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5-11a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던 유대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에 영구 이주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제자들이 각 나라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몰려와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올 만큼 놀랐다.
이전 말씀에서는 한 곳에 모여있던 무리들에게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임하여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어지는 말씀은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 듣고 놀라는 내용이다.
5절은 당시 오순절 때 예루살렘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5절은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라고 했다. 살고 있었다는 말은 10절의 나그네로 머물고 있다는 말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완전히 정착해서 살고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이는 표현 자체는 일시적 방문자라는 의미 이상이라 하면서도 완전히 정착한 사람들은 아닌 것으로 보았다.
당시엔 흩어진 유대인들이 돌아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본문의 단어의 의미 그대로 영구 이주민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단어 자체의 의미가 영구 이주민이라는 뜻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의 마지막을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에서 보내고 싶어하던 사람들이다. 물론 오순절에 방문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누가가 정착민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을 억지로 일시적인 순례자들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자신들의 생각대로 해석하는 오류이다. 사도행전 6:9절에도 각처에서 귀국한 사람들로 구성된 리버디노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이 나온다.
세계 각국이란 “하늘 아래 모든 나라들” 이란 뜻이다. 오늘날 하늘 아래 모든 나라들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던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들을 뜻한다. 경건한 유대인들의 꿈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사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대부분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정착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예루살렘은 아무나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모든 나라들로부터 유대인들이 몰려온 오순절 사건은 교부들 시대부터 바벨탑 사건의 반대라고 흔히 설명해왔다. 특별히 바벨에서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한 것인데 반대로 오순절에는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셔서 각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셔 흩어진 세계 각국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모으시려는 것이다.
6절은 그렇게 당시 지중해 연안 모든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반응이다. 이렇게 각 나라의 말소리로 선포하는 소리가 크고 분명하게 들리자 많은 무리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몰려든 것이다. 그들은 제자들이 각기 자기네 말로 말하는 것을 듣고 어리둥절했다고 했다. 어리둥절하다는 말은 본래 함께 붓는다는 뜻이다. 본래 이 말은 여러가지 액체를 함께 부어 뒤섞이는듯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이들은 다락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놀란 것이 아니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설교는 성전 뜰에서 전해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9:22절에서는 다메섹의 유대인들이 당황하는 모습에 이 말을 썼다. 사도행전 19:32절에서는 에베소에서 군중들이 모여 소란한 모습에 이 말을 썼다. 사도행전 21:31절도 예루살렘이 요란해 진 모습에 이 말을 썼다. 이는 몇사람이 거리를 지나다가 다락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는 뜻이 아니라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웅성거리며 크게 소란해진 모습이다. 제자들이 성전에서 여러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고 각자가 혼란스러워하는 것이지만 또한 이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 매우 소란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들이 놀란 반응은 7절에 보면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라는 말에 있다. 원어는 말하였다가 중심말이 아니라 놀랐다 그리고 신기하게 여겼다가 중심되는 말이다. 먼저 놀랐다는 말은 본래 “바깥에 서 있다” 라는 뜻이다. 너무 놀라 정신이 잠시 그 몸에서 외출했다는 뜻이다. 놀랐다와 신기하게 여겼다는 말은 따로 따로 떨어진 말이다. 원어를 직역하면 이런 뜻이다. 먼저 너무 놀라 정신이 잠시 그 몸에서 외출했다. 그리고 나서 정신이 돌아온 뒤 “신기하게 여겼다” 라는 것이다.
신기하게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직면하면서 정신이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온 뒤에 경탄을 한다는 뜻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정신 줄을 놓았다가 다시 정신줄을 붙잡고 하나님의 계시라고 여겼는가? 그것은 바로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갈릴리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라고 말하면서 정신이 잠시 외출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경탄을 했다는 것이다.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북쪽 변두리 사람들로 대부분 못배우고 무식한 사람들로 무시 당하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말은 경멸적인 호칭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게도 놀란 것이다.
8절은 모두가 갈릴리 사람들인데도 이들은 모두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다는 것이다. 9절-11절은 지중해의 여러지방들의 이름이 나온다. 모여든 사람들이 각기 어디에서 왔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나라 이름들은 뚜렸한 원칙이 없는 것 같이 보이기에 성경 해석자들의 의견이 모두 다 엇갈린다. 성경에서 많은 내용들이 원칙이 없는 것처럼 나열되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고대인들만이 이해하던 논리가 있다.
먼저 9절 앞부분에 보면 가장 먼 동쪽인 파르티아인들부터 시작한다. 파르티아 사람들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들은 모두 유프라테스강 동쪽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따라서 바대사람 메대 사람 엘람사람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이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기원전 8-7세기에 앗시리아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던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멀리 옮겨진 사람들을 먼저 말한 것이다.
