다보니 어느덧 점심먹을 휴게소에 다달았다.Nagdi(나디)라고하는 곳에 정원이 넓은 휴식하기 아주 좋은 아름다운 휴게소였다.점심식간을 2시간 30분에 걸쳐 마치고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온다. 고지대에서는 오후가 되면 대개가 날씨가 흐려진다.얼마 안가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높은지역에 눈이 너무 많이 올까 걱정이 된다
포터들에게 우의를 챙겨준다 우산을 쓰는 사람도 있다. 촉촉히 젖은 밭들이랑 산간은 단비를 맞으니 그 색깔이 더 선명해져 보인다. 오늘밤 묵을 바훈단다에 도착하니
우리 방에 모여 맥주파티를 연다 . 네팔의 산장은 롯찌라 부른다 롯찌의 전깃불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이내 정전이 되고 어둠컴컴한 숙소에서 일찍 잠에 든다. .밤새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도 친다. 아~~ 내일 비가 그쳐야 할텐데…
창밖을 내다보고 하늘을 우러러본다.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뿌옇다 다행이다.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밖의 기운이 아주 상쾌하다. 마당 한 귀퉁이 화장실 앞에선 어젯밤에 못 보던 서양인이 양치질을 하고 있었고 또 떠나는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식당으로 들어섰다.늘 비슷한 메뉴지만 오늘아침은 마늘 스프 오토밀빵 등이다.식사 후 예정보다 한 10분 빠른
하늘이 개일듯하다가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한다. 비에 젖어 걸어가는 노새가 보인다.노새의 등은 무거운 짐에 부데끼어 껍질이 벗겨져 피멍이 들었다. 노새에게 동정을 보낸다.
이제 비가 좀 덜 내린다.마을 밭에서는 농부가 소를 이끌고 밭을 갈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골의 풍경이다
어떤 밭에선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밭갈이에 여념이 없다 아 이러니 자녀가 많아야 하는가 보다. 어느 밭에선 남자여자 모여 앉아 쉬고 있다..
멀리 자갓이 보인다 비를 맞으며 걷는다
예정대로 선두는
오늘은 빗속에 10시간을 걸었다. 모두가 기진 맥진이다.
짐을풀고 침대에 침낭을 꺼내어 깐다 그때 더운물이 나온다고 이대장님이 전해준다. 부리나케 내려가 1층에 있는 샤워장으로 가니 뜨거운 물이 잘 나온다. 뜨거운 물에 피곤한 몸을 씻어 내린다.
또 우리 방으로 넷이 모였다. 안주거리를 만들어 맥주를 들며 빗속 10시간 산행 이야기 꽃을 피운다. 누릉지,라면등으로 간식을 만들어 먹는다 . 매번 식사는 주문후 빨리 나오질 않지만 오늘도
비가 멎었다. 이침식사를 하고 아름다운 호텔 주변과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
강을 왼쪽으로 끼고 계속 거슬러 올라간다 어라운드 산행은 180킬로미터를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고 계곡을따라 내려가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가고 건너오기를 되풀이 한다.노면은 비포장으로 폭이2-5미터이다. 다리를 건너 찻집에 들렸다. 옆에 소수력발전소가 있었고 계곡도 깊었다.네팔 지역은 큰 발전소가 없고 전력이 부족하여 이러한 소수력발전소가 많이 있다. DANAQUE(다나크)에 도착은
- 렛삼 삐리리 렛삼 삐리리 우레라 장키 달라마 환장 렛삼 삐리리 ♬~- 모두가 따라 불러 본다. 가사 내용은 피리를불며 연인을 부르는 노래인듯하다.
계곡을 오른쪽으로 두고 한참을 걸었다.이번엔 어린아이가 대단히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올라오는데.다리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훈련이라도 시키는 건지 모르겠다.
