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 관련기사
"헌법재판소 새 얼굴"…김연아, 헌법재판소 홍보대사 위촉 (TV리포트)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561652
News!!!
Yuna is appointed as an ambassador of 3rd Congress of the World Conference on Constitutional Justice (WCCJ) hosted by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in Seoul starting from Sep. 28 to Oct.1
즐거운 추석, 모든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계신가요? 함께하지 못한 가족에게 안부전화라도 걸어보세요. 가족들과 함께 추석을 보내는 모습은 사진에 담아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평등 추석’ 사진 공모전> 에 참여하세요.
Watch: Congress is back in session this week, so OFA decided to give Speaker Boehner a pep talk.
영정(충남 아산 현충사)
제승당 영정(경남 통영시 한산도)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
명량해전도
1592년 거북선 모형 -제작 라병화
1592년 거북선 모형 -제작 라병화
1592년 거북선 모형 -제작 라병화
각선도본의 병선-판옥선
목포해양박물관 판옥선
천자일호좌선 3D 복원도 - 제작 라병화
천자일호좌선 3D 복원도 - 제작 라병화
난중일기
(亂中日記)
임진년 1월 (1592년 1월)
1월 1일 [양력 2월 13일]<임술>
맑다.
새벽에 아우 여필(禹臣)과 조카 봉, 아들 회가 와서 이야기했다. 다만
어머니를 떠나 남쪽에서 두번이나 설을 쇠니 간절한 회포를 이길
길이 없다. 병사의 군관 이경신이 와서 병사의 편지와 설 선물과
장전과 편전 등 여러가지 물건을 바쳤다.
1월2일[계해/2월14일]
맑다.
나라의 제사날(명종 인순왕후 심씨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김인보와 함께 이야기했다.
1월3일[갑자/2월15일]
맑다.
동헌(여수시 군자동 진남관 뒷편)에 나가 별방군을 점검하고,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을 써 보냈다.
1월4일[을축/2월16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월5일[병인/2월17일]
맑다.
뒷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월6일[정묘/2월18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월7일[무진/2월19일]
아침에는 맑다가 늦게부터 비와 눈이 번갈아 종일 내렸다.
조카 봉이 아산으로 갔다. 남원에서 전문을 받들고 갈 유생이
들어왔다.
1월8일[기사/2월20일]
맑다.
객사(여수시 군자동)에 나갔다가 동헌(군자동 진남관 뒷편)에서 공무를
봤다.
1월9일[경오/2월21일]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동헌에 나가 전문을 봉하여 올려보냈다.
1월10일[신미/2월22일]
종일 비오다.
방답(여천군 돌산읍 군내리)에 새 첨사로 이순신(李純信)이 부임하여
들어왔다.
1월11일[임신/2월23일]
가랑비 종일 오다.
늦게야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이봉수가 선생원(여천군 율촌면 신산리/성생원)에 돌 뜨는 곳에 가
보고 와서 보고하기를, "이미 큰 돌 열 일곱 덩이에 구멍을 뚫었다"고
했다.
서문 밖 해자가 네 발쯤 무너졌다. 심사립과 이야기했다.
1월12일[계유/2월24일]
궂은비가 개이지 않다.
식사한 뒤에 객사와 동헌으로 나갔다.
본영 및 각 포구의 진무들에게 우등을 가리는 활쏘기를 시합했다.
1월13일[갑술/2월25일]
아침에 흐리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월14일[을해/2월26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1월15일[병자/2월27일]
흐렸으나 비는 아니오다.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1월16일[정축/2월28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각 고을의 벼슬아치와 색리 등이 인사하러 왔다.
방답의 병선을 맡은 군관들과 색리들이 그들 병선을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곤장을 쳤다.
우후ㆍ가수(假守 : 임시직원)도 역시 점검하지 않아서 이 지경에까지
된 것이니 해괴하기 짝이 없다.
공무를 어줍잖게 여기고, 제 몸만 살찌러 들며 이와 같이 돌보지
않으니, 앞날의 일을 알만 하다.
성밑에 사는 박몽세는 석수인데, 선생원 돌뜨는 곳에 가서 해를
끼치고, 이웃집 개에까지 피해를 입혔으므로 곤장 여든 대를 쳤다.
1월17일[무인/2월29일]
맑다.
춥기가 한겨울같다.
아침에 순찰사와 남원의 반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녁에 쇠사슬을 박을 구멍낸 돌을 실어오는 일로 배 네 척을
선생원으로 보냈다.
김효성이 거느리고 갔다.
1월18일[기묘/3월1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여도(고흥군 점암면 여호리)의 제1호선이 돌아갔다.
우등계문과 대가단자를 순찰사영으로 봉하여 보냈다.
1월19일[경진/3월2일]
맑다.
동헌에서 공무를 본 뒤에 각 군사를 점검했다.
1월20일[신사/3월3일]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다.
동헌에 나가 좌기로 공무를 봤다.
1월21일[임오/3월4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감목관(목장의 감독관)이 와서 잤다.
1월22일[계미/3월5일]
맑다.
아침에 광양현감(어영담)이 와서 인사 했다.
1월23일[갑신/3월6일]
맑다.
둘째 형 요신의 제사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사복시에서 받아와 기르던 말을 올려 보냈다.
1월24일[을유/3월7일]
맑다.
맏형 희신의 제사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순찰사의 답장을 보니, 고부군수 이숭고를 유임시켜 달라는 장계를
올린 것 때문에 물의를 일으켜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1월26일[정해/3월9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나니 흥양현감(배홍립)과 순천부사(권준)가
와서 이야기 했다.
