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삶을 뒤흔든 몰입 체험(1)
서울공대지 2019 Winter No.115

황농문 재료공학부 교수
지난 4회에 걸쳐 몰입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마지막으로 그러면 저자가 몰입을 통하여 어떠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는지,
몰입을 하려면 많은 희생이 따르는데 과연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지
몰입의 위력을 소개하며 몰입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내가 몰입하는 이유’,
‘몰입 상태로 들어가는 3일의 과정’,
‘몇 개월간의 고도의 몰입상태’,
‘몰입상태의 종교적 감정’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이야기 한 후,
저자가 몰입 상태에서 해결한 대표적인 문제들을 소개한다.
내가 몰입하는 이유
나는 과거 영겁의 세월 동안 이 세상에 없었고, 또 앞으로 다가올 영겁의 세월 동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지금 잠시 존재할 뿐이다. 우리 인생은 태어난 즉시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누구나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이 숙명적인 죽음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다가오는 죽음 앞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유할수록 내가 살아있는 시간이 유일한 기회이고, 이 삶의 기회를 잘 보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음을 깨닫는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살아있는 동안 가장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 아니라 죽음과 가장 반대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생동감 넘치고 삶의 희열로 꽉 찬, 그리고 작지만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살아있음이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몰입 상태로 들어가는 3일의 과정
난제에 도전하여 몰입에 들어가는 3일 동안의 감정 변화는 대단히 유사하다. 이 내용은 이전 원고에서도 간략히 언급했지만 이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날
1초도 쉬지 않고 오로지 주어진 문제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전혀 진전이 없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진전이 없으므로 잡념이 계속 들어온다. 아침에 일어나 시작한 생각과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생각이 똑같다. 내 삶에서 이처럼 지루하긴 처음이다. 극도로 지루하다. 남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데 나는 하루 종일 발버둥만 치다가 하루가 지나간다.
이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심리적인 불안이다. 자신감이 바닥을 긴다. 귀중한 시간을 쏟아 붙고 있지만 문제를 풀 자신이 전혀 없다. 평생을 노력해도 해결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우리 분야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있고 날고 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죽하면 그들도 수십 년 간 이 문제를 해결 못했겠는가? 그 사람들도 해결 못했는데 어떻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느냐? 내가 이 문제에 올인하면 결국 해결도 못하고 내 인생은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주눅이 들어서 더 이상 도전할 수가 없다.
이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한 사람들이 내가 사용한 방법이 참조나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후회라는 것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이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을 불태우는 삶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내 영향력 밖에 있을지 모르지만 내 삶을 불태우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에 올인해야 한다. “이 문제는 평생을 노력해도 해결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40% 정도 해결하고 내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내가 해결 못한 60%는 남들이 하면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1초도 쉬지 않고 내 삶을 불태울 것이다. 이것만큼은 틀림없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계속 도전할 수 있다.
둘째 날
첫째 날보다는 몰입도가 올라가서 잡념이 덜 들어온다. 그리고 생각이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다 졸리면 앉은 채 머리를 뒤에 기대고 선잠을 잔다. 선잠은 불연속적으로 몰입도를 올린다. 역시 발버둥만 치다가 별다른 진전 없이 둘째 날이 지나간다.
셋째 날
빠르면 오전 늦으면 오후에 어김없이 의식이 온통 그 문제로 꽉 찬 고도의 몰입상태에 도달한다. 이제 힘든 시간은 끝났다. 이때부터는 틀림없이 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불과 이틀 전에는 자신감이 바닥을 기었는데 틀림없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몰입도가 낮아 자신감이 없을 때는 엉덩이는 뒤로 빼고 머리만 내밀고 문제에 도전하는 흉내를 내었다면 몰입도가 올라가 이 중요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몸을 완전히 던지게 된다. 그리고 내 안에 잠들고 있던 숨겨진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내가 이 생각을 어떻게 했지?’라고 느껴지는 기적과 같은 아이디어가 높은 빈도로 얻어진다. 1초도 쉬지 않고 생각하기가 한결 쉬워지고 조금만 노력해도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마치 저절로 생각이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 흥분되고 재미있다. 이때부터 그 문제를 생각하다 잠이 들고 그 문제와 함께 깨어나는 숙면일여 熟眠一如 상태가 시작된다. 새벽에 그 문제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일어나면 가족들은 자고 있고 세상은 고요하다. 이 넓은 우주에 이 문제와 이것을 생각하는 나만이 존재한다.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온 몸이 전율을 한다.
몇 개월간의 고도의 몰입상태
이런 고도의 몰입 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해당 분야에서의 난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련된 기적과 같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새로운 깨달음이 많아져 이 문제에 도전하는 다른 연구자들보다 내가 제일 앞서가고 있음을 안다. 문제가 당장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문제는 결국 내가 풀 것이다!”라는 확신이 생긴다. 그러나 난제가 해결되기 까지는 이러한 상태에서 수개월이 지나야 한다.