혜수씨 부부가 옆에서 지켜 보더니 얼른 그 아이에게 먹을 것을 건네준다. 서서히 비가 멎어간다.다나크를 떠난 지 2시간30분 시야에 설경이 들어온다. 모두 와~~하고 탄성이 나온다. 이제 우리가 묵을 티난에 도착한 것이다. 시간은
설경속의 티난의 아침이다. 높고 높은 산들이 티난을 에워싸고 있다.동이 튼 마나슬루의 모습이 눈부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우선 불을 피워 국이나 스프를 끓여 예비 식사를 하고 현지식으로 오토밀 뽂음밥 감자 빵 등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이곳에서는 산악지방이라 해산물은 거의 없다. 계단식농장에서 밀 감자를 재배하고 닭,염소를 키우고 운송수단으로 쓰기 위해 당나귀를 키운다
출발
안나푸르나 2봉과 4봉이 보인다. 산아래 침엽수림과 어우러져 있는 저 높은 산봉우리의 흰 눈 멋있는 풍경이다. 다시 출발 또 한차례 지나가는 노새떼들을 만나고 만날 때마다 안전을 위하여 길가의 높은 편으로 비켜서야만 한다. 이 규칙은 가이드가 안전수칙으로 강조하는 규칙이다.한번은 비켜 서다가 나귀의 짐에 바틀려 언덕아래로 떨어질뻔하고 정신이 바짝 든적이 있었다.계속하여 가도 가도 안나2봉과 4봉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엔 점심시간이 빠르고 짧아졌다.
1시간 30분쯤 지나 왼쪽 계곡아래에 눈사태로 밀려 내린 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길옆 높은 산을 보며 낙석의 위험을 느낀다.이 지역은 아열대 지역이라 햇볕은 따갑다. 이럴 땐 기온에 맞춰 여벌옷을 꺼내어 입거나 옷을 하나 둘 벗는다. 숙소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한다. 찻집에 들렸다. 얼마전 만났던 독일 여인 그녀를 모델로 사진을 찍으려 하니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해 줬다
찻집에서 나와 조금 지나니 굉음이 들려 산위를 쳐다보니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눈사태다.히말라야의 풍경을 보며 걷는 트레킹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루 에 걷는시간은 오전에5시간 오후에2-3시간 정도이다.이윽고 도착한 Dhukure Pokhari(두꾸라포카리)
롯찌는 "트랙킹스 인". 오늘밤 식당에는 나무를 때는 난로가 있어 젖은 등산화를 난로가에 놓고 말린다.옆에는 땔감으로 쌓아둔 나무가 많다. 포터들은 우리가 방으로 간 뒤 이 식당에서 잔다. 침낭속은 따뜻한데 외부 화장실 다니기가 너무 불편하다. 하얀 눈으로 덮힌 히말라야의 밤. 그리고 오늘밤은 처음으로 3000미터를 돌파하였기 고산증에 대비하여 다이나믹스라는 약을 배부 받아 한 알씩 먹는다. 비아그라도 효과가 있다고하여 준비했는데 먹을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조금 빠른
오후 3시경 지나는 길엔 풍화작용으로 생긴 기암괴석으로 된 산을 바라보며 지나간다 . 그 아래 건초를 뜯는 당나귀를 사진에 담는다.마을을 지날 때 규모가큰 곰파를 만났다.힌두어로 돌멩이에 경을 새겨 길가에도 늘어 놓았고 거대한 불탑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으니 빨리 자라는 신호인가 전갓불이 꺼진다. 이렇게 전력이 부족한가?
마낭에서 남아 비행기로 갈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모든 대원이 잘하고 있다.마낭에서의 출발은 조금 늦은
마을 골목엔 눈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몇일 전 1,000m고지에선 비가 내렸을 때 이곳은 눈이 내렸을 것이다.
군상에서 부터 보이는 연봉들은 그 위용이 대단하다.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의 산 정상에서 눈보라 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이대장님 양회장님은 그 연세에 체력 관리를 잘하셔서 조금도 쳐지지 않는다. 양회장님은 위를 잘라낸 분인데 소식을 하고 간식을 자주 하면서도 고령으로 에베레스트,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등 여러곳을 등반한 실력자이다. 그런데 등반을 하니 아침에 정력이 좋아지더라고 털어놨다.. 김사장은 예티호텔을 떠날 때부터 두터운 옷을 껴입고 있었으나 더워도 잘 벗지 않아 자주 벗고 입고 해야하므로 잘 적응하라고 일러주니 기능성 옷이라하며 그냥 버틴다.