1월27일[무자/3월10일]
맑다.
오후에 광양현감이 왔다.
1월28일[기축/3월11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월29일[경인/3월12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1월30일[신묘/3월13일]
흐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초여름과도 같이 따뜻하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임진년 2월 (1592년 2월)
2월 초1일 [양력 3월 14일]<임진>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가랑비가 잠간 뿌리다가 늦게야 개었다.
선창(여수시 연등동 입구)으로 나가 쓸만한 널빤지를 고르는데,
때마침 방천안에 몽어 떼가 밀려 들어왔기로, 그물을 쳐서 이천
마리를 잡았다.
참으로 장쾌했다. 그 길로 전선 위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우후
이몽구(李夢龜)와 함께 새 봄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2월 초2일 [양력 3월 15일]<계사>
맑다. 동헌에서 공무를 봤다. 쇠사슬을 건너 매는 데 필요한 크고
작은 돌 여든 여 개를 실어 왔다. 활 열순을 쏘았다.
2월 초3일 [양력 3월 16일]<갑오>
맑다. 새벽에 우후가 각 포구의 부정사실을 조사하는 일로 배타고
나갔다. 공무를 마친 뒤 활을 쏘았다. 탐라 사람이 자녀 여섯 식구를
거느리고 도망쳐나와 금오도(여천군 남면)에 머물다가 방답 경비선에
잡혔다고 심부름꾼을 보냈기로 문초를 하고서 승평(순천)으로
압송하고 공문을 써 보냈다. 저녁에 화대석 네 개를 실어 올렸다.
2월 초4일 [양력 3월 17일]<을미>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북쪽 봉우리의 연대(신호대)쌓는
곳에 오르니, 쌓은 곳이 매우 좋아 무너질 염려가 없으매
이봉수(李鳳壽)의 애썼음을 알겠다. 종일 구경하다가 저녁에야 내려와
해자 구덩이를 순시했다.
2월 초5일 [양력 3월 18일]<병신>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열여덟 순을 쏘았다.
2월 초6일 [양력 3월 19일]<정유>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찰사에게서
편지가 두 번이나 왔다.
2월 초7일 [양력 3월 20일]<무술>
맑다가 바람이 세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발포만호가
부임했다는 공문이 왔다.
2월 초8일 [양력 3월 21일]<기해>
맑다가 또 바람이 세게 불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이 날
거북함에 쓸 돛베 스무아홉 필을 받았다. 정오에 활을 쏘는데,
조이립(趙而立)과 변존서(卞存緖)가 자웅을 다투다가 조이립이 이기지
못했다. 우후가 방답에서 돌아와 방답첨사가 방비에 온 정성을
다하더라고 매우 칭찬했다. 동헌 뜰에 돌기둥 화대를 세웠다.
2월 초9일 [양력 3월 22일]<경자>
맑다. 새벽에 쇠사슬을 꿸 긴 나무를 베는 일로 이원룡 (李元龍)에게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두산도(돌산도)로 보냈다.
2월 초10일 [양력 3월 23일]<신축>
안개비, 개었다가 흐렸다가 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김인문(金仁問)이 순찰사영에서 돌아왔다. 순찰사의 편지를 보니,
통역관들이 뇌물을 많이 받고 중원(명나라)에 무고하여 군사를
청하기까지 했을 뿐 아니라 중원에서 우리 나라와 일본 사이에 무슨
딴 뜻이 있는가 의심하게까지 했으니, 그 흉칙함을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통역관들이 이미 잡혔다고는 하지만, 해괴하고 분통함을 참을
수 없다.
2월 11일 [양력 3월 24일]<임인>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배 위에서 새로 뽑은 군사들을 점검했다.
2월 12일 [양력 3월 25일]<계묘>
맑고 바람도 자다. 식사를 한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서 해운대
(여수시 동북쪽에 있는 작은 섬)로 자리를 옮겨 활을 쏘았다.
침렵치(沈獵雉)라는 운자(韻字)를 띄워 봤더니 너무 조용했다. 나중에
군관들도 모두 일어나 춤을 추고 조이립(趙而立)이 시를 읊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2월 13일 [양력 3월 26일]<갑진>
맑다.
전라우수사(李億祺)의 군관이 왔기로 화살대 큰 것 ·중치 백 개와 쇠
쉰근을 보냈다.
2월 14일 [양력 3월 27일]<을사>
맑다. 아산 어머니께 문안차 나장(고을이나 병마사·수사의 영문에
있는 使令) 두 명을 내어 보냈다.
2월 15일 [양력 3월 28일]<병오>
비바람이 매우 세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새로 쌓은 해자 구덩이가 많이 무너져
석수(石手)들에게 벌을 주고 다시 쌓게 했다.
2월 16일 [양력 3월 29일]<정미>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여섯 순을 쏘았다. 신구번의 군사를
점검했다.
2월 17일 [양력 3월 30일]<무신>
맑다.
나라제삿날(世宗의 祭祀)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이하 첨부파일 참조
난중일기.pdf (2977kB)
|
첫댓글 성웅 이순신 장군님의 난중일기 잘 보고 갑네다. 현충사와 제승당 영정및 명량해전도와 거북선 판옥선 등등 모두 잘 보았습니다.. 누구든 조선수군의 앞날을 가로막는자 하늘이라도 용서치 않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