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1)
요한 복음 15장의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사랑과 인내에 대한 교훈이
주어지는 내용들은 요한 복음 13장에서부터 17장까지 전개되는 성주간
목요일 밤에 주어진 다락방 이별의 담화의 일부이다.
특히 요한 복음 15장 1~11절은 예수님 당신 자신이 육신적으로는 비록 제자들과
떨어지게 될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의 일치된 유기체이심을 보여 주는,
그 유명한 참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이다.
이것은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에도 예수님과 영적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는, 믿는 이들의 상태를 보여 주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참포도나무요'라고 하실 때, '참'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인 이스라엘과 참포도나무이신 당신 자신을
의도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해서이다.
팔레스티나의 특산물이며 매우 흔한 식물이기도 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구약시대 때부터 이스라엘은 주님의 포도나무, 혹은 주님의 포도밭으로
비유되어 있다.
그들은 주님의 포도밭(이사5,1~7)이었고, 주님께서 심으신 좋은 포도나무였으며
(예레2,21),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였다(호세10,1).
하느님께서 이 포도나무를 이집트에서 가져다가 팔레스티나에 심으셨다는 시편
저자의 노래(시편80,9)에서 볼 수 있듯이,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이었다.
마카베오 시대의 화폐에 이스라엘이 포도나무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과 포도나무를 일치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당신 자신이 '참포도나무', '참된 포도나무'라고 주장하심
으로써, 동시에 가짜, 혹은 불완전한 포도나무와의 구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참'으로 번역된 '알레티네'(alethine; true)의 원형 '알레티노스'(alethinos)는
가짜 혹은 불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프슈데스'(pseudes; pseudo)의 반대로서
'진짜', '순수한', '이상적인'등을 뜻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 내포된 당시 이스라엘의 실상은 무엇인가?
그들은 가짜, 혹은 최소한 불완전한 포도나무라는 것이다.
성경은 주님의 포도밭으로 지칭되는 이스라엘이 열매가 없는, 형편없는
포도나무, 들포도 나무라고 말한다(이사5,2).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주님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 불완전한
포도나무였던 것이다.
구약에서는 포도나무의 상징이 언제나 타락의 개념과 함께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하고 있는 주님의 포도밭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은
포도밭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사16,10).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야생의 낯선 들포도나무로 퇴화되었다고
탄식한다(예레2,21).
호세아 예언자도 헛된 포도나무라고 외쳤다(호세10,1).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칭하신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 없는 포도나무라는
사실이다.
유대인,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마태3,7~10참조).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도 민족, 혹은 혈통, 가문으로 만나시지 않는다.
오로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서 개별적으로 만나시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로마2,28.29).
하느님의 약속을 상속으로 계승하게 될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영적 이스라엘뿐이다(갈라3,7.9).
따라서 모든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머무를 때에만, 희망있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열매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만 맺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심오한 진리를 선포하시기 위해, 먼저 당신만이 유일한
참포도나무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밝히신 후에, 성부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밝히신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을 지칭하신 '나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호 파테르 무'(ho pater mou; my Father)라는 호칭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님만이 사용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독생성자 예수님만이 성부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나의 아버지'라는 호칭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성자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농부'로 비유되고 계신다.
'농부'에 해당하는 '게오르고스'(georgos; gardener; husbandman)의
기본적인 의미는 '땅을 경작하는 사람'으로서, 신약성경에서는 '농부'
(2티모2,6), '포도밭 주인'(포도밭지기)(마태21,33~35) 등을 가리켜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관리인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도 하느님께서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일치한 가지인 참된 믿는
이들을 더 나은 축복으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을 세밀히 관리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한편, 당신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비유하시고, 성부 하느님을 농부로
비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곳 팔레스티나의 주요 농작물 가운데
하나인 포도 재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동시에 이 가르침이 주어졌던 당시의 장소가 성체성사가 이루어진
마르코의 다락방이었다고 할 경우에, 제자들 앞에 '아직 남아 있는
과월절 만찬용 포도주'를 바라보면서 이 가르침이 주어졌다는 것은,
제자들이 잘 알고 있던 친숙한 소재를 사용한 놀라움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