어떤 서양인이 토롱라를 못넘고 술도 좀 들었고 고소증 때문에 하산하고 있었다. 가이드 라케스상은 그들에게 그 토롱라의 사정을 묻는다.통신이 없는 이곳에선 사람들이 오가는 속에 정보를 들어야한다. 토롱라를 넘을 수 있을까 적정이 된다.
얼굴 씻을 따듯한 물을 한 바케스씩 받아 두사람이 쓴다 .그리고 오늘은 모두 일찍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어젯밤 고산증에 시달리던 혜수씨가 극복했나 보다.밝은 얼굴로 아침 식사시간에 참석하니 다행이다. 고도의 긴장감이 서리는 오늘의 트레킹 토롱라 하이캠프를 향해 7:50출발한다.
가는 길 내내 은빛세상으로 침엽수림이 울창하고 눈이 무릎까지 오는 길인데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만 밟고 가야한다. .때로는 가파르고 급경사지라서 넘어지면 대단히 위험하므로 각별히 조심하면서 걸었다 . 짐을 25킬로 내외로 무겁게 진 포터들의 안전도 걱정이 된다. 한번은 포터가 넘어져 음료수에 타서 마시는 포카리 스웨트 분말봉지가 터쳐 엉망이 되었다고 미스최가 이야기 했다. 잘못하면 그대로 미끄러져 수백미터를 내려갈 것이다 . 다행히도 모두가 조심하여 무사히 밟고 갈 수 있었으니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런 위험을 즐기며 걷는다. 한계점에 도전해 본다. 드디어 고산지대에 방목하는 야크가 등장한다. 산중턱에 우뚝 서있는 야크의 모습을 보니 그 자세가 위엄이 있어 보이고 늠름하다. 히말라야에 온 것을 실감한다.
눈길 산허리를 돌아 낙석과 낭떠러지의 위험을 안고 계속하여 설산의 비탈을 걸는다 . 등반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때로는 고독을 느낀다 . 군중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듯이.
오후2시15분전에 출발한다 . 이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천천히(네팔어로 비스따리)오른다.고산지대에서는 너무 빨리 오르면 쉬 피로해진다. 포터가 지름길로 올라간다 나도 한번 뒤따라 가보았더니 역시 숨이 가쁘고 힘들었다. 아래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토롱라 하이캠프는 단숨에 올라갈 듯하지만 1시간 20분이나 걸렸다.오후3시경 토롱라 하이캠프(4,900m).도착 ..이제 거의 성공한 셈이다.내일 오전 516m만 더 오르면 된다.
식당에 들어서니 식탁 아래 가스로 불을 피워 놓았다. 바람불고 눈보리치고 손시리고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데 들어오니 안심이 된다. 그런데 후미로 오던 김보일님이 안보인다 .갑자기 사고가 생겼다. 체온이 떨어지고 숨이 막힌다고 전갈이 왔다 .밖으로 나가보니 올라오는 길이 안개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아마도 기온이 뚝 떨어져고 , 체력이 떨어져서 위급상황이 된것같다 . 급히
두터운 잠바, 상비약 침 산소통 등을 가지고 내려간다 .얼마가 흐른 뒤 B씨가 사색이 되어 올라왔다. 손이 마비가 되고 기운을 못 차려 전직 간호사였던 상식씨가 응급처치를 했다고 한다. 체온이 정상으로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비벼대니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오늘밤엔 B씨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포터와 함께 숙박을 시킨다. 내일 아침은
5416미터 고지 목표달성. 토롱라를 지나 해발 3700미터의 묵띠나트를 향해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 길은 눈길로 미끄러웠지만 그런대로 미끄러지기도 하며 모두 잘 내려간다 가도가도 휴게소가 없다 비수기이고 아예 휴게소가 없는 구간이다..
