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직역하면 포식성 저널이라고 할 수 있는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은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연구를 쓰는 연구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물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상호간에 불신을 가져온다는 점에 있어서는 매우 심각한 이슈입니다.
약탈적 저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하면 이렇습니다. 본래 과학 논문 (사회, 인문학도 마찬가지)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발표되어야 하며 발표된 후에도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논문을 투고하면 동료 심사 (peer-review)과정을 거쳐 수정할 내용을 수정하거나 게재를 거부 (reject)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저널 편집자 (에디터) 들이 검토해 문제가 없으면 게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 받는 게재료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이나 기사는 원고료를 저자가 받을 수 있지만, 논문의 경우 저자가 게재료를 내는 것이 관행입니다. 대개의 저널이 판매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널을 볼 때도 구독료를 받습니다. 이 구독료가 비싸기 때문에 일부 저널은 누구나 논문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공개 옵션인 open access를 지원하거나 아예 오픈 어세스만 허용하는 저널도 있습니다. 대개 이 경우 게재료는 수천 달러 정도입니다.
약탈적 저널이 노리는 것은 이 게재료입니다. 아무 논문이나 적당히 받아준 다음 게재료를 받아 장사를 하는 것이죠. 그 결과 내용이 상당히 의심되거나 중복 가능성이 높은 논문이 발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체 과학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실 저도 이제 교신 저자로 발표한 논문이 좀 있기 때문에 이런 약탈적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라는 메일이 하루에 적어도 2-3개 이상 꾸준히 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학회나 컨퍼런스에 연자초청 (speaker invitation)을 받는 경우도 많은 데, 이 가운데서도 참가비 수천달러를 받는 상당히 의심스런 학회가 다수 존재합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가능하면 학회 공식 저널에 주로 논문을 투고하거나 혹은 이미 역사가 좀 있는 알려진 저널에만 논문을 투고하고 있는데, 물론 계속 탈락해서 더 이상 낼 저널이 없어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그 논문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논문은 여러 편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멀쩡한 저널인지 알고 투고를 했다가 약탈적 저널인 경우로 밝혀져 낭패를 겪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최근에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암관련 전문 저널인 Oncotarget이 최근 SCIE 리스트에서 탈락한 데 이어 Medline 등에서도 리스트가 삭제되어 여기에 논문을 투고한 선량한 연구자들이 피해를 볼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 저널은 처음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신간 저널로 2010년에 창간되었습니다. 격주간지로 2011년에는 121편, 2012년에는 114편, 2013년에는 198편의 논문이 게재되는 등 정상적인 경과를 보였으나 2014년에는 갑자기 편수가 979편으로 증가했고 2015년에는 3204편, 2016년에는 6625편으로 게재 논문이 이상할 정도로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논문을 제대로 심사했는지도 의문시되었고 자가 인용율도 매우 높아 결국 해당 저널은 SCIE 리스트와 메드라인 리스트에서 삭제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의협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국내 연구자도 500편에 가까운 논문을 투고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는 연구 분야가 달라서 관련이 없었지만, 피해를 본 연구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기사: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951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연구를 한 후 그 내용을 괜찮은 저널에 발표하고 싶은 건 모든 연구자들의 공통된 바램일 것입니다. 그래서 멀쩡해 보이는 저널에 SCIE 논문에 발표했는데, 나중에 이 저널 자체가 문제가 발견되어 SCIE 리스트에서 삭제되면 정상적인 연구 성과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논문 게재료 역시 돌려받을 수 없는 돈입니다.
세상일이 항상 그렇하듯이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지만, 어디에나 돈벌이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나쁜 일도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저널도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은근히 돈벌이가 되는지 최근에 약탈적 저널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메일을 꽤 받고 있는데, 사실 조용히 스팸 신고를 하면 되는 문제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잘 모르고 다른 데 게재를 거부당한 논문을 제출하는 경우도 생길 것 같습니다.
보이스 피싱 때문에 전화도 안심하고 못받는 시대가 된 것처럼 이제는 논문도 안심하고 투고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인데, 인간의 이기심에는 한계가 없는 만큼 이를 제도적으로 완전히 막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저널 리스트를 학회나 과학 커뮤니티에서 공유하고 연구자 각자가 조심하면 최대한 막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본주의가 낳은괴물이군요. 그리고 연구진도 외골수들이 많아서 자기분야 아니면 관심도 없으니 그렇게 개인과 개인간의 단절을 이용한
준사기내요. 뭐 질적으로 안되니 양적으로 밀어붙이는건 당연한 결과지만, 연구란 분야는 '99%의 노력보다 1%의 영감'이 더 중요하긴하죠.
근데 반대로 연구자체가 돈이 드는데, 실질적인 효용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금전적소모 또한 이런 자낳괴를 만든
원인으로 볼 수 있죠. 역시 중요한건 어느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중용'입니다.
볼륨 넘버가 천단위를 넘어가는 저널에만 개재하는 습관이...
저널시스템 자체가 거지같아요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