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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레길 초입에서 만나는 다카치호신사. 수백 년 수령의 울창한 삼나무들이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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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현 북쪽의 소도시인 다카치호는 신화와 전설의 고장으로 불립니다. 일본의 건국신화를 간직한,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다카치호신사(高千穗神社)와 태양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 여신이 숨었다고 전해지는 아마노이와토(天岩戸) 동굴이 다카치호에 있습니다. 그리고 숨어버린 태양신을 어떻게 하면 다시 나오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신들이 모여 의논했다는 아마노야수가와라(天安河原) 동굴이 아마노이와토 신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죠. 이러한 역사와 전통의 명소들을 두루 품고 다카치호 올레 코스가 이어집니다.”
일행을 태우고 다카치호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미야자키와 다카치호 그리고 그곳에 생긴 올레 코스에 대해 가이드 혼조(本城)씨가 군더더기 없는 설명을 한다. 사실 이번에 새로 개장한 네 곳의 올레 코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큰 곳이 다카치호다. 지난해 늦가을, 규슈의 산 11개를 오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잠시 보았던 다카치호협곡의 감동이 지금까지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눈부신 관광명소를 올레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품었을까,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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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카치호 올레의 농촌 풍경. 우리네 시골과 흡사하다.
- 산촌의 고즈넉함과 관광명소의 절경 조화로워
- 다카치호마을 한복판의 다카치호 올레 안내소를 겸한 마치나카(まちなか)관광안내소에서 길은 시작된다. 두어 곳의 횡단보도를 지나 개구쟁이들이 뛰어놀 것 같은 아기자기한 골목을 통과한 길은 이내 가늠키 힘든 긴 역사를 켜켜이 간직한 다카치호신사로 들어선다. 거대한 삼나무 숲 속 신사의 마당 한켠을 긴 생머리를 정갈하게 묶은, 분홍빛 하오리에 빨간 치마 차림의 신녀가 정성들여 비질하고 있다. 그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한참을 쳐다본다.
신사 뒤편 삼나무 숲 사이로 콘크리트 계단이 협곡까지 이어진다. 꽤 가파르고 또 길다. 그러나 그보다는 예쁘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빼곡한 숲 사이로 부서지며 들이치는 햇살을 타고 새소리가 청아하다. 곧 숨 막히는 절경을 펼쳐놓은 다카치호협곡으로 내려선다. “우와-!”, “이야- 대박!” 주상절리를 이룬 협곡을 마주하자 모두들 비명을 지른다. 환상적인 ‘마나이폭포’가 옆구리에서 쏟아져 내리는 협곡 중심부의 물빛은 깊이를 가늠키 어려울 만큼 검푸르다. 그 위로 조각배가 떠다니는 모습은 관광엽서에서 본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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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카치호협곡의 상징과 같은 마나이폭포. 일본 100대 폭포에 선정될 만큼 아름답다.
- 협곡을 벗어나자 완만하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고원지대까지 오른다. 다카치호 타로의 무덤을 지나며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은 곧 왕죽으로 뒤덮이며 약간의 오르내림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다카치호캠프장을 만나 숨을 고른다. 훌륭한 시설을 갖춘 이곳 캠프장에서의 조망이 아름답다. 톱날 같이 거친 능선으로 이어진 산들이 다카치호를 감싸고 있다. 왼쪽 멀리 눈 덮인 곳이 오이타현(大分県)과 경계를 이룬 소보산(祖母山)이란다. 소보산 서북쪽에 다카치호협곡을 생성시킨 아소산(阿蘇山)이 있다.
마루오노 녹차밭의 정 깊은 사람들
캠프장을 지나면서 얼마간은 차 한 대가 다닐 만한 구불구불한 포장도를 따른다. 올레길임을 알리는 빨강, 파랑의 리본과 화살표가 자주 나타나 길 잃을 염려가 없다. 주변 풍광은 조각보를 닮은 논배미 사이로 드문드문 작은 집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산촌의 정취로 가득해 콧노래가 절로 터져 나온다. 대문이 없는 외딴 집 울을 따라 홍매화가 만발했다. 한국은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2월 말, 이곳 다카치호는 대나무와 사철 푸른 활엽수가 많아 산 빛이 푸르고, 길 옆 언덕이나 밭에도 이끼와 풀이 초록빛을 띠고 있어 규슈가 따뜻한 남쪽 나라임을 실감케 한다. 산허리를 따라 난 길은 따뜻한 봄 햇살로 가득해 걸음이 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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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프장 지나 이어지는 구불길. 포장은 되었어도 걷기 좋은 산촌길이다.