오늘은 닭요리를 한다고 한다 점심 겸 저녁을 일찍 먹고 방으로 돌아간다 모두들은 피곤해서 닭요리를 먹을 수가 없었다.12시간의 트레킹에 .그대로 침실에 들어간다. 나중에 들으니 포터들만 포식했다고 한다
동이 틀 무렵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방 앞 테라스에서 저 멀리 연봉사이로 햇살이 비치니 황금봉으로 변한다.
포터 둘이 따라붙고 마낭에서 비행기 타고 포카라에서 우리와 합류하기로 한다.지금쯤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낙오된 B씨를 생각하며 우리들은 걱정 했다. 나중에 들으니 군용비행기 타고 1시간 30분을 계곡 사이를 돌고 돌아 카트 만두로 직행 병원에가서 응급치료를 받았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포터와 같이 택시를 타고 내렸는데 포터가 등산배낭을 두고 내려 카메라 기타 배낭채로 모든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묵띠나트는 갠지스강 상류인 카트만두의 상류 발원지로서 성지이므로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곳으로 티베트계고지대 민족이 살고있다. 이곳은 기온이 조금 높아 티셔츠 하나만 입고 걷는다.걸어가는 길엔 눈이 없고 황량한 들판이다. 저 멀리 산등선에만 눈이 쌓여있다. 황량한 들판에서 야크들이 노닐고 있다. 출발한지 2시간이 넘어서 무스탕의 입구라는 "칼리(검은여신)건더기(큰강) 가 우리가 걷는 발 아래 펼쳐진다.이곳에서 무스탕을 거쳐 티베트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데 여행자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말을 타고 서양인들이 묵띠나트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걸어서 올라오는 성지 순례객에 말을 걸어본다 Have you a nice treaking where do you come from?. 서투른 영어로 말을 걸어본다. 독일인이 가장 많고 이탈리아인 잉글랜드인 ,미국인도 만났다.묵띠나트는 유명한 사원이 있어서 성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우리들은 너무 힘들어서 어제 그사원에 들리지 못했으나 이대장은 사원에 들려 마시면 죄가 없어진다고 하는 108개의 수도꼭지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마시고 사진도 찍었다 .
좀솜에 도착하니
점심을 먹고 순금씨만 좀솜에 남겨두고 우리들은 또 떠나야만 했다. 마낭으로 되돌아간 B씨 그리고 이번엔 순금씨 안됐기도 하고 걱정된다.다음 숙소는 좀솜에서 1시간 30분거리에 있는 마르파이다. 오늘은 일찍 숙박지에 도착하는구나 .그래서 기분으로 걸었다. 마르파는 사과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며 이곳의 사과브랜디는 관광객에 인기가 있다고 한다. 오늘밤은 사과브랜디를 한잔하자고 한다. 모처럼 여유로운 저녁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또 날이 흐려지고 빗방을이 떨어진다. 이곳은 수시로 흐려지곤 하지만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았다.마르파에 도착하니
선두팀은 후미팀을 기다리다 마을을 관광했다. 마르파는 그 마을 분위기가 그리스나 이태리의 건물양식이고 벽색깔도 하얀색으로 되어있다.또 이슬비가 내린다.
숙박지 주변은 기념품가게가 즐비하게 있었고 가까운 곳에 사원이 하나 있었다.포터 한명을 대동하고 이대장님 미스권 용수씨는 사원에 올라간다.사원에 오르면 마르파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게에 들어가 사과브랜디 값을 물어보고 2병을 사고 털모자도 흥정해서 사고 사과를 말린 건과를 한봉지 사들고 한 바퀴 돌고 숙박지로 돌아온다.
방에 모두 모였다. 사과 브랜디를 한잔씩하며 오늘의 뒷풀이를 하는데..미스권은 위가 아파 그 유명하다라는 사과브랜디를 못 마신다 .얼마나 억울할까
식사후 각자 방으로 간뒤 좀솜에서 전갈이 왔다.순금씨가 괜찮아져 마르파로 오겠다고 하여 포터3명이 좀솜으로 그 밤에 가서 순금씨를 데리고 오니 시간이 새벽
비오는 밤 그리고 랜턴도 없이 캄캄한 길을 오는데 포터들도 3번이나 헷갈리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한다. 포터들 고생시키는 것을 보니 안됐다.그냥 거기서 비행기 타고 포카라로 갈 것이지..아마도 비행기 타는 값이 아까웠던 모양이다.그리고 눈에 약을 넣으니 좋아진 탓도 있었겠지만.!
