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라면 야누시 코르차크처럼...
요즘 교사로 살아남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면서 틀린 말이기도 하다.
각종 고소와 고발의 위험에 처해 있는 학교 현장을 바라보면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힘든 것이 맞다.
교사라는 안전한 직업이 위협받기 때문일 게다. 편안하고 대우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른 진로를 찾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교차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점점 눈높이가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교사를 압박해 오는 외적 환경에 태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점점 갈수록 교사 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직업으로 불리는 교사보다는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 종사하는 교육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교사들에게는 고된 외적 환경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야누시 코르차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교육자라면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교육자는 공감과 대화로 아이와 사귀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교육자는 관찰과 기록으로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교육자는 동행과 존중으로 아이에게 호의적으로 남는 사람이어야 한다.
야누시 코르차크는 말 뿐인 교육자가 아니라 삶으로 실천해 낸 교육자이기에 그가 강조하는 교육적 신념이 주는 강도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서도 잘 기록되어 있듯이 야누시 코르차크는 잘 나가는 의사라는 직업 대신에 고아원 원장이라는 교육자의 길을 선택한다. 유대인을 가둬놓는 게토에서 200여 명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심지어 마지막 가스실로 직행하는 기차에 함께 탑승한다. 결국 그는 아이들과 함께 죽음으로 자신의 소임을 마무리한다. 그가 죽기 전까지 남긴 기록들을 통해 교육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으며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교사는 교육자가 되어야 하고, 교육자라면 야누스 코르차크처럼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난 지 25년이 되었다. 초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앞으로 남은 10년을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교육자로서의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 삼아야 할 모델로 야누스 코르차크가 다가왔다. 더 편안 것을 추구하기보다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기 원하는 교사, 교감, 교장이 있다면 야누스 코르차크를 읽어보시라. 잠든 심장이 깨어날 것이고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달리 보일 것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오로지 아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 대신에 근무 조건을 보고 다른 외적, 물적 환경을 바라보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교사를 만족시킬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아이들만 바라보게 되면 작은 것에도 만족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