- 초승달 모양의 다랑논이 멋진 산촌을 벗어나 대숲 사이의 수로를 따라 이어지던 길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뒤섞인 울창한 숲 사이에서 무코야마신사(向山神社)를 만난다. 들머리에서 신사까지는 왕복 1km인데, 이 코스는 옵션으로 만들었단다. 토리이를 지나자 삼나무가 뒤섞인 울창한 숲길은 세 번의 계단을 오르는데, 석등과 인왕상이 호위하듯 서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신사를 돌아 내려서면 드넓은 골짜기에 형성된 마루오노 녹차밭을 만난다. 보성이나 하동의 녹차밭과 닮아 있다. 올레길은 첫 번째로 만난 녹차밭집 마당을 지난다. 그런데 앞선 일행이 모두 이 집 마당에 다 모였다. 왜 그러나 했더니 먼 한국에서 찾아온 올레꾼들을 위해 온갖 먹을거리를 장만해 내놓았기 때문. 처음 보는 음식들인데 녹차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모두 기가 막히다. 이 집에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늦장가를 간 아들 내외와 다섯 살 난 개구쟁이 손자와 함께 녹차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넓은 골짝 사면 양쪽으로 가득 펼쳐진 녹차밭 사이의 마루오노마을을 지나 이제는 폐교된 무코야마키타(向山北) 초등학교 앞으로 올레길은 이어진다. 이 건물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올레꾼들을 위해 사용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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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카치호신사 본전. 울창한 삼나무 숲에 둘러싸였다. 2 다카치호신사의 부부삼나무. 소중한 사람과 손을 잡고 3번 돌면 오래도록 애정이 식지 않는다고. 3 무코야마신사를 만나기 전 얼마간은 수로를 따른다. 왼쪽으로 대숲이 울창해 걷는 기분 난다. 4 ‘다카치호 요카구라’의 한 장면. 힘이 센 신인 타지카라오의 춤이다
- 녹차마을을 빠져나와 100~200m 표고차를 보이는 계곡길을 오르내리며 등줄기에 땀이 맺힐 무렵, 다카치호협곡을 가로지른 오토노타니 다리를 건너 종착지점인 가마다세 시장에 이른다.
우리 주변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걷기 길이 있고, 그 길은 저마다 아름다운 풍광 몇 군데쯤은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길이란 게 대개 그렇지만 길을 걸으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고,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담기는 내용도 판이하다. 남들보다 좀더 빨리, 좀더 멀리, 좀더 높이 이르기 위해 펼쳐지는 무한경쟁의 팍팍한 시대를 사느라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다카치호 올레는 진정한 힐링이 되려 한다. 이 놀랍도록 근사한 길에서 자연을 만나고, 힘을 얻고, 추억을 쌓고, 사랑을 나누고,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규슈(九州)올레 다카치호(高千穗) 코스 12.3km / 5~6시간 / 난이도 중간
다카치호안내소-(0.9km)-다카치호신사-(0.6km)-다카치호협곡·신바시(다리)-(0.5km)-마나이노폭포-(1.5km)-다카치호캠프장-(2.6km)-무코야마신사 입구(신사까지 왕복 1km / 선택코스)-(0.9km)-마루오노 녹차밭-(1.8km)-구 무코야마키타초등학교-(1.8km)-오토노타니 현수교-(1.7km)-가마다세 시장
볼거리
다카치호신사(高千穗神社)
2000년 전에 창건됐다고 전해지며 다카치호 지역의 88개 신사 중 총사인 만큼 규모와 위엄을 갖춘 곳이다. 본전과 더불어 철로 만들어진 고마이누(狛犬, こまいぬ-해당 신사나 사찰에 침입하는 사악한 기운을 막는 벽사의 역할을 하는 사자를 닮은 짐승의 상)는 일본 지정 중요문화재다. 입구의 토리이부터 늘어선 거대한 삼나무들이 인상적이며, 800년 수령의 지치부삼나무(秩父杉)도 볼 수 있다. 특히 ‘부부삼나무(夫婦杉)’라 불리는 두 그루의 거대한 삼나무 주변을 소중한 사람과 손을 잡고 3번 돌면 오래도록 애정이 식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신사의 본전 옆에 있는 카구라전(神樂殿)에서는 매일 밤 8시에 전통공연인 ‘다카치호 요카구라(夜神樂)’가 열린다. 1시간쯤 이어지며 요금은 5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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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루오노 녹차밭. 보성이나 하동의 녹차밭을 닮았다.
- 다카치호 협곡(高千穗峽)
다카치호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80~10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이 7km쯤 이어진다. 9만 년 전과 12만 년 전 아소산 대분화 때 흘러나온 화쇄류가 긴 세월에 걸쳐 침식되어 깊은 계곡에 아름다운 주상절리 단층을 만들었다. 협곡의 하이라이트인 ‘마나이 폭포’는 일본의 폭포 100선에도 뽑힐 만큼 아름다우며, 무동력 보트를 타고 주상절리 단층 사이의 깊은 협곡을 오가며 폭포수를 직접 맞아볼 수도 있다. 3명 정원의 보트 1척을 20분간 빌리는 비용은 1,000엔.