포터에게 무언가를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이다.그날 밤 밖에서는 그 야단 법석 일어나고 있었다.
2007.3 9. 흐림
허허벌판 한복판에 다 쓰러져가는 너와집도 한채 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일까 할 정도로 허름한 너와집 앞에서 주인은 재봉틀로 무언가를 박고 있었고 아줌마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이대장님이 사진을 찍는다.
애들에게 사탕을 주니 좋아 한다 . 다시 길을 재촉한다 나도 열심히 가는데 선두가 보이지 않는다. 그 다음 중간으로 뒤따라 오는 이대장님의 빨간모자가 저 멀리 보인다 양회장님이 후미가 되고 말았다.부지런히 따라온다. 칼로파니에 도착하니
칼로파니에서 오늘 숙박지 가사까지는 2시간가량 소요된다.식사를 마치고 지체없이 또 길을 재촉한다. 이젠 고산증도 추위도 없다.
가다가 도로 공사판을 만났다.네팔 정부에서는 관광객을 위하여 도로를 최대한 보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부들의 장비는 한심하다 쇠막대기 삽 망치 등 인력에 의존하는 공사이니 힘들고 진척도 느리겠지. 또 당나귀떼를 만난다 다 지나갈 때까지 얼마를 정지한 채 기다렸다.흙더미로 뒤죽박죽 된 길을 서로 조심스레 비켜가며 걸었다. 숙박지 가사 마을에 도착, 첫집이 숙박지였다. 얼마나 반가운지.(15시40분도착) 나는 인근 가게에가서 빠나나,포도 등을 한보따리 사와서 대원들에게 나눠준다
여행에서는 역시 식사시간이 즐겁다 그지방 토산품 주류 (막걸리맛)를 들고 현지식도하고 그곳의 풍물도 본다. 포터들은 포카라에 가면 헤어진다.그래서 팁을 포카라 가서 잊지 말고 줘야지. 고생했으니 20불에서30불 정도 주면 좋겠다고 대장님이 일러준다. 따또빠니를 병에 채워 방으로 돌아갔다
가사의 드림홈을 출발한 시간은
폭포 이름은 잘은 모르겠는데 높은 곳에서 한 4단으로 내리치는 폭포는 그래도 유명한 모양이다.그아래 롯지가 2개나 있었다.폭포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길로 올라서 산허리를 돌아 계속하여 왼쪽으로는 Rukse Khola(강이름)를 끼고 걷는다. 다나에 도착하였다.오렌지생산지이다.캐빈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다.식사하기 전에 오렌지를 사서 먹어보니 그맛이 너무 좋았다. 오렌지 쥬스를 시켰더니 정말 달고 시원한 후레쉬 쥬스이다. 나는 오렌지를 사가지고 가자고하니 가이드가 무겁다 하며 따또빠니에도 오렌지가 많다하여 취소하였다. 오랫만에 마시는 상싱한 오랜지 주스 .비타민 섭취로 기분들이 좋아지고 모두들 그렇게 즐거워 했다. 매점에가서 1달러어치를 사니 28개였다.배낭에 넣어둔다
마르파의 사과명산지를 지나 이번엔 오렌지생산지라...포카라가 가까워 갈 수록 먹거리는 좋은 것 같다. 그런데 다음지역의 오렌지는 그게 아니었다 . 낙과등 오래되어 수분 부족한 중 하품이었다. 좀 사가지고 왔어야 하는건데 아쉬웠다.
