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재 팔동 교회(회덕교회)는 불과 3개 월 만에 20명에서 200명 교인으로 급성장하였다.
"주님이시여 전도사라도 좋사오니 이 교회를 열심히 전도하여 부흥시켜두고 저 교회로 가고 또 부흥시켜두고 저 교회로 가고 하렵니다."는 기도 말이 끝나자마자 위로부터 강한 바람 같은 것이 불며 휘익 소리와 함께 열을 자리에서 일으키면서 유창한 방언이 터졌고 그 방언은 삽 재 팔동을 갈 쿠리로 싹 쓸어 모으는 제스츄어와 함께 두 시간이 넘도록 방언 기도를 시켰다.
그 방언은 여러 가지 말로 바뀌었다.
그 약속대로 3 개 월 여 만에 20명 교인이 200명으로 부흥된 것이다.
열이 3개월 전에 여수시 소라면 죽림 리 차동 마을 골 고랑 돌 담집에서 벽을 헐고 커다란 농과 살림살이를 1키로가 넘는 논 둑 길과 밭둑길을 따라서 짐을 실어 나를 때에 30호의 차동 마을 주민들이 총동원되어서 자발적으로 열 이의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아들아 이 집에서 성공하여서 새집을 지을 때에 이 집을 헐고 농을 꺼내려무나."라며 보르네오 가구 순 옥이 시집 올 때 순 옥 어머니가 해주었던 커다란 농을 기도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전도자의 사명을 띠고
이 돌담 집 벽을 헐고 꺼내 왔던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디에 있을까?
진정한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말이다.
이것은 스스로 자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차출 이였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열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 약점은 열등 감이였다.
중학교 중퇴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다.
물론 고등공민학교도 3학년까지 다녔으나 검정고시 합격이 두려워서 그만두었고, 그 상태로 가출을 반복하다가 은주에 대한 사랑이 싹트면서 은주와의 연애자격을 갖추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버지 정규를 졸라서 "열아 중학교부터 다시 입학하여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 내가 덕 양 여 양 중학교 차계장하고 잘 아니 말해줄게 그리로 다녀라."는 말씀을 "아니요. 나보다 3년이나 후배들하고 머리를 깎고 어찌 같이 중학교를 다닌 다요?"라는 자존심을 세우려는 어린 고집으로 아버지 정규의 현명한 충고를 뿌리쳐버린 것이다.
이것은 열 이의 허영 심이였다.
이때 아버지 정규의 말에 순복하였으면 열의 일생은 순탄대로의 길이 열리게 되었을 터인데, 그만 자신의 어리고 무지한 고집대로 이름뿐인 고등학생이 되었으나 정상적인 고등학생 대우도 받지 못한 채로 졸업하였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가도록 아직도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능력의 종으로 쓰임 받으면서도 그 사실이 귀중함을 모른 채로 여전히 학벌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허영으로 순천성경고등학교를 갔으나 별과 생 이였다.
별과 생은 중학교 졸업자가 아니라 초등학교 졸업자라는 뜻 이였다.
그 학교에서는 너도 나도 검정고시 공부를 겸하고 있었다.
수학 과학 영어의 40점 과락 제도가 있어서 검정고시 합격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머리가 뛰어나고 노력이 꾸준한 특별한 모범생들이 어쩌다가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신학교를 가지만 그것은 아주 드문 경우였다.
열 이도 성경 공부보다는 수학 영어 등을 공부하여보았으나 오히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고등학교 3년을 공부하고 졸업하면 전도사고시에 응시할 수가 있고 전도사가 될 수 있었다.
열은 이미 전도사 고시에 합격하여두었던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많이 나타나고 교회가 부흥되어도 열이 스스로가 자신의 학력부족을 실감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있음은 누구도 열 이를 당당하게 해주지 못하였다.
이러한 열이 오죽하면 "전도사라도 좋사오니.."라고 기도하였을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방언과 강력한 신유능력을 주셨던 것이다.
이제 3 개월 만에 20명이 200명으로 부흥되었으니 집사들도 20여명으로 임명해두었다.
그 집사들을 열 이가 추천하여 당회장이 임명하였다.
그 집사 들 중에 이 창래 집사가 있었다.
그는 마을 유지이며 면소재지 황전중학교 이사이기도 하였다.
그 이 창래 집사가 20여명의 집사들과 모여서 곁에 열이 전도사가 있는데도 "이제 우리 교회도 부흥되었으니 목사님을 모셔도 되겠다."라고 말하였다.
1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단 3개 월 만에 열심히 전도해서 부흥시켜두니까 목사님을 모신다는 그 말에
열은 매우 실망하게 되었다.
"최소한 3년은 있다가 가야하는데, 열심히 전도 다닐 필요가 없겠구나."
하나님께 서원하던 기도는 어디로 가버리고 단순히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열은 "나도 목사님이 되어야 되겠다."라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열에게는 목사님이 되는 길은 너무나 멀다고 생각되었다.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고등학교 졸업검정고시를 합격해야만 한다.
머리가 총명한 것도 아니다.
특히 수학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수학 한 문제를 가지고 한 시간이나 씨름 한 적도 있었다.
정직하게 시험을 치루고 정직한 졸업자격을 얻어야만 된다고 믿었다.
결국 열이 교회 이 창래 집사가 이사로 있는 황전중학교를 찾아갔다.
교장을 만나 "저는 삽재팔동교회 전도사입니다. 저를 중학교 학생으로 받아 주십시요."
멋 장이 양복을 차려입은 키 크고 콧날 오뚝하며 피부가 하얀 미남자인 열 이의 이 말을 들은 교장은 난처하였다.
"저희 학교에는 전도사님이 시무하시고 있는 삽 재 교회 이 창래 집사님이 이사로 있습니다. 삽 재 팔동 교회 전도사님이 저희 중학교 학생으로 다니신다는데 좀 곤란합니다. 선생님들도 불편하고 차라리 검정고시를 치루시면 합니다."
이 소문은 전 지역으로 퍼졌다.
열이 여동생과 매제 이 종균집사는 열 이의 이러한 행동으로 창피함을 느꼈다.
이종근 집사의 사촌 동생 중 한 사람은 공주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순천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순천에서 주일마다 그의 아내와 함께 열 이가 전도사로 있는 삽 재교회로 주일마다 출석하고 열 이로부터 집사로 임명 받고 충성하는 중이였다.
시인공도식
첫댓글 잘보고감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히 잘 읽엇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