몇 개월간 이 문제만을 생각하면 일상의 기억은 몇 개월 전의 기억이 되어 가물가물하다. 그러면서 일상에 대한 관심도 없어지고 온통 이 생각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내가 세상을 사는 이유가 된다. 내일 죽어도 무서울 것이 없지만 딱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주어진 문제에 대한 호기심과 가치가 극대화된다. 삶이 아주 단순해지는데 이 문제를 생각하는 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 이 문제를 생각하지 못할 때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이 상태는 이 우주에 그 문제와 나만 존재한다고 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집중에다 내가 세상을 사는 이유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열정이 합쳐진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면서 몇 주일, 몇 개월 심지어 몇 년을 보내면 해결 못할 문제가 없다. 이런 상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잠재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경험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만약 이런 상태를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몰입 상태에서의 종교적 감정
나는 종교가 없지만 몰입상태에서는 종교적 감정이 느껴진다. 하도 종교적 감정이 느껴져서 주위 사람들에게 종교가 이런 원리로 생긴 것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수행하는 연구가 신성하게 느껴진다. 마치 내가 아이를 잉태한 것 같다. 상대적으로 나는 비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죽으나 하루살이가 죽으나 이 세상은 변함이 없지만 이 연구결과만큼은 세상에 알려야 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수행하는 연구가 내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소명의식이 생긴다. 일단 소명의식이 생기면 그 연구를 하는 행위 자체가 행복감을 준다. 그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몰입상태의 뇌에서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에 이러한 감정의 변화가 생기는 걸까?”라고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 방영된 <SBS 스페셜> ‘몰입, 최고의 나를 만나다’의 제작팀에서 가천의과대학의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라는 뇌영상 장비로 몰입상태에서 뇌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촬영을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나 자신이 궁금했기 때문에 이에 응했다. 다음은 그 당시 촬영한 PET 뇌영상이다.


(a) (b)
그림 1. 평상시와 몰입상태에서의 차이를 보여주는 PET 뇌영상 촬영 결과
(a) 전두엽의 활성화 (b) 두정엽의 비활성화
촬영은 몰입을 하지 않은 평상시의 뇌와 몰입도를 올린 상태의 뇌를 각각 촬영한 후 뇌의 어느 부위가 달라지는지 관찰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림 1(a)은 PET 결과로 평상시보다 몰입상태에서 전두엽의 오른쪽이 더 활성화됨을 보여준다. 반면 그림 1(b)는 평상시보다 몰입상태에서 두정엽은 오히려 더 비활성화됨을 보여준다. <SBS 스페셜>에서는 전두엽이 활성화된 상태를 프로게이머나 무속인이 몰입을 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소개했다. 나의 뇌영상 결과를 보고 가천의과대학교 뇌과학연구소의 조장희 교수는, 생각과 학습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곧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 가천의과대학 연구원들이 뇌촬영 결과와 함께 보내온 해설에 의하면 전두엽 오른쪽이 활성화되고 두정엽이 비화성화되는 것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앤드루 뉴버그 교수가 성직자들이 종교적 상태에 있을 때 촬영한 뇌 영상 결과와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앤드루 뉴버그가 2001년 4월 펴낸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에 설명되어 있다. 그는 뇌영상 기술을 사용해 명상에 빠진 티베트 불교 신자와 기도에 몰두하는 가톨릭의 프란치스코회 수녀가 아주 강렬한 종교적 체험의 순간에 도달할 때의 뇌 상태를 촬영했다. 그 결과 명상이나 기도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머리 꼭대기 아래에 자리한 두정엽 일부에서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전두엽 오른쪽에서 활동이 증가되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앤드루 뉴버그는 종교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람의 뇌는 영성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도 종교는 영원할 것이고, 신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미루어볼 때 몰입상태에서 경험하는 종교적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몰입상태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종교인들이 종교활동을 통하여 경험하는 행복감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인슈타인이 ‘종교적 상태에서의 창조성’에 대한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하여 『아인슈타인 혹은 그 광기에 대한 묵상』에 소개된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다.
나는 뛰어난 과학적 견해는 모두 깊은 종교적 감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 ‘무한한 종교적’ 감정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기란 매우 어렵다. (중략) 내 견해로는, 이 감정을 일깨우고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 이 감정이 유지되게 하는 것이 학문과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몰입적인 탐구 활동을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현한 아인슈타인은 몰입 상태에서의 영적 체험을 통해 미래의 종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래의 종교는 개인적인 신을 초월하고 독단적인 신조나 교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자연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을 커버하면서 그것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종교적인 느낌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