따또빠니에는 오후2시도착 .히말라야라고 씌여진 집으로 들어섰다. 정원이 있고 오렌지나무도 몇그루 있고 야외식탁이 놓여져있다.인근 오랜지 나무에는 오랜지가 많이 달려있었는데 주인을 몰라 살수도 없었다,
노천온천에 가기로 했다.수영복과 세면도구를 들고 나선다. 꼬불꼬불 험한길로 5분정도 가니 노천온천은 생각 밖이었다. 세멘트로 두칸 만들어 놓은 남녀혼탕이다.허술한 탈의소가 있고 입욕은 20루피. 어떤이의 산행기엔 10루피라고하던데..이대장님이 맥주를사서 한잔했다 .맥주 3병에 입욕료하여 530루피 지불해주셨다.1달러는 70루피이다.
허술하고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따듯한 물속에 들어가니 기분은 좋다..탕안에서 못하는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를 했다 영국에서 친구와 같이 온 여행객인데 영국의 노래를 불러 보라하여 대니보이를 불렀다. 같이 합창을하니 코가 큰 영국인도 잘 웃는다.
온천욕을 거의 마칠 무렵 비가 내린다.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미 염소는 죽어서 가이드와 포터들 손에 요리를 당하고 있었다. ㅎㅎㅎ 부위별로 요리를 해 내놓는데 가이드 라케스와 포터중의 한분이 훌륭한 요리사였다. 솜씨가 아주 훌륭했다. 염소 피 요리 내장요리 갈비살 튀김 요리등 여러가지 요리에 사과브렌디를 곁들이니 분위기가 그만이다. 밤은 깊어가고 모두 일어서서 춤을 추며 렛삼삐리리를 부른다
스냅사진을 찍는다 술을 더 시켜 마시니 기분 나이스다 따또빠니의 밤이 깊어가는줄도 모르고 분위기를 띄운다..
어제 염소는 박사장님이 우리들에게 몸보신하라고 사주셨다한다.감사히 잘 먹었다 . 이번 네팔트레킹은 그들의 삶을 보면서 인간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국력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들이었다.
따또빠니 온천지를 떠나는 시간
이대장님이 제안을 한다. 여기서부터 갈레스워르 오늘숙박지까지 차로 가면 어떠냐 하신다 차비는 5만원정도인데 이대장님이 지불하신다고 모두 찬성하고
빨리가고 싶어서인지 30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15시10분경에 리버사이드호텔을 나섰다.베니에
버스는 속력을 낸다.꾸벅 꾸벅 조는사람 들 . 캄캄해진 밖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녁은 스테이크가 맛있고 싸다는 어느 레스토랑엘 갔다.양회장님이 와인 2병을 사시고 곁들여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오늘밤 포터들과 작별이다
식사를 마치고 등산장비점 몇군데를 들려보고 사과브렌디도 몇병사고 .호텔로 돌아가서 후론트에 모두 모였다. 포터들과의 작별인사가 있었다.2주일동안의 포터들과 정이 들었는데 정들자 이별이라고..그런 기분이다.
가이드 라케스씨가 만남의 인연에 대한 인사를 시작으로 모두와 악수하고 팁을 전달하고 물건을 전달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오늘은 포카라 시내관광을 하고 난민촌에 들린다
밴차량을 콜하여 달리는데 포카라시내는 베테랑 운전기사들만 있나보다.차선도 없는 도로다 사람들이 제멋대로 건너 다니는 거리를 요리조리 피하며 잘도 달린다 .먼지는 날리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잔뜩 찌푸리고...어딘지 모르지만 사원에 들렸다. 주민들의 신에게 무언지 열심히 빌고 의식을 치루고 있다.사원을 나와 차에 오른다.
미스권이 위장병이 악화되어 약국에라도 들려 달라고하니 포터가 병원을 가야한다고 한다. 이 대장님이 가는 길목에 어디 병원에 들리자고 하여 병원에 들어섰다.
병원인지 난민촌인지 분간 안되는 그런 건물속에 환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누가 의사인지 환자인지 모르겠는데 포터가 들어서서 외국인이라고 사정을 이야기하니 미스권부터 진료를 해준다. 이대장님과 상식씨가 대충 상황을 설명, 처음엔 변검사를 해야한다라는 말이 안통해서 못알아들으니 의사 둘이서 깔깔대고 웃어댄다.그래서 미스권이 대충 때려잡고 항문에 손을 대고 뽑아내는 흉내를 내니 그렇다고하면서 다시한번 깔깔대고 웃어제낀다. 그게 머가 우스운지..미스권은 아파죽겠다는데..