가장 먼 동쪽에서부터 말하기 시작해서 유대까지 동서로 놓여있는 모든 나라들을 말한 것이다. 다음에는 유대에서 북쪽으로 올라가서 갑바도기아로 간다. 이는 남쪽 유대에서 북쪽 끝까지 똑바로 올라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난 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동하던 경로이다. 해안선을 따라 이집트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북쪽으로 올라가든지 할 수 밖에 없었다. 갑바도기아는 그 길로 따라 가는 가장 북쪽 지역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 이후에 북쪽으로 피난을 갔던 피난길일 것이다.
그 다음에는 본도와 아시아이다. 본도는 오늘날 터키의 북동쪽 흑해 연안이고 아시아는 지중해 연안이다. 따라서 오늘날 터키 지역의 북동쪽 끝에서 시작해서 남동쪽 해안까지를 말한 것이다. 10절의 부르기아와 밤빌리아는 오늘날 터키의 북쪽 지방이고 밤빌리아는 남쪽 지방이다. 따라서 오늘날 터키 지방을 먼저 동에서 서로 훑어가며 말하고 또 북에서 남으로 훑어가며 말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점차 이동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오늘날 터키의 모든 지역에 흩어졌을 것이다.
10절 뒷부분에 있는 목록들은 애굽과 구레네 근처의 리비아의 한 부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아프리카들이다. 이집트는 지중해에 접한 아프리카의 동쪽이고 리비아는 지중해 연안의 아프리카 서쪽이다. 일부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처럼 난리를 피해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이집트로 갔을 것이다. 거기에서 다시 지중해 해변을 따라 리비아까지 갔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오직 로마만이 나왔다. 이들은 앞에서 말한 사람들처럼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아니고 일시적인 방문객들이다. 이들에게만 따로 방문객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앞에서 말한 모든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일시적인 방문객들이라면 로마에서 온 사람들만 방문객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 이들은 스스로 피난을 간 사람이 아니다. 기원전 61년 폼페이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잡아간 유대인들이다. 목록의 시작 부분에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이 나오고 이제 목록의 끝부분에서 가장 최근에 강제 이주된 로마가 나온 것은 분명 유대인들이 흩어진 순서대로 설명한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이들을 통해 로마교회가 세워졌다고 보고 있다. 로만 카톨릭에서는 베드로가 로마교회를 세웠다고 말하지만 베드로가 로마에 갔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 오늘 말씀에 나온 로마에서 온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기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로마에 돌아가서 로마교회를 세웠을 것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당시 약 4-6만정도의 유대인들이 로마에 거주했다고 되어있다. 그리스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도 그리스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기원전 8-7세기 앗시리아에게 전쟁에 패해서 대규모로 끌려간 나라들로부터 시작해서 기원전 61년 폼페이에게 끌려간 최근의 일까지 유대인들이 흩어진 순서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로마에서 온 사람들이 데오빌로와 같은 당시 로마제국의 고위층들인 로마시민이었을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사도행전에서 로마사람이라는 말은 주로 로마 시민을 가리키는 말로 썼기 때문이다.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목록의 첫 부분과 끝부분이 유대인들의 강제이주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로마에서 온 유대인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로마인이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의 다른 곳에서 쓰인 뜻보다 먼저 전후 문맥을 따라 해석하는 것이 옳다. 11절의 유대사람과 개종한 이방인들은 10절 끝에서 나온 로마에서온 임시 체류자들이라는 말을 자세히 설명하는 말이라고 보는 영어 번역들이 많다 (Leedy diagram, ESV, NASB). 로마에 끌려간 유대인들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짝은 11절 앞부분에 나오는 크레타 사람와 아라비아 사람들이다. 이 짝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 다 접근하기 힘든 지역이다. 크레타는 지중해 한 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유대지역에서 아주 먼 곳이다. 아라비아는 시리아와 유대 동쪽의 나바티아 왕국을 가리킨다. 거리가 먼 것은 아니지만 동쪽 사막지역을 통과해야 하기에 역시 쉽게 다니던 곳은 아니다. 이사야 42:10-11절에 나오는 섬들과 거기 사는 주민들은 크레타와 연결될 수 있다. 또 광야와 거기 사는 사람들과 게달 사람들은 아라비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이는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다 몰려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마지막 지상 명령을 말씀하실 때 땅끝가지 제자 삼으라고 하셨다. 그 일을 성령님께서 시작하신 것이다. 따라서 선교는 제자들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이다. 오늘날 선교도 사람들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의 영인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우리가 직접 가지 못한다면 함께 기도하며 후방에서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병참부대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모든 재정은 교회 유지를 위한 비용과 목회자들 사례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국내선교와 해외선교를 위해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