마루오노(丸小野) 녹차밭
다카치호의 대표적인 녹차 생산지다. 11ha쯤 되며, 일본에서는 흔치 않은 방식인 가마솥에서 녹차를 덖는 형태로 생산되어 이곳의 녹차는 예부터 일본에서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현재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일손이 부족해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숙식(지역번호 0982) 다카치호에는 일본 전통 료칸(旅館)과 호텔이 많다. 이마쿠니 료칸(今國旅館·72-2175)-1박2식 1만500~2만1000엔. 민예료칸 카미노야(民芸旅館かみの家·72-2111)-1박2식 1만2,600엔부터. 호텔 다카치호(ホテル高千穗·72-3255)-1박2식 1만1,050~1만5,795엔. 카나야 비즈니스호텔(かなやビジネスホテル·72-3881)-식사 없이 숙박만 4,200엔.
다카치호는 숙소에 온천이 없고 다카치호마을에서 운영하는 온천시설 두 곳이 있다. 다카치호 온천(72-7777)-입욕료 500엔. 매주 목요일 휴관. 아마노이와토 온천(74-8288)-입욕료 300엔. 매주 수요일 휴관.
이 지역에선 가마솥에 직접 덖어서 생산하는 녹차와 쌀을 원료로 만든 소주, 일본 농림수산부에서 인정한 A4 이상의 품격을 받은 흑우(黑牛)가 유명하다.
딩동(ディンドン·72-2665)-트위스터 280엔. 소바도코 텐앙(そば処 天庵·72-3023)-소바세트 1,200엔. 마라손테이(まらそん亭·72-4590)-고기우동 520엔.
아라라기노차야(あららざ乃茶屋·72-2201)-닭요리 1,050엔. 쿠츠로기도코 코니와(くつろぎ処 神庭·72-2257)-런치세트 1,000엔. 다카치호규 레스토랑
나고미(高千穗牛レストラン和·73-1109)-다카치호 흑우 스테이크 런치 1,800엔부터.
교통 구마모토 공항에서는 특급버스가 다카치호 버스센터까지 다닌다. 후쿠오카공항이나 하카다항을 이용한다면 하카다 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다음 예약제로 운영하는 고속버스로 다카치호 버스센터까지 가거나 하카다역 치쿠시구치(筑紫口) 요카로 버스정류장에서 요카로버스를 타고 다카치호 올레 종점인 가마다세 시장에서 내리면 된다.
요카로버스(YOKAROバス)는 연간 4,000엔을 내고 회원이 되면 일 년 동안 무제한 탑승할 수 있는데, 규슈올레의 오쿠분고 코스와 히라도 코스, 다카치호 코스로 갈 수 있다. 사전 인터넷예약은 필수(http://yokaro.info). JR하카다역에서 신칸센을 이용해 구마모토까지 간 후 특급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일본 속 유럽의 정취 물씬한 올레
나가사키현(長崎県) 히라도(平戸) 코스 총 13km / 4~5시간 / 난이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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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히라도 코스의 가와치도우게 캠프장. 다도해를 바라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다. 2 ‘쇼쥬지(正宗寺)’를 지나는 올레꾼. 뒤로 ‘히라도자비에루기념교회’의 종탑이 희미하다.
- 일찍이 1500년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 상업적인 교역을 시작한 곳인 히라도는 ‘서쪽의 도읍’이라 불릴 만큼 풍요롭던 영화를 간직한 곳이다.
고풍스러운 히라도성이 내려다보는 히라도항 교류광장에서 출발하는 히라도 올레는 마을 뒤편 언덕을 올라 사이카이국립공원의 깊은 숲을 지나 억새로 뒤덮인 30ha의 광대한 초원을 만난다. 제주의 오름을 빼다 박은 봉긋한 언덕인 가와치도우게(川內峠)에 서면 다도해를 이룬,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광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 코스의 말미에 만나는 오래된 성당인 ‘히라도자비에루기념교회’와 ‘쇼쥬지(正宗寺)’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높이를 달리하며 어우러진 풍경은 이 코스의 상징과 같다.
구 네덜란드상관을 지나면 예쁜 기념품을 판매하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몰린 사키가타 상점가가 나오고, 곧 코스종점인 히라도온천의 족탕을 만난다. 유럽의 작은 항구도시 같은 이국적인 정취와 일본스러움이 조화를 이룬 풍경을 보여 주는 올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