나머지일행은 밴차량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검사하기를 1시간 가량 걸렸다.결국은 입원하라고 하여 입원 수속하는데 30분 . 닝게르 꼽고 주사맞는 것을 보고 일행은 병원을 떠난다. 포터가 저녁에 대려 오기로 한다 1시간후 퇴원하려한다 아직도 맞을 주사약이 많다고 거절당한다 하지만 절대로 안된다고 포터에게 전하고 미스권은 초조하게 기다린다.포터가 왔다갔다 하기를 1시간이 넘어서 그제서야 오늘 퇴원해도 된다고 한다. 닝게르 하나를 더 가지고 왔다. 그거 맞을려면 1시간은 더 걸릴텐데.. 미스권은 그거 안맞는다고 한다. 만약 병원에서 안들어주면 자기가 주사바늘 뽑고 나갈참이었다.
저녁식사는 디너쇼를 하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디너쇼란 네팔 민속춤이었다. 이번엔 스테이크 보다는 생선요리로 하자하여 생선요리를 시켰다.스테이크보다 생선요리가 제일 비싼 가격이라고 한다.
2007년3월13~14일 화~수요일
새벽인데 천둥,번개치며 난리가 난듯하다 . 에구~ 이러면 비행기 뜰라나~ 걱정을 하면서 잠 을 청한다 짐을 정리하였다.
모두 걱정들이다.이러면 비행기가 못뜨고 버스로 카투만두를 가야하는데..그러려면 8시간정도 걸린다고한다.아무튼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떠나기전 후론트에 모여 호텔사장님이 우리들에게 황금색의 실크 목도리를 한사람 한사람 목에 걸어주며 가시는길에 행운이 깃드기를 기원한다 .
카투만두에 도착하니 박과장이 마중을 나왔다. 버스에 짐을 싣고 처음 온날 묵었던 양키호텔 부근 축제식당으로 갔다.아침식사하기는 조금 이르지만..그래도 11시경에 아침식사를 하고 상점가로 모두 나섰다.이제 본격적으로 쇼핑을 즐기는 시간..오후가 되니 비가 조금씩 내린다.
비오는 거리.. 까페에 들려 차한잔도 분위기 있을 것 같아 빵과 함께 마실 수 있는 찻집에 몇 명이 모여 차 한잔하면서 그렇게 카투만드에서의 추억을 남겼다. 다시금 축제식당으로 돌아왔다..오늘저녁은 카트만두에서 스테이크로 유명한 양키 스테이그하우스로 갔다.어두컴컴한 레스토랑에 정전이 되어 촛불을 켜고 그런대로 분위기? 있었다. 네팔에서 겪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추억거리이기도하다. 빅으로 시켰더니 양이 많았다.와인으로 마지막 만찬 건배를 들고 식사를 마친 후 축제식당으로 돌아왔다.10시가 되어 축제식당을 출발하여 카투만두공항에 도착했다.
우리가 짐을 부치고 출국하는 것까지 밖에서 지켜보는 박과장님이 고맙다.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 상해로 향했다.(23시20분 출발) 상해에 도착하니 새벽2시가 넘었다.공항내 의자에 앉아 나름대로 휴식을 하고 식사할 분 식사하고 그렇게 6시간을 보냈다. 대장정의 안나푸르나종주를 마치고 고국의 땅으로 가는 순간이다.웬지 편안한 기분이며 그간의 일들이 모두 꿈만 같은 기분이다
12시10분이 되어 비행기는 이륙한다 기내음식을 기다리다 맛있게 먹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그만큼 배가 고팠기 때문이겠지...^^*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가니 박사장님이 마중 나오셨다. 성공을 축하하시며 모두와 악수를 나누었다. 박사장님이 사주시는 차한잔을 마시며 잠시나마 여행담을하고 귀가하니 즐거운